



그리워하지 말아라.
밤마다 촛불을 밝힌 애절한 사랑이
세석에 흐드러진 철쭉 꽃으로 피어나는 날
촛대봉에서 말없이 흐느끼는 달빛을
푸른 초목의 바다 위를 떠갈 때
검은 구름이 초목의 푸른 빛을 거두고
굵은 장대비 위에서 몸부림치던 암울한 뇌성과 지리산의 울음소리
그리워 하지 말아라
들국화 핏기 없는 얼굴로 울먹이는 날
유전되는 슬픔을 서러워하는 원추리 측은한 눈물과
당단풍에 떨어지는 가을 빛의 가엾은 추억을
황량한 흰 눈밭을 돌아온 칼바람이 쇳소리로 울고
비수처럼 텅 빈 가슴을 뚫어
사무친 세월의 거친 뺨을 사정 없이 후려치는
그 매운 지리산 바람 맛을
올해는 태극종주에 대한 집착이 내내 따라 다녔다.
특히 인월의 바래봉구간과 동부능선의 미답의 길은 지리산의 그리움에 새로운 갈망을
보탰다.
폭우로 인한 지리산 주능종주 실패와 서부능선 종주길에 그들과 합류하지 못하고나서
그저 안달이 났다.
2006년 8월 12일
지리산 장터목 산장을 예약했다.
마음이 동할 때 저질러 버려야한다.
그래서 주사위를 던져버렸고 이제 8월 5일과 12일, 13일 ,19일은 나의 첫 태극종주를
위해 완전히 비워져야 했다.
휴가를 내어 여유롭게 지리산의 품속에서 몇 일을 보내고도 싶었지만 집사람과의 해외
여행을 위해 휴가는 남기기로 했다.
그래서 무릉객의 태극종주는 수 많은 달인들이 인간의 한계와 자신의 체력을 실험하기
위해 구사했던 왕복종주나 무박종주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내 체력에 맞게 우리의 산하의 비경을 즐기고 탐험해가는 여유로운 태극종주 이어
가기라 이름 붙이는게 나을 듯 싶다.
이어가기 일정
8월 5일(토) : 인월-바래봉-고리봉-정령치- 성삼재의 서부능선을 종주
8월12일(토) : 성삼재-노고단-반야봉- 천왕봉의 주능선종주
8월13일(일) : 천왕봉에서 일출을 본 다음 중봉,하봉을 거쳐 밤머리재 까지
동부능선
8월19일(토) : 밤머리재-웅석봉-수양산-덕산교.
태극종주 첫째날 (2006년 8월 5일 토요일)
날씨는 무지하게 덥고 약 1시간 10분 정도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
약 10시간 30분 소요
06:25 구인월 마을회관
06:33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산길 들머리
07:57 덕두봉
08:37 바래봉 (약 20분 휴식)
09:20 팔랑치
09:59 부운치
10:53 세동치
중간 소나무 그늘에서 인천 산님과 약 30분 휴식
11:05 세걸산
12:18 세걸산 1.2km 정령치 2km 이정표
능선 바람 좋은 곳에서 약 20분 중식
13:14 고리봉(1305)
14:28 정령치 1km 이정표
14:59 만복대 (정령치 2km 성삼재 6km)
15:48 성삼재 3km, 먼복대 3km이정표
16:21 성삼재 2km 만복대 4km 이정표
17:07 성삼재
장마 후 한꺼번에 몰아치는 폭염이 걱정되어 마눌이 선선한 가을에 가라고 한다.
지리산 종주는 6월의 철쭉 시즌이나 여름이 제 맛이다.
8월의 야생화가 흐드러진다.
산아래 사람들이 더위에 허물어질 때 1년 내내 담아왔던 세속의 진폐를 굵은 땀으로
뱉어내고 어디서나 솟아 나는 지리산의 청수로 몸과 마음을 씻어낼 수 있다.
그리고 뜨거운 가슴과 유랑의 열기를 식혀줄 투명한 고원의 바람을 만난다.
출발준비
정령치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지만 35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0.5리터
생수 3통과 1리터 주스 한통을 얼렸다.
고원 레스또랑의 식단은 마눌 주방장 특선 된장 고추장과 함께 비비는 열무김치 비빔밥
그리고 간식용 빵.
장비는 디카와 헤드렌턴 그리고 등산용 스틱 1개
기타준비물은 하산 후 갈아 입을 옷, 헤드밴드, 선탠로션
다른 것들은 모두 배낭에서 빼어 버렸다.
인월 가는 길
알람이 새벽 세시반에 운다
준비한 배낭에 마눌이 싸 놓은 도시락을 챙겨 넣고 부산 떠는 소리에 잠에서 깬 마눌의
배웅을 받으며 어둠속을 떠난다. 새벽 4시
CD에서 흘러 나오는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대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을 거쳐 인월로 간다.
내가 다운 받아 저장한 80년대 서정적 노래들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감미
로운 여행 길을 만든다.
무주를 지나고부터 고속도로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는 구간이 많아 비상깜박이를 넣고
서행을 반복해야 했다.
함양에서 국밥으로 조금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휴게소를 나서니 날이 밝아 온다.
88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지리산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려는데 아침 해가 떠오른다.
덕두봉 정산에서 해돋이를 볼까도 생각했는데 초행길 인월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할까 걱정
되어 출발 시간을 좀 늦추어서 인월 들녘에서 해돋이를 맞는다.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떠 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본다.
구 인월 마을회관 (현 노인정) 쉽게 찾았다.
톨게이트 빠져나와 곧장 마을로 직진하여 다리를 하나 건너면 유리로 창을 만든 육모정이
있는데 등로는 마을위 재각을 지나 콘크리트 길로 이어진다.
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조용한 시골마을의 풍광을 감상하며 덕두봉을 오른다.
6시 30분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작물에 약을 치고 있고 아낙은 밭을 메고 있다.
인월 마을길 모퉁이에서 오늘의 옥수수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열심히 살아
가는 부지런한 사람들 앞에서 베짱이처럼 베낭을 메고 지나려니 미안하기도 하다.
덕두봉 가는 길
여기저기 폭우의 자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큰 비는 없었는지 강원도처럼 심각한 훼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슬이 발목을 적신다.
붉은 햇살아래 초장부터 땀이 배어난다.
후덥지근 해도 무수히 피어 있는 야생화들에 기분이 좋다.
바지와 등산화는 흠뻑 졌었는데 그래도 누군가 먼저 이슬을 털어낸 흔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척척 감겨야 할 거미줄이 없다.
7시 15분
내려오는 젊은이 하나 있다.
덕두봉을 찍고 내려 온다고 했다.
오늘 만난 또 하나의 부지런한 사람이다.
덕두봉 가는 길은 단조롭다.
덤불 숲과 칙칙한 수림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도 시계가 트이지 않는다.
큰 소나무가 지켜서 있는 두번째 능선에서도 무성한 나무 잎들은 시계를 열어주지 않는다.
7시 40분 처음 시계가 트인다.
1시간 만이다.
바람도 친정 가고 집 나갔던 굵은 땀만 돌아 온다.
조금 더 진행하니 덕두봉 봉우리가 코 앞에 보인다.
시시하다 덕두봉
심플한 덕두봉은 1시간 만에 시계를 한 번 허락하고 한참 후 봉우리 한번 더 보여 주고 나더니
아무도 없는 쓸쓸한 정상을 홀연히 열어 주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과 산그리메가 은은하다.
붉은 기기 약해져 가는 태양빛이 제법 강렬해졌다.
그래도 태양신은 아직 워밍업하며 몸을 풀고 있는 중이다.
덕두봉에서
태양 빛에 노출된 정상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잠시 휴식한다.
초장에 물이 많이 켜는 걸 보면 바람한 점 없는 오늘 날씨 장난이 아닐 것 같다.
어둠의 긴 밤을 달려 해뜨는 벌판을 지나 생애 처음 덕두봉에 올랐다.
아름다운 산그리메에 마음이 차분해 진다.
새로운 곳에서 마주한 낯 설은 고요가 좋다.
세월이 이리 빠르니 덕두봉의 오늘은 또 빨리 과거의 강으로 흘러 들 게다.
처음의 기대와 신비가 사라지고 난 다음 다시 내 마음을 잡아둘 수 없어 누군가와 바래봉을
다시 찾게 될 그날에도 덕두봉은 그저 잊혀질 게다.
다시 올 일이 있을까?
8시에 바래봉으로 출발이다.
바래봉에서
외로운 산객하나
앞으로는 연하를 산허리에 품고 있는 산릉의 모습이 신비롭고 가야 할 방향쪽으로 부드럽게
구비치는 능선과 푸른 초원이 아침 햇살에 싱그럽다.
봄이면 사람들이 몰려들긴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오래 전 정령치 능선을
따라 바래봉 철쭉 화원을 거닐고는 천상의 화원이라고 했다.
그 다음해 뇌리에 남겨진 잔상을 꺼내 들고 마눌과 어린 아이들을 바래봉으로 재촉했었다.
세월은 아이들을 고등학생과 중학생으로 키웠고 바래봉엔 봄마다 더 많은 사람을 들끓게 만들
었다.
꽃에 물리고 사람에 지치는 게 싫어 오랜 세월 다시 찾지 않은 바래봉은 아직 매혹적인 처녀림
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젊은이는 아랫마을에 사는데 지리산 천왕봉도 가보질 못했단다.
요즘 산에 매력에 빠져 홀로 가끔 산행을 한다고 했다.
산에 대한 이러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산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재미 있었던지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대답하느라 신명을 풀어
내다보니 20분을 지체했다.
반바지 차림으로 등산샌들을 신고 배낭에 등산화를 달아맨 한 사람이 바래봉 쪽으로 지나갔다고
했고 정령치 방향 좌측 등로로 700~800m 지점에 시원한 샘물이 있다는 고급정보도 얻었다.
정령치 가는 길
폭염의 위력을 안다.
계절을 태울 듯 연일 불방망이를 내려치며
열대야의 긴 밤의 여운마저 음미하려는 듯
태양은 스스로 휴식하는 밤조차 잠 못 들게 한다.
그래 오늘 진검 승부를 한 번 펼쳐보자.
백화점 가는 마눌이 멀리 떨어져 오랄까 봐 두껍게 선탠로션을 바르고
모자 아래 드리운 손수건으로 진군의 깃발을 올리고
이제부터 옛추억이 남겨진 길을 따라 정령치로 간다.
바래봉 아래에서 긴 능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샘터를 묻는다.
방금 수집한 고급정보를 흔쾌이 알려주고 가는데 원추리 꽃 밭이 반긴다.
철쭉과 인적이 사라진 능선에는 벌과 나비가 붕붕거리고
붉은 꽃의 화려함을 대신하는 야생화의 소박한 채색으로 푸른 초원의 화폭은 순수하고
정겨워 졌다.
초원의 빛은 여전히 눈부시다.
길섶에 주저앉은 아가씨 힘없이 웃는다.
더운 날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힘들게 산을 타고 있는지 ?…
고통을 상쇄하는 마음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아직 남아 있는 나무계단과 밧줄 난간이 지나간 봄날의 영광을 증거한다.
한바탕 일장춘몽처럼 꽃 잎이 바람에 날리어 가고 그저 철쭉은 다소간 쓸쓸함으로 초원의
빛 속에 동화되어 있다.
사람의 일 들도 다 그렇듯
살아가다 보면 한바탕 기쁨과 슬픔이 찾아 온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불행이 삶의 끝이 아니고 기쁨은 한 없이 계속되지 않는다.
가끔 불행의 골이 없으면 기쁨은 스스로를 기쁨이라 하지 않는다.
꽃 핀 철쭉만이 철쭉이 아니 듯
향기와 개화를 준비하는 시간에도 수더분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영광이 사라진 쓸쓸한 길에서 태양 빛은 너무 심술을 부린다.
사색과 명상은 떠나고 갈증과 원초적인 욕구의 충족에 골몰한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육체와 영혼을 흐믈거리게 한다.
폭염이 내리 찌는 세걸산을 지나
나무 그늘에 쉬는 이 있다.
제법 바람이 좋은 능선 쉼터다.
배낭에 매달린 등산화 인상착의로 보아 바래봉 산객이 이야기하던 산님이다.
인천에서 사는데 지리산 역병이 도져서 혼자 태극종주길에 나섰다고 했다.
오늘 뱀사골 산장에서 자고 내일은 장터목 산장에서 머무른 다음 새벽 세시쯤 출발해서
응석봉 거쳐 수양산 까지 태극을 완성 한단다.
오늘 같은 날은 계곡산행을 하고 알탕을 해야 하는데 날을 잘못 잡았다고 했다.
으레껏 나오는 산꾼의 엄살
시원한 그늘에 바람도 살랑거리고 길동무도 있으니 퍼질러 앉았다.
나 역시 혼자 가는 길에 그다지 시간에 쫓길 일 없고 그 역시 해가 떨어지면 시원해서 길
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정령치는 3 km 정도 밖에 남지 않았으니 물도 실컷 마시고 여유로운 담소를 나누며 오랫
동안 휴식했다.
여전한 폭염길을 간다.
정령치 2km 전 이정표를 지나고 모처럼 정령치에서 오는 산님을 만난다.
동부능선 수양산에서 시작해 4일째 태극을 마무리 한다고 했다.
비쩍 말라 군살 없는 체형은 장거리 산행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동부능선에서 알바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 길이 어떤가 물으니 자신은 길눈이 밝은
편이어서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중봉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고 하봉 아래 계곡에서는 알탕을 할 수도 있단다.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귀중한 정보인 셈이다.
그에게 축하의 말과 아울러 동류의 하이에나 습성에 경의를 표했다.
5시가 못되어 아침식사를 했으니 배가 넘 고파서 식사를 하고 가겠노라고 했다
길동무는 바래봉 아래서 좀 늦은 식사를 해서 정령치에 가서 먹는단다.
불볕의 산하가 내려다 보이는 고원 레스또랑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끌어주고 고원의 산바람이 분위기를 띄운다.
주방장 특선 요리 (열무비빔밥)에 전원의 낭만적인 분위기
매미 악사는 긴 장마에 일정을 펑크 냈지만 대자연의 서비스가 훌륭했던 점심식사는 여행
길의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과 휴식을 가져다 주었다.
고리봉에서
구름이 반야봉을 휩싸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간다.
예기치 않은 동행과 길동무하고 또 바람길 레스또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바람은 이제 뻔질
나게 날 따라 다니고 있다.
정령치에서 올라와 일대를 굽어보며 감탄사를 날리고 있는 수 많은 산객들은 지리산의 장엄
함에 취하고 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사람이 만든 길이 너무 보기 싫다.
1000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의 주차장도. 몸만 오르면 모든 게 만사형통 일 텐데 사람
들은 굳이 땀의 가치를 외면하고도 절경을 탐하려는 욕심을 위해 수 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동물
들을 그들의 세상에서 몰아내 버렸다.
성삼재 도로가 관통한 날 산신령님은 목놓아 울었을 게다.
정령치
갑자기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리산이 오히려 낯설다.
내가 대통령이면 정령치 휴게소와 성삼재 휴게소는 폐쇄시키고 성삼재 도로는 자동차 통행을
금지 시키겠다.
그 길은 새와 동물들 그리고 두 발 달린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 주겠다.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양쪽에 고도에 따라 잘 적응하는 가로수들을 심어 노고단까지 길게 이어
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나이드신 분들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국처럼 가마꾼을 허가해서 연로하신 분들의
비경 산책을 돕겠다
그래서 난 정치가가 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이런 空約하면 우리 산님들 쌍수(?) 들어 환영해 주지 않을까?
