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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관동 8경 정자 기행-2012 휴가 둘쨋날

 

 

 

 

 

휴가 둘째 날

 

2012 10 12

 

오늘은 여유롭게 지난 추억들과 관동팔경을 돌아보려 계획한 날 입니다..

늦잠을 자고 천천히 아침을 먹고 움직이려 했는데 눈이 떠지고 창밖의 휘장을 젖히자

태양의 은은한 붉은 기운이 동편 하늘을 번져 갑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시방타임 5 50

오늘 어쩌면 동해 일출을 만날지 모릅니다.

 

천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어제의 결심은 어둠 속으로 번져가는 작은 빛의 실마리에도 쉽게 흔들려버렸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꿰어 입고 카메라 하나 달랑들고  콘도를 나섰습니다.

마눌도 인기척에 깨었지만 해가 뜰지도 잘 모르고 어제 산행으로 피곤할 것 같아 쉬라고

남겨 두었습니다.

역마살 도진 남편과 새벽 동행은 고행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매년 동해에 올 적마다 바닷가로 달려 나갔지만 일출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방귀가 잦으면 뭐가 나온다고 매주 산으로 떠나는 버릇 탓에 산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일출을 만났지만 바닷가의 일출은  3 수학여행 때 경포대의 동해바다와

함께 만난 게 처음이었고 오래 전 혼자만의 여행길에서 만난 향일함의 해돋이가 마지막

이었습니다.

경포대에서는 처음 본 바다에 넋이 나가서 일출의 감동은 뒷전이었지요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울릉도,홍도,보리암, 무수한 동해의 해변들

그 후론 드넓은 바다는 늘 내 가슴속에서 파도치며 역마살을 부채질했지만  용왕님은 동

해 바다 위로 황금 빛 붉은 해를 올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청봉과 마등령에서 몇 번 동해 일출의 감동과 축복을 선물하신 건 설악 산신령

이었습니다.

 

오늘은 웬일이래유?”

20여분 차를 몰아 도착한 낙산사에서 동편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식전 댓바람부터 주차비와 입장를 받기에  다소 황당한 마음에 계산을 하렸더니 

아뿔사 !”

지갑을 놓고 왔습니다.

 

해는 바다위로 터져 나오려 하고 주차 아저씨는 요지부동이고 할 수없이 아랫쪽으로

다시 내려가서 차를 파킹하고 낙산사 언덕이 아닌 해변 바위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렸던

장엄한 동해 일출을 맞았습니다.

 

드디어 만나는 동해 일출입니다.

살아가면서 믿음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만날 것들은 다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넋이 나가듯 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경건하게 두손모아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나는 카메라의

눈으로 그 시간을 붙잡아 두려고 부질없이 바빴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는 사이 허황된 욕심도 사라졌습니다.

딱히 빌 것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빌었던 단 하나의 소원

허리의 통증을 거두어 달라던 그 소원은 4년 만에 이루어 졌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는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 눈물나는 건강과 자유를 애타게

빌고 있겠지요

어느 누군가는 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서도 또 더 갖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며 세월을 앓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 채 …..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자유로운 새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건강과 자유가 온건한 삶의

기쁨이고 축복 입니다.

마라톤에서 1등은 한 명이지만 인생에서 1등은 무수히 많다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가슴 벅차고 성스런 아침입니다.

 

행복한 삶은 즐기고 누리려는 자의 몫으로 남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젊은이의 열정을 잃지 않게 하소서

늘 감동하고 꿈꿀 수 있게 하소서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의상대의 풍경을 담기 위해 염치없긴 하지만 바닷가 절벽을 올라

free of charge 로 의상대에  올랐습니다.

 

의상대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의상대에 올랐습니다.

낙산사가 불타고 나서 의상대의 풍광은 더 좋아진 듯 합니다.

의상대는 속초에서 가까워 낙산사가 불타기 전에도 불탄 후에도 자주 올랐습니다.

