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백두대간

아들과 부르는 노래12 -백두대간 12 (우두령-삼성선-황악산-여시골산 괘방령)

무릉객 2015. 2. 26. 18:56

 

 

 

 

우린 왜 그토록 단단한 도시의 땅에 박제되었나?

눈이 오는 하늘은 낭만적이고 비를 머금은 숲은 향기롭고 젖은 땅은 부드러울 텐데

이렇게 공기가 맑은 숲으로 가면 답답한 가슴이 풀어헤치고 

한걸음에 하늘로 솟구칠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도시를 떠나기 힘들었나?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영접해야 하는 손님이 왔다.

바보 같은 겨울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줄행랑을 놓을 심사인 모양이다.

온통 도시에만 있었다면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그나마 백두대간이 2015년 겨울의 낭만과 추억을 제대로 만들어 주었다.

덕유 삼봉에서 마치 동화의 나라인 듯 아름다운 눈 세상을 만나고 눈에 물리도록 덕유나라 심설 눈밭을 빠대고

다녔다.,

지난 번엔 우두령 삼마골 재 능선에서 뼈골에 스미고 골수를 흔드는 차가운 바람을 만났다.

 

그래도 겨울의 오래된 침묵과 칩거가 못마땅하여 내심 하늘가득 펄펄 춤추며 내리는 함박눈을 기다렸는데 때

 이른 봄비는 우두령 에서 형제봉 까지 촉촉히 내렸다.

커니스라지? 바람에 실려 능선 끝자락에 형성된 설벽

비를 타고 내려오는 봄이 시커먼 몰골로 병자처럼 누워 있는 흰 눈두덩이에  화들짝 놀랄까 봐 비는 자욱한

안개를 몰고 왔다.

 

흥건하게 젖은 버들강아지 꽃등을 켜고 성급한 큰놈 개구리 자다가 튀어 나왔다.

봄비와 안개  두 손님이 찾아준 걸 보니 정말 봄이 오려는가 보다.

함박눈을 다시 보지 못해도 그 멋진 추억만으로도 지난 겨울 행복했으니 나는 이제 미련 없이 겨울 여자를

보내야겠다.

 

일어나라  봄이 오고 있다.

나무는 두 팔을 올려 새로운 하루에 감사하고 새들은 맑은 아침을 맞이한 기쁨에 눈물 없는 울음을 운다.

봄비 내리는 오늘 안개 속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어라

훌훌 털고 일어나 사뿐사뿐 걸어오는 그녀를 두 팔 벌려 안아라

 

 

 

 

 스산한 안개가 피어나는 을씨년스러운 우두령 

그래도 오늘은 백두대간 통산 가장짧은 구간이 될 수도 ...

 

 

산친구들과 기념촬영

 

 

 

 

 

 

산 행 일 :  2014222일 일

산 행 지 :  백두대간 12구간

    :  우두령 삼성산-황악산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  안개 비 후에 개임

    :  도상거리 약 12.4km(실거리 약15.5km)

소요시간 : 5시간 47(식사 약 10)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47 

 

         

 

시간

경유지

비 고

08:50

우두령출발

 

09:06

870

 

09:21

첫번 째 이정표 봉우리

바램재3600m, 황악산5800m, 우두령1200m

09:45

삼성산(985.6m)

바람재2500m, 황악산4700m, 우두령2300m

09:57

이정표

바람재2000m, 황악산4200m, 우두령2800m

10:15

이정표

바람재1200m, 황악산2400m, 우두령3600m

10:21

여정봉(1030m)  

황악산3000m, 궤방령8400m, 우두령4400m

10:30

이정표

바람재600m, 황악산2800m, 우두령4200m

10:34

백두대간 복원사업 안내판

 

10:45

바람재(810m)

황악산2.3km, 바람재 정상 :0.7km(지나옴)

11:28

이정표(신선봉 갈림길 

황악산1.4km, 신선봉 1.4km , 바람재 1.7km

11:40

형제봉(1040m)직지사갈림길

황악산0.6km, 직지사 3.5km, 바람재 1.5km

12:02

황악산(1111m)