부족한 물을 채우고 길동무를 만났다.
등산화가 한 짝 떨어져 나갔 단다.
위에 떨어져 있는 등산화를 보지 못했는데 어느 골짜기에서 빠뜨렸나 보다.
등산용 샌달 하나로 태극종주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근데 정령치 물은 왜이리 미지근 한겨?
만복대 가는 길
만복대를 바라보는 능선 길을 오르는데 날씨가 무덥다.
오름길에 바람 길도 막혀 있는데 더운 날 물을 많이 마셔 배가 꿀럭 거리고 몸이 무거워 진다.
지리산 호랑이 장가 간다.
햇빛이 나 있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방울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아 나뭇잎이 터진 길목에
앉아서 빗물을 받는다.
40분쯤 올랐을까?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오름 길 그늘이 좋은 곳에 길동무가 휴식하고 있다.
땀나고 더워서 못 가겠단다.
휴식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길동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난다.
능선에서 구름이 몰려드는 모습을 본다.
멀리서 천둥이 그르렁 거린다.
흐르는 바람결에 차가움이 묻어오고 비릿한 흙 냄새가 실려 온다.
멀리서 비가 달려 오고 있다.
만복대를 오륙백 미터쯤 남기고 맑은 날이 순식간에 어두워 지고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폭염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단비
내 딸래미 이름이 은비인데 단비라 지을 걸 그랬나?
농부에게만 단비가 있는 줄 알았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굵은 소나기를 맞으니 그렇게 시원하고 후련할 수 없다.
정말 소나기가 쏟아져 주기를 바랐는데
비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은 땡 빛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소나기가 들이친다.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에 경외감마저 인다.
지리신령님이 태극종주 길을 지켜주고 있다.
만복대
표석과 이정표만 비에 젖고 있고 굵은 비가 쏟아지는 만복대에는 아무도 없다.
만복대에 가까이 가면서 뇌성벽력이 장난이 아니다.
벼락을 맞을까 두려운 마음에 만복대 사진만 급하게 찍고서 조금이라도 낮은곳으로 피신
하려 능선 길을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능선에서 완전히 쫄았다.
컴컴한 날씨에 번개불이 번쩍이고 천둥치는 굉음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 간이 오그라 붙는다.
오늘이 내 제삿날인 모양이다.
귀를 안 막으면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천둥소리가 쉴새 없다.
마치 포탄이 여기 저기서 터지고 있는 전쟁터를 가 듯 분위기는 살벌하고 비장하다.
천둥소리가 이렇게 큰 줄을 예전에 몰랐다.
만복대 아래 능선에는 숨을 곳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일이 어쩌다 순식간에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천둥소리가 무서워서 더 가지 못하고 나무 계단에 앉아 귀를 막고 최대한 자세를 낮춘다.
얼마 전 백두산 천지에서 한 사람이 벼락 맞아 죽고 두 사람이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오금이 저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스틱은 멀리 아래 쪽으로 내던지고 디카는 배낭 깊이 묻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길동무가 왔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들켰는데 그도 놀라기는 많이 놀란 모양이다.
만복대 사진을 찍는데 갑작스런 엄청난 천둥소리에 자신이 벼락 맞은 줄 알았단다.
어짜피 벼락이 떨어지면 숨을 곳도 없고 아직 길이 남았으니 그냥 갈 길을 가잔다.
등산화에서 찌걱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뢰와 같은 뇌성을 들으며 만복대 능선길
을 간다.
무시무시한 대자연의 오케스트라였다.
한 여름에 머리털이 쭈빗쭈빗 서는 공포를 느끼며 대자연의 광포한 연주회를 감상한다.
배째라!
벼락맞아 죽을 팔자면 오늘 죽겠지…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담담해진다.
미친놈이 정신 없이 부딪히는 심벌즈 소리 같은 굉음도 자연의 소리로 귀에 들어 왔다
산과 자연이 무슨 대화를 하는 지도 몰랐다.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리셉션인지 경고인지도…..
성삼재 가는 길
산을 하나 넘으면서 번개와 천둥은 많이 줄었다.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한 시간이 넘게 내렸다.
흠뻑 젖어 후련해 본 날이 있는가?
달아 오를 몸이라 1000고지의 빗물도 차갑지 않고 시원하다.
마루금의 등로가 순식간에 작은 개울을 이루고 흡사 늪지대를 탐험하 듯 폭우속에 물길을
따라 간다.
여유로운 내리막길에 시원한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이 유쾌하고 즐겁다.
이런 날도 있구나….
불볕더위를 만나고
시원한 바람을 만나고
억수 같은 소나기에
산을 집어삼킬 듯한 뇌성을 만났다.
비가 그친 능선에서 잠시 휴식하며 만복대를 돌아본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느냐는 듯 벌써 머리 위에 흰구름을 걸고 있다.
비에 씻기운 계곡은 맑은 모습으로 드러나고
잔잔한 바람에 운무가 흩날린다.
또 한 사람의 종주자를 만났다.
인월 마을회관에서 혼자 비박하고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데 2시간 반 늦게
출발한 내가 따라 잡았으니 나보다 더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이다.
사진 찍으며 천천히 다닌단다.
폭우가 들이치는 정령치에서 만복대 구간엔 태극 종주자 우리 셋만 있었다
비는 멎었지만 나뭇잎에 남겨진 빗물이 계속 쏟아져 내려 성삼재 가는 길 내내 흠뻑 젖었다
멎었던 비가 내려가는 길에 다시 뿌리더니 성삼재 도로에 내려서자 다시 비가 멎었다.
고생을 각오하고 폭염 속을 뛰쳐나갔던 산행길이 갑작스런 소나기로 고통 없이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한편의 공포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 가슴이 벌렁거리고 간담이 서늘해 졌다.
지리신령님의 익살에 피서 한 번 제대로 한 멋진 태극 길이었다.
인천 길동무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태극종주 무사히 마무리 하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헤어졌다.
노고단을 향해서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산 사나이의 황홀한 고독을 보았다.
길동무가 있고 멋진 반전이 준비되어 있었던 태극 1구간은 아직 짱짱한 체력인
상태로 10시간 30분의 긴 시간여행으로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자동차 무임편승은 생각도
못하고 택시기사에게 3만원에 양해를 구한 후 인월 까지 갔다.
산행의 마무리에 으례껏 따라 붙는 뿌듯함에 후련함 까지 더했던 혼자 만의 멋진 산행길 이었다.
서남부 능선길이 수미산 이었다
내 안의 불국정토
언젠가 읽은 책에서 그랬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기분 좋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때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로 삶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좋은일 이라고 배운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일 뿐입니다.”
삼복 무더위에 강행하는 10시간 이상의 거친 산행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 고통과 역설적인 기쁨이 나의 영혼을 노래하게 한다.
태극종주 둘째 날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날씨는 무덥고 약 30분 정도 게릴라성 폭우
12일 노고단 ~ 장터목 약 13시간 14분 소요
13일 장터목~천왕봉~장터목~백무동 약 3시간 40분 소요 (해돋이 체류시간 제외)
02:20 구례구역 도착
03:24 성삼재 매표소 통과
03:57 노고단 산장
04:08 노고단
05:17 임걸령
05:50 노루목
06:15 삼도봉
06:45 화개재
07:29 토끼봉
08:34 명선봉
08:40 연하천 산장
09:02 벽소령 가기전 전망대 1
09:36 벽소령 가기전 전망대 2
09:50 형제바위
10:40 벽소령 (1시간 식사)
13:26 칠선봉
14:17 영신봉
14:27 세석 갈림길
14:44 촛대봉
15;33 조망바위
16:20 연하봉
16:38 장터목
04:10 장터목 출발
05:10 천왕봉
06:50 장터목
09:00 백무동 버스 정류장
지리산 품속에서 이틀을 보내려고 출발준비를 하는 금요일 저녁은 마음이 붕 떠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눌은 무더운 날 무리하지 말고 귀연과 함께 가란다.
지난번 폭우로 벽소령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그 실패의 길 끝에서 태극을 잇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천왕봉 일출도 보아야 하고….
출발준비
헤드랜턴,스틱, 디카,썬탠로션,헤드밴드,손수건 두장, 코펠, 가스연료, 라면2개 , 김치한 통 ,
고추와 고추장, 마늘짱아치,쏘세지, 쵸코파이 7개, 양갱 2개, 우의 , 갈아입을 속 옷 , 반바지
와 긴팔상의, 자켓 빈물통 3개(1.2l 1개, 500ml 2개)
밥은 햇반으로 해결하고 반찬만 가져 간다.
물은 빈통만 가져가서 샘터에서 생수로 채운다.
구례구 가는 길
무더운 날 한 낯의 뜨거운 열기의 잔상이 아직 살아 있다.
서대전역에서 마눌과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11시 45분 우등 열차 탑승
여름 휴가의 막바지라 열차를 타고 떠나는 산객들이 많다.
열차의 3분이 2는 등산객이다.
0시가 넘어 출발하는 열차도 마찬가지 일 테니 내일 지리산에 들어갈 사람의 수는 엄청난
셈이다.
머리만 붙이면 잠드는 내가
잠을 청할 수 없다.
지리산으로 떠나는 열차에서는 언제나 하얗게 밤을 세웠다.
작은역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돌림병처럼 해마다 늘어나는 지리산 열병이 늘어만 간다.
바쁜 사람들은 삼삼오오 편승하여 노고단으로 가고
전주 식당에 앉았다.
2시 30분에 마주하는 아침식사
그 시원한 재첩국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노고단으로 갔다.
붉은 수은등이 졸고 있는 노고단
노고단
휘영청 달이 밝았다.
어둠 위에 엷은 베일을 두르고 있는 달 빛은 몽환적이다.
교교히 흐르는 달 빛이 사람을 달뜨게 한다는 건
백두대간을 휘영청 밝힌 보름달 빛에 길을 묻던 산길에서 알아 버렸다.
어슴프레함을 걸고 있는 신비로운 밤길을 따라 노고단으로 간다.
감미로운 야반의 서정을 카메라의 눈으로 잡았는데
카메라의 시력이 내 눈보다 더 나쁠 줄이야
신라의 중흥을 기원했던 노고단
시조의 알을 품었던 仙桃聖母님은 지켜보고 계실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는 노고단은 달 빛 아래 잠겨 있고
사람들은 달 빛이 쏟아낸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지리산을 깨우고 있다.
임걸령
아직 어둠에 쌓여 있는 林傑嶺에 도착 했다.
구례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올라 왔는지 어둠 속에 이마의 불 빛으로 취사를 하는 산객
들이 있다.
여전히 변치 않는 건 지리산 만이 아니다.
임걸령이 물 맛
어둠속에 남겨진 갈증을 후련하게 풀어헤친다.
의적 林傑은 그래서 배산임수의 요충지에 산채를 꾸릴 수 밖에 없었다.
노루목
긴 목을 한 노루의 기다림으로 새 아침이 밝았다.
반야봉에서 일출을 보려 했는데
능선 위에 머무는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나온다.
노루목 바위에서 달려오는 푸른 새벽과 능선에 감기는 구름의 모습이 눈에 시려 반야봉
오름 길을 접었다..
능선 어디선가 떠오르고 있을 붉은 태양의 모습을 보려고 반야봉을 오르는 대신 능선을
따라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삼도봉
삼도봉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능선 위로 떠오른 붉은 태양을 만났다.
구례구에서 재첩국 한 그릇을 비우지 않았으면 반야봉에서 일출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어짜피 능선에 걸릴 태양이었다.
반야봉 낙조라 했거늘
내 인생의 황혼 쯤엔 반야봉의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볼 수 있을까?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던 노정객도 말 없이 사라져 갔듯이
머지 않아 다가올 황혼 길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어떤 느낌을 가져다 줄까?
삼도봉에서 운무에 쌓인 신비로운 계곡을 바라본다.
안개가 바람에 거칠게 흐르고 아침 해는 안개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초록의 수림 위로
던지고 있다.
산이 열리는 새벽은 언제나 장엄하다.
투명한 고원의 바람을 타고 흐르는 수림의 향기는 맑고 깨끗한 지리산의 아침을 깨운다
그래서 불면의 밤길을 걸어 그 아침의 한 가운데 설 가치가 있는 거다.
화개재
피곤이 몰려 온다.
지난 번에 비가 몰려오던 화개재에서 (눈 한번 붙이지 못했으니 졸릴 만도 하다)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 벤치에 누웠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아 축축한 벤치
15분 정도 선잠이 들다가 깼다.
조용하던 화개재가 왁짜지껄 해지고 몇몇 산님들이 내 옆에서 아침 술상을 본다.
토끼봉
아침 햇살에도 무더위가 느껴진다.
토끼봉 나무 난간에서 내려다본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이 평화롭다.
연하천 산장
하루 종일 깨어 있으니 점심 때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이제 08시 40분
태양은 아직 붉은 기를 거두지 않았다.
지난번 비 오는데 붐비는 취사장에서 먹었던 열무 비빔밥이 꿀 맛 이었지
미지근해진 임걸령 샘물을 연하천 물로 갈고 잠시 엉덩이를 땅에 붙여본다.
못 보던 이원규님의 시 한 자락이 허공에 걸려 있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 하시면 제발 오지 마시라”
얄궃다.
사람의 마음 변덕스러워도 산을 찾는 마음은 한 마음인데 박절하게 오지 말라 한다.
그렇게 오지 말라 하는데 해마다 지리산을 찾아 오는 사람이 늘어나기만 하니 사람들은
이래저래 험한 세상 살아 가면서 쏟아내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이다.
형제봉
날씨가 뜨거워도 태양이 구름 속을 들락날락 하고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서부능선
때 보다 한결 산행길이 수월하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능선이 유장하다.
산릉은 벽소령 산장을 품고 세석을 향해 기운차게 오르고 멀리 옆으로 뻗은 능선은 푸른
하늘 아래서 흰구름을 휘감고 있다.
