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 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 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 오면 낙목한천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보면 월백 설백 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어~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네 한 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허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의 일배주 만도 못허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끝어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 잔 더 먹소 덜 먹게 허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안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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