직지사 2.9km, 곤천산 1.8km

12;18

이정표

직지사2.5km, 황악산0.5km

12:48

이정표

직지사1.6km, 황악산1.4km

12:53

이정표

황악산1.7km, 직지사 1.3km

13:03

이정표(직지사 갈림길)

직지사 0.7km

13:09

운수봉(680m)

여시골산1600m, 괘방령3100m, 황악산2600m,

바람재 4800m

13:49

여시골산(6204m)

괘방령1500m, 가성산5200m,운수봉1600m

,황악산4200m

14:13

이정표(여정봉 하산지점)

괘방령770m, 여시골산730m, 황악산4930m

14:37

 

괘방령

 

 

 

지난번에 이어 짧게 끊어진 백두대간 길이다.

용두사미라더니 겨울의 초입에서 대차게 눈을 퍼부어 댔던 겨울은 갈수록 비실거리더니 급기야 춘삼월 목전에서

비를 뿌리기로 했단다.

할일 없는 명절 전 날 홀로 떠났던 대청호 비경길 탐사에서 창피하게 감기가 걸려서 명절 연휴의컨디션이 가히

좋지 않았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운 날이라 모처럼의 출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연휴 마지막 날 미리 앞당겨 컨디션 조절을

 해서 명절연휴 증후군을 날려버리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래도 아쉬운 겨울의 미련은 한 가닥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비 내리는 우두령을 떠난다..

또 아나?

우두령에는 비가 내려도 1111고지 황악산 정상에서는 펄펄 함박눈이 내려줄지?.

 

봄비와 안개가 마중한 이번 백두대간 구간은 400여 미터 이내의 낙차 폭에서 움직여 가는 부드러운 능선길인데

다가 거리도 짧아서 아주 수월한 산행이었다.

백두대간은 720미터 표고의 우두령에서 870봉에 오르고 985미터의 삼성산과 1030미터의 여정봉에 올랐다가

고도를 낮추어 표고 810미터의 바람재로 떨어진다.

바람재 바람맞고 정신이 번쩍 난 백두대간은 1040봉 형제봉과 1111봉 황악산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급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좌측으로 휘돌아 운수봉(680m)과 여시골산으로(385m)으로 내려 앉는다.

백두대간은 여시골산에서 다시 가파르게 바탈을 내려서서 마치 평지에 난 도로 같은 괘방령에 도달하여 오늘의

구간을 마무리한다.

 

이번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백두대간 길에 흐르던 몽환의 산 안개와 바람이 그린 그림 그리고 촉촉히 내리던 비가

전해 주던 봄소식

 

삼성산 가는 길

봄비와 안개는 황악산 능선길의 조망을 모두 걷어 갔다.

바람은 제법 불었지만 지지난 주 하도 엄청난 바람을 맞아서인지 이번 바람은 꽃샘바람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분위기 좋다.

산 길은 축죽히 젖어 있고 몽환의 안개가 흐른다.

녹아가는 눈이 질척이기도 하고 낙엽아래 빙판 진 곳이 많이 있어서 미끄러웠지만 아이젠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삼성산 전위봉에서 착용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이 제법 경사가 가파르고 눈이 많았다.

 

삼성산

작은 사찰인 삼성암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삼성산의 남동쪽에는 천불사가 자리하고 있다.

삼성산 일대에서 백두대간 산줄기는 북에서 남으로 지나는데 삼성산의 북쪽에는 형제봉, 황악산 등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우두령 삼도봉으로 이어진다.

삼성산은 여암 신경준 선생님의 산경표에 "삼성산-黃澗南六十里"라 기록된 이래 제 이름 그대로 이어 내려오는

산으로 산 아래 마을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이 산 아래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周禮里)에 주공(周孔)이란 마을은 1790년 곡부공씨가 이 마을을 개척했는데

공자(孔子)가 살던 주나라 주()와 자신의 성 공()자를 따서 주공(周孔)마을이라 불렀다 한다.

