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인가 ?
어느날 아침 메일을 확인하다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어 읽어보니 공감이 간다.
멋진 백수
가슴설레는 자유와 열정을 꽃피울 마지막 인생의 황금기
혹시 내가 그걸 기다리는 건 아닐까?
백수 예찬
퇴직을 하고 1년 남짓 지났다. 이제 이 생활에 이력이 붙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8개월 백수로 지낸 이후 처음이다.
백수의 좋은 점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뭐든 먹을 수 있으며,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의식주에 재량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싶으면 헬스장에 나가거나 동네 앞산에 오른다. 한 시간 정도 할 수 있고 두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틈을 내어 시립도서관에 나가 보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다. 책을 빌려오는 때도 있다. 도서관 자판기에서 동전을 넣고 커피를 빼어 마시는 맛도 괜찮다.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을 피하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글을 쓰기에 알맞다.
특별한 자리에 나가는 일이 별로 없어 복장이 자유롭다. 넥타이를 매본 지는 까마득하다. 와이셔츠를 손빨래하는 아내의 부담도 덜었다. 이제 흰옷은 사절이다. 점퍼 차림이 수수하고 편하여 양복은 거의 안 입는다.
자가용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쓴다.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할 때만 내가 운전을 한다. 보험료와 자동차세를 생각하면 이내 처분하려고 생각한다. 기름 값이 오죽 올랐나.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데, 편하고 요금이 무던하다. 가끔 파업을 한다고 하여 신경이 쓰이긴 하다.
마음에 없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편이다. 보기 싫은 것은 피할 수 있다. 듣기 싫은 것은 그곳에 가지 않으면 된다. 허세를 부릴 것 없고 점잖을 떨 필요가 없다. 세상일을 따지거나 물을 이유가 없다. 내 생각대로 짐작을 하면 그만이다. 굽신거릴 일 없고 눈치를 볼 것이 없다. 신문의 정치, 사회면은 제목만 훑어본다. 그것마저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돈 쓸 일이 적어졌다.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 용돈을 주고 여행을 간다. 아내와 단출하게 외식도 한다. 아내의 씀씀이가 늘었다. 무엇보다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게 좋다. 처음 백수 1년 동안은 아내가 절약을 하면서 은행에 적금을 붓고 그랬다. 그게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설득을 했는데, 긍정을 하는 눈치다.
가장 신나는 것은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비를 조금씩 모아 1∼2년에 한번 정도 나갈 수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부부 동반하여 내년에 스페인에 가기로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두 번 태국을 다녀와서 올해는 쉬려고 한다. 국내 여행은 수시로 하고 있다.
백수생활에는 3요소가 있다.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는 돈이며, 그 셋째는 학습이다. 이 3박자가 잘 어울리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소홀하면 그때부터 백수생활이 삐걱거리는 것이다.
건강을 과신하지 않으며 술과 음식을 조심할 일이다.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노인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수명 연장에 따른 불가피한 현실이다. 작은 병일 때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호미로 막는 지혜인 것이다.
돈은 무리하게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실 벌기도 쉽지 않다. 있는 돈을 계획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꽁꽁 묶어둘 필요는 없지만 과소비는 경계하는 게 좋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쉽지 않고 정부의 노인 복지에는 한계가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젊은 시절 못한 분야에 대한 도전은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답다. 노는 백수보다 공부하는 백수에게 미래가 있다. 현재의 성취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건강, 돈, 학습의 백수 3박자를 잘 지키며 백수로서의 생애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한다.
내 친구 K는 아내의 권유에 따라 결국 가톨릭 성당에 나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고백을 하였다. 종교는 한번 짚어보아야 할 과제다. 나는 아내의 '소원'이라고 하여 10여 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제사 대신에 추도식으로 바꾸었다. 아들 내외도 교회에 나간다.
백수라 해서 조금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당당하고 활달하게 살아야 한다. 은퇴 백수는 충분히 그래야 할 이유와 권리가 있다. 이웃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면 값진 백수생활이 될 것이다.
(2012.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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