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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촉석루-보리암-향일암-낙안읍성

2009년 6월 26일 ~27일

 

 

진주 촉석루 남해보리암 - 여수오동도,향일암 - 순천 낙안읍성 -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긴 여정이었지만 즐거운 여행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랜 직장동료로써 서로간 이해의 폭을 더 넓히고 함께하는 기쁨을 누렸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그 동안 보여주었던 진심과 그리고 많은 도움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여행길에서 훌훌 털어 버렸던 서운함들과 베낭에 담아 왔던 추억과 기쁨들처럼

우리가 나눈 시간들로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롭고 따뜻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함께하는 더 멋진 날을 기대 합니다.

 

늘 행복하소서….          ㅇ욱

 

 

 

 

 

일 안하고 놀러 가는 날

아침에 밥 먹여 태현이 학교 보내고 편지 한 장 써놓고 나왔다.

시험이니 졸지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태양은 아침부터 눈 부시다.

가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 길은 아니지만 또 어떤가 ?

한 솥밥을 먹으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사람들인데

그래도 매스컴에 회자되는 노조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 역시 상황판단이 빠르다.

어려운 경제환경, 그리고 예전 같지 않은 업황

그리고 줄어드는 조합원의 수

최신 설비로 공장을 증설할 경우 필연적으로 감소할 인원 등등

어쨌든 올해는 목소리를 높여서 얻어낼 것도 명분도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해 주었다..

그래서 서로간의 그 공로로 부담 없이 떠나는 여행 길이 되었다.

시간과 돈 모두 회사 부담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 길은 내겐 처음이다.

여행의 패턴을 바꾸기로 했다.

섬이나 외진 곳 한 군데 잡아서 술이나 푸다가 노래방에 가고 그리고 나서 화투판을 벌이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여행다운 여행 만들기

정작 다음날은 피곤에 쩔어 만사가 귀찮아 져서 관광은 형식적이되고 게심츠레하고 몽롱한 눈으로 하루를 또 보내거나 아니면 돌아오기 바쁜 그런 여정을 이번엔 탈피하기로 했다.

 

일단은 동선은 크게 하여 이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가는 목적지 가는 중간중간 테마 경유지를 넣기 로 했다.

그리고 가는 동안 그 지역의 특산 음식을 즐기면서 내용이 꽉 찬 관광을 즐기는 일정으로 일방적이고 주관적이지만  나름 실속 있게 편성했다.

(일정)

9 30분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나 진주에서 진주성과 촉석루 그리고 의암을 둘러보고 나서  남강에서 장어로 입맛과 스태미너를 돋운다.

점심 식사 후 삼천포 대교를 건너 남해 해안 도로를 일주하여 보리암으로 간다.

보리암 돌아보고  여수로 가서 오동도와 자산공원을 둘러보고 돌산대교를 건너 목적지 향일암으로 간다.

팬션은 영업사원을 통해 예약을 했다.

저녁식사는 팬션주인을 통해 근처 횟집으로 잡아 놓았다.

다음 날에는 새벽에 향일암 일출을 보고 아침식사를 한 다음 순천 낙안읍성을 돌아보고 전주에서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한다음 귀향

 

독선적인 계획표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여행길이 될 것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알고 맛있는 곳을 아는 법이다.

여행과 산행을 나만큼 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내 추억을 더듬어 가는 여행 길

 

날씨는 무덥고 태양은 뜨겁다.

마눌이 북유럽 가느라고 선탠로션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 것 얻어 바르려 했는데 참여자  9명 중에 로션을 챙겨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모두들 징허다.  

그래도 썬그라스는 모두 한 개씩 챙겨왔다.

 

 

 

진주성 도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장어집이 많은 강변로를 따라 가는데 웬 아줌마가 뛰어나오더니 차를 못가게 다짜고짜 막는다.

그 열정에 감복(?)하여 우린 일미 바다 민물장어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민물장어는 양식이라 통통하고 바다장어는 제대로 못 먹어서 비쩍 말랐다.

맛은 바다장어가 훨낫다.

힘쓸 일도 없는데 장어에 복분자에 오늘 우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식후에 진주성 산책하기로 했는데 때 이른 무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찬찬히 돌아 볼 여유는 없지만 나른한 휴식이 밀려드는 촉석루에 올랐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넓은 누대 마루 여기저기 흩어져 나른하고 게으른 여름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

황포돛배 띄우고 조용히 흐르는 남강

그리고 그 위를 불어가는 시원한 강바람

 

그 동안 나만 변했구나

동행이 바뀌고 허리가 꺾이고

머리에 새치도 좀 더 늘었다.