그런 연유로 세계 3聖人이신 공자님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담아 마을이 근거한 산을 삼성산이라 아름 붙였다

전해진다.

 

안개 때문에 작은 표석 하나 말고는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여정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바람재 가는 길

여정봉 가는 능선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북쪽 사면에 설벽을 만든 눈이 발목 까지 빠진다.

눈이 온 지 꽤 오랜 듯 눈은 먼지 쌓인 흉한 모습으로 햇빛에 비에 녹아가고 있다. ..

바람재에 다가 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안개는 자욱해 졌다.

가끔 바람과 안개가 그려주는 풍경화가 좋아서 멈추어 선다.

밝은 날과 멋진 조망이 아쉽긴 해도 젖은 낙엽이 전하는 축축한 숲의 향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

 

산허리를 따라 복원중인 바람재 정상을 휘돌아 간다.

정상 마루금을 관통하는 도로와 콘크리트 구조물을 철거하고 식생을 통해 대간 생태계를 복원하는 모양이다.

바람이 많아 풍력발전을 고려한 곳이라더니 바람재 가는 길에는 바람도 유난히 세차고 눈도 많이 쌓여 있어서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했다.

 

바람재

바람재는 대항면 주례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11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다지 시장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간 지나온 능선의 상황으로 보아 바람이 닿지 않는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때 맞추어 도착하신

동해님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 드리고 표지석 아래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있는 곳에 잠시 배낭을 내렸다.

오늘은 일찍 산행을 마무리하고 인근 식당에서 능이 백숙을 먹을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너무 늦게

 점심식사를 하면 뒤풀이의 즐거움이 반감될 것이다.

허기사 식사랄 것도 없다.

산행이 별 힘들 것 같지 않은데다 비가 온다고 해서 햄버거 하나에 떡 한 덩이 그리고 사과 반쪽으로 간편식

두 세트를 준비해 온 터라 식사시간은 그리 오래 소요되지 않았다.

능선 위에 부는 세찬 바람은 들이치지 않아도 조금 제법 굵어진 빗방울에 바람재의 한기를 실어 움직임이 정지된

체온을 집중 공략해왔다.

 

황악산 가는 길

큰놈을 만났다.

이 녀석 늙은이 희롱하고 젊은 녀석 기죽이기로 작정한 거여 뭐여?”

알티엔 입술은 새파래졌지만 나는 아직까지 별다른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오뉴월 우중산행처럼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바람 능선을 활보하는 녀석을 보니 온몸이 으실거리고 소름이 돋는다.

1월의 눈덮힌 계방산에서 하얀 소데나시에 반바지 입고 설치는 넘이 있더만 이넘도 만만치 않은 돌연변이 변종이다.

 너무 나대지 말고 조심혀라  너도  벌써 사십줄이다. 이넘아! “

 

바람재에서 등로는 35분여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신선봉 갈림길에 도착하고 다시 고도를 높여 20분여 더 올라

형제봉에 도착한다.

형제봉에서 직지사가 내림길이 갈라지는데 표석없이 이정표만 안개에 쌓여 있고 누군가 매직으로 형제봉이라 써

놓았다.

이곳에서 황악산 비로봉 까지는 600m 직지사 까지 하산하는 길은 3.5 km 이다.

원래 A팀이 시간도 단축하고 직지사 구경도 할 겸 이 곳으로 하산을 했는데 등로가 원래 가파르고 거친데다 빙판이

져서 아주 고생을 했다고 한다..

 

황악산

바위 악()자를 쓰는 황악산은 실제로는 부드럽고 후덕한 육산이다

예로부터 학이 자주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리웠고, 지도상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의 현판을 비롯,

택리지등에 황악산으로 명기되어 황악산이란 이름이 공식화 되었다..

실제 황악산 아래는 거대한 암반이 묻혀 있다 하는데 당시 그 사실을 알고 황악산이라 부른 건 아닐테고 황학산의

단순 오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이런 저간의 상태를 잘 알았던 난고 김삿갓도 직지사 승려와 이빨을 걸고 내기를 한 시작(詩作)시합에서 황학을

빗댄 칠언절구 시조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뭇 승려들이 운집한 원정경기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풍자와 재치가 넘치는 시조 한 수 바람결에 황악에 전해온다.

