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회계 빅뱅

국제회계기준 전면 도입 앞두고 논란

‘2011년 모든 상장기업에 국제회계기준 전면 도입.’ 정부가 2007년 3월 발표한 회계 로드맵(일정표)이다. 기업실적을 나타내는 ‘회계 언어’를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으로 바꾸는 대변혁을 예고한 것이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 시한이 1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오히려 연기하거나, 큰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혼란이 만만찮아서다.

◆시스템 1년 만에 또 바꿔야=중형 증권사 A사는 20억원을 들여 상반기부터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준비 중이다. 지금은 대형 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고 있고 내년 4월이면 시스템 구축을 마칠 계획이다. 하지만 이 회사 재무 담당자는 “벌써부터 추가 비용이 걱정”이라고 말한다. 국제회계기준을 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올해부터 금융상품 관련 기준에 대한 전면 개정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기준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며 “큰돈 들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금세 또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 비용이 들어가는 건 금융회사만이 아니다. 2011년까지 주요 기준 6개가 개정될 예정이다. 2008년 8월 미국이 2014년에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준 개정을 요구해, 그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2011년 중반은 돼야 개정안 윤곽이 나오기 때문에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면 1년도 안 돼 시스템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장사가 시스템 도입에 드는 비용은 기업당 평균 11억원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국제회계기준위원회의 협의가 끝난 뒤에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서일경영회계법인 송충석 회계사는 “비용부담을 고려해 중소기업이라도 도입을 늦추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로드맵대로 간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이호형 공정시장과장은 “기준 개정이 잦아지면서 기업들이 그때마다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지금 도입 시기를 바꾸면 오히려 혼란만 더한다”고 말했다.

◆커지는 부담은 어떻게?=국제회계기준은 본사뿐 아니라 자회사까지 합친 연결재무제표가 기본이다. 이때 종전엔 빠졌던 소규모 자회사도 연결 대상에 포함된다. 연결 대상 자회사가 갑자기 늘어나다 보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견회사 B사의 재무담당자는 “본사는 물론 자회사까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려면 1년 이상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며 “아직 준비를 시작도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초 금융감독원의 설문조사에서 전체 상장사 10곳 중 7곳은 아직 국제회계기준 도입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응답했다.

기업으로선 세금 부담도 걱정이다. 한 10대 그룹의 재무담당자는 “국제회계기준대로 하면 기계장치의 감가상각비가 줄어들어 제조업체는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내게 된다”며 “세법 등 제반 법규가 아직 정비되지 않아 기업으로선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수출 대기업의 재무구조와 수익성 지표가 모두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국제회계기준을 제대로 도입하려면 처음부터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앙대 황인태(회계학) 교수는 “정부의 로드맵보다 더 중요한 건 실제 적용하는 기업들”이라며 “중소기업이 시간과 돈에 쫓겨 국제회계기준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시간을 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금감원 장석일 국제회계기준TF팀장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며 “도입 사례를 전파해 기업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겠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국제회계기준(IFRS)=국제 민간단체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제정한 회계기준. 나라별로 다른 회계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만들었다. 100여 개국이 사용 중이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개별재무제표가 아닌 연결재무제표를 원칙으로 하는 등 기존 국내 회계기준과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자본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회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2007년에 도입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