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살이-이슈(펌)

분수대 -바오밥나무 / 2009.6.2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에서 바오밥 나무는 공공의 적이다. 거긴 의자를 몇 걸음 앞으로 당겨 앉기만 하면 하루에 석양을 마흔세 번도 볼 수 있는 작디작은 행성. 키와 둘레가 수십 미터씩 되는 이 나무 한두 그루면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무섭게 뽑아 버려야 하는 이유다.

반면 지구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바오밥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평생 친구다. 넉넉한 그늘은 쉼터가 되고, 나무 껍질은 밧줄과 낚싯줄로 쓰인다. 우기엔 몸통 가득 빗물을 품어 두었다 건기의 갈증을 풀어 준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고마운 건 주린 배를 채워 주는 잎새와 열매다. 특히 열매의 과육을 빻은 뒤 동글납작하게 펴서 햇볕에 말리면 몇 년씩 저장 가능한 비상 식량이 된다. 그걸 아껴 먹으며 가뭄과 전쟁을 버텨낸 이가 한둘이 아니다.

이 나무의 영양학적 효능까지 드러난 건 최근의 일이다. 알고 보니 과육에 오렌지보다 여섯 배나 많은 비타민 C, 우유 두 배 분량의 칼슘이 담겨 있단다. 거기다 비타민 A와 B, 인과 철분까지 풍부하다. 열매 속 씨엔 양질의 단백질이 가득하고, 잎새 역시 무기질 덩어리란다. 빈자들의 소박한 먹거리가 실은 영양 만점의 수퍼 푸드였던 셈이다.

아프리카에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다. 해마다 전 세계 어린이 500만 명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데 이 중 상당수가 아프리카 아이들이다. 식량의 절대량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영양소 부족이다. 곡물 위주인 서방 구호품으론 비타민과 무기질, 단백질 결핍이 불가피하다. 집집마다 바오밥 나무 한 그루씩 키우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단 야생의 사바나 태생이라 기르기 까다롭고 족히 10년은 돼야 열매를 맺는다는 걸림돌이 있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말리 등 몇몇 나라에서 접붙이기와 옮겨심기를 통해 ‘바오밥 과수원’을 가꾸는 데 성공했다 한다. 과육 일부는 유럽연합(EU)에 수출돼 외화벌이까지 한다니 신통할 따름이다.

아프리카의 희소식과 달리 요즘 북한 관련 뉴스는 암울 일색이다. 춘궁기인 데다 외부 원조마저 뜸해 식량난이 여간 심각하지 않단다. 어린이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라는 발표도 나왔다. 바오밥 나무가 없으면 사과나무라도 열심히 심어야 할 판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만 열을 올리니 참 딱한 노릇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