익숙한 풍경에 구름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형제바위
형제바위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바람이 있고
자연이 만든 석부작이 하나 있다.
바위사이 가파른 절리를 오르면 멋진 소나무 한 그루 서고 일대가 후련하게 조망된다.
오르지 못할 것 같아도 오른쪽 바위 구멍을 통과하면 형제바위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오를 수 있는 길임을 알고
그 위에서 흐르는 바람 맛을 알고 있기에
그예 또 아해의 마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ㅋㅋㅋ 무릉객 아직 청춘이다.
굳이 비좁은 바위 틈새를 올라 바위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니…
오늘 갈 길이 바쁘지 않으니 돌아 내려 소나무 그늘아래 나른한 시간을 걸었다.
바람이 좋고 풍경이 좋아 발길이 그렇게 밀린다.
벽소령
지난 6월 폭우로 인한 회군의 현장
오늘은 무더위가 점호를 취하고 있다.
벽소령 달이 지리산 10경이라는데
음정 이장님은 해마다 늘어나는 등산객의 발길을 묶어두기 위해 달빛과 청정 지리산을
패키지로 묶는 달빛축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달밤에 만들어가는 산골의 추억과 달빛으로 길을 내는 가족동반 야간 산행은 목가적이고
낭만적일 것이다.
난 깜깜한 밤에 이마에 후레시 불을 끄고 한계령에서 달빛을 따라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다.
얼마나 황홀한 경험이었던지 세월이 가도 달 빛에 잠긴 설악의 무채색 낭만을 잊을 수 없다.
달은 사람을 달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
노고단에서 휘영청 밝을 달을 보았는데 뜨거운 태양은 달빛 처연한 벽소령의 풍경을 비웃고
있다.
오는 길에 이것저것 빼어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조선족은 역시 빵과 주전부리로는 허기를 때울 수 없다.
햇반을 하나 사고 남은 물을 끓여서 날 더운 날 라면을 먹는다.
그래도 국물이 있으니 좀 나은 편이다.
물도 보충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마치고 출발하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노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흐른다.
그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선비샘
1시간 거리 쯤에 샘이 있다.
물 무게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
순전히 내 주관이지만 임걸령 물맛이 최고요 그 다음이 선비샘 아닐까?
장마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을 많이 품고 있을 터인데도
선비샘 수량은 줄었다.
쭐쭐거리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면 물을 왈칵왈칵 쏟아내는 신비로운 격정은 변치 않았다.
영신봉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 기는 길에 지리산이 눈살을 찌푸린다.
배낭 무게에 눌려 내 인상이 찌푸러 드는 모양이다.
슬슬 신호가 온다.
내일 일정까지 소화할 물량을 지고 가는 길이 만만 하지는 않다.
넉넉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움직여 가는 길이라도 무거운 등짐이 순례와 탐미의 여정
에서 잊었던 고통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그래도 뜨거운 날씨보다 오히려 산행하기 좋은 걸 보면 저번처럼 산신령님이 또 배려해
주심이다.
영신봉 오르는 철게단 아래 전망대에서 자욱한 안개만 보고 솟구치는 시원한 바람만 맞았다.
힘겹게 철계단을 올라와 널부러졌다.
철퍼덕 앉아 안개 바람을 맞는다.
그 시원함이라니 ..
멋진 조망 대신 온몸의 열기를 순식간에 걷어가는 그 안개 바람에 한참 동안 몸을 맡겼다.
후련한 바람 맛이다.
세석평전
영신봉을 떠나면서 비가 조금씩 뿌린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움이 지친 발길에 새 힘을 실어 준다.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1000고지의 드넓은 고원
철쭉이 지고 난 후
작은 관목과 들꽃들의 조용한 속삼임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루지 못할 사랑이 있었다 한다.
소망의 촛불에서 떨어진 촛농이 촛대봉을 이루고 그 피터지는 아픔이 세석의 붉은 철쭉 으로
피어난다고 했다.
슬픈 사랑이 전설을 기억하는 듯 낮은 구름을 걸고 세석은 조용히 묵상하고 있다.
촛대봉 완만한 오름길이 힘겹게 느껴진다.
쏟아질 듯 한 비는 멈추었다.
다른 때 보다 2시간 정도 천천히 가는 여정인데
속도를 늦추는 것이 힘겨움을 덜어주는 건 아니다.
몇 일간 금주와 몸관리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 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같지 않게 빌빌대는
걸 보면 글쎄 세월 탓인지 날씨 탓인지….?
아직 돌아 보아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많은데..
아직은 짱짱하다고 말하고 싶어 배낭 무게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 해본다.
촛대봉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관록이 있어
안개 속에 피어난 들꽃들과 평화로운 고원의 감회에 젖으며 오르다 보니 촛대봉 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고 바람 시원한 촛대봉에 비스듬이 누웠다.
촛농이 녹아 만든 바위가 울퉁불퉁하여 엉덩이 대기가 불편하긴 하다.
한참을 바람 길에서 운기 조식하다 보니 온몸이 으실으실 춥다.
한여름에 추위라니!
지리산 꼭대기에서 한여름에 제대로 된 피서를 하는 셈이다.
조금 있다가 난리가 났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예비동작 없이 갑자기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판에 깜짝 놀라 우비를 입는데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큰지 소나기를 맞는 등허리가 따갑다.
지난번 서부능선처럼 뇌성벽력은 동반하지 않았지만 흡사 양동이로 퍼부어 대며 한여름
장마비를 방불케하는 게릴라성 폭우는 순식간에 등산로를 물길로 만들어 버리고 시뻘건
황토물이 쏟아져 내리게 한다.
우비를 입고도 흠뻑 젖었고
등산화로 쏟아져 들어온 빗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간다.
촛대봉 폭풍과 장대비를 피해 삼신봉 쪽으로 내려서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숨었다.
촛대봉에서 안개바람으로 이미 냉장처리가 된 터라 우비를 입고도 너무 춥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인데 지리산 능선이 길다 보니 별일이 다 많다.
30분쯤 대차게 내리던 빗발이 가늘어진다.
방수가 되기는 되는 모양이다.
와장창 들어온 빗물은 나갈 생각을 않은 채 등산화안에서 파도치고 개구리 노래를 한다.
흐물거리는 육체와 흐리멍덩해지는 정신의 날을 또 비가 세워 준 셈인가?
삼신봉
삼신봉 가는 길 철계단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장관이다.
구름의 아래 쪽이 걷히고 햋빛이 비치는 산릉의 푸른 모습이 드러난다.
한바탕 소나기는 콧구멍이 상쾌한 대기를 가져다 주고 지리의 화폭에 구름이 펼쳐내는
멋진 대자연의 향연을 그려내고 있다.
그 변화무쌍함 이야말로 무수히 변하는 가운데 변함 없는 지리산의 진면목 아닐까?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의 기억은 고통의 순간을 정제하고 걸러내어 그리움만 남게 하는
지도 모른다.
순례의 길을 마친 사람들은 행복한 귀환을 하고 그 잔상이 사라지는 어느 날 사람들은 또
그리움의 열병을 앓다가 다시 발작과 충동으로 지리산으로 떠나고야 마는 것이다.
삼신봉 바위에 걸터 앉았다.
등산화 물을 버리고 양말을 짜내고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시시각각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공연의 막은 오르고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칠 생각도 없이
그저 주저 않아 탄성을 지르고 찰라의 영상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1807봉
연하봉 가는 푸른 빛 능선이 싱그럽다.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다시 자욱하게 들어 찬다.
안개란 언제나 보이는 물상 위에 한자락의 신비를 깐다
연하봉 이름처럼 안개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암릉의 봉우리를 감돌고 무수히 피어난 이름 없는
야생화는 푸른 초원 위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시새우며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장터목
해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지리산 종주
장터목 바람 맛은 유명했다.
올해는 8월 이지만 6,7월의 날 선 장터목 바람에서 늦가을의 추위를 느끼지 않은 날이 없었다.
폭우에 흠뻑 젖었던 옷은 시나브로 마르고
안개 흐르는 장터목에서 마주하는 8월의 바람은 시원하다.
갑자기 사라진 목표에 긴장이 풀리고 나른해진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주저 앉아 취사를 준비하고 있다.
산다는게 무어야?
자꾸 가슴한구석이 딱딱해지고 또 허물어지고
가을 바람에 낙엽 마르듯
점점 감동이 메말라 가는 것
사람의 고향은 자연인 모양이다.
자연 속에서 이렇게 푸근한 걸
삶 속에서 잃어버린 감동들이
나뭇가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고
길 위에 저렇게 구르고 있는 곳
정말 멋지게 나이 든다는 건
여전히 튼튼한 두다리를 잃지 않는 것
자꾸 무디어 가는 감상의 날을 세우고
떠나려 하는 감동의 뒷덜미를 놓아주지 않는 것
반야봉 낙조를 보았나?
장터목에서 떨어지는 해는 반야봉 감동만 하지 못할까?
대자연의 감동은 도처에 널려 있다.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 황홀하고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가슴 시리다.
다시 고동치는 가슴과
전율처럼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감동을 느껴보라
황혼이 지는 장터목에서
천왕봉 일출
다행이 올해는 코를 심하게 곤다고 깨우는 사람이 없었다.
9시쯤 취침해서 3시쯤 술렁이는 사람들 때문에 깼다.
6시간은 시체처럼 잔 셈이다.
동부능선으로 내려 설 거면 빨리 밥을 해 먹어야 한다.
어제 배낭의 무게 때문에 힘이 들어서인지 온몸이 찌부둥하고 몸이 가볍지가 않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늘 하루 염천의 10시간 이상 산행이 두려워진다.
게다가 초행길인데…
나서면 또 가긴 가겠지만 체력적인 무리로 심산주유의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오늘은 장인어른 생신이다.
처가집 식구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한다는데 5남 1 녀중 막내 딸의 유일무이한 사위가
또 빠진다고 했던 것이다.
지난번 장모님 제사 때도 지리산에 갔다가 너무 늦게 오느라 제사 참석도 못했었다.
이래저래 장인어른께 면목이 없는데 마눌은 입장이 난처하고 서운해도 별 말을 안 했다.
오래 살아오면서 나와 나의 세상을 너무도 잘 이해해주는 마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동부능선 구간은 귀연팀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컨디션 난조를 빙자해서 종주계획을 수정하고 장인어른 생신행사에도 참석을 하기로
했다.
이제 일출을 보는 일만 남았다.
올해도 산신령님이 허락할 거라는 느낌이 온다.
자욱한 안개가 오락가락 했는데 천왕봉에 길을 내면서 오히려 날씨가 좋아 지는 것 같다.
연속 삼년 지리산 종주에 일출을 보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백두대간 마무리하는 날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런 해돋이를 만났고
재작년 청계님이하 7명의 산우들이 함께했을 때는 노고단과 천왕봉에서 모두 일출을 보았다.
처음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올렸는데 축하 댓글이 많이도 달렸었다.
작년에 혼자만의 종주 때도 당근 멋진 일출을 보았다.
디카를 잃어 버리는 바람에 공들여 표구한 비뿌리는 세석의 멋진 철쭉도 천왕봉의 환상적인
일출도 일거에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내가 택일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지리 신령님의 보살핌이었다.
대전 가기 가장 빠른 백무동 하산을 예상하고 배낭을 산장에 놓고 오르는 데도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작년에는 종주하고 그 다음날 천왕봉에서 날라 다녔는데….
붉은 여명이 뜬다.
흩어지는 운무는 없지만 천왕봉의 실루엣에는 톱니바퀴처럼 사람의 모습이 물리고 붉은 무지개
띠가 캄캄한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구름 층이 있어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다시 천왕봉 일출을 대할 것이다.
4년 연속 지리산 일출보기를 기원하며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마무리하고 바람 시원한 천왕봉
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백두대간이 끝나는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장엄하고 경건하다.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천왕봉 일출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나는 오늘 또 만나고 있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저 빛나는 태양의 축복이 언제나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 주고 남은 인생
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기를…”
넉넉한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대자연의 황홀함을 만난다.
나는 상류층이다.
구름 위를 거닐고 높은 곳에서 떠 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상류에서 몸 씻기를 즐겨하는 나야
말로 상류층이 아닌가?
마음이 시리면 치유되고 있는 거다.
선홍 빛 핏물이 구름 위를 흐르듯
메말라 가고 굳어가던 가슴으로 감동의 피가 흘러가는 거다.
나는 다시 천왕봉에 서서
오늘 하루 영혼의 자유를 꿈꾸며 훨훨 날아 가는 거다.
지리산의 아침
하늘 빛은 푸르고 먼산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황금빛 햇살이 고원에 드리 운다.
죽은 채로도 제석봉을 떠나기 싫은 고사목처럼
그냥 주저 앉아 눈부신 아침을 배웅하고 싶다.
백무동 하산 길
아침은 먹지 않았다.
새벽 일찍 먹었으면 몰랐을까 장터목의 식수는 이제 점점 줄어들어 수도꼭지 2개에서 졸졸