낙산사(洛山寺)에서 홍련암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서 있고 1974 9 9일 강원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義湘) 676(문무왕 16)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하였던 곳에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정자는 1925년에 지은 것이라 합니다..
동해도립공원
의 명승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으로 바닷가 암벽 위 정자에서 맞는

해돋이는 손꼽히는 일출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제가 그 멋진 일출을 보았던 것입니다

 

 

 

 

 

 

 

 

 

 

 

 

 

 

 

 

관음보살님도 못말리는 무릉객이 왔음을 아셨을 테지요

대웅전의 부처님과 보살님에게 아무 것도 내어 놓지 못하고 넙죽 절만 올렸습니다.

 

황홀한 아침입니다.

붉은 동해 일출의 축복을 만나고 그림 같은 해안의 풍경과 부처님과 관음보살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만났습니다.

낙산사 구석구석을 돌아 보고 마눌과 합류해서 아침을 먹고 나서 여유로운 2일차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화암사

5년전 신선봉 산행 길에 들렀던 미시령 자락에 은거한  한적한 절 입니다.

집채 같은 바위의 수암봉과 신선의 거처인 듯 이름처럼 온통 구름에 쌓인 신선봉의 신비로운

풍경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습니다.

유명한 절들이 지어진 곳의 지세가 늘 범상치 않듯이

참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그런 곳 입니다.

마침 주지스님이 많은 신도들과 예불을 올리는 시간이라 함께 뒷전에서 불자들과 함께 절을

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10,000배 이야기를 들었더랬습니다..

땀이 비오 듯하고 살이 5kg이상 빠진 다고요

속세에 물든 날라리 불자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일도 그리 쉽겠습니까?

50번도 절을 더 한 것 같은데 예불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오늘 일정이 바빠 죄

송 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고하고 슬며시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맨바닥에서 절을 하는 모습이 안스러웠늗지 어느 불자께서 방석을 다져다 주셨는데 치성도 다

드리지 못한 채 물러나려니 아쉽긴 합니다.

 

아구구구구…!

산 타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온통 뼈마디가 쑤십니다.

 

 

 

 

 

 

 

 

 

 

 

 

 

화암 약수를 한 잔 마시고 마눌과 절 입구 등산로 암릉에 올랐습니다.

수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가고

나도 세월에 늙어 가는데  기억 한 켠에 남아 있는 변함없는 풍경을 다시 만나는 것은

 마치 잃어 버린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잊고 살았던 빛 바랜 기억들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남아 있는 추억들이 늘 여행길에서  감동과 기쁨을 불러다 주었습니다.

 

신선봉 등산로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떡허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내년엔 동생들과 새벽같이 휑하니 그 길을 댕겨와야 하겠습니다.

 

 

 

 

 

 

 

 

 

 

관동팔경 정자 여행 출발

오늘은 청간정과 창학정을 둘러 건봉사 까지 다녀올 생각 입니다

 

팔경(八景)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소상 지방의 아름다운 여덟 곳을

노래한 ‘소상팔경’에서 비롯되었다는데 너도 나도 괜찮은 풍경에는 OO몇경 하는 식으로

갖다 붙이는 통에 아얘 뛰어난 경관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관동은 대관령의 동쪽을 의미합니다.

흡곡(통천) 시중대,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의상대),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이 관동팔경에 속합니다.

흡곡의 시중대 대신 평해의 월송정을 넣기도 하지만 삼일포와 총석정, 시중대는 북한에 있고,

망양정과 월송정은 경북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올해 몇 개를 둘러볼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가기로 한 이상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

합니다.

 

 

 

 

 

 

 

 

 

 

청간정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

청간정은 옛 간성 땅, 지금의 고성에 있어 고성 팔경 중 4경에도 속합니다.

양사언과 정철, 숙종도 어제시를 내려 이곳 청간정을 노래했으며, 겸재 정선과 표암 강세황은

청간정의 경치를 그림으로 그렸다 합니다

지금은 철책에,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분위기가 좀 산만하고 어수선 하지만 옛날에는 정자에

드는 것 만으로도 술보다 먼저 동해의 절경에 취했을 법 합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로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입니다..