 

拔齒直指僧  지은이 蘭皐 金炳淵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金烏山(구미 금오산지칭 )이라 하면 검은 까마귀 머리색깔 같이 검어야 하거늘 눈이 쌓여 흰머리가 되더니.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黃岳이라 하여 누런 바위려니 했거늘 누런 바위 어디 가고 꽃이 피어 황학의 머리가 붉구나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秋風嶺이라 하면 가을 바람 불어 단풍이 물드는 고개여야 하거늘 봄 꽃이 피어 만발하였으니 참으로 기괴하도다"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直旨 하더니, 직지사 올라가는 길이 꼬불꼬불하니 이게 웬 일인가?”

 

까마귀가 많은 금오산과 학이 많은 황악산을 절묘하게 비교하여 싯구를 대치하고 지명과 환경을 대비하여 순발력

있는 기지와 해학을 담아 냈다.   

역시 당대를 풍미한 방랑시객 다운 재치와 풍자가 돋보인다.

이 한 수의 시로 풍월에 방귀 꽤나 낀다는 직지사 스님이 패배를 인정하고 스스로 이빨을 뽑았다하니 대단한 풍류가

아닌가?

임플란트도 없었던 그 시절에 쌩 이빨을 걸고 내기를 할 정도면 둘 다 내노라 하는 문장가는 물론이고 도박끼도 다분한

한량이었던 모양이다.

이겼으니 뽑으라는 사람이나 졌으니 뽑는 사람이나 ?”

 

오후면 날이 개일 거라 하더니 아쉽게도 황악산 신령님은 맑은 하늘과 조망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맑은 날이면 지나온 780봉과 여정봉 , 삼성산, 화주봉, 삼도봉, 석기봉이 한 눈에 들어왔을 텐데 아쉽다.

 

정상에서 청산님과 한림정님, 해성님을 만났다.

우리는 후미 로그인님을 기다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운수봉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운수봉산 가는 길

어느 순간 등로가 하염없이 내려가는데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많은 표지기도 백두대간 표지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차에 요주님이 되올라 오길래 화들짝 놀래서 지도를 본다.

지도상 황악산을 지나자 마자 직지사로 내려 가는 샛길 표시는 되어 있지 않고 주 등산로의 등고선이 많이 낮아지는

것으로 되어 있어 길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 놀란다 지난 덕유산 힘들었던 알바의

추억이 떠올라 잠시 발길을 되돌려 길을 물어 보았다.

 

전망바위에서 날은 조금씩 개이며 김천시의 조망이 드러난다.

산신령님도 무심하시지 조금만 일찍 안개 빗장을 열어주셨으면 멋진 조망에다 오전의 꿉꿉함과 답답함을 일거에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신령님의 뜻이야 왜 모르것어유 ? 가까이 있으니 한 번 더 놀러 오란 그 말씀을?”

근데 신령님  날씨가 이리 변화무상하고 빨리 흘러가는 세월은 하수상한데 어느 날에 다시 댕겨 갈 수 있을랑가

당최 모르것슴다.”

 

길을 확인해 준 김천에서 오신 연세 드신 산님과 동행을 했다.

백두대간 2번 그리고 9정맥 길을 모두 대중교통으로 혼자 했다고 한다.

강원도와 전라도의 먼 곳을 갈 때는 주로 대도시의 찜질방이나 민가에서 주로 기숙을하고 철저히 버스와 도보를

이용해서 이어가기를 마무리했다니 가히 김삿갓에 비견할 만한 대단한 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들머리 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것도 다 같은 여행이고 그렇게 여유로운 여정이다 보니 추억이

더 많이 쌓이게 된다고 했다.

그 덕분에 대간길 혹은 정맥 길의 거점도시나 요충지 교통망을 훤히 꿰뚫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겠지만 은퇴하고 시간이 많아지면 적은 돈으로도 아주 제대로 된 여행의 묘미와

 이향의 서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 방법 일 것도 같다.