나오는데 한번 받으려면 1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참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날아간다는 건 그런걸 두고 하는 말이다.
배낭은 아직 무거웠지만 9시 30분 함양행 버스를 탄다는 생각으로 바람처럼 계곡을 흘러
내렸다.
참샘에서 취사를 하렸더니 계곡에서는 취사금지다.
등산객들이 휴식하는데 김치찌개 냄새를 피우는 파렴치한이 되기 미안해서 그냥 백무동
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려가다 계곡의 외진 곳에서 몸을 씻었다.
알탕하기엔 수량도 시간도 부족하다.
환속하는데 야생의 냄새가 걱정되어 웃옷을 빨아 입었다.
갈아 입을 옷을 가져오긴 했지만 젖은 옷을 걸쳐야 시원할 것 같아서…
하산 길은 두 시간 걸렸다.
다시 뜨거워 진 태양은 내 웃옷을 감쪽같이 말려 주었고
지리산의 정기는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9시 30분 버스를 타는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서 요기도 했다.
함양에서 대전행으로 갈아타고 대전을 도착해서 식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늦지 않았고 산에
미친 사위가 왔으니 장인어른도 형님들도 모두 좋아했고 마눌의 면목도 섰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지리산 종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계속되어질 순례의 의식
이었다.
그리움과 감동은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할 것들 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혼탁함으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작은 숲은 신의 성전”이라고 했던가?
흐르는 세월이 덧없이 느껴지고 살아 간다는 의미가 희미해 질 때
누구라도 여름에는 무심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치자나무 향기를 맡아야 한다.
천왕봉 일출을 보면 더 좋지 않겠나?
지리산은 항상 거기서 넓은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리산으로 가라
그저 방탕한 얼굴로 지리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말 없이 거기 있는 것들
바람과 구름과 산과 들꽃을 묵묵히 바라보라
계곡의 물소리를 새들의 지저귀는 들어보라
영혼을 탁하게 하는 그 수 많은 21세기 정보들을 비워내고
잠시 세월의 짐은 내려 놓고
푸른 공기와 녹색의 바다를 가슴에 한 번 들여보라.”
잃어버린 것들
세월이 창문너머 던져버린 것들을 한 번 찾아보라.
그리고 다시 그리워하지 마라
또 살아 갈 날이 많고 돌아볼 것이 많은 날에
그리움의 병을 얻으면
다시 지리산에 들지 않고 배길 수 없느니…
다시 어머님 품에 가슴을 묻고 울지 않을 수 없느니
(후기)
태극 그리기를 완성하고 연결된 산행기를 올리려는 계획을 바꾸었다.
지난 주 한산지계곡을 따라 올라 천왕봉을 거쳐 새재 대원사를 아우르는 귀연팀의 동부능선
1차 출정 길에 합류했다가 산신령님의 2차 경고를 먹었다.
퍼붓는 폭우로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한 채 회군했다.
지리산은 입산 통제되고 사람들은 산장에 고립되었다고 했다.
가을 쯤에나 이어야겠다.
여름이 가기 전에 설악의 내밀한 곳도 돌아 보고 싶고 그냥 지리산의 가을 이야기도 듣고 싶다.
지리산 산신령님의 화가 언제 풀릴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 바쁜 2개월이 지났다.
일이 바쁜게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바쁜 나날을 ...
그리고 가을 편지가 도착하면서
남아 있는 지리산 동부능선의 가을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을 흔들었다.
나는 가을이 사각되자마자 그렇게 지리산으로 떠났다.
동부능선의 가을노래
동부능선의 가을노래
태극종주세번째이어가기(2006년10월3일)중산리-천왕봉-웅석봉
가을날씨 청명하고 바람 좋은 날
한낮에는 무더웠음
03 :30 : 중산리 매표소
04 :24 : 망바위
04 :50 : 법계사
05 :40 : 개선문
06 :12 : 천왕봉
06 :40 : 천왕봉 출발
07 :00 : 중봉
07 :54 : 전망바위
08 :13 : 식사후 출발
08 :20 : 하봉
08 :46 : 국골사거리
09 :24 : 쑥밭재
10 :10 : 진주독바위
10 :35 : 새봉
10 :40 : 전망바위
11 :53 : 새재
12 :25 : 서왕등재 (약 30분 식사)
12 :55 : 식사 후 출발
16 :25 : 도토리봉 헬기장
16 :50 : 밤머리재 (약 30분 휴식 및 식사)
17 :20 : 식사 후 출발
18 :00 : 웅석봉 가는 길 헬기장
18 :44 : 왕재
19 :30 : 웅석봉
20 :20 : 헬기장 , 어천 갈림길
21 :50 : 1001번 도로
진주가는 길
조용히 다가 온 가을과 차가운 새벽공기가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숙제처럼 남겨진 태극종주와 지리산의 가을
이젠 떠날 때가 되었음을 다시 돌아 온 계절과 울리는 가슴이 말해 줍니다.
하늘이 열린 날 지리산 동부능선으로 난 가을의 들창을 열어 젖히기로 했습니다.
혼자 떠나고 싶은 가을 입니다.
진주에서 중산리로 들어 가는 막차는 9시 10분 입니다.
귀성차량에 막히지 않는다면 밤 10시에 중산리에 있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주에서 하룻밤
자야 합니다.
오늘밤 지리산에 들지 못하면 내일은 태극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할 길일이 아닌 셈입니다.
지리 신령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천왕봉의 단풍을 보고 한신계곡으로 내려설 생각 입니다.
업무를 마치고 이어달리기 하듯 마눌에게 도시락을 건네 받고 서둘러 산청으로 출발합니다.
기름 값 절약 하려고 마눌차를 몰고 가는데 떼어다 붙인 GPS가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잘 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생겼습니다.
19시 40분에 산청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 했습니다.
주변 골목에 서둘러 차를 파킹하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진주 가는 버스가 한 대 기다리고 있
습니다.
내가 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떠나니 너무 순조로운 이어달리기에 내일의 태극
그리기 최소한 참가상은 따 놓은 당상 입니다.
이제 여행길이 여유로워 집니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진주에서 막차를 놓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식사 할 시간까지
생겼습니다.
시내가 다소 막혀서 진주에는 20시 23분에 도착했습니다.
일단 배가 고파 돼지국밥 집에 앉았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가락동에 할아버지가 끓여내는 돼지국밥 맛이 짱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돼지국밥이 너무 오래간만 입니다.
돼지국밥이 불러낸 빛 바랜 시간 속에 머무는 그 오래된 기억을 들추어 내며 터미날이
보이는 식당에서 혼자 밥 한 그릇 후딱 비웠습니다.
중산리 가는 길
일정에 차질이 없다는 생각과 나른한 식곤증 그리고 버스의 규칙적인 흔들림이 잠을 불러
냅니다.
중산리에는 10시 30분이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1시간 30분이나 걸린 셈 입니다.
중산리에서는 나와 같이 배낭을 맨 사람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낮에는 몰랐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어가는 중산리의 밤은 적막하고 을씨년스럽 습니다.
천왕봉의 가장 가까운 베이스 캠프 중산리는 기대했던 관광지의 화려한 네온 불 빛 대신 불켜
진 두개의 슈퍼와 민박 간판만이 을씨년스러운 어둠 속에 조용히 빛나고 있습니다.
아래 민박집은 방이 다 차버렸고 윗집에 투숙을 했습니다.
혹시 현금이 부족할까 봐 카드로 하렸더니 카드가 되질 않습니다.
3시 30분에 중산리 매표소를 통과하면 천왕봉 일출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중산리의 낯선 지붕아래서 핸드폰 알람을 3시에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듭니다.
4시30분부터 등산을 허락한다지만 무조건 세시 반에 통과해야 합니다.
중산리의 새벽
어김 없이 새벽 3시에 알람이 울립니다.
4시간을 자고서 마주하는 지리산의 청정하고 차가운 새벽공기는 아직 혼돈에서 깨어나지
않는 정신을 번쩍 일으켜 세웁니다.
쏟아질 듯 맑게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칠흑의 어둠에 쌓인 길을 올라 갑니다.
적막한 그 길 위로 불 빛 두 개가 따라 옵니다.
천왕봉을 오르고자 중산리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입니다.
실강이를 각오 했지만 순순히 매표소를 통과 시켜 줍니다.
시계는 정확히 예상한 새벽 3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2시간 30분 정도는 어둠에 쌓인 재미 없는 산길을 올라야 합니다.
너무 자주 오르던 길이라 보이지 않아도 보며 오르는 것과 진배 없습니다.
함께 통과한 몇몇을 제치고 선두에 나서고부터는 등로에 불 빛이 사라졌습니다.
둥근 불 빛 하나로 천왕봉으로 난 가장 빠른 길을 걸어 올라 갑니다.
30~40분쯤 갔을까?
아래에서 말소리와 함께 불 빛이 다가 옵니다.
평상적인 나의 산행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건
막강한 전투력의 준족들을 의미하는데
어둠을 가볍게 스쳐 지나는 고수들이 궁금해 집니다.
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거친 산행길 임에도 마음가짐과 준비부족이 느껴지는 행장으로 보아 출중한 공력의 산님
들은 아닌 듯 한데 젊은 혈기로 너무 들이대는 초반 스퍼트 같아 걱정스러웠습니다.
한참 후 산길에 주저 앉아 휴식하는 그들을 내가 다시 지나치고 끝내 태양이 떠오르는 천왕
봉까지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천왕봉 가는 길
법계사에서 누군가 오라 합니다.
울산에서 2시 45분에 올라온 일행들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니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불러
세웁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라 하면서 몇 시부터 올라왔냐고 묻데요
3시 40분 쯤이라고 이야기하자 표를 보여달라 합니다.
사간상 아마 매표도 안한 도둑산행 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표를 보여주니 중산리에서 너무 일찍 통과 시켰다고 투덜거리면서 그냥 올라가 라고 하더
군요.
매표소에서 못 가게 막아 어둠을 타고 넘었으면 점잖은 체면에 망신당할 뻔 했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갈 길을 재촉합니다.
5시 40분을 지나자 천왕봉 0.8.km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새벽 5시 45분 동쪽하늘에 붉은 여명이 번져가더니 6시경 날이 밝아 옵니다.
마지막 깔딱 고개는 역시 힘이 들었습니다.
천왕봉에는 06시 12분에 도착했고 태양은 정확히 20분에 떠 올랐습니다.
천왕봉(중산리에서 2시간 42분)
동네 뒷산 같습니다.
혼자 올 때면 지리 산신령님은 언제나 멋진 일출의 감동을 준비해 주시니 가슴을 울리는
지리산 병이란 이제 다시 들어오라는 신령님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년 연속해서 마주하는 천왕봉 일출에 올해는 벌써 태극종주 길에만 두 번째 입니다.
또 빌었습니다.
“자연을 향한 열정과 탄탄한 체력을 오래도록 간직케 하시고 언제나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희망이 충만케 하소서”
마치 처음 내가 일출을 대할 때처럼 진한 감동을 먹은 한 친구가 있습니다.
배낭을 메고 미동도 않은 채 떠 오르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젊은 친구 혼자 산을
올랐고 대원사로 하산할거라고 했습니다.
그가 부러웠습니다.
내 젊은 날은 산과 멀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엔 지리산 근처에조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30대 후반에야 겨우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직장 후배가 묻더군요
3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40대 마무리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더군요
체력을 길러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난 다음 산이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임을 알았습니다.
젊은 친구와 몇 마디 나누고 능선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가을속으로 떠났
습니다.
혼자 휘적휘적 떠났습니다.
중봉가는 길
가을은 기다리다 지쳐 벌써 능선을 내려가려 합니다
붉은 일출의 장관과 현란한 능선의 단풍들
어둠의 계곡을 지나고 지리산의 새벽이 풀어낸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중봉으로 가는 길
넘치는 태양의 에너지와 깊고 넓은 지리산의 정기를 온 몸에 받아서
인지 다시 발걸음은 가벼워 지고 가슴은 벅찬 감동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중봉(천왕봉에서 20분)
중봉에서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눈부신 태양은 다시 떠 올랐고 이슬을 머금은 풀잎은 보석처럼 빛나며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는데 지리산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지금 막 지나가고 있는데 다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첩첩이 흐르는 산릉 위로 가을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먼 골짜기에는 호수인 듯 구름을
머금고 있습니다.
하봉 가는 길
대원사 갈림길에서 휴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쪽문으로 연결된 금지구역으로 가는 길을 들어서려니 하봉쪽은 요즘 단속이 강화되어 벌금
50만원을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요
이젠 진짜 혼자 입니다.
뒤늦게 중봉을 내려선 몇몇마저 대원사 쪽으로 가고 이젠 단풍나무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혼자 하봉으로 갑니다.
하봉 가는 길엔 벌써 낙엽이 뒹굴고 있습니다.
성급한 잎새들은 가지에서 떨어지지도 않은 채 시들어 가고 바람은 눈부신 햇살조차 아랑곳
하지 않고 우수수 잎새를 떨구어 냅니다.
전망 좋은 바위 단풍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가을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단풍이 달려가는 능선과 골짜기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구름에