송림이 울창한 정자 주변에는 평일이라 인적이 없어 조용하고 한가로운 정자의 운치를 즐기기

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입니다.

 

嶽海相調古樓上(악해상조고루상)

설악과 동해가 상조하는 고루에 오르니

果是關東秀逸景(과시관동수일경)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승경이로구나!

 

정자에 걸려 있는 최규하 대통령 시문편액입니다.

 

자연이 가장 아름답고 바다가 푸르렀을 시절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개나리 봇짐을 메고 먼 길을

걷고 험한 대관령을 넘어서 어렵게 도착했을 바닷가 정자.

사방을 둘러봐도 우뚝한 설악과 망망한 바다 외에는 인공이 모습이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절경에서 시심은 절로 동하고 이향의 정취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을 듯 합니다.

누군가는 자의반 타의반 속세를 등졌겠지요

모략과 비방이 난무하는 이전투구의 권좌에서 밀려나 뼈아픈 상처를 입고 유배되거나 낙향한

선비의 착잡하고 아픈 가슴을 다독여준 건 시린 자연이었을 겁니다.

기암 위에서 흐믓하고 고고한 청솔

드넓은 푸른 바다

 

세월이 흘러 그 자연에 한 점으로 동화되고 나면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지긋이 감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영혼의 안식과 치유

변함없는 마음의 고향 입니다.

 

 

 

 

 

 

 

 

 

 

 

 

 

 

 

가는 길 호수에 들렀습니다.

돗자리를 챙겼습니다.

뜨거운 태양 빛이 강렬했지만 호수 한가운데 까지 연결된 나무 데크는 호수를 불어가는

바람 때문에 추웠습니다.

목책을 넘어 호숫가 바람이 조용한 숲에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아침부터 일출 때문에 설레바리치느라 피곤해서 잠시 누워서 바람이 갈대를 흔들며 지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람이 고요한 호수에 부지런히 파문을 만들는 사이

우린 바다와 호수가 함께 누워 있는 그곳에서 잠시 선잠을 잤습니다.

 

게으를 시간의 여백

세월을 좀더 보내고 나니 이제 그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산행길에서는 자연스레 후미에서 다니게 되었고 절경에서는 게으름을 피우고

바람 길에는 다리쉼을 합니다.

마음에서 욕심이 내려지듯 조급한 마음도 세월에 조금씩 너그러워 집니다.

축령산을 다녀오고 나서 그 게으른 시간도 여행의 일정에 편입하고 여행의 중요한 테마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코스는 천학정 입니다.

입구도로가 포장공사관계로 통행이 막혔습니다.

저녁에는 끝난다 하니 오는 길에 들르기로하고 화진포로 향했습니다.

육사졸업 후 간성에서 복무하게 된 동생 덕분에 처음 화진포 콘도에서 휴가를 보낸 때가

 벌써 20년은 훌쩍 넘어 갑니다.

 

우리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화진포 해변을 걸었습니다.

김일성이 별정을 지었을 만큼 눈이 시린 풍경에 고운 모래 사장과 얕고 맑은 물로 유명한

곳입니다.

화진포 호수의 기억은 잘나지 않았습니다.

태현이 태어나기 전 은비를 데리고 조카들과 깨끗한 해변에서 보내던 시절의 기억이 밀려

오는 파도에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최 북단에 위치한 해수욕장이라 다른데 보다 그리 붐비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많지

 않았던 오랜 옛날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 같습니다.

긴 해변을 걸어 김일성 별장을 돌아보고 군인콘도에서 해물 된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

습니다.

 

 

 

 

 

 

 

 

 

 

 

 

 

 

 

 

 

 

 

 

 

 

 

 

 

 

 

 

 

 

 

 

 

 

 

건봉사

무식해서 건봉사의 존재도 몰랐던 터에 청산님의 글을 잃고 한 번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동부전선의 경계가  뚫린 터라 차량 검문까지 받아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옛날 융성하던 시절에는 전국 4대 사찰에 속했고 월정사와 더불어 전국 31대 사찰의 본산

으로 승려수가 700명이 넘었다 하니 가히 그 사세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건봉사는 아마도 지금까지 둘러본 사찰 중에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한 절인 듯 싶습니다.

