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
- ▲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멍게. 붉은색과 주황색, 노란색이 꽃보다 화려하고 화사하다. 서호시장에서 구한 멍게를 미륵도 해안 파래 낀 바위에 놓고 찍었다.
- 경남 통영 중앙시장. 시장통 여기저기 주홍색 꽃이 피었다. ‘우렁쉥이’라고도 부르는 멍게다. 물에서 꺼내자 말랑하던 멍게가 고무공처럼 탱탱하게 화를 냈다. 울퉁불퉁 도깨비 방망이처럼 돋은 뿔 끝에서 물을 ‘찍’ 쏜다. 멍게의 영어 이름이 어째서 ‘바다 물총(sea squirt)’인지 알겠다.
요즘 통영과 거제에는 멍게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산도 더러 있지만, 대개 양식장에서 자란 2년산 멍게다. 어린애 주먹만하다. 자연산은 초여름에서 여름이 제철. 큰 것은 몸 길이가 18㎝까지 자라기도 한다. “(그만큼 커지려면) 3년은 되야 되는데 우찌 기다립니꺼. 요즘 양식 멍게를 막 따기 시작했어예. 진달래꽃 필 때 더 맛 있어예. 요즘 나오는 건 ‘꽃멍게’. 여름에 아(아이)들이 수영하러 가서 따는 거는 자연산은 돌멍게라카고. 지금은 꽃멍게가 맛있고예, 돌멍게는 여름에 맛있어예.”
서호시장이 식당 주인이나 상인들이 들리는 곳이라면, 중앙시장은 통영 주민들이 찬거리를 사러 오후에 들리는 소매시장이다. 멍게를 먹겠다고 하면 껍데기를 까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싱싱한 멍게가 선명한 주황색이 홍시 같다. 후루룩 입에 넣으면 야들야들 부드러운 육질은 곶감 같다. 첫 입에는 찝찔하면서 달큼한데, 끝 맛은 씁쓸하면서도 신선하다. 서울 멍게와는 선도(鮮度)가 다르다. 껍질이 붉을수록 신선하단 증거.
시장통에 앉아 멍게를 씹는 맛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식당이 편하다. 시장 골목 안에 주로 회를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멍게나 생선 등을 사면 시장 상인이 자신과 안면 있는 식당으로 데려다준다. 생선을 사다가 먹는 손님을 ‘초장손님’이라고 하는데, 1인당 3000원만 내면 간장과 초고추장, 쌈장, 쌈용 채소와 밑반찬 서너 가지를 챙겨준다. 매운탕은 5000원(4인 기준) 내면 끓여준다. 공기밥 1000원. 가격은 시장 내 모든 식당에서 똑같으니 걱정할 필요없다. 멍게는 1만원어치만 사면 둘이서 소주 한 병 비우기에 충분하다.
- ▲ 백만석 멍게젓비빔밥
- 멍게의 진미를 맛보려면 거제로 가야 한다. 14번 국도를 달리다 신거제대교를 넘으면 20분이 채 안되 거제 시내다. 신현읍 고형리 세무소 앞에 있는 ‘백만석(055-637-6660)’은 ‘멍게비빔밥(1만원)’으로 전국적 명성을 떨치는 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멍게젓비빔밥’이다. 백만석 주인 김성태(54)씨는 “멍게비빔밥은 거제에서는 오래 전부터 먹어왔던 향토음식이지만, 요즘 전국적으로 유명한 건 우리가 지난 2005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백만석에서 개발했다는 멍게젓비빔밥 만드는 법은 이렇다. 4~6월 주로 거제에서 나는 멍게에서 모래를 제거한다. 양념을 약간만 넣고 싱겁게 간 해 5일 정도 저온 숙성시킨 다음 잘게 다져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살짝 얼려둔다. 푹 삭힌 멍게젓 대신, 싱겁게 간해 살짝만 삭힌 멍게를 쓴다는 점이 과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다.
