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국이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던 미국경제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세계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바로 미국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더블딥(경기의 이중 침체)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이 다시 경기침체에 빠지면 세계경제는 어쩔 수 없이 동반침체에 빠지거나 적어도 회복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당장 중국과 유럽의 대미수출이 줄어들 것이고, 이는 세계경제에 연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전반적인 경기하강을 불러오게 돼 있다. 그동안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이 호조를 보인 덕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세를 나타냈던 한국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출이 견인했던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교역량의 추이와 직결된 해운·조선업 등이 또 한차례 된서리를 맞게 될 우려가 크다. 겨우 살아나려던 국내 고용도 다시금 위축될 가능성이 크고,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내수 역시 주저앉을 공산이 크다. 미국경제가 멀쩡하던 한국경제를 흔들어 놓은 지 1년 만에 또다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들은 미국경제가 더블딥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음을 완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를 고비로 뚜렷하게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2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1.6%로 당초 예상치(2.4%)에 크게 못 미쳤다. 실업률은 여전히 10%를 육박하는 가운데 주택거래가 신축과 재고주택을 막론하고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미국의 경기상황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주택거래량이 유례없이 급감하고 있다는 게 영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지난 7월 기존주택 거래건수는 15년 만에 가장 적었고, 신규주택 거래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주택거래의 감소는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시장의 예상이 반영된 것이고, 이는 조만간 담보가치의 하락과 주택대출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 과정을 연상케 하는 불길한 징조다.
지난 4월 9.9%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낮아지던 미국의 실업률은 7월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9.5%에서 하락세를 멈췄다. 그동안 미국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쏟아부었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고용 부진은 전반적인 소득증가세의 정체를 뜻하고, 소득이 늘지 않으면 소비가 늘어날 수 없다. 미국 경제성장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의 부진은 결국 성장의 둔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느 모로 보나 미국경제가 더블딥에 빠지고 있다는 조짐은 분명해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정부나 연방준비은행(Fed)이 꺼져가는 경기를 살려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커져 추가로 재정을 동원할 여력을 소진한 상태다. 그렇다고 Fed가 나서기에도 한계가 있다. 벤 버냉키 연준의장은 “경기진작을 위해 추가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과연 돈을 얼마나 더 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주요 20개국(G20)이 합심해서 펼쳤던 국제공조도 지금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스 재정위기의 여파로 재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유럽국가들이 선뜻 재정지출의 확대로 돌아설 가능성도 작고, 인플레와 부동산 버블을 걱정하는 중국이 경기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만만치 않다. 이래저래 미국발 더블딥은 세계경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다.
사정이 이처럼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데 비해 한국은 너무나 한가로워 보인다. 정부는 상반기의 놀라운(?) 성과에 고무된 나머지 하반기에도 경제가 그럭저럭 굴러갈 것이란 낙관론에 빠진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하반기에 경기가 고꾸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거시정책 기조를 손볼 생각조차 하질 않는다. 그저 대통령의 손가락 끝만 바라보며 ‘친서민 정책’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민간연구소로부터 과장됐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인플레 가능성을 부풀려 온 한국은행은 미국과 일본의 경기부양 움직임에 뻘쭘해졌다. 한은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하반기에 인플레의 우려가 크다며 출구전략(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었다.
정부는 최근 부동산 대출규제의 완화를 포함한 종합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그것은 경기상황의 변화를 감안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국내 부동산시장의 경색을 푸는 데 국한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발 더블딥의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내수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내수진작이야말로 앞으로 예상되는 수출부진을 상쇄하면서 동시에 국내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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