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계룡산 노래 - 아쉬운 도돌이표
3월 둘 째주부터 시작되어 5월까지 계속된 내가 주관하는 여섯 개 모임의 봄 여행은 끝이 났다,
소란함 속에서는 채워질 수 없는 맑은 고요와 군중 속의 고독을 위해 틈틈히 시간을 배정한 나홀
로 여행과 조사장 그리고 마눌과의 봄 여행도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추억의 시간이었다.
5월 24일 봄여행의 피날레는 마지막 혼자 여행이었다.
계룡산 비등산행
5시에 여장을 꾸리고 출발하다.
동학사 주차장에 차를 놓고 관음봉에 올랐다가 비등 쌀개봉과 황적능선을 연결할 생각이었다.
날은 어슴푸레 밝아오는데 정규 주차장 뒤편으로 차를 댈만한 곳이 없다.
내가 항상 두던 펜션들 앞 주차장에는 새벽에 가면 빈 곳이 어김 없이 있었는데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계속 아래로 내려 가다가 한 곳을 발견했는데 다시 동학사 쪽으로 올라가려니 너무 멀고 오히려
황적 능선 들머리가 가까워 역방향으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날씨는 흐리고 자못 차가운 바람이 불어 거친 산을 타기에는 안성맞춤의 날이다.
오랜만에 오다 보니 첫 번째 들머리 등로가 긴가민가 아리송 하다.
아얘 아는 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좀 더 도로를 따라 내려 갔다.
비등 들머리가 맞긴 한데 지형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풀이 너무 무성하여 언덕 위에 공터도 완전히 묻혀 버렸고 길의 흔적도 없어졌다.
내 기억으로 계룡산 비등을 탔던 게 재작년 가을 이었던 것 같은 데 2년도 채 안된 시간에 이렇
게 변할 수가 있는가?
인걸은 돌아 왔건만 산천은 의구하다.
하여간 어찌어찌 해서 철책문이 있는 무덤가 까지 올라 갔다.
문제가 또 발생 !
전에는 철책문 아래로 낡은 철조망이 파손 된 곳이 있어서 돌아 가면 되었는데 지금은 보수되어
넘어갈 데가 없다.
할 수 없이 위험한 철문이 있는 곳을 넘어간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이 나이에 또 월담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다시 차를 가지고 정규루트로 돌아가기에는 한 번 뽑은 칼이 무안하고 허비한 시간이
아까워 비장한 각오로 월담을 하다.
ㅎㅎ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는 또래 산친구들 가운데 이 쇠창살 문을 넘어서 까지 산을 탈 사람
은 없겠다.
나도 인자 슬슬 퇴할 때 되었다는 건가??
그랴도 훔친 사과가 맛 있다고 감추어진 길의 봄 풍경이 더 감동적인 걸 어쩌랴?
멀리 떠나지 않고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원시와 야생의 유전자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곳
을 벌써 잃어버리는 건 삶의 재미 하나 놓치는 것이다.
아직 낙엽이 수북히 쌓인 등로는 희미하다.
재작년과 비교하면 등로가 많이 황폐해졌다.
“ 아! 요즘은 금지 구역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사람이 떠난 집이 금새 잡풀이 무성하고 낡아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더니 길 또한 예외가 아니
다.
우수에 찬 날씨에 바람이 불어 혼자가는 길의 쓸쓸함을 더하는데 푸른 가을 산행 느낌이다.
익숙한 황적봉과 차재봉을 지나 무릉쉼터에 도착했다.
신기하게 칼로 베어낸 듯 잘리어진 절벽 난간의 평반은 혼자 앉거나 눕기에도 좋고 풍경도
수려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내 젊은 날에 태현을 데리고 이 코스를 탔다는 게 이젠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백두대간 시절 출정이 없는 주에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장이었다.
그 때는 장군봉에서 시작하여 한바퀴 풀 종주 하는 것도 7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했는데 관음봉
에서 시작하여 돌아 내리는 데도 6시간 이상 걸리니 참으로 무상한 세월이고 허약한 인간의 육체
가 아닌가?
이 코스를 데리고 간 친구들도 많다. 고부기 ,조사장,
지금은 이 길을 따라나설 이 아무도 없다.
가장 난코스에 속하는 절벽 위에 섰다.
장쾌하게 쌀개봉으로 올려 붙이는 다이나믹한 능선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절벽을 내려가 2시간 정도 빡세게 올려 붙여야 할 코스 !
내려 가는 데 첫 번째 절벽에 로프가 없다.
여기는 맨손으로 내려간 기억이 있으니 최대한 조심을 해서 내려 섰는데 바로 아래 절벽에도
로프가 달려 있지 않다.
국공측에서 로프를 끊었다는 얘기고 최근에는 지나다닌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비등 들머리 주변 잡풀이며 훼손된 등산로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진 로프들로 미루어 짐작컨대
국공에서 등산 인구가 줄어드는 기회를 노려 비등폐쇄를 아얘 작정한 모양이다.
아쨋든 곳에 로프가 없으면 얘기가 달라 진다.
암벽 전문가라면 몰라도 내 능력으로는 어림 없다.
그냥 어찌어찌 뭉개고 치대서 될 일이 아니다.
이 곳에 로프가 잘려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내가 왔을 때 잘려 나간 건 처음이라 황당
하고 허탈하기 짝이 없다.
용트림하는 올라 치는 능선이 오늘 따라 더 아쉬워 지는데 주변이 모두 깎아 지른 절벽이라 어쩔
도리가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래 대로 관음봉에서부터 탔으면 굳세게 내려온 험한 암릉 길을 되돌아
올라 갔어야 했으니 고생이 심했을 거라는 거
계룡산신령님이 배려해 주신 건 맞다.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긴다.
도전할 일이 다시 생겼다.
다음 번에 날 잡아 내가 로프를 가지고 가서 길을 열어 주어야지 …………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았으니 계룡 산신령님이 진노하시지는 않을 터
앞에 가야 할 능선을 두고 되짚어 간다는 건 맥빠지는 일이지만 인생이란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배울 일이다.
호젓하고 조용한 산책 길이었다.
돌아 내려와 유성 사우나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 오다.
2025년 5월 24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