앉은 기분 입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레스또랑이 또 있겠습니까?
자연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웨이츄리스가 주는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전망좋은 스카이라운
지에서 마주하는 럭셔리한 성찬 입니다.
고원의 시원한 바람과 격렬한 체력소모가 미각을 돋우어 오감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사방은 절벽이고 절벽에 기대인 나무들 위로 가을이 한창 입니다.
여기가 무릉도원 입니다.
식사 후 조금 더 가니 하봉 옆으로 길이 나 있고 우측 길로 조금 가자 하봉을 오르는 로프가
매어져 있습니다.
하봉 (중봉에서 1시간)
하봉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 봅니다.
단풍이 흐르는 능선을 따라 고원의 가든이 보이고 지나온 중봉과 천왕봉이 보입니다.
중봉에서 식사시간을 20분 제외하면 한 시간 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잠시 풍광을 감상하다 봉우리 위에서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황량한 계절을 준비하는 나뭇잎이 아름답고
낙엽의 냄새가 들추어 내는 지난 추억이 따뜻합니다.
먹은 것 없이 배부르고 가진 것 없이 충만 합니다.
나뭇잎이 물들어 가고 또 바람에 날리어 가는 외로운 산길 그 속에 잠시 머물고 배회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냥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보면 흘러가는 우리 인생도 참 아름
답고 소중한 겁니다.
국골사거리 (하봉에서 26분)
국골사거리에 도착 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표지판 입니다.
여기 까지는 별 문제 없이 제대로 온 셈입니다.
국곡사거리에서는 새재 방면으로 우측 능선으로 하강 해야 합니다.
앞 쪽으로 길이 나 있기 때믄에 태극종주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할 구간중의 하나 입니다.
잠시 길목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 누리는 이 황홀한 고독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일깨
워줍니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의 호사
바로 이 맛 입니다.
쑥밭재 (국골사거리에서 35분)
국골 사거리에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높이가 떨어지지 않는 능선을 옆으로 바라보고 가
는데 마치 알바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계속 되는 내리막이라 골짜기로 잘 못 내려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걱정 안 해도됩니다.
한 참을 가다 능선을 돌아가는 듯한 길은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섭니다.
아직 붉은 아침햇살이 축복처럼 나뭇잎 위에 앉아 있습니다.
허리쯤 오는 산죽길을 지나서 한 오분 쯤 가다 열댓명 정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터를 만나
면 쑥밭재라고 보면 됩니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몇 개 달려 있습니다.
국골 사거리에서 약 30분 소요됩니다.
중봉과 밤머리재 사이에서 유일하게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물소리가 들립니다.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길을 내려가면 또 넓은 공터가 나오고 거기서 곧장 가면 흐르는 작은 계곡의 개울물
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물통에 물을 채우고 쑥밭재로 돌아와 잠시 휴식합니다.
독바위 가는 길
산죽길 사이에 반석이 앉아 있습니다.
3~4분 가면 머리까지 오는 정글 같은 산죽군락을 지나야 합니다.
산죽길을 지나면 집채 만한 바위가 떡 하나 앞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수호신 인 듯 오래된 고목나무가 버티고 있고 길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을 오르니 또 산죽 군락 입니다.
반골들
계절의 변화를 거부하는 건 청솔과 산죽들입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다 비슷합니다.
변화를 수용하고 따라 가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
니다.
계절에 앞서 먼저 잎새를 물들이고 잔 바람에도 낙엽을 떨구는 나무 같이 성질 급한 사람도
있고 무서리에도 붉은 잎은 떨구지 않는 느긋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 제멋에 살아 갑니다.
마루금이 아닌 산등성이 길 그리고 우거진 산죽들이 산행 길을 답답하게 하더니 오름길
바위에서 처음 시야가 트입니다.
지나 온 능선 길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하봉을 내려서며 국골사거리를 따라 흐르는 능선을 버리고 지능선으로 갈아 탔습니다.
본 능선은 고도를 유지하며 흐르다 가파르게 능선이 끊어져 버립니다.
산죽지대 오름 길에 바위가 다시 길을 막거든 우측 바위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면 됩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지리산의 고요함 속에 내가 있습니다.
처음 반대편에서 오는 부부 산님들을 만났습니다.
외딴길에서 코 앞에서 인기척을 내니 화들짝 놀랍니다.
새재에서 올라 왔다는데 진주 독바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진주 독바위 못미쳐 뒤 따라 오는 누군가 있습니다.
사진 찍고 풍경에 취해 내 발걸음이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걸음은 아닌데 가볍게
추월하는 걸 보면 대단한 내공 입니다.
잠도 자지 않고 종주를 하시는 분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그리운산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산악회에는 태극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고 사실 오늘
동부능선 초행길에도 그들의 지도와 자료를 가지고 종주 중입니다.
처음엔 왕복종주를 하는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너무 반가웠는데 갈림길에서 저는 등로에서 벗어나 있는 진주 독바위를 올라 보아야
했기에 아쉽게도 헤어졌습니다.
독바위
로프를 타고 독바위에 올랐습니다.
지나온 능선이 올려다 보이고 일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 집니다.
들개처럼 거친 산야를 떠돌면 세상의 독기와 화가 빠져 나가는 걸 느낍니다.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과 충혈된 두 눈이 부드러워지고 세속의 냄새가 탈취됩니다.
거긴 무색의 바람이 실어 나르는 낙엽 마르는 냄새, 철 지난 매미의 울음소리 그런 것
들만 있습니다.
로프 달린 절벽을 지나 꿩이 한마디 푸더덕 날고 나이 드신 부부 산객을 만났습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 앞서간 그리운산님과 말씀을 나눴는지 잠을 안자고 태극 종주를
한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그런 사람을 두자로 줄이면 “짐승”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새봉(진주 독바위에서25분)
이정표가 없이 갈래 길이 있습니다.
새봉에서 그리운산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훌쩍 앞서간 줄 알았는데 속도가 좀 떨어진 듯 합니다.
능선의 흐름이 바뀌는 가장 조심할 구간 입니다.
새봉에서 직진하지 말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새봉을 지나 전망바위가 나오고 바로 아래로 로프구간이 이어 집니다.
새재 가는 길
동행이 생겼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함께 길을 갑니다.
새재에서 올라온 산님을 만났습니다.
그리운산이란 이름만 듣고도 영광이라며 기념사진을 요청 합니다.
오늘 함께하는 길동무가 꽤 유명한 분이신 모양입니다.
다음에 만난 젊은 산객은 그리운산님 이름을 듣고 놀라면서 태극무박왕복종주 중이란
사실까지 알고 있다 합니다.
그리운산님은 한국 최초로 무박 태극종주를 완성하신 분으로 2004년엔 웅석봉 에서 덕두
산에 이르는 73km구간의 무박 왕복종주에 도전해서 78시간 만에 성공함으로써 왕복 태극
종주의 역사를 쓰신 분이었단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오늘은 “태극을 닮은 사람들”이 올바른 태극마루금으로 새로 개척한 웅석봉에서 진주남강
의 왕봉산에 이르는 루트까지 포함한 장장 왕복 200km의 신태극구간을 무박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 참으로 무한하고 그 용기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도 지리산 무박 태극왕복종주를 성공하신 고수들이 몇 분 계시는데 사실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을까 봐 함께 산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태극의 꿈을 심어준
장본인이 오늘 저의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저야 3~4 구간으로 나누어 덕두봉에서 웅석봉을 연결하는 태극그리기를 하고 있지만 지리
산의 주능선 종주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무박 태극왕복종주가 어떤 고통과 인내를 요구
할 것이란 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새재(새봉에서 1시간 18분)
새재에 내려서면서 억새가 많이 보입니다.
아랫쪽에는 평화로운 새재 마을이 보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해발은 많이 낮아져 있고 가을을 노래하던 나뭇잎들은 홀연히 사라져버렸
습니다.
푸른 여름의 숲과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싸리나무가 길가에 도열해 있습니다.
잠시 싸리나무 마른 잎이 던져주는 추억에 잠기며 길을 걷다가 새재의 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합니다.
그리운 산님을 응원하는 “태달사” 사람들은 밧데리가 떨어질 지경까지 끊임없이 격려의
화벨을 울리고 또 일부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미 이 근처까지 와 있는 모양입니다.
서왕등재(새재에서 32분)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마중 나온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앞서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그리운산님을 따라 가기가 버겁습니다.
3일을 안 잔 사람이 저럴 수가 있다니….
그는 전생에 야생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고개에서 일행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지나쳐 버리고 서왕등재 습지에서 잠깐의 해후를
했습니다
서왕등재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측길을 놓치고 능선 마루금을 따라 직진하는 바람에 왕등
재 숲을 우회하여 산비탈로 다시 서왕등재 습지로 내려섰습니다.
어쩌면 습지를 거치지 않고 능선 마루금를 따라 길을 잡는 것이 제대로 된 태극길일 것 같고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원의 습지를 보존하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습지를 지난 능선 그늘에서 그리운산님과 식사를 합니다.
제겐 아직 남아 있는 김밥과 빵이 전부였는데 덕분에 고원에서 상추와 싱싱한 야채를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밤머리재 가는 길
태양 빛이 뜨거운 능선에 올라 지나온 길과 가야 할 능선 길을 바라 봅니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고 날은 이렇게 뜨거운데 아직 가야 할 길이 아득합니다.
원래는 밤머리재에서 오늘 구간을 마무리하고 내일모레 밤머리재에서 수양산 까지 종주
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덕두봉과 웅석봉을 연결하는 태극그리기가 저의 목표였던 터라 욕심을 내서 오늘
웅석봉에 제 발도장을 찍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 지리산 태극종주도 3구간으로 나누어 마무리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3시간 쯤 야간산행을 하게 되겠지만 동행이 있으니 별 문제될 것도 없고 시간 상 내일 출근
에도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 출근만 안 한다면 내친김에 그리운산님과 함께 새롭게 그려진 태극 마루금을 따라
가고 싶은 욕심까지 생깁니다..
아무리 날씨가 어떤들 잠 안자고 3일째 산행을 하고 계신 분도 있는데 새벽까지 4시간 잠
잘
잔 사람이 무슨 엄살을 떨 수 있겠습니까?
엄청나게 큰 배낭을 지고 비지땀을 흘리는 홀로산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밤머리재에서 시작했다는데 저렇게 무거운 짐으로 태극길을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왕등재에서 약 1시간 40분 거리에 있다는 동왕등재는 어딘지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밤머리재를 두어시간 남겨 놓은 거리에서 다시 젊은 산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삼십대 초반에 산에 매혹되어 호젓한 오지 산행의 멋에 혼자 취할 수 있는 그 에게서 사람
좋은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배어납니다.
잠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습니다.
밤머리재에서 먼거리 까지 “태극을 닮은 사람들” 회장님이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외로운 자신과의 투쟁을 하시는 그리운 산님에게는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독한 인간의 한계에 서있는 사람과 그 고통과 힘겨움을 보듬고 어루만져 주는 그들의
각별하고도 끈끈한 유대가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박카스 한 병과 한조각의 사과에 실린 정이 새로운 의지와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김정모 회장님을 만나고도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서야 도토리봉에 도착했습니다.
도토리봉 헬기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사진기를 설치하고 그리운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머리재에서 기다리는 “태달사”회원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서