 

의암에서 사진 몇 장 찍으면서 남강을 바라보다 다시 남도로 발길을 재촉했다.

 

 

 

 

 

 

 

 

 

 

 

 

 

 

 

 

 

삼천포에서 대교를 거쳐 남해로 간다.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인데 연무로 인해 시야가 좋지 않아서 아쉽다.

바다를 보니 마음이 후련해 진다.

 

가는길 죽방루에서 잠시 쉬어 간다.

여기에도 치열한 삶이 가져오는 파열음과 분쟁의 모습이 보인다.

프랑카드에 붙인 붉은 글씨의 대자보

바다 위에도 사유지가 있는지 바다위로 난 다리 위 끝머리를  막아 플래카드를 걸고 통행을

막아선다.

조합간부들과 가는 길에 또 거슬리는 광목프랑카드와 붉은 글씨들

살아감은 늘 이렇게 팩팩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어야 하나?

 

우린 굴곡진 강의 여울목에서 배려를 통한 타협을 이루었다.

언제고 다시 급류와 소용돌이를 만날 것이다.

그 때는 그 때 대로 그곳을 지나는 좋은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소리치며 아슬아슬한 급류타기를 즐길지도 모른다.

나의 판단과 구명조끼의 힘을 믿으면 될 것이다.

순탄하건 힘들 건 소중하게 남겨진 나의 인생 길이다.

 

세상살이 어느 일이 하 쉬우랴만 조금은 손해보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둥글어

편안해 지지 않을까?

둥근 지구에서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 듯

작은 것들보다 더 크고 즐거움 것들이 많은 세상 아닌가?

 

죽방렴에서 좀더 가면 울돌목

이순신 장군께서 명랑해전을 승리로 이끈 곳이 있다고 한다.

정말 바닷물은 흡사 강물처럼 물살이 거세고 빠르다.

빠른 물살을 이용해 멸치를 잡는 죽방루는 정말 신기했다.

 

역시 인간들은 교활하다.

게를 잡는 통발이나

호수에 만조가 들이칠 때 물고기 씨를 말리는 삼단 저인망 그물

그리고 동물들을 포획하는 올가미 등

지능의 차이를 이용해 인간들은 더불어 살아갈 생명체를 유린하고 마치 세상의 지배자처럼 군림해 왔다.

 

이젠 인간들조차 함께 공존할 수 없어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들은 더 세상에 기민하게 진화한 인간들에게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와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있다.

부가 대물림되고 빈부차이가 점점 더 커지는 점점 힘들어가는 세상에서 나의 자식들이 세상에 휘둘릴 까봐 늘 걱정스럽다.

공부 못해서 기회가 제약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멋지게 누려야 할 한 세상을 전전긍긍하며 살아갈까 봐 ….

마눌이 유럽가고 시험 공부한답시고 허구헌날 졸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서글픔과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머리도 좋은 편이 아닌데 늘 졸음조차 이기지 못하는 무기력한 눈빛

오기와 욕심도 없는 모습

저래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

죽방렴을 보니 괜한 곳으로 생각이 비약된다..

 

 

죽방루

 

 

 

 

 

 

 

보리암

 

 

 

주말이 아니라 우리의 차를 가지고 주차장 까지 오를 수 있다.

보리암 주차장에서 보리암 까지 오르는 길은 길 양쪽 나무그늘이 드리우기도 하고 땡빛에 노출되기도 한다.

 

2000 3 25일에 혼자 여행길에서 처음 만나

2004년도 4월에 마눌과 아이들과 함께 들렸던 곳이니 벌써 오년이 되었다.

금산에는 이제 3번 째 오는 셈이다.

해안 도로에서 오르면 보리암 까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보리암 주차장 까지 차로 오르면 20분이면 보리암에 도달할 수 있다.

 

9년의 세월에도 그 감동을 기억한다.

무작정 해돋이를 보러 미조항 쪽 해안도로를 따라 가던 길의 흥분

바람에 흩어지던 새벽안개와

안개 사이로 몽환적인 자태를 드러내던 푸른 새벽바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새벽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보리암은 신비스러웠고 상사암에서 내려다 본 남해 바다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가슴시린 곳들에 자꾸 세월의 상흔이 더해지는 모습은 가슴 아프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 황폐해진 길과 많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시설물들은 좀더 자연의 모습에 가까이 갔던 지난 시간들을 자꾸 아쉽게 한다.

