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성윤의 goumet 클럽
매화와 산수유꽃을 취재하러 구례에 다녀왔습니다. 장관이더군요. 저는 3월 초에 다녀왔는데, 지금은 아마도 활짝 만개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화엄사 유명한 흑매화는 제가 갔을 땐 아직 피지 않았는데, 지금은 피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녀오고 시간이 좀 흘렀기 때문에 이외에도 다른 부분이 다소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월8일자 주말매거진에 나간 기사를 그대로 아래 올립니다. 사진은 유창우 기자의 작품입니다. /구름에
밤새 비가 내렸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와 산수유화가 비를 맞고 떨어지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다행히도 꽃은 무사했다. 빗방울을 꽃잎 속에 품은 매화가 오히려 더 싱그러웠다. 물기를 머금은 노란 산수유화는 청초했다. 바닐라처럼 달착지근한 매화 향기가 새벽 공기에 희미하지만 가득했다.
이곳은 전남 구례군. 구례는 한반도에서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 중 하나다. 아직 약간 쌀쌀하긴 하지만 봄 기운이 확연하다. 어디를 가나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고, 매화나무도 팝콘처럼 동그란 꽃망울을 언제라도 터뜨릴 기세다.
구례 사람들은 덤덤하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수선이냐”는 표정이다. “앞으로 열흘쯤 있으면 산수유화와 매화가 그야말로 볼만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칙칙한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 눈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꽃천지이고 꽃동산이다.
마산면 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上沙)마을에는 고즈넉한 한옥에 묵으면서 봄꽃도 즐길 수 있어 더 좋은 한옥 펜션 ‘쌍산재’(雙山齋)가 있다.
한옥 펜션 쌍산재
서울 인사동에 있을법한 한옥 카페. 대문을 밀고 들어선 쌍산재의 첫인상이다.
쌍산재 주인 오경영씨가 지난 2004년 6대조 할아버지께서 지은 한옥을 깔끔하고 세련되게 재단장했다. 어머니가 거주하던 안채와 여자 형제들이 시집가기 전 지내던 건너채, 할아버지가 공부도 하시고 아이들도 가르치던 언덕 위 서당채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낡고 허문 황토벽을 다시 바르면서 기왓장을 박아 무늬를 만들었다. 방마다 주방과 비데까지 갖춘 화장실을 따로 마련했다. 한옥이지만 도시사람이 지내기에도 별 불편 없다. 너무 깨끗해서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영화세트장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정겹게 붙어 앉은 듯 보이는 안채와 건너채도 좋지만, 쌍산채의 백미는 역시 서당채다. 안채 뒤 대나무숲을 통과해 목단과 작약이 양옆으로 심어져 있는 길을 따라 낮은 구릉을 오르면 서당채가 보인다. 서당채 입구가 길과 바로 이어지지 않고 옆으로 약간 어긋나 있다. 문 앞에는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안이 약간 들여다보이면서도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는 발 역할을 한다. 산수유나무 옆에는 매화나무가 막 꽃을 틔웠다. 서당채에는 방이 2개 있는데, 각 방에는 5~6명이 묵을 수 있다.
서당채를 나와 오른쪽으로 틀면 길고 좁은 흙길이 나 있다. 흙길 끝에는 작은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니 숲 사이로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를 둘러싼 나무 그림자가 물에 어른거려 더욱 푸르다. 그러고 보니 문 이름이 ‘영벽문’(映碧門)이다. 저수지 제방은 가벼운 산책하기 알맞다. 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면 숲 뒤로 논밭이 나온다. 반듯하게 구획 정리하지 않은, 이른바 다랭이논이 언덕을 따라 계단처럼 올라간다. 논과 밭 사이를 걸으면 놀란 참새과 꿩 같은 새들이 후두둑 하늘로 날아오른다.
쌍산재에서 하룻밤 묵으려면 방에 따라 6만~15만원이 든다. 오경영씨는 “화장실이나 주방은 어느 방이나 비슷하지만, 운치가 더 있느냐 덜하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너채 2~3인실 6만원, 안채 10만원, 서당채 12만원, 15만원. 성수기에는 조금 더 받을 수 있다. 예약·문의 011-635-7115, 010-9644-7116, oky7115@hanmail.net. 홈페이지 www.쌍산재.kr
소박한 한옥 펜션 곡전재
봄꽃과 한옥의 운치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한옥 펜션으로는 곡전재(穀田齋)도 있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다.