기다렸다 합니다.
원님덕에 나발 분다고 저도 같이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천왕봉을 올라 단풍나무 숲을 지나 여기까지 왔으니 무릉객의 태극이어가기도 자축할 만한
의미 있는 여행 길 아니겠습니까?
밤머리재 (서왕등재에서 3시간 40분)
밤머리재에서 올라온 다른 대원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역사적인 밤머리재에는 그렇게 내려
섰습니다.
기다리던 대원들의 박수와 열열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넓은 공터엔 간이매점이 있고 차가 몇 대 주차해 있습니다.
단지 그리운산님의 길동무였다는 이유로 너무 융숭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대단한 고문님과 회원들입니다.
차가운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시원한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산꾼들의 따뜻한 정으로 원기를 북돋우며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누군가 또 건네주는 한 병의 박카스와 우루사 하나로 벌써 마음은 웅석봉에 도착해 버렸
습니다.
백두님이 동행으로 나섰고 다시 “태달사” 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웅석봉을 향해 힘차게
진군합니다.
웅석봉 가는 길
853봉을 올라 치면서 가파르게 내려선 도토리봉을 바라 봅니다.
내가 지나온 그 먼 산길은 도토리봉 등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벗어나 마음으로 즐길 수 없는 산행을 안 하는 저로서는 오늘산행이 무리일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마저 빼앗아 갈 체력적인 부담은
없습니다.
웅석을 4.3km 남겨둔 오름길에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나온 능선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
을 바라 봅니다.
인생의 이치를 깨달은 철학자의 얼굴입니다
세상의 영광과 기쁨 그리고 온갖 탐욕과 집착이 가져다 주는 미망과 혼돈을 벗어버린 평화
로운 풍경 입니다.
은은한 황혼의 빛이 던지는 고요한 체념으로 마음은 바람 없는 호수의 물결처럼 평온해집니다.
어둠과 등을 맞댄 하늘의 붉은 황혼이 나그네의 발길을 숙연하게 합니다.
항상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젊음이 떠나고 인생은 많이도 흘러왔습니다.
욕심껏 살아갈 날은 자꾸 줄어 가고 세월이 흐름은 더 빨라 갑니다.
언젠가 저 붉은 황혼처럼 조용히 스러져 갈 짧은 인생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해가 떨어지는 데도 갈 길이 남았습니다.
태양이 강열한 빛을 거두고 나서 다시 가을 길을 되찾았습니다.
바람은 소슬하게 불어오고 보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달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길을 따라
갈 길을 재촉합니다.
산속의 어둠은 더 빨리 찾아 옵니다.
힘 없는 매미의 울음 뒤로 휘영청 달이 떠올랐습니다.
머리에 등불을 걸었습니다.
혼자라면 초행길에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텐데 길동무가 있으니
제법 밝은 달을 바라보며 산바람을 목에 걸고 가는 길이 낭만적이기도 합니다.
어둠이 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왕재에 도착하고 웅석봉에는 낭만적인 달 빛을 걸고 어둑한
길을 한 시간쯤 더 걸어서 도착했습니다
웅석봉(밤머리재에서 2시간 10분)
산청과 어천마을의 불빛이 보입니다.
만세!
이곳이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지리산 동부능선의 끝자락 입니다.
어둠에 가려서 지나온 유장한 산릉이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16시간 만에 도착한 머나먼
여정의 마지막 고봉 이었습니다.
처음 웅석봉에 발자국을 남긴 무릉객의 감동과 태극 종주 마지막 관문에 도착한 그리운산
님의 절절한 감회로 웅석봉은 그렇게 들떠 있었습니다.
백두님은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그리운산님의 웅석봉 도착을 알리고 우리는 한 쪽의 사과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웅석봉의 영광을 자축했습니다.
밤바람이 후련하게 불어 가는 웅석봉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1001번 도로로가는 길
웅석봉에서 가파른 하강과 거친 산행로는 수면부족과 극단적인 피로에 쌓여 있는 그리운
산님
께는 몹시 위험한 코스였습니다.
바위가 달려든다는 그리운산님을 백두님이 밀착 경호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조심조심 하산을 하느라 시간소요가 많았습니다.
어천 내림길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어천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그렇게 훌쩍 헤어지는게 아쉬워집니다.
마지막 관문에서 어렵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그리운산님이 걱정되기도 해서 대원들이
마중 나온다는 1001번 도로까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어둠에 쌓인 아쉬운 길입니다.
새로 개척한 길이라지만 사람의 발길이 제법 있었던 것처럼 길의 형태가 뚜렷합니다.
아래 마을의 불 빛을 보면서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가파른 비탈길을 몇 번 내려 서면서 슬
며시 산행길이 지겨워 질 때 쯤 사람의 소리와 불 빛이 올라 옵니다.
1001번 도로 (웅석봉에서 2시간 20분)
한적한 도로가 떠들석하게 내려섰습니다.
“태달사”의 많은 회원님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운산님은 아직 갈 길이 남았고 저에겐 18시간 20분이 걸린 대장정의 마무리였습니다.
한국의 산하에서 글로 만나 뵈었던 여장부 요물님과 유명하신 주왕님을 만났습니다.
가끔 글을 올렸을 뿐인데 무릉객이란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반가운 친구처럼 맞아 주시니
너무 기분좋은 달밤 입니다.
밤머리재에서 인사 나눈 주왕님과는 1001번 도로에서 서로를 알아본 셈입니다.
새삼 인터넷의 위력과 산을 연결해 주는 의외의 인연이 놀라워 집니다.
지리산 신령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가슴벅찬 해돋이를 허락하시고 불타는 동부능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고요한 일몰과 수 많은 귀인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태극을 닮은 사람들”은 그렇게 끈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살 좀 빼는 날인가 했는데 넘치는 정을 담은 막걸리와 감자탕에 너무 많은 것들을
먹는 통에 오히려 체중증가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별이 빛나던 밤에 맛보았던 “태달사”표 감자탕과 따듯한 인정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30분쯤 휴식하고 다시 떠나는 그리운산님과 뜨거운 포옹을 했습니다.
그의 성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고독한 투쟁이 너무 안스럽고 다시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해 옵니다.
그리운산님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밤길의 동행을 자처하는 백두님, 주왕님, 요물님이 있어 다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낼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안도하며 마지막 작별의 손을 흔들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가슴엔 쌓인 것이 많았습니다.
3번에 걸친 멋진 태극종주 추억이었습니다.
가을이면 다시 붉은 지리산이 그리워지고 달 밝은 밤이면 그리운산님의 외로운 싸움과
백두님의 노랫소리가 기억날 겁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산청까지 태워다 주신 김정모회장님과 어총무님 덕분에 너무 편하게
대전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피곤을 느낄 법한데도 지리산에서 받은 무한한 정기와 감동 그리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
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 졸음도 훌쩍 달아나 버렸습니다.
당일 산행기록으로 가장 긴 시간 18시간 20분의 산행과 가슴 따뜻한 귀향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태극 길을 이어가고 낭만적인 가을 여행을 갈무리 했습니다.
후기
명절을 지나고 모처럼의 긴 휴일의 증후군으로 산행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의 기쁨과 감동을 정리하고 싶은데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랜 게으름 끝에서 또 한 주가 훌쩍 지나가면 그 멋진 추억의 시간을 그냥 덮어버릴까봐
애써 책상머리에 앉아 보았습니다.
동부능선 태극종주 길은 대자연의 감동이 조용히 가슴을 흔드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살아가는 날의 기쁨에 젖었고 다시 찾아갈 아름다운 여행길의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끊어져있던 서부능선과 동부능선의 태극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많은
추억을 쌓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초행 길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일단 떠나고 나니 문제될 것도 없었습니다.
태극 동부능선 길에서 등로는 뚜렷했고 길을 잘못들 만한 구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주의구간)
중봉에서 능선을 따라 가다가 입산통제구역 표지판과 대원사 쪽 치발목 산장갈림길을 만나
면 통제구역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하봉 앞에서 길이 좌측과 우측으로 갈라지는데 우측으로 가면 하봉으로 오르는 로프가 있습
니다.
하봉에는 표지석이 없습니다. 조망을 감상하고 우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됩니다.
하봉에서 25분 정도 가면 국골사거리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직진하지 말고 우측 새재 방향으로 진행 합니다.
능선의 고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길을 잘 못 잡은
것 같은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구간 입니다.
진주 독바위 갈림길에서 20여분 가면 새봉입니다.
이곳에서 능선의 흐름이 바뀝니다.
갈림길이 있는데 직진하지 말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리고 좀 햇갈리는 구간이 서왕등재 습지 입니다.
아래 안부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다리를 건너 습지를 가로 질러 가는데 가다 보니 능선을
따라 진행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4군데 말고는 크게 헷갈릴 만한 구간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끔 선답자의 표지기를 확인하고 능선의 흐름을 보면서 진행하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일단 떠나고 나니 지리산의 가을도 만났고 태극이어가기도 완성했고 길동무도 만났습니다..
어느 산모퉁이에서 홀연히 만났던 좋은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그리운산님은 200 km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멋지게 태극종주의 역사를 다시
쓰셨습니다.
무한한 인간의 능력과 그리운산님의 고독한 투쟁에 다시 한 번 고개숙여 경의 를 표합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만난 나이든 젊은이를 생각하면서
젊음에 대한 제가 좋아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란 시를 한 번 옮겨 봅니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장미빛 뺨도, 빨간 입술도 아니며 나긋나긋한 무릎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다.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젊음은 용기가 비겁함을 누르는 것을 뜻하며, 안이함을 떨쳐버리고 모험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성향은 때로는 20살의 청년에게서가 아니라 60살의 노인에게서 발견되기도 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 것이다.
나이는 피부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열정이 식어버리면 정신에 주름살을 만든다.
걱정과 두려움과 자기불신은 용기를 꺾고 정신을 죽여 버린다.
60살이든 16살이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마음, 미지의 것에 대한 꺼지
지 않는 호기심, 그리고 삶이란 게임에서 느끼는 기쁨이 있게 마련이다.
당신과 내 가슴의 한복판에는 무선전신국이 있다.
그 무선전신국이 인간과 신에게서 오는 아름다움,희망,환호,용기 그리고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동안은 당신은 젊을 것이다.
안테나가 내려지고 당신의 정신이 냉소의 눈(雪)과 비판의 얼음으로 덮히면 당신은 나이
가 20살이라도 늙은 것이며, 안테나가 올라가 있고 그 안테나를 통해 낙관의 전파를 수신
한다면 당신은 나이가 80살이라도 젊은 채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릉객의 산행길을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던 김정모회장님 어총무님,백두님,
요물님,주왕님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모든 회원님 들께 감사
드립니다.
언제 다시 산에서 만나 그날의 행복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산이란 그렇게 아름다웠고 산을 닮아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푸근했습니다.
가을의 바람과 지리산의 멋진 풍경이 가득한 기쁨을 몰고 왔던 그날처럼 아직
돌아보지 못한 수 많은 아름다움을 찾아서 다시 떠나겠습니
당시 마중 나온 요물님의 산행기
언제 :2006년 10월 3일
어디를 :1001번국도(22시 23분)-남가람봉(23시 14분)-석대산(4일 01시 13분)-315봉(03시 14
분)-망해봉(05시 19분)-왕봉산(06시 1분)-20번국도(06시 35분)
산행거리 : 도상 13.742 km 산행거리 : 14,659 km
산행시간 : 8시간 12분
누구와 : 그리운산님 태극왕복중, 100두님, mt주왕님, 요물

