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인 니넨자카, 산넨자카. 깜짝 놀랄 만한 화려한 유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볼품없어 보일 수 있는 옛 가옥들이 몰려 있는 좁은 골목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낡은 전통 주택들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 카페, 우동집을 거닐며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만끽할 수 있어 일본인들도 꼭 찾고 싶어하는 관광지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이탈리아 카프리섬이 신혼부부들이 찾고 싶은 1순위 관광지가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전통주택 덕분이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산등성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낮은 주택들이 빚어내는 색다른 풍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매력 덩어리이다. 이런 주택들이 그냥 보존된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발업체들이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막아 낸 것이다. 자치단체들이 건물의 색깔과 창문의 크기, 건물 높이까지 규제한다. 그 지역의 독특한 건물이 빚어내는 풍광이 천혜의 자연환경 못지않은 경쟁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디자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아파트로 도시경관을 망치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도시들도 아파트로 도시의 특색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목표로 하는 여수. 해안가와 여수 해양공원과 맞붙어 있는 고소동 산 중턱에는 20층 높이의 아파트(5개 동)가 우뚝 솟아 있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경치 좋은 여수 앞바다를 구경하다가도 이 아파트만 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느냐"며 한마디씩 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한번 지은 아파트는 허물 수도 없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아파트 일색의 건축문화를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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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 정원' 그리스 산토리니 똑같은 모양의 고층 아파트가 아닌 개성 있는 주택은 관광객을 불러 모아 지역 경제를 이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주택과 바다의 절묘한 조화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그리스 산토리니.
◆불도저식에서 수복형 재개발로
우리 도시경관이 획일화된 것은 수천·수만 가구의 주택을 일시에 싹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데 있다. 외국에서도 1940~1960년대에 철거형 재개발(slum clearance)이 유행했지만, 지역 공동체 파괴, 일시적 철거에 의한 주택난 등 부작용 때문에 없어졌다.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이 기존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거나 부분적으로 건물을 헐어내는 수복형 재개발이다.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영국의 금융중심지로 재도약한 런던의 도클랜드. 이곳에는 유럽 최고층 빌딩인 '카나리워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항만지역이었던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붉은 벽돌로 쌓은 기존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주거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템스 강변에 자리 잡은 영국 런던 버틀러 워프는 1980년대만 해도 슬럼화된 낡은 건물들이었다. 낡은 건물을 철거한 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통해 고급주택과 상가시설로 복원해 런던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독일 함부르크의 옛 항만지역인 하펜시티는 대대적인 재개발을 하면서 기존 부두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콘서트홀과 국제해양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최민섭 서울벤처정보대학원 교수는 "디자인 서울을 만든다면서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특색 있는 골목과 거리를 망가트리고 있다"면서 "획일적인 재개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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