 

운수봉

200년 전에 직지사를 찾아왔다가 승려의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근처 골짜기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여

운수리(雲水里)라고 불리었고 그런 연유로 이 봉우리에 운수봉이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다.

해발이 680미터이니 황악산에서 400여 미터 가파르게 내려 온 셈이다.

운수봉에서는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여시골산이 바라다 보인다.

해발 차이가 50여 미터 밖에 되지 않으니 비슷한 높이에서 봉우리가 바라 보이는데  이곳에서 여시골산에 가기

위해서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세 개 더 넘어가야 한다.

운수봉에서 우리는 김천에서 오신 산님과 헤어져서 여시골산으로 간다..

운수봉에서 여시골산 까지는 40여분 걸린다.

 

여시골산  

날이 맑게 개이고 나서 가는 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여우가 많아서 여시골산이라는데 여시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 기슭에 있는 여시굴은 여우가 팠다고 하기에는 너무 깊고 오르내리기 쉽지 않고 비를 피하기 어려워 여우가

살기에는 너무 불편할 듯싶었다..

여시골산 가는 산등성이 길은 해발이 낮은데다 햇빛이 잘 들어서 눈이 다 녹아 있었고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거의 말라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여시골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괘방령 하산 길

여시골산에서 괘방령으로 내려서는 구간은 가파른 산 길이 온통 진창이라서 미끄러 질까봐 조심해야 했고

등산화는 온통 흙범벅이 되었다.

여시골산에서 하산로 들머리는 770미터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평지에 내려서고 나서 퀴퀴한 두엄냄새가 우리를 반기고 겨울의 눈물을 머금은 여시골의 흙덩이들은 나를 두고

어딜 가느냐고 등산화 발바닥을 부여 잡고 괘방령 까지 따라 왔다.

 

괘방령은 거의 평지에 있는 길로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에서 경북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대간은 황악산을 융기시키기 전에 힘을 비축하느라 괘방령에서 잔뜩 웅크렸다가 튀어 올랐다.

.

괘방령(掛榜嶺)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은 조선시대 고개를 넘어서 과거를 보러 가면 방()에 붙는다(及第)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괘방령은 한자로 걸괘(를 쓰는데 여암 신경준선생님의 산경표에는 桂榜山 金山西十里라 표기되어 계수나무계

()쓰고 있다.

원래 계적(桂績)은 과거급제자의 명부를 말하고 계방(桂榜)과거 급제자를 알리는 방이란 뜻임을 감안하면

고개이름에 걸 괘()자를 쓴 것은 일제시대 때 공무원들의 오기(誤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토속신앙과 미신이 많았던 시절이니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었다가 추풍낙엽 신세가 될까 봐 많이들

괘방령을 넘어 한양으로 갔을 터이다.

그런 연유에 더해서 관헌들이 지키는 추풍령은 기찰과 검문의 번거로움이 있어 왕래가 불편하고 괘방령은 관헌들의

귀찮은  간섭이 없이 넘나들 수 있었으니    더 많은 선비들과 장사치들이 선호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호서와 영남을 넘나들 던  관문 이었던 두 고갯길 중 추풍령이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이 상로(商路)

 발전 했고 고갯길의 특성 상 괘방령이 훨씬 더 활기차고 번창한 고갯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내려와서 고갯길 한 켠  이동베이스캠프 주변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산친구들에게 멀리서 손 인사를

나누고 논두렁 아래 수로에 가서 등산화에 붙은 흙은 씻어 냈다.

마지막 산우들 까지 모두 내려오고 나서 우리는 직지사로 하산하는 A팀을 마중하러 직지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거칠고 미끄러운 등산로로 인해 한 시간여 늦어지는 산우들 덕분에 아들과 나는 봄 햇살이 따사로운 직지공원을 둘러

보며  맑은 날의 여유로운 망중한을 즐겼다..

비가 왔지만 즐겁고 행복한 여행길이었다.