**지리산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190여 키로를 달려온 4일째의 밤은 화려하였습니다.
"모험은 권하되 위험은 막는다"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웅석봉에서 떨어지는 1001번 국도의 지리산 태극능선를 달려온 남강의 10여키로를 남겨놓은 시간 어두움속은 첫 남강 왕복종주자의 승리를 예견한 듯 그리운님들이 모였습니다.
9월 30일 새벽 6시 26분에 왕봉산을 출발해 덕두봉을 달려 다시 태극의 꼬리를 걷기위해 돌아온 그리운산님은 장해 보였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험한 길을 걸은분 같지 않게 포옹하는 모습까지 정다워보였습니다,
허지만 몹시 야위워보였습니다.
4일동안 걸은 지리능선의 발걸음이 5키로 정도의 몸무게가 저울숫자를 내려 놓았습니다.
소낙비도 만났고
어두움속을 걸으며 힘이 되었던 분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노라 했습니다.
100두님의 목소리를 선두로 그리운산님 처음으로 뵙는 무릉객님 너무도 반가웠습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무릉객님의 바톤을 mt주왕님과 요물이 받았습니다.


석대능에서 바라본 달뜨기능선-
**덜찬 보름달이 달뜨기능선에 비치고
'달뜨기'란 이름이 누구에 의해 언제 생겨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전7권)>에 그 이름을 가슴 벅차게 부르던 빨치산들이 나온다.
"앞서 걷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감격어
린 소리로 외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했소." 거산(巨
山)의 모습이 강 너머 저 쪽에 나타나 있었다. 가까운 곳은 선명한 푸르름이고, 멀어져
감에 따라 보라색으로 변하고, 아득한 정상은 신비로운 빛깔 속에 안겨 있었다. 달뜨기
는 지리산의 초입이다. 남부군은 드디어 그 긴 여로를 겪어 목적한 곳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수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신비로운 웅봉(雄峯)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아!'하는
탄성이 대열 속에서 바람 소리처럼 일었다. 여순병란 이래의 빨치산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듯 입버릇처럼 말하던 달뜨기가 아닌가. 박태영으로서도 감회가 없을 까닭이 없었
다. 그는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라고 한 이현상의 말과 '과연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있을까'라고 쓴 홍행기의 탄식이 뒤범벅 된 감정으로 넋을 잃고 지리산을 바라
보았다."
(퍼온글 )
석대능선을 걸으며 달뜨기능선에 비친 못찬 보름달이 비추어준다.
모레가 추석이라고
이틀
지나면 둥근달을 비추어 주겠노라고
그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분들의 희망이 전이된다.
누가 등떠밀러 가라면 가겠는가.
누가 억만금을 준다면 걷겠는가
그냥
지리능선이 좋아 태극모양을 닮아보려 걷고 있는지 모른다.
**석대산 지나 무덤 봉우리마다 무덤....