 

보리암을 돌아 보고 권차장과 부지부장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상사암에 가보고 싶었지만 내년 봄에 마눌과 다시 와야 할 길이라 남겨두기기로 했다.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너무 시원했다.

맑은 가을 하늘이 조금은 아쉬워지는 날이다.

 

 

 

 

 

 

  

 

 

 

 

 

여수

 

 

 

여수로 간다.

오동도

언젠가 혼자 여행길에 스쳐 지난 그곳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하고 포구에 사일로처럼 둥그러니 서있는 구조물과 정박한 배들이 낯설기만 하다.

오동도 가는 길에 유람선 아저씨가 잡아 흥정을 하다가 모터보트를 타기로 했다.

예상에 없었던 모터 보트는 스릴만점이었다.

탄성과 괴성에 더 신이 나서 곡예운전을 보여주던 보트 아저씨

물살을 가르며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은 너무 후련했고 멋진 운전 솜씨를 뽐내며 우리를 좌불안석으로 만든 아저씨 때문에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보트가 전복될지 모른 다는 불안감 그리고 환호와 괴성 그리고 보트가 튀겨 올린 바닷물이 어우러진 40분 간의 익사이팅한 여수 입성 축하 퍼포먼스 였다.

 

보이는 지평선의 건물들

오동도에서는 고즈녘한 바다의 정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동백숲에서도 오래된 시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숲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려 하고 음악분수는 물을 뿜어 올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저물어 가는 시간을 오동도에서 보냈다.

 

 

 

 

 

 

 

 

 

 

 

 

 

 

 

 

향일암

 

 

 

돌산대교를 넘가는 길에도  아직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향일암 근처의 숙박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어둠이 내리고 그 어두운 길을 따라 꽤 오랫동안 내려가고 나서 우리는 풍경화 모텔에 도착했다.

여기가 남도의 끝자락이라는 사실 그리고 긴 여행길이 마무리되고 이젠 멋진 식사와 휴식 만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가벼운 흥분과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아저씨가 추천해 준 횟집으로 갔다.

수은등이 뜬 바닷가를 따라 가는 길

누군가 여수로 가자고 했다.

아님 다른 곳이라도….

그들의 이논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곳의 회가 싱싱할리가 없다.”

우리는 늘 그런 선입관을 갖는다.

생각을 바꾸면 그 곳은 싱싱한 회가 없는 뜨내기 횟집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호젓하게

우리만의 멋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했지만  

한적한 바닷가에서 우린 정말 맛있는 회를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 혼자 술상을 차리고 이제 겨우 유치원에나 갈 나이나 됐을까 싶은 조그만 여자아이가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을 곧잘 한다.

회는 달고 술은 감미로웠다.

돌 문어 맛도 좋았고 놀래미와 광어의 맛도 그 날의 분위기가 각별했던 것처럼 여느 때와 달랐다.

남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가오리 회는 정말 맛있어서 엄청 먹었다.

그리고 1년 간 먹은 회중 가장 맛 있는 회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대부분 그렇지만 아마 내가 제일 많이 먹었을 게다. 

우리는 냉장고에 남아 있던 술을 모두 바닥 내었다.

술은 분위기와 기분으로 마시는 거다.

내일을 위해 그리고 건강을 위해 가급적이면 자제하려 했던 평상시와는 다르게 마음이 가는 대로

이제 구면인 이향의 낭만에 기꺼이 빠져 들었다.

즐비한 빈 병에서 바다 소리가 나고 이향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그냥 돌아 와서 잠들 수 없었다.

일부는 자러 가고 5명은 화투를 쳤다.

내일 아침에 향일암 해돋이를 봐야 하니 새벽 2시 까지만 치기로 했다.

5만원 쯤 잃었다.

별로 생각 없지만 즐거운 여행을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향일암

아침에 4시에 알람을 마추었다.

어제 아저씨 말로 차로 3분이면 간다고 했으니 아무도 일어나지 않으면 혼자 걸어서 갈 생각 이었다.

어제 2시간도 채 못자서 피곤하긴하다.

하지만 잠이야 다음에 또 자면 될 일이지만 다시 향일암에 오려면 긴 시간이 지난 후일 것이다.

용변을 보고 부스럭 거리니 하나 둘 일어난다.

다른 방에서 잤던 위원장도 합류하고 부지부장은 벌써 아래에서 내려오라고 전화가 온다.

예상 밖의 대단한 사람들….

향일암 유람단은 모두 5명이다.

