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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 3

아파트공화국의 그늘[3] - 불도저식 재개발 끝내야

2009.11.04 13:08 | 부동산 제국의 종말 | 파우스트

http://kr.blog.yahoo.com/isa4035/1756 주소복사

일본 교토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인 니넨자카, 산넨자카. 깜짝 놀랄 만한 화려한 유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볼품없어 보일 수 있는 옛 가옥들이 몰려 있는 좁은 골목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낡은 전통 주택들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 카페, 우동집을 거닐며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만끽할 수 있어 일본인들도 꼭 찾고 싶어하는 관광지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이탈리아 카프리섬이 신혼부부들이 찾고 싶은 1순위 관광지가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전통주택 덕분이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산등성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낮은 주택들이 빚어내는 색다른 풍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매력 덩어리이다. 이런 주택들이 그냥 보존된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발업체들이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막아 낸 것이다. 자치단체들이 건물의 색깔과 창문의 크기, 건물 높이까지 규제한다. 그 지역의 독특한 건물이 빚어내는 풍광이 천혜의 자연환경 못지않은 경쟁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디자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아파트로 도시경관을 망치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도시들도 아파트로 도시의 특색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목표로 하는 여수. 해안가와 여수 해양공원과 맞붙어 있는 고소동 산 중턱에는 20층 높이의 아파트(5개 동)가 우뚝 솟아 있다.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경치 좋은 여수 앞바다를 구경하다가도 이 아파트만 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느냐"며 한마디씩 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한번 지은 아파트는 허물 수도 없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아파트 일색의 건축문화를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지중해 정원' 그리스 산토리니 똑같은 모양의 고층 아파트가 아닌 개성 있는 주택은 관광객을 불러 모아 지역 경제를 이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주택과 바다의 절묘한 조화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그리스 산토리니.


불도저식에서 수복형 재개발로

우리 도시경관이 획일화된 것은 수천·수만 가구의 주택을 일시에 싹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데 있다. 외국에서도 1940~1960년대에 철거형 재개발(slum clearance)이 유행했지만, 지역 공동체 파괴, 일시적 철거에 의한 주택난 등 부작용 때문에 없어졌다.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이 기존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거나 부분적으로 건물을 헐어내는 수복형 재개발이다.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영국의 금융중심지로 재도약한 런던의 도클랜드. 이곳에는 유럽 최고층 빌딩인 '카나리워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항만지역이었던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붉은 벽돌로 쌓은 기존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주거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템스 강변에 자리 잡은 영국 런던 버틀러 워프는 1980년대만 해도 슬럼화된 낡은 건물들이었다. 낡은 건물을 철거한 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통해 고급주택과 상가시설로 복원해 런던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독일 함부르크의 옛 항만지역인 하펜시티는 대대적인 재개발을 하면서 기존 부두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콘서트홀과 국제해양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최민섭 서울벤처정보대학원 교수는 "디자인 서울을 만든다면서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특색 있는 골목과 거리를 망가트리고 있다"면서 "획일적인 재개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럼가의 대변신… 런던 고급주택가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고급 주거지로 자리 잡은 영국의 런던 주택가./블룸버그


문화적 개발 방식으로 경제활성화

지금 한국은 아파트 재개발이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기존의 도심 주택들을 헐어내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문화를 활용한 재개발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영국 게이츠헤드라는 도시는 이 지역을 지탱하던 중화학 공업이 쇠퇴하자 예술을 지역경제 활성화 전략으로 채택했다. '북녘의 천사(The Angel of the North)'라는 대형 조각물, 사람과 자전거만 다니는 독특한 디자인의 밀레니엄 브리지, 제분소를 개조한 미술관 등 기존 건물들을 철거한 것이 아니라 활용했다. 기존의 낡은 주택들을 리모델링해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줬다. 예술의 도시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다. 쇼핑과 패션의 중심지로 유명한 뉴욕 소호도 한국식 재개발을 했다면 지금의 명성은 없었을 것이다. 소호는 가내수공업 공장들로 쓰이던 로프트(loft)라는 건물이 밀집된 낙후지역이었다. 미술가들이 로프트가 천장이 높아 스튜디오로 쓰기 편리하다는 이유에서 입주하면서 주변에 화랑과 카페 등이 생기면서 고급 상가와 주거지로 발전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지금 아파트만 잔뜩 지었다가 팔리지 않아 빈집으로 남아 있는 지방도시가 많다"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아파트보다는 예술 등 다양하게 주거계획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 가옥을 보존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마을


"도심 속 전원주택이 따로 없죠. 왜 굳이 아파트만 고집하는지 모르겠어요."

3일 서울 공노원구 릉동의 '태릉 현대홈타운 스위트' 주변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저런 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3층짜리 134가구로 이뤄진 이 주택단지는 아파트가 아니라 연립주택이다. 지난 2002년 말 분양 당시 미분양이 많아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곳이 이젠 노원구를 대표하는 단지로 자리 잡았다. 분양 당시보다 시세도 두배쯤 뛰었다. 인근 화랑공인 관계자는 "살기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매물을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주택단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저층 개발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유가 뭘까. 쾌적한 환경이다. 3층짜리로 짓다 보니 용적률이 89%에 불과하고, 동과 동 사이도 널찍하다. 단지 안은 1년 내내 공원을 연상시킬 만큼 나무와 녹지로 덮여 있다. 당시 공사를 맡았던 현대건설
임동영 차장은 "건물 외관도 성냥갑 모양이 아니라 다양하게 만들어 아파트처럼 주변에 위압감을 주거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었다"고 말했다.

옛 대한주택공사가 부산 망미동에 지은 테라스 하우스. 총 40가구로 구성된 이 주택은 아랫집 지붕이 윗집 1층의 테라스가 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한국토지주택공사(LH) 제공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처럼 다양한 형식의 재개발·재건축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 획일적인 고층 아파트 일색이다.

그러나 최근 도시 미관이나 환경을 고려한 저층·친환경 주택을 개발하거나 재개발의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는 있다. 분당 판교·용인 죽전 등 수도권 신도시에는 자연지형을 살린 전원주택형 연립주택과 타운하우스가 일부 들어서고 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시킨 테라스 하우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서울시도 앞으로 노후 단독주택 지역이나 구릉지에 재개발·재건축을 할 경우, 5~7층짜리 도시형 타운하우스를 많이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정릉동의 경우, 고층 아파트 대신 4층 이하로 다양한 유형의 친환경 주택을 짓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산업대 강부성 교수는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경관을 해치고, 삶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개성을 살린 다양한 주거 문화가 확산돼야 우리 사회의 건전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멀쩡한 주택을 헐고 무조건 아파트를 지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재개발 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주거학회 최재필 회장은 "단기적 주택 수요에 대응해 무조건 기존 주택을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건 짧은 생각"이라며 "다른 대안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 주택의 파괴를 초래하는 재개발 대신 비어 있는 공장이나 학교, 동사무소 같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주거용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트랜싯하우징(transit housing)' 기법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200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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