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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지금 이 순간’의 얘기를 실시간으로 다룬 드라마의 출현을 갈망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다. 20세기 초반에는 문맹자들을 위해 신문기사를 무대에서 보여주는 ‘뜨끈뜨끈한 뉴스극 (living news theatre)’ 같은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지만, 현대의 관객들은 선전 선동과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제작자의 의도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결론이 뻔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명한 제작자들은 따라서 당대의 현실을 간접 화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묘방을 찾아 처절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봉으로부터 불과 열흘 남짓한 시간에 이토록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대중들은 왜 ‘괴물’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2006년 8월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재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은 한강변에 출몰한 괴물과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 가족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괴물의 습격으로 중학생 딸 현서를 잃은 강두는 죽은 줄만 알았던 현서가 괴물의 거처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두의 아버지 희봉을 비롯해 남동생 남일, 여동생 남주는 현서의 구원을 정부에 요청하지만, 누구 하나 강두 가족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정부는 그런 민원을 받아들일 의사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다.
이 영화가 반미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괴물’이 둔치에 출몰해 인명을 살상할 때 ‘괴물’에 맞서는 용기 있는 인물은 한 명의 ‘미군’과 그 조력자인 박강두뿐이다.
마침내 가족들은 잃어버린 현서를 찾기 위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괴물에 맞선다.
‘괴물’의 설정은 지금 한국사회의 위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식물 대통령, 식물 정부라는 별칭이 상징하듯 정부와 집권세력은 이미 신뢰를 잃었고, 몰락한 중산층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에 빠져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약하고 초라한 소시민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노무현 정부의 대한민국에서 이미 피곤하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도시가구 3가구 중 1가구가 ‘저축을 한 푼도 못하는’ 현실은 그렇다 치자.
포항 지역 건설 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시위 같은, 국익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불법행위를 보고도 무능한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전경어머니회’와 ‘지역상인연합회’ 같은 일반 국민이다.
시민단체나 노조는 자신들의 권력욕과 개인적 이익을 ‘공익’으로 살짝 포장한 채 마구잡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노 대통령의 ‘돌려막기 인사’, ‘보은 인사’는 또 어떤가.
그래서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우리 자신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그 강렬한 메시지가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그래서 묻는다. 노 대통령은 누구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괴물’은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괴물과 같은가 다른가.
과연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을 위협하는 내부 외부의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