더욱이 동료들과 함께 이동하여 먹었던 능이버섯 백숙의 빼어난 맛이 여행길의 기쁨을 한층 고조

시켜 주었다..

 

아들아 봄비 내리는 백두대간이 어땠느냐?

안개와 바람이 산 길에 그린 멋진 그림을 보았느냐?

바람이 전하는 봄의 소식을 들었느냐?

비 오는 날 떼로 하는 생뚱맞은 날궃이가 삶의 즐거움을 불러 낼 수 있음을 이해하긴 아직 무리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청승과 낭만의 간극은 점차 줄어 갈 것이다.

 

1월엔 장쾌한 설국에 들었고 지난 번 대간 길에는 거센 바람을 맞았다.

오늘은 축축히 젖은 채 안개 피어나는 산 길을 걸었다.

 

산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우리의 산길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다.

때론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으로 험하고 가파른 산 길을 올라야 하고 때론 강둑을 따라 녹양방초 우거진 꽃 길을

걷기도 한다.

폭우와 바람 속을 걸어야 하고 폭풍이 지나면 맑은 하늘 아래 부드러운 고원의 숲은 거닐며 살아 가는 날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네가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이어진 길 위에 찍었던 잠정적인 마침표들처럼 언젠가 이 백두대간 길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의 기쁨보다도 더 큰 의미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 마다 남겨질 것이다.

우리 산하 구비구비에서 우리가 함께 땀과 고통과 힘겨움으로 자아낸 감동과 기쁨들은 우리 남아 있는 삶에 등불이

되고 큰 울림이 될 것이다.

인생 길이 계속되듯이 진부령을 향해가는 백두대간 발걸음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직지사 소개 직지사 홈페이지 발췌)

황악산(黃岳山) 의 황자는 청(), (), (), (), () 5()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직지사는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

(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본사(本寺)로부터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京釜線)을 비롯하여 태백산(太白山), 삼척(三陟)등 동해방면(東海方面)

으로도 연결되는 한반도(韓半島) 교통의 요충지이며, 예로부터 길상지지(吉祥之地)로 전해져 내려오는 곳에 직지사는

정좌(定座)하고 있다.

따라서 절의 위치가 산곡(山谷)이면서도 높지 아니하고,야지(野地)인듯 하면서도 산사(山寺)의 풍취(風趣) 가 항상

흘러 넘쳐서 4계절 내내 도량을 참배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잠시 황악산의 산세와 지형을 살펴보면, 최상봉인 비로봉(毘盧峰)에서는 경상, 충청, 전라의 3도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선유봉(仙遊峰)을 비롯하여 천룡봉(天龍峰)과 운수봉(雲水峰)이 있고, 조금 내려와서

절경대(絶景臺)가 있으며, 그 중턱에 운수암(雲水庵)이 있어 승경(勝景)을 이룬다.

 운수봉(雲水峰)에서 다시 2km쯤 올라가면 백운봉(白雲峰)이 있고, 그 아래로 만경대(萬景臺)가 펼쳐진다.

다시 남서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망월봉(望月峰)과 함께 신선봉(神仙峰)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위에 형제봉(兄弟峰)

백운봉과 마주하여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황악산은 대체로 3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능여계곡(能如溪谷), 내원계곡(內院溪谷), 운수계곡(雲水溪谷)

그것이다. 능여계곡에는 그 옛날 능여 대사(能如大師)가 황악산 계곡의 원천(源泉)을 찾았다는 멱원대(覓源臺)

비롯하여 많은 대()와 소()가 있고, 두 곳의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능여천(能如泉)과 법수천(法水泉) 등의 약수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직지사(直指寺)는 신라 눌지 왕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세웠으며 그 후 태조 19 (939) 능여대사가 중건했다.

