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봄을 맞아 크게 길하다는 절기인 입춘이었습니다. 입춘에는 대문에 立春大吉이라는 큰 글씨를 써붙임으로써 새해를 시작
하는 날로 삼았고 봄눈 밑에서 햇나물을 캐다가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
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대문에 입춘대길이라고 써붙인 집을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사시사철 싱싱한 푸성귀가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점점 약아진 사람들은
입춘이라 해서 굳이 햇나물을 찾아 먹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다음에 찾아오는 절기인 우수나 경칩은 숫제 기억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입춘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혹한이 이어지던 지난 며칠내내 봄은 커녕
겨울의 한 복판에 서있는 듯한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재작년 이맘때 다녀온 홋가이도에는 영하44도가 넘는 폭설로 도시가 온통
마비되었다는 소식도 들려 옵니다.
그런데도 입춘은 정녕 입춘답게 봄기운을 품고 찾아왔습니다.
두꺼운 모직코트 위에 다시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주머니속에 두 팔을
깊숙히 찔러넣은 채 종종걸음을 치면서 계절의 오고 감을 나 몰라라하고
무심하게 지내더라도, 설사 그렇더라도 봄은 오페라의 서막처럼 장엄하게
그리고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은은한 향을 내뿜으며 우리들 곁에
슬쩍 자리를 잡고 앉을 것입니다.
물론 어느 한 순간, 마치 '변심한 애인'처럼 등을 보이면서 뒤돌아서서는
제걸음을 재촉하여 홀연히 뒷모습만 보이며 떠나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봄을 누릴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말입니다.
"비록 절름거리며 어두운 세상을 걸어가고 있지만요.
허기진 영혼 천길 벼랑끝에 이르러도
이제 절망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겨우내 자신의 모습을 흔적없이 지워버린 민들레도
한모금의 햇빛으로 저토록 눈부신 꽃을 피우는데요.
제게로 오는 봄인들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라고 작가 이외수는 입춘대길을 염원하며 봄을 다독입니다.
그 사이 혹한이 또다시 찾더라도, 봄눈이 내리더라도 봄은 올 것입니다.
서둘러 핀 봄꽃소식에 호들갑 떨면서 맞을지라도 봄은 짐짓 태연한 척 하며
또박또박 정갈한 걸음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들 것을 믿습니다.
입춘을 맞아 이웃님들의 가정이 크게 길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05 Feb, 2007. (사진;네이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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