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져주며 사는 인생.
멋진 새벽이었다. 월요일. 그리고 회색 스모그의 유화 같은 하늘. 이런저런 근심걱정의 우울한 새벽. FM에서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완벽하다.
문득 이 보통의 아침이 가슴 저리도록 소중하다. 나는 성공으로 찬란한 하루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하루. 늘 있는 일상의 한 조각. 심심한 보통 하루 속에 내 삶이 영글어 간다. 나는 출근길 운전석에서 생각에 잠겨든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이겼다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기만 한다고 영원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하늘의 뜻에 따라 인간이 추구하는 결과는 늘 유동적이다.
문제는 행복이다. 행복하지 않다면 이겨도 소용없다. 바보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헛수고를 하겠는가? (실제로는 자존심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이 적지 않다.)
대개 우리가 하려는 일은 실패하고, 또 지게 되어 있다. 미국의 짱짱한 대학을 나온 왕 똑똑이들 사업 성공률이 단 1%다. 100명이 시작하면 99명은 진다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성공률이 0.1%란다. 1,000명이 사업하면 999명이 망한다는 이야기다. 그럼 머리 나쁘고 돈 없어 유학도 못간 우리는? 당연히 지지.
그러나 이왕 깨질 거 스트레스까지 받진 말고 살자. 매일 질게 당연한데 뭣 때문에 일일이 화를 내고 분노하는가? 몇 번 지다보면 이골도 나고, 그러다 보면 황소 뒷걸음으로 우연히 이길 때도 있다.
좋다. 져 주자. 친구에게 져주고, 애인에게 져주고, 경쟁자에게 져주자. 그렇게 늘 져주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의 기회가 온다. 그때 제대로 한 번만 이기면 된다. 아무 때나 기회가 온다면 그게 제대로 된 기회겠는가? 살다보면 거꾸로 기회가 너를 만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다.
그러니 신중해라. 그리고 그 기회는 절대로 놓지 마라. 늘 져주던 네가 그토록 단단히 결심하고 이기려는 것을, 세상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져준 까닭도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이기기 위해서다. 푸른 신호가 켜지는 바로 그때, 멋지게 전진하자. 마음먹은 위치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것이다.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그럼 바로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전투에 임하고, 또 지는 것이다. 일생동안 단 몇 번을 이기기 위해, 수 없이 진다. 그러니 가능하면 실실 웃으면서 부드럽게 지는 법을 배워야한다. 힘을 비축하자는 이야기다.
물러설 때를 모르고 아등바등 진이 다 빠지도록 악다구니를 쓰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이 토너멘트가 아니라, 리그전(league戰)이라는 것을 모르는 단견의 소치다.
오늘 패배했는가? 그럼 웃어라. 소주 한 잔 정도도 괜찮다. 하지만 내일의 당신이 또 지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늘 진 것이 미래를 확정 짓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간이 뽀개지도록 만취하는 것은 아직 지지도 않은 전투를 미리 포기하는 짓이다.
기억해라. 그리고 힘들 때면 거울을 보고 조용히 말해라. 입술을 옆으로 늘이고 이빨을 살짝 보이면서.
리.이.그.전!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