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객 2016. 9. 8. 12:16















정든 것들 과의 이별은 슬픈 일이다.

31년을 몸담았던 직장

수 많은 사람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내가 떠나는 것도 잠깐이었다.

환청처럼 들리던 공장의 기계음과 두정동의 네온싸인의 잔상이 사라지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습 없는 이별은 정든 책상과 정든 직원들을 단 하루 만에 격리시키고 날 세상에서 고립시켰다.

7개월여 갑자기 내게 주어진 물처럼 많은 시간과 자유의 최적화에  골몰하고 주홍글씨처럼 낙인된

황혼의 나이테와 함께 살아가야할 나의 앞날에 고뇌했다.

시간은 더 빨리 흘렀다.


자유에 가위눌리지 않기 위해선 넘쳐나는 시간에 촘촘히 태그를 붙이고 이젠 가동년수가 경과되

어 노후화된 기계의 새로운 활용방안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어짜피 보이지 않는 운명의 날실이 나를 어딘가로 이끌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막막한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것이었다.

즐겨야하는 현재와 준비해야하는 미래 사이에서 망설임없이 카르페디엠을 부르짖은 내가 금의환양은

언감생심이라 더 많은 칩거와 면벽의 고뇌가 필요할 것은 각오한 바였다.

다만 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나를 잃지 않고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었다.

남은 내 삶 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으로

더 많은 것을 갖고도 더 많이 상심하는 어리석음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음으로

내가 보낸 숱한 날은 기쁨과 행복의 날이었고 그 대부분은 온전히 내 마음 하나와 내 다리 만으로

얻었던 것이었음으로….


더 오래 느껴고 음미 했어야 할 깊은 고독과 외로움에게 난 생각보다 빨리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난 마치 31년의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그 세계를 까맣게 잊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했다.

하지만 이제 판이 달라졌고 노는 물이 달라졌다.

지난 세상과 지난 사람들은 나를 위해 빨리 잊어야 할 것 중의 하나였다.


명절을 목전에 두고 동료들의 연락이 왔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8개월이 훌쩍 넘어버린 아득한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던 두정동의 풍경도 에전과 다름이 없었다.

어느 심하게 눈이 내리던 날 홀로 저 길을 눈을 맞으며 걸었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 주는 감회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까맣게 잊어야 하고 또 잊은 거라 생각 했는데 그래도 그리움과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있는 거다

난 마치 부두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회식에 참가한 것처럼 옛 동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옛날로 돌아

갔다.

변함없이 나를 나를 대해준 풍경과 동료들도 고마웠다.

사실 환경이 바뀌었을 뿐 나도 변함 없는 나이기에 우린 모두 그대로인 셈이다.

얼마 전엔 하루 아침에 갑작스레 바뀌는 세상일이 한편 어이없고 우습기도 했지만 그게 우리 인생의 참

모습임에 이젠 고개를 끄덕인다.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꽃도 피면 시들어 간다.

노랫말도 있었지?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은 기울어 진다.

삶의 영고성쇠는 자연의 섭리와 궤를 같이하는 우주의 진리이다..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받아들이고 우린 그 속에서도 또한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이고 번화가이기에....


이별이 나의 일이 되고 나서도 그렇게 우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만났는가?

그래!  이게 가장 편안한 우리의 만남일 것이다.

서로가 생활에 충실하고 가끔 옛이야기 나누며 얼굴 맞댈 수 있는 거

내가 너희들의 좋은 선배였는지는 모르지만 너의 같은 좋은 후배들은 만난 것도 내 복이지

다 아는 것처럼 난 무릉객이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더 많이 누리고 느끼는 사람이지

반가웠다 나의 옛 친구들아….


                                                                                                          2016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