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시첩
-남해 가는 길
고 두 현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울타리 밖에 채마밭을 짓고
-유배시첩2
고 두 현
흐린 날에 텃밭에 나가
익모초잎을 딴다
초막 뒤로 지는 노을
시린 팔목도 굽은 어깨도
진눈깨비에 젖어 흐르다 보면
못다한 이승의 아름다움
꽃대궁 뿌리마다 단단히 박아두고
어즈버 내가 없는 날
봄 푸른 들판 되어
꽃피고 새움이 돋듯 그렇게
다시 살았거라 두고온 것들도 수런대며
돌아와 뒤뜰 동백잎 함께 아물어 갈 때
일어나 터지거라 터지고도 모자라면
또 다시 누워 채마밭이 되고 새암이 되고
먼 데서 오는 한 벗 구름 뿐인 고요가 되고
슬픔이 되어 내 묻힌 노지나 묘등에
땅만 보고 섰을 풀줄기 되라
안부
-유배시첩3
고 두 현
동물 끝 바위 갈매기 한 쌍 닿았구나.
벼랑 아래 끊임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눈에 뵐 만하면 멀어지고
나랏님 열두 번 벼슬
때마다 사양하고 혼자 예 앉으니
망망한 대해가 내게로만 무너지네.
어지러운 잡풀 사이
소나무처럼 우뚝 선 새
해풍에 상하지 않을까
밤이 되면서 근심이 깊어졌다.
물소리 쿵쾅이는 잠 속에서도
새는 떠나지 않고
부리만 갈고 있다.
속절없이 웅숭거리는 바람 따라
하얗게 일어서는 저
뼈, 혹한보다 더 시린
그대의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