또한 사명대사가 5년간이나 이 절에서 수도했다는 것도 유명하며 직지라는 사명(寺名)은 아도스님이 신라에 불도를

전하러 왔다가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국내 25본산(本山) 가운데 하나로서 제8교구(第八敎區) 본사(本寺)이며 소속 말사(末寺) 54개 사찰에 이르고

있다. 관할 구역은 4개시(個市), 1개군(個郡)으로 김천, 구미, 상주, 문경시와 예천군이다. 또한 본사의 산림(山林)

600정보(町步)에 달하며, 사찰 경내 면적만도 약 30,000평에 이른다. 그리고 본사에 소속된 말사 역시 수많은 성보

문화재(聖寶文化財)와 고적을 지니고 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면 상촌면을 잇는 우두령

일제시대에는 주변 금광개발로 통행량이 많았던 고개

에코브리지만  묵묵히 서 있는 안개 흐르는 고갯 길에는 우리말고 아무도 없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황악산은 해발 1111m 

우두령 고개 높이가 해발 720m이니 고도차 400니터 이내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능선인데다가 

거리도 짧아서  아주 편안한 대간길이 될 듯 

 

 

 

 

세우가 뿌리고 안개가 날리는 촉촉히 젖은 산길

 

 

우두령에서 870m봉우리 까지는 다소 급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서 호흡조절하는 알티엔

870m봉을 지나 조금더 진행해야 하는 곳이다.

09:36   우두령 출발 후 46분 소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 안개는 더 자욱해진다.

 

 

 지난 번 우두령-삼마골재 구간 바람하고는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제법 존재가치를 알리려 쓰는 겨울바람

 

 

 몽환적인 나목의 숲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게 ....

그 살벌한 겨울을 악착 같이 버티며 붙어 있는 나뭇 잎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산우들 내림길에 눈이 많아서 이곳에서 아이젠은 차다... 우리도 따라서 아이젠 착용

등로가 질척일 것 같아서 스패치는 미리 하고 왔음 .

 

 

초원지대 같은 삼성산 가는 길....

 

 

 

 

 

 

                                   삼성산 (985.6m ) 우두령에서 55분 소요

 

렌즈에 습기가 찼어

 

 

 

작은 사찰인 삼성암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삼성산의 남동쪽에는 천불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암 신경준님의 산경표에 "삼성산-黃澗南六十里" 라 제이름 그대로 살아 내려오는 유서 깊은 산

삼성산은 三代 聖人의 한분이신 공자님에서 비롯되었데 아래 마을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 주공마을에서 

그 지명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

 

 

 

 

 

 

 

오전 10시면 개일거라더니 명성과 같이 바람재에 다가 갈수록 날씨는 더욱 스산해 지고  

눈이 보여주는 바람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다.

 

 

바라만 보아도 엉덩이가 절로 시려운 벤취

 

 

 

봄은 이렇게 지저분한 길을 따라 오는 것이야 ...먼지쌓인 눈밭과 질척거리는 길

 

 

                                     일단 한 번 뻐팅겨 보는 알티엔

                                                      

 

 

친절한 김천씨

이번 구간은  이정표가 너무 자주 설치 되어 있음 - 거의 5분 간격

근데 너무 아귀가 맞지 않음 지난 이정표에서 800미터 걸어 왔는데 황악산은 무려 1800미터가 줄다

 

 

여정봉(10:21)  우두령에서 1시간 30분 소요

지난 이정표에서 또 800미터 진행  황악산은 다시 600미터 멀어졌다.

지난 이정표가 3400미터를 2400미터로 잘못표기했다고 해도 황악산까지는 2600미터가 디어야 하는데 뜽금없는 3000미터는 모야?

친절한 김천씨 잘좀 해봐요...

 

 

 

 

 

 

 

 

눈길 크레바스에 빠진 알티엔

 

 

훼손된 백두대간 복원 구간 - 이 위에 바람재 정상이 있고 백두대간 등로는 우회한다..

 

 

 

 

 

안개 속에 사라지다.

