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산
닭을 닭대가리라 비하한것은
아마도 본분을 잃어버릴 만큼 어리석기 때문이 아닐까 ?
이녀석은 새 중에 우월한 종자다
새벽을 알리는 소리도 우렁차고 체구도 크고 튼튼하다ㆍ
하지만 이 녀석의 치명적 단점은 새임에도 날지를 못한다는 거다 ㆍ
스스로 자유를 포기 했다는 거다 ㆍ
야생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을 중단하고 우월한 종자인 인간에게 의지하여 편안하게 먹고 산다ㆍ
그렇게 살다가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 날 잡아 식탁에 오른 다는 것도 모르고 ᆢ
아니 모이를 주던 주인이 변심하여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걸 알고도 도망칠 수가 없다 ㆍ
멋진 날 개를 가지고 있으되 날 수가 없다 ㆍ
굳이 날아다닐 이유가 없어서 날지를 않다 보니 날아가는 걸 잃어 버렸다.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굶주리지 않기 위하여 하루 수십키로를 달려야 했던 역동적인 야생의 원시DNA를 대물림
받은 인간은 더 이상 꿈틀대지 않는 순간 쇠락이 길로 접어든다.
움직임을 포기하고 구차한 변명과 함께 떠나기를 꺼려할 때 우리 방랑의 유전자와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가슴은 시간 속에 잠들 것이다.
나는 반짝이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나의 날개는 푸른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기 위함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닭이 아니다ㆍ
아니 차라리 한 마리 매가 되거니
아니면 한마리 들개이고 싶다ㆍ
투표일이다ㆍ
임시 공휴일이고 사전투표까지 했으니 나는 떠날 자격이 있다 ㆍ
엊그제 마눌과 소백산을 다녀 왔으니 무리하지 말고 조용히 새벽 묵상하고 끝내자ㆍㆍ
작은 동산에 가기로 했다ㆍ
8km아름다운 제천 충주 호반의 암릉길ᆢ
수려한 풍경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거친 야성이 아쉬워 혼자 나서기 20프로 부족
이고 조사장 하고 기기에는 운동량이 태 부족한 너무 짧은 거리라 지금껏 미답으로
남겨진 곳이다ㆍ
오늘 같이 힐링산행을 작정한 날에 안성 마춤이다ㆍ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ㆍ
시방타임 새벽 5시 ~!
자주 가서 익숙한 길을 1시간여 바람처럼 달려 6시쯤 교리 주차장에 도착하다ㆍ
한 켠에 차 한대 우두커니 주차되어 있다 ㆍ
그 옆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준비해 온 아침 식사를 한다.ㆍ
토마토 2개
고구마 2개
계란 1개
두유 하나 ㆍ
신선의 나라 입적을 위해선 가벼운 위장과 행장이 좋다ㆍ
6시 30분 출발ㆍㆍ
잠시 고도를 높이고 나서 청풍 호반의 수려한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ㆍ
외솔봉 가는 바위 난간에 작은텐트 하나!
인기척을 내어도 미동치 않는다ㆍ
이 땅의 빼어난 산수에 넋이 나간 초절정 고수들의 마지막 행로ㆍ
방랑자는 세상의 큰 산을 두루두루 돌아보다 대자연의 정령에 홀린 어느 날
급기야 달팽이 집을 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람처럼 떠 돌 것이다.
대자연에 홀리면 약도 없다.
야생의 본능이 살아나고 감각의 촉수가 예민해진다.
하이애나의 입냄새에 몰골은 노숙자처럼 꾀죄죄해도 대자연의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니 얼굴에는 광채가 뜬다 ㆍ
내가 퇴직하고 해보고 싶은 방랑의 산행이었다ㆍ
하지만 마음 뿐 !
은퇴 후의 삶이 그리 만만 하거나 호락호락할까?
고립과 고독 그리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갈 미래의 두려움은 그렇게 서서히 구체화 된다ㆍ
순식간에 돌변한 적막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외로운 분투는 그동안
꾸었던 많은 꿈을 좌절시키고 계획을 유보시킨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 채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제 2차 백두대간은 진행 중이었고 여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은 변함이 없었지만 남은
많은 날들을 일 없이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ㆍ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ㆍ
그렇게 이 땅의 은퇴자들은 아주 작아진 채 세월이 강요하는 불평등 조약에 날인할 수 밖에
없다.ㆍ
그래도 세월은 너울 너울 잘도 흘러 갔고 나는 첫번째 청산도의 비박 섬산행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ㆍ
또 다시 퇴직하면 못할 이유도 없겠지만 그 때는 차라리 민박을 하지 고단하게 달팽이
집을 지고 다니고 싶을까?
차에 달팽이 집과 자전거를 싣고 섬에들어가 섬길을 일주 하면서 텐트를 치고 비박하는
절충안이라면 또 모를까.
외로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동행을 찾을 생각도 없지만 그 때 쯤이면 동행을 자처할 사람
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외솔봉 작은동산 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은 제천과 단양 일대의 걸출한 암릉미의 명성
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빼어난 산수 였다 ㆍ
잘왔네!
날씨는 흐리게 가라 앉고 바람도 솔솔 불어서 더 없이 쾌적한 아침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대와 감탄이 살아나는 절경의 산수는 가는 길은 내내 산 길에 흩날리는
감동을 자석처럼 끌여 들였다.
