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아프지 마라
내 친구 영수
대청호반 에서 야영을 하다가 갑자기 영수 생각이 났다.
내가 전화 안 한지도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 전화를 넣고 쌍시옷을 남발하는 녀석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생각난 김에 전화를 하니 녀석이 전화를 받는데
우짜 목소리가 힘이 없다.
예전 같으면 형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인자 전화한다고 육두문자에 난리법석를 떨었을 텐데….
목소리도 낮게 깔고 어울리지 않게 너무 고분 고분하다.
낯설다 이눔아!
내일 시간이 있냐고 물었더니 점심은 같이 할 수 있단다.
영수는 내 고등학교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을 다른 지역에서 하다 보니 방학 때나 가끔 만났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 때면 시장통 백천 순대에서 만나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를 이야기 하면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친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그 당시 내무부에 발령이 나서 서울에서 근무하고 난 대전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형제나 다름 없이 허물 없는 넘인데 직장생황 근거가 다르니 보니 늘 전화로만 소통하며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결혼 한다고 결혼식 사회를 서 달라고 해서 김천에 내려가 결혼식 장에서 겨우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었다..
친구가 대전 코레일에 정착하고 나서도 정작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 우린 그렇게 많
은 세월을 바다로 흘려 보냈다.
당근 내가 먼저 퇴직을 했다.
그것도 4년이나 먼저…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마눌과 동해로 졸업 여행을 떠나는 날
몇 일 전부터 내 계획을 알고 있었던 친구는 집사람 까지 대동하고 동해 까지 따라와 술 한잔
받아 주었다.
그 동안 수고 했다고 ….
허망한 세월의 쓸쓸함을 달래 준 건 거품이 이는 바다였고 한 잔의 술이었고
늘 곁을 지키는 마눌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친구의 우정이었다.
우린 영덕대게를 씹으며 구멍 숭숭 뚫린 지난 추억을 씹어댔고 멈추지 않는 세월은 그날 조차
다시 아득한 추억속으로 흘려 보냈다.
영수가 퇴직하기 전에는 내가 한가할 때면 가끔 사무실에 들러 점심을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해 6월에 영수가 퇴직을 했다.
부인과 식사 한 번 하자는 내 제안을 녀석은 계속 차일피일 미루었다.
가끔 전화를 하면 몸이 좀 안 좋다는 핑계 만 댔고 괜찮아질 때 연락을 하마 해놓고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퇴직하기 전부터도 전립선이 심해서 잠을 설친다고 했는데
어느 날은 뇌에 종양이 발견 되어서 레이져 치료를 했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녀석은 특유의 걸걸함과 육두문자를 잃지 않아서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시답지 않은 병 가지고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고 면박만 주고 의기소침 하지 말고
서울에 좋은 병원으로 가서 제대로 검진을 받아보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히히덕 거리며 싸돌아 다니기에 바쁘던 내가 친구를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전화를 하면 형님 걱정도
안 하고 문안인사도 안 한다고 난리 법석을 떨며 성화를 부렸다.
여전히 기는 살아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만날 약속은 계속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녀석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사라지고 거친 언어가 사라진 것이다.
걸어오는데 몰라 봤다.
늘 박력 있던 녀석이 마스크를 쓰고 너무 조용히 조심조심 걸어오는 바람에.
일헐수가…!
만나지 않았던 몇 개월 사이에 친구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얼굴에는 좀 붓기가 있긴 했지만 혈색이나 살집이 괜찮은 편이었는데 완전 중 늙은이처럼 걸음을
잘 걷지를 못한다.
목소리가 좀 탁해진 듯 했지만 말 자체가 어눌한 건 크게 못 느끼겠는데 말 할 때 스스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듯 했다..
고기와 술 한잔은 언감생심이라 친구가 주로 먹는 한식 부페에 갔는데 밥 먹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식사를 했고 숭늉과 커피까지 챙겨서 마시고 식당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굳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 층의 계단을 오르고 나서 친구는 힘에 부치는 듯
구부려 무릎을 짚고 움직이지를 못했다.
아연실색이다.
이렇게 까지 체력이 악화되었다니 ..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억장이 무너진다.
노천 까페에서 갑작스레 악화된 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킨슨 병이 의심되긴 하는데 의사도 병명을 모른다고 하고 계속 증세는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걷는 게 힘들어 지고
손떨림이 일어나고 말도 조금씩 어눌해 지고
지난 번에는 두 번이나 길에서 쓰러 졌다고 했다.
가장 심각한 건 잠을 잘 수 없다는 거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계속 오줌을 누어야 하는데 참으려면 너무 아파서 별로 나오지 않는 오줌을
누기 위해 매 시간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초저녁에 두어 시간 눈 붙이고 나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날 샌다는데 의료강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전립선 증상 하나 해결 못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매일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손쓸 방도가 없다는 거다.
의사는 특별하게 치료할 게 없으니 하루 하루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그냥 최대한 편하게 보내라는
말밖에 안 한단다.
작년에 보문산에서 만나 산을 타지는 못했지만 함께 식사할 때를 생각하면 친구는 광속으로 늙어 갔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병세는 완전히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친구에게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못 해도 난 친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금도 빵빵하고 아이들 둘도 모두 학교 선생인데 결혼 까지 다 시켰겠다. 팔자 좋게 부인하고 세상
유람이나 다니면 될 넘이 이게 다 무슨 변고 인가?
어떻게 해도 기력은 자꾸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은 신체의 기능은 계속 나빠지면서 자신의 통제를
거부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친구는 스스로 분노와 패닉에 빠져 들고 있었다.
도대체 자기가 무슨 잘 못을 했길래 이런 형벌을 내리는 지 분노하기도 하고
어떻게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세상에 이런 병도 다 있는가?
그리고 왜 건강하던 친구가 그런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는가?
얘기하는 중에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친구의 절박한 심정과 적나라한 고통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다.
삶이 무상한 것은 아니다.
무엇엔가 쫓기는 듯 늘 허기진 삶만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 무상한 것일 뿐.
원래 우리는 그렇게 바람처럼 세월 속을 지나가는 길 손인데 마치 내가 주인이고 세월이 객인 줄 착각하다
보니 어느 날 삶이 허망해짐을 느낄 뿐이다.
친구는 은퇴자가 느끼는 삶의 쓸쓸함을 경험하기도 전에
삶의 겨울에도 꾸역꾸역 솟아 오르는 욕심과 후회와 분노와 티격태격 싸우다 결국 모든 걸 다 내리고
가벼워지기도 전에 그저 세월의 객으로 아름다운 세상의 한 귀퉁이를 돌며 왜소해진 삶의 풍경을 감사히
받아 들이겠다는 작은 소망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결국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 짧은 인생길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친구의 쳐진 어깨와
뼈아픈 고뇌가 너무 아프게 다가 왔다.
마음이 웃어야 몸이 따라서 웃고
내가 춤춰야 세상이 따라서 춤을 추는 법인데
친구는 몸이 울어 마음도 따라 울고 또 마음이 우니 몸이 더 아파하고 있다..
성철스님의 글조차 친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죽을 병인 것 같은데, 지옥에 가는 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지금 너무 아프고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걱정을 해야할지도 모르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 병이면
두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거 같은가?
지옥에 갈거 같은가?
천국에 갈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거 같으면
지옥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친구야 어쩌냐?
나는 네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빨리 털고 일어나 산이나 가자는 얘기도 못하고
한 번씩 전화하고
가끔 씩 너랑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난 그것밖에 네게 해줄 수가 없구나.
나를 만난 오늘은 아파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시간이라도 단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 3월 23일 영수를 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