호박돌을 2.5m 높이로 쌓아 성곽처럼 보이는 돌담이 우선 인상적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5채 한옥이 얌전히 돌담 안에 들어찼다. 이중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안채를 제외한 동행랑, 중간채 등 나머지 4채를 펜션으로 개조해 손님을 받는다. 세련되지 않아 오히려 진짜 시골 농가에 머무는 기분이 들 것도 같다. 방마다 화장실과 주방이 붙어있다.
집 곳곳에 매화나무와 산수유가 막 꽃을 피웠다. 안채 뒤로 작은 대나무숲이 있다. 사각사각 댓잎 스치는 소리 들으며 걷는 맛이 괜찮다. 연못도 있다. 방이 5개로 2~4인실 10만원, 6~8인실 12~13만원(성수기 15만원), 10~16인실 18만원. 예약 (061)781-8080, 019-625-8444 홈페이지 www.gokjeonjae.com
산수유마을
노란 꽃안개 자욱한 계곡 마을. 지리산 만복대 아래 ‘산수유마을’은 몽환적이다. 정확한 행정명칭은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위안리는 다시 계곡 위 상동과 아래 하동으로 갈린다. 이중 상동마을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30%를 차지할만큼 산수유나무가 많다. 여기가 산수유마을이다.
산수유꽃은 다 피어도 4~5㎜에 불과하다. 하지만 봄이면 수천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동시에 수천만 송이 산수유꽃을 피우는 모습이 장관이다. 구례군 산동면 30여개 마을 어디나 산수유꽃이 아름답다. 그 중에서 산동마을이 첫손 꼽히는 건 마을 분위기 탓이다.
함석 지붕을 얹은 한옥이 산수유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산수유나무 주변에는 어른 허리에서 어깨 높이 돌담이 나지막히 둘러쳐 있고, 나무 밑에 뒹구는 둥글고 커다란 호박돌에는 파란 이끼가 끼어 있다. 촉촉하고 싱그럽다.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고 내리는 돌담길을 걷다보면 잘 다듬고 관리한 정원에 주인 몰래 들어온 기분이다.
산수유마을은 꽃이 피는 봄도 좋지만 가을도 좋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면서 계곡이 선홍색으로 화려하게 불탄다. 열매는 한약재로 옛부터 귀하게 쓰였다. ‘산수유나무 세 그루면 자식을 대학공부 시킨다’고 해서 ‘대학나무’라고도 불렸다. 상동마을 주민은 “산수유 생산이 전국으로 늘어나고 중국산까지 합세하면서 수입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꽃이 피기는 했지만 아직 만개하지 않아 화려함이 덜하다. 대신 그만큼 관광객도 적으니, 번잡한 관광지가 싫다면 오히려 반길 법도 하다.
화엄사 흑매화
구례 화엄사(華嚴寺) 각황전과 나한전 사이 좁은 틈새에 마르고 뒤틀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600년도 전에 심어졌다고 전해지는 늙은 매화나무다.
힘 넘치는 젊은 매화나무보다 꽃 피우는 시기가 처진다. 하지만 뒤늦게 터져나오는 꽃은 어떤 매화보다 붉다. 붉다 못해 검붉다. 사람들은 ‘흑(黑)매화’라 부른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각황전 서까래를 장엄한 진홍색으로 물들인다. 지난 2일 찾았을 때 흑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빨간 꽃망울이 이제라도 터질 듯 숨고르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주말, 늦어도 주중에는 흑매화를 피워올리며 원숙미를 자랑할 것이다.
이 흑매화 말고도 화엄사는 봄이면 홍매화 곱기로 이름 났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보제루가 나타난다. 보제루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에 50살쯤된 매화나무가 홍매화를 한창 피우는 중이다. 홍매화 중에서 드문 홑꽃잎 홍매화다. 보제루 지붕을 보수공사 중이라 당분간은 나무에 다가가 매화향을 맡지 못해 아쉽다.
지리산일주도로 입구에 있는 천은사(泉隱寺)는 화엄사보다 인파가 적어서 훨씬 차분하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으로 매화나무가 여섯 그루쯤 있다. 심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가늘고 작다. 오른쪽으로는 동백이 한창이다.
여행수첩
구례 가는 길=(서울에서 출발할 경우)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논산고속도로,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남원IC를 나와 19번 국도로 얼마 가지 않아 구례군이다. 4시간쯤 걸린다.
산수유꽃 축제=3월15~18일
문의=구례군 문화관광과 (061)780-2224, www.gury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