작은 동산이 가까위지면서 두런거리는 사람소리가 들린다ㆍ
그래도 낮은 산이라 아침 산행에 오른 사람이 있나 했는데 등로 계단공사를 하는 사람들
이었다ㆍ
외국인 하나에 우리나라 작업자들 세명 !
그들은 날씨가 무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5월이 지나고 날은 그렇게 순식간에 더워지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넸는데 좋은 산행되시라는 덕담이 돌아 온다ㆍ
세상을 오염시키는 정치인들을 쉰 소리가 사라진 이곳이 파라다이스다.
그들이 막 공사를 마친 나무계단을 밟고 모래재로 내려섰다ㆍ
원래는 여기서 2.7km를 가벼운 내리막 산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예정대로 순조롭게
마무리될 여정 이었다 ㆍ
하지만 작은 동산의 산세에 고무된 나는 내친김에 무쏘바위를 타고 성봉까지 올랐다가 내려
오기로 마음을 바꾸었다ㆍ
무릉객이 못말리는 그 산 욕심이 어디 가겠나?
돌발 변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결정된 사안 이었을 게다ㆍ
무쏘바위는 누운 남근석이나ㆍ
이처럼 적나라 하고 우람한 남근을 본 적이 없다ㆍ
오묘한 대자연의 작품을 찬찬히 감상하고 풍광절벽에서 마눌이 싸준 방울 토마토와 고구마
그리고 계란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다시 심기일전 시종빨딱 일어선 거친 능선으로 이어지는 성봉에 무사히도착 했다 ㆍ.
성봉 !
내 생애 처음 오르는 거친 미답의 봉우리다.
그늘 한 켠에서 소슬한 바람을 즐기며 망중한을 누리다가 하산의 길을 잡는다ㆍ
정상 200미터 아래 교리 마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분기 된다ㆍ
정상에 오를 때 지나친 곳이다.
이곳에서 차가 있는 교리 마을 주차장까지 3.5km 거리다ㆍ
온 길로 내려 간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가도 분기되는 삼거리 공터가 보이지 않는다
찬찬히 살펴 보니 길을 잘못 들어 죄측 능선 길로 들어섰다ㆍ
무암사 방향 하산로가 있는 길이다ㆍ
되돌아 갈까 하다가 “아서라ㆍ!”
성봉 산신님이 인도하심이다ㆍ
성봉에서 무암사 하산 길 남근석 까지는 1km다
1km가 대수라 ?
능선 갈림길 까지가 400미터이니 남근석 까지는 600미터 내려가야 하는데 수직 절벽들의
경사와 낙차가 장난이 아니다ㆍ
우야튼 여기 까지 왔으니 내려 갔다가 와야지
“언제 또 다시 오겠냐구요 !”
바위릿지는 로프의 연속 이었고 그 풍경은 점입가경 이었다ㆍ
작은동산이 아기자기한 산세의 정교한 아름다움이라면 이 코스는 선이 굵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산수의 진경이었다 ㆍ
한 남자가 올라왔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산객이다ㆍ
반갑게 인사하면서 처음 오는 산길인데 정말 멋진 풍경이라 힘든줄 모르겠다고 하니
"앞으로 내려 가시는 길은 더 좋아유 " 라는데
산 길에서 그 말 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
잠시 후 여자 한 명이 올라오는데 다소 상기된 긴장 가득한 얼굴이다ㆍ
그틀에게 인사하고 내려가자니 그녀의 표정이 이해되었다ㆍ
아마도 남자를 따라 나섰다가 그 거친 산세에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다 ㆍ
아까는 누워 있던 물건이 푸른 이젠 하늘을 향해 바짝 고추서 있다.
바짝 독이 오른 채 ....
가히 대자연의 걸작이라 !
어느 조각가가 거칠고 웅장한 바위벽을 뚫고 저렇게 우주를 향한 힘찬 기상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인고와 스릴의 절벽을 내려가 두번째 조선 최대의 대물을 알현했다ㆍ
뿌듯한 순간이었다ㆍ
지도를 보니 다음 번에 시간이 될 때 조사장과 무암사에서 장군봉 길을 따라 성봉에 올랐
다가 작성산 능선으로 돌아 내리면 5시간여 거칠고 아름다운 또다른 절경 여행이 가능하다ㆍ
안전지킴이 조사장 담력 훈련 한 번 시켜야지ㆍ
그래도 절벽마다 로프가 잘 매여 있어 조심만 하면 큰 사고의 위험은 없다ㆍ
젊은 날 속속들이 주유했다고 생각한 제천 산하 한 구석에 남아 있던 비경코스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다시 올라가 성봉을 가파른 비탈과 절벽길을 내려가면서 알바를 두 번이나 했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다 보니 등로가 뚜렷하지 않은 탓이었다.
교리주차장으로 내려서니 오후 2시 40분
4시간 쯤으로 마무리될 길을 8시간 10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아무리 세월아 내월아 유유자적 산행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은 산행이었다.
원주 아쿠아랜드 사우나에 들려 목욕을 하고 보신탕 한그릇 사먹고 집으로 돌아오다.
2025년 6월 3일 투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