**석대산을 지나자 첫 번째 어두움속의 무덤이 몇기가 모여있다.

**315봉에 오르자 또 무덤이 있다.
우린 그 무덤가에 앉아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릴하고 있었다.
구이신 : 밤에 잠도 안자고 뭣들 하냐?
mt주왕 : 귀신씬나락까먹는 소릴하고 있습니다.
100두님 : 캄캄한 밤에 귀신씬나락 까먹을 수 있나요?
mt주왕 : 밤에 까먹는 소리가 더 요란해 좋습디다.
요물 : "에웅"


망해봉에 또 무덤이 있다.
구이신 : 오면서 밤을 얼마나 많이 주었길래 나를 다 주냐?
요물 : 그리운산님 보살피랴, 구이신님 몰래 밤줍느랴 디지는줄 알았습니다.
mt주왕 : 누야, 귀신씬나락 까먹는소리 하지 마이소
구이신 : "밤맛이 좋군" 밤귀신은 말도 한덴다. 그리운산님을 보살피기는, 그리운산님이 요물을
보살펴야겠더군

또 있고

한참 지나자 또 무덤이 있다.
(봉우리마다 무덤이 있고 또 그냥 무봉에도 있다.)
구이신 : 이노무 태극남강꼬리는 구이신들의 모임이 있다.
mt주왕 : "귀신씬나락 까먹는소리 하지 마이소"


왕봉산에 또 무덤이 있다.
새벽에 왕봉산에 오르니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리도 끄친다.
구이신 : (그리운산님에게 귀에 대고 사알짝 소곤소곤하는 소리 왈)
내가 여기까지 잘 모시고 왔소. 걷는 성의가 괘씸하여 모시고 왔소.
그리운산님 : 고맙습니다. 구이신님 저 이제 지리산 왕복종주 다시는 안해요.
구이신 : 이보다 조금 더 긴 진양호 어떨까?
그리운산님 : 귀신씬나락 까먹는 소리 하시지 마세요.


**포옹
석대산에서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인도길따라 내려서니 와우님과 장태관님 펄펄 끊여놓은 라면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아삭아삭 소리나는 배가 배를 채우며 한잔의 막걸리와 포개어진다.
수양산-덕두봉을 걸은 신현철님과 망해봉에서 내려오신 그리운산님과 진한 포옹을 한다.
아마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두분의 무박태극왕복 선후배 사이로 우리는 모른다.
얼마나 진한 마음의 껴안음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나 먼 길의 승리자를 만들기 위해 걸어가는 본인의 인내도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들도 같이 포옹을 한다.
왕봉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강의 물은 새벽을 열면서 더 진하게 흐르는가 보다.
해도 일어나려 한다.
그리운산님의 힘찬 발걸음을 축복하러 오는가 보다.
한병의 샴페인과 순간 찰라의 화려한 폭죽이
그리고
원없이 걸었던 96시간의 장한 모습이 왕봉산과 포옹을 했다.




다음엔 100두님 차례 연습중

그리운산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두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무릉객님과의 만남도...
직접 그리신 요물님의 사진은 항상 설명,해설이 부가되어야 이해가???
좋은하루^^^

분들의 정겨운 모습이 너무 좋아 보입니다.
어떤 산보다 무덤이 많아 혼자 산행하면 아마
귀신이 나올것 같네요. ㅎㅎㅎ
늘 좋은 우정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정작..무덤옆에 누워보면 편하다고들 말하던데요...ㅎㅎ
대단들 하십니다
왕복을여??

하늘이 열리고 이땅에 처음으로 나라가 세워진 개천절날 대단한일을
해내신 *요물*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태극종주를 햇던 기억이 있으나 2박3일간으로 조금은 여유로왔는데
무박은 저는 꿈도 꾸지 못할 한계에 도전하여 성공하셨으니 대단하다 할 수 밖에....
산행을 끝내시고 축하받은 자랑스럽 모습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워 행복해보여 산행 함께 한듯 감동적입니다.
이어가신 산행길에서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한 분들의 대단한 산행에 시덥잖은 목자가
참으로 대단하게 보고 갑니다.
반가운 주왕 성님도 보이고 하니 더 좋습니다.
아니 그래도 초저녁 청솔님이 폰으로 주왕 성님과
모임이 있다고,,,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건강 빕니다.
난테 드림,,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죠
참으로 대단한 분들의 산친구의 우정이랄까 보기가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을 만나 몇마디 주고 받은 짧은 순간
뒤를 따르는분이 무릉객님이군요
요물님의 산행기를 읽을때마다 느끼는 어쩜 그렇게도 감동을 주는지요
그리운산님과의 진한 고행에 축하드립니다

으흠.. 좀 특이한 산행기 같습니다!
으시시한~ 사진의 연속... 산님들도 넘 대단하신 것 같구요...
플랭카드를 보니 기가 파악 죽는 듯한 느낌이 ㅎㅎㅎ
산에 살다가 산에서 한평생을 보내 실 것 같은 대대산님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양산에서 더 남쪽 부근인가 생각이 드는데...
무박태극왕복종주... 요물님께서 언젠가 하시고 산행기를 올리시지 않으실까 예상을 해 봅니다.
산꾼들의 진한 우정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즐산 이어가시길 빕니다.

늦은 인사지만, 추석연휴 즐거이 보내셨는지요?
귀한분들과 발걸음하여 뜻 깊은 산행이었군요,
긴∼여정에 모두 추카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즐산길 빕니다.......((^L^))

그리운 산님과 함께 떠나시는 뒷모습이 너무 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지리산의 한 자락에서 우연히 요물님을 뵐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더군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리신령님의 깜짝 선물이었나 봅니다.
가슴이 따뜻했던 산님들과의 만남 오래 기억에 남겠죠
이제 어느 산길에서 그냥 지나쳐갈 염려는 없어졌으니 산을 떠나지 않는 한
또 반가운 만남을 갖게 되겠죠 ...
건강하시고 살아가는 날의 감동과 기쁨 늘 함께 하소서...
3번 나누어서 했던 나홀로 지리산 태극종주 마지막 출정길에서 그리운 산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당시 태극을 닮은 사람들 이란 등산 동호회의 고문으로 전국적인 유명인사였던 그리운산님은
딸래미가 사법고시 패스한 기념으로 편도 100km에 이르는 지리산 신태극 능선길 왕복종주길
에 올랐다.
200km 험한 산길을 잠을자지않고 이어서 왕복 종주하는 철인 대장정 길이었다.
그게 인간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내가 잠자며 3회 나누어 걸었던 그 길을 편도가 아니라 왕복으로 무박 종주했다.
그의 왕복 마지막 코스 독바위- 웅석봉 구간을 같이 걸었다.
걸으면서 졸던 그와 함께....
그리고 웅석봉에서 요물님과 MT 주왕님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의 산하까페에서 거친산행과 산행기로 함께 교류하며 필명을 드날리던 얼굴 없던 산친구들...
우연히 요물님의 산하산행기가 검색되어 그날의 감동적인 산행이 떠 올랐다.
동부능선의 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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