김제의 금산사나 정도가 비견할만 할까요?

 

이 절은 신라 법흥왕 7 (520)에 아도화상이 창건 원각사라 하였고, 그 후 경덕왕 17 (758 )

 발진화상이 중수하고, 고려 공민왕 7 (1358 )에 나옹화상이 중수하여 건봉사라 하였다 합니다..

건봉사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이 절의 서쪽에 새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건()과 봉()

합쳐지었다고 전해 옵니다...

조선세조 10 ( 1464 )에는 어실각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께서

선조의 명을 받들어 8 16종 도총섭 겸 의병대장의 직책을 받게 되자 그 제자인 사명대사가

6,000 여명의 승병을 모집 왜적을 무찔렀다는 유서 깊은 대찰 입니다.

그 뒤 6.25전쟁 때 건물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고,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19891

20일부터 자유출입이 가능해 졌다 합니다.

 

 

 

 

 

 

 

 

건봉사 불이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것으로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입니다.

불이문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얹었습니다.

각각의 기둥에는 금강저 문양을 새겨 놓았고 처마 밑에는 ‘불이문’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이 쓴 것입니다.

눈길이 스치는 곳에는 역사와 세월이 남아 있습니다.

삶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결국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것은 사람 뿐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본찰을 들어가려면 육송정 홍교를 건너냐 하는데 선암사 다리 만큼 유명한 보물입니다.

2006년에 전면 해체되어 다시 복원되었다 합니다.

 

 

 

 

 

 

 

 

 

 

 

 

 

 

 

 

 

 

 

 

 

 

 

 

 

 

부처님의 사리가 보관된 적멸보궁에도 들러 참배를 하고 나니 태양이 붉은 사선을 그립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설악 깊은 곳의 유서 깊은 대찰

한 때의 융성함으로 수행의 터전이었고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불가의 본산이었지만

세월에 빛 바래고 낡아졌습니다.

진리를 찾아 헤메던 무수한 사람들도 깨우친 그 누군가도 결국 조용히 정토를 밟았습니다.

조용히 저물어가는 시간에 고즈녘한 경내를 배회함이 묵상이고 명상이었습니다

 

 

 

 

 

 

 

 

천학정(강원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그냥 갈 수 없지요

건봉사를 돌아나오는 길에는 조용히 어둠이 깔렸습니다.

오전에 돌아보지 못한 천학정에 다시 들렸습니다.

공사는 거의 마무리 상태여서 한 쪽으로 통행이 가능했습니다.

천학정 앞 마을 길은 사유지 도로인 모양입니다.

주인장의 심기를 누가 건드렸는지 콘크리트 기둥을 눞혀 입구 차량통행을 막고 있어서

근처에 주차하고 조금 걸었습니다.

주변이 그다지 잘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177번지에 위치한 천학정은 서기 1931년에 한치응의

발기로 최순문, 김성운과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정면 2, 측면 2, 겹처마 팔각지붕의

단층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해안절벽 위에 건립되어 풍광이 수려합니다.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 바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다운

다운 곳으로 상하천광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 하여 천학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집니다.

.

우리 둘만 천학정에 올라 어둠이 내리는 밤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벌써 사회생활을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쫓아 다니면 결혼을 축하해주었던 풋풋했던 친구들의 기억이 엊그제인데 이젠  

딸래미들의  청첩장이 날라옵니다.

지나고 나니 세월이 참 빠른거고 인생이 참 짧은 것입니다.

 

 

 

 

 

 

 

 

 

 

세속의 욕심은 내리고 젊은이의 열정과 호기심을 잃지 않은 채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오래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조 난 아직 세월에 지칠 생각이 없습니다.

용히 잠들어 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해안도로를 달렸습니다.

오는 길에 속초시장에 들러 내일 동생들과 십이선녀탕 산행 때 필요한 간식을 장만하고

저녁 요기를 하고서 콘도에 돌아왔습니다.

휴가 둘째 날은 그렇게 여유롭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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