, 강위원장,지부장,권차장, 부지부장,신온

늦게 까지 함께 화투를 쳤던 사람 셋 나머지 둘

 

나 혼자 향일암에 간다고 나왔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차로 3분 이라던 향일암은 숙소에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야 했다.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이라 불안하긴 한데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조우하는 향일암이라 그 반가운 기대는 해돋이와는 또 무관하다.

 

어둠을 따라 향일암에 오른다.

형체 없는 새벽 바다에는 바람조차 없어 무더웠다..

강위원장과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오르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그는 몸이 불편한 탓인지 짧은 경사에도 숨소리가 거칠다.

어둠 속의 숱한 계단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향일암 마당에는 바닷바람이 불어 왔다.

안개는 자람을 타고 경내를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새벽 5

해가 뜰 기미가 없다.

카메라 후랫쉬 불빛에 대웅전이 금빛임을 알았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이곳 저곳을 돌아 보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함께 온 일해의 집안에 용을 때려잡은 소사가 있는 모양이다.

 

비는 서서히 그치는데 안개비 속에 부는 바닷바람을 맞으니 금새 추워졌다.

해돋이를 보았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시 향일암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 이었다.

 

 

어둠히 걷히고 내려가는 길에 향일암 주변의 물상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 옛날 고즈녘하고 한산하던 그 곳에 음식점과 여관들이 많이도 들어서 있다.

횟집은 여기저기 많기도 하다..

이곳에는 노래방도 몇 군데 있다고 했다.

우리가 숙소를 이곳에 정했다면 분명 식사 후에 노래방에서 한바탕 놀았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묵었던 곳은 향일암 까지 걸어서 가기에 꽤 먼 거리에 있었던 셈이다.

넓은 공터는 기억이 난다.

나의 사진첩 어딘가에 그 때의 풍경이 남아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쉽사리 떠나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시절이었다.

향일암에 올라 해돋이를 보고 나서도 그 곳이 유명한 향일암이었음을

그리고 그 해돋이는 덕을 쌓지 않고 보기 힘든 것이란 걸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야 알았었다.

 

 

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면 해와달 모텔이 향일암도 가깝고 낭만적이어서 숙소로 안성맞춤

일뻔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우리가 잤던 풍경화 모텔이 뜨는데 아마도 우리 숙소를 소개했던 이 지역

영업사원도 이쪽지역을 잘 모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한 듯 싶다.

 

이른 아침인데 동내 아저씨 한 분이 서성이고 있어 이것 저것 불어 본다.

여수에 하모(장어 큰 것)과 서대회를 먹어야 한단다.

여수 황소식당의 게장백반이 유명하다고 했다..

이 근처는 향일암 앞에 음식점에서 아침으로 홍합 시래기 국밥을 한다고 했다.

먼동이 튼 아침바닷가에서 잠시 소요하다 숙소로 돌아오자 그곳엔 비가 온 흔적이 없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여수로 갔다.

 

 

 

 

 

 

 

 

 

 

 

 

 

 

 

여수

 

 

 

장어는 진주에서 이미 물리게 먹었고 또 느끼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에 장어탕은 먹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음식점을 전전하다가 해물탕을 먹기 위해 여객선 터미날 근처 여수식당에 들렸다.

그러나 거기서 결국 주인 아저씨의 회유에 넘어가 여수 별미 장어탕을 먹기로 했다.

1인분에 6천원

전라도라 그런지 밑반찬과 음식은 맡깔스러웠다.

장어탕은 우려와는 달리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했다.

어제 과음한 상태에서 속을 푸는데 아주 안성맞춤인 아침 해장이었다.

아주머니가 시집 안간 과년한 두 딸이 있다고 걱정을 했다.

음식 맛이 만족스러워서 대전에서 소개해 준다고 식당사진을 찍었다.

딸은 모델로 식당 앞에 세웠는데 부끄러워 해서 얼굴이 잘 나오지 않았다.

권차장과 아줌마가 식당 앞에서 한 컷 포즈를 취했다.

게장이 맛이 괜찮아서 원하는 사람들은 2 5천원에 한 통씩 샀다.

 

아침밥을 거하게 먹고 해장술 한잔을 걸치고 여수 특산물 돌산 갓김치 한 통 씩 사서 귀로에 오른다.

 

 

 

 

 

 

 

 

낙안읍성

 

 

 

흐려진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 하다가 정작 낙안읍성에 도착하니 햇빛이 쨍쨍난다.

폭우라도 쏟아질 것처럼 찌뿌둥하게 점점흐려가던 날씨가 갑작스레 표변하며 서슬푸른 폭염을

쏟아내는 태양의 위세는 대단하다.