 

 

 

 

 

 

 

 

 

 

 

바람재 (10:45)  우두령에서 1시간 55분 소요

바람이 휘날리는 듯한 멋진  글씨체

 

 

 

 

바람재 아래 이  표지판 아래서 간단한 점심식사

오늘 비가 온다고 햇고 거리가 짧아서 하산하여 일찍 뒤풀이가 있을 것 같아서 밥을 안싸오고 햄버거와

떡, 과일만 준비함 - 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바람재 아래에서 식사하다 - 약10분 

 

 

 

살벌한 큰놈 -  아직 이렇게 추운데 반바지에 반팔에

너를 보니 내가  추워지고 팔,다리에 소름이 돋는다.

 

 

원시시대에는 족장 감이여!

바람재에서 신선봉 갈림길 까지는 약 20여분 올라야 한다.! 

 

 

 

빗줄기가 더 굵어 진다.

비와 안개가 풍경과  분위기를 신비롭게 한다.

 

 

 

안개와 바람과 비가 그리는 그림

 

 

 

이곳에서 신선봉 능선이 분기한다. 

 

 

 

 

 

 

드디어 형제봉(1040m) 도착 . 이 곳에서 직사사로 하산이 가능하다.

A팀이 이곳에서 직지사로 하산 했는데 등로 가파르고 미끄러워서 B팀보다도 한시간 이상 늦게 하산했다. 

 

 

 

황악산 비로봉에 다가갈수록 바람의 흔적은 강렬하고 안개는 더 자욱해진다.

 

 

조금전에  일행과 떨어져서 비탈사면에 서서  홀로 식사하는 로그인님을 만났는데 황악산 바로 아래서

식사하고 움직이는 산우들을 만나다.

시간은 좀 이른편이었지만 바람재가 식사하기 안성마춤 이었던 듯

 

 

 

 

 

 

 

 

드디어 황악산 (12:02)   우두령에서 3시간 12분 소요

학이 많아서 황학산으로 더 유명 - 난고 김삿갓(김병연)의 拔齒直指僧 시조에서 학(鶴)을 이야기함 

 

 

 

 

 

 

 

 

황악산 아래 이정표

 

 

 

 

 

 

 

 

 

길이 하도 떨어져지는데   백두대간 이정표는 없고 표지기도 모두 일반산악회 표지기라서 잠시 주춤거리다  

옛 덕유 알바의 추억 때문에 산행대장에게 전화했으나 불통

지도상 맞긴한것 같은데 그래도 의심스러워 잠시 되새김질하여 길을 묻다.

그러는 사이에 날씨는 맑아지고

아이고 아까워라 .... 날이 조금 일찍 맑아지거나  황악산에 조금만 늦게 도착했거나  

 

 

 

 

하나도 재미 없거든 - 애쓰게 세금으로 설치한건데 제발  공공 재산 훼손하지 말아 주기를...   

 

 

 

 

내려오면 서 되돌아 본 황악산 - 등로는 가파르게 내려와서 좌측으로 휘돌아 간다.

 

 

 

 

 

너무 자주 서 있는 이정표

 

 

 

 

운수봉 도착 (13:09)  우두령에서 4시간 19분 / 황악산에서 1시간 7분  

 

 

 

 

운수봉(雲水峰 680m) : 200년 전에 직지사를 찾아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근처 골짜기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여 운수리

(雲水里)라고 하였으며 이곳에서 산 이름이 붙은 봉우리다.

 

 

 

가야할 여시골산 - 3개의 봉우리 더 넘어야

 

 

 

 

 

 

 

잘 생긴 총각남자들 조심하게나

여시가 많이 나타나는 산이라네.

 

 

 

 

 

 

 

 

 

 

 

여시골산(13:49)  황악산에서 1시간 47분 소요

 

 

 

 

가야할 가성산을 바라보며 능선을 내려 괘방령으로... 

 

 

 

 

 

 

 

 

 

 

괘방령 (14:37)   황악산에서 2시간 35분 , 우두령에서 5시간 47분 소요

추풍령이 국가 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관로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었던 과거(科擧)길로 추풍령 못지 않은 큰 고갯길이다.

도상거리 12.4km  실거리 15.5km 우두령 - 괘방령  백두대간 구간 5시간 47분에 걸쳐 마무리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