어제의 피곤함으로 모두들 무기력한데 강위원장이  맥빠지는 소리를 한다.

낙안읍성 애들 장난 이유볼것 하난 없시유

"무신 말을" 나는 당연 아니라고 정색을 했다.

나는 볼 거리가 엄청 많으니 가자고 사람들을 채근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볼거리들이야 자연과 비견이 되련마는 아무리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라도 그걸 대하는 우리 마음에 따라 그 이면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 아닌가?.

 

5년 전 마눌과 아이들과 들렸던 곳..

선암사에서 산간 도로를 넘어오다가 태현이 멀미나서 차안에서 먹은 걸 쏟아내면서 찾아왔던 곳이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양편을 구경하면서 박물관 까지 진행했다가 박물관 뒤 성벽을 따라 읍성 외곽을 돌아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별달리 바뀐 것은 눈에 뛰질 않는데 그 때와는 다르게 많은 집들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마당에는 차들이 한대씩 들어와 있었다.

실제 사람들이 사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세월을 거슬러 찾은 민속마을 여기저기에 부조화스럽게 차가 주차된 모습은 볼썽 사나웠다.

 

그 때 봄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하나하나 찬찬히 돌아보고 싶었는데 다른사람과 일정 때문에 처삼촌 벌초하듯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성벽을 크게 휘돌며 내려다 본 낙안읍성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회와 새로운 느낌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하나의 나무를 바라보는 미시적인 아름다움 보다 전체 숲의 분위기와 조화로음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처럼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전주에서 식사는 시간이 맞질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호남고속도로로 길을 잡아 담양 쪽에서 떡갈비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당양에는 들를 곳이 많은데 가을에 마물과 추월 산에 올 때 들르기로 하고 오늘은 그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을 구경하기로 했다.

소쇄원, 죽서루도 나이가 더 든 언젠가 자연스레 돌아보면 될 것이다.

토요일이라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나는 거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12일 이라는 TV프로가 지난 장소나 음식점은 관광명소가 된다고 했다.

메스컴의 위력 이라니

허기사 그 옛날 모래시계의 정동진을 보면 그 문화 콘텐츠의 힘을 실감한다.

푸른 메타셑콰이어 길,  12일 촬영지 아래서 우리는 함께 사진을 먹고 덕인 떡갈비집으로 갔다.

덕인 떡갈비

시내 허름한 집이었는데 12일 팀이 한 번 들르고는 손님들이 넘쳐 난단다.

돈을 많이 벌어서 외곽에 같은 이름으로 아주 큰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자리가 없다고 그 쪽으로 가라던 걸 우리는 기다렸다가 그예 자리에 앉았다.

1인분에 2만원

1인분은 작은 떡덩이 만한  떡갈비 4덩어리이니 한 덩어리에 5천원인 셈이다.

맛은 젖혀놓고라도 2만원 짜리 점심치고 너무 먹을게 없다.

떡갈비에 우린 대나무 술 한 통을 나누어 마시고도 양이 차지 않아 공기밥을 하나씩 추가로 주문해야 했다.

 

여기에서 떡갈비집 차리면 갈쿠리로 돈을 긁을 수 있겠다.

 

 

 

 

 

 

 

 

 

 

귀향

 

어쨌든 배부른 점심을 먹고 태양이 점점 뜨거워지는 고속도로를 바람같이 달려 대전으로 돌아 왔다.

임차장은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힘들고 그 옆에 선탑하여 졸음을 쫓아 줘야 할 권차장이 옆에서 퍼져 자는 통에 행여 사고라도 날까 나는 뒤에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배부른 임차장이 걱정도 안 되는지 시종일관 인사불성인 채 대전으로 입성했다.

엄청난 거리와 빠빡한 스케쥴이긴 했다.

 

즐거운 2일의 여행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나간 시간의 추억을 되새기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 끈끈한 동료의 정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돌아 오고 나서 모두들 인사치레일 망정 가장 알찬 여행이라고 말해주어 기분이 좋았다.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물 흐르듯 영원할 것 같은 우리의 시간도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나 듯 어느 땐가 어렴풋이라도 그 끝을 가늠해 볼 날이 다가온다.

시간이 더 아까워지고 시간이 더 빨라지면 늙어가는 거라고 했다.

늙는 게 대수랴!

나의 삶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두려우랴!

우리가 두려워 할 건 세상에 먼저 빼앗겨 버리는 것들이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을 간직할 수 있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즐거움과 기쁨의 날은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다,

세상의 가장 멋진 동행

아직 뜨거운 가슴과 메마르지 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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