멍게젓비빔밥을 주문하면 대접에 직사각형 멍게 4쪽과 김가루, 깨소금, 참기름이 담겨 나온다. 따로 나오는 뜨거운 밥을 대접에 더해 쓱쓱 비비면 얼었던 멍게가 녹으면서 밥과 함께 스르르 섞인다. 한 숟갈 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바다가 입 속에서 폭발한다. 도다리쑥국이 온화한 봄바다라면, 멍게젓비빔밥은 뜨겁지만 동시에 시원한 바람을 동반한 여름바다다. 싱싱한 멍게의 ‘날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살짝 간하고 삭혔기 때문에 세련되고 둥글게 다듬은 듯한 맛이다. 짜지 않지만 싱겁지도 않다. 여기에 자연산 우럭으로 끓인다는, 뜨겁고 맑은 생선국이 곁들여지면서 멍게젓비빔밥의 싱싱함이 한층 살아난다.
멍게젓비빔밥보다 더 진한 맛을 선호한다면 ‘고노와다정식(2만5000원)’이 딱이다. 고노와다는 해삼 창자로 담근 젓갈로, 일본에서 최고급 반찬에 속한다. 고노와다정식은 멍게젓 대신 해삼창자젓이 들어간다. 뜨거운 밥과 비벼먹으면 기름지고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돼지고기나 쇠고기 같은 ‘육고기’처럼 느끼하지 않다. 멍게젓이나 해삼창자젓을 시도하기 겁난다면 광어회와 상추, 오이, 풋고추를 넣고 초고추장 양념장에 비벼 먹는 ‘생선회비빔밥(1만2000원)’이 있다.
-
▲ 멍게비빔밥 / 김성윤 기자
- 이렇게 맛난 도다리를 국이나 회로만 먹기 아깝다며 칼을 빼든 여성이 있다. 1970년대 단발머리 붐을 일으킨 ‘미용계의 대모’ 그레이스 리(74)다. 우연히 놀러 온 통영. 공기 좋고 바다 풍광 근사했다. 무엇보다 싱싱하고 풍성한 수산물에 반했다. 그래서 2003년 덜컥 중식당 ‘중국요리 이선생’을 열고 아예 눌러 앉았다.
통영에서 보기 드물게 ‘세련된 서울 강남식(式)’ 중국 음식을 낸다. 그때그때 최고로 물 좋은 제철 재료를 사용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래서 요즘은 도다리로 여러 요리를 만든다. 그 중 인기 메뉴가 도다리로 만드는 ‘탕수어(3만5000원·5만원·사진)’다. 도다리에 녹말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낸 다음 새콤달콤한 탕수 소스를 뿌려 낸다. 부드럽고 촉촉한 생선살이 젓가락만 갖다 대면 사르르 갈라진다. 지느러미와 대가리는 씹어 먹어도 좋을 만큼 바삭바삭 고소하다. 예약 필수.
‘해물탕면(1만원)’에는 도다리 살이 들어간다. 바지락 국물에 굴 소스를 섞은 국물이 개운한 감칠맛을 내고, 잘게 다져 얹은 파가 상쾌하다. 냉동이 아닌 생새우가 들어가는 ‘짬뽕(7000원)’ 등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재료로 하는 요리를 추천한다. (055)649-2999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
- ▲ 멸치밥, 멸치회, 멸치튀김, 멸치쌈, 멸치젓, 멸치전, 멸치볶음, 멸치시락국(시래기국), 멸치액젓으로 무친 파김치…. 통영 멸치마을의 멸치요리는 주인의 멸치 사랑만큼 다양하다.
- 경남 통영시 ‘한산섬식당’. 문을 밀고 들어서자 허름한 식당 안은 봄 냄새로 가득했다. 대단히 귀하고 값비싼 별미라도 대접 받는 양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들은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국물을 퍼먹는 중이었다. 연한 초록빛이 감도는 투명한 국물 속에서 생선살이 하얗게 빛나고, 쑥 향이 향긋하게 피어 오른다. 따뜻한 봄 바다가 국그릇에 그대로 담긴 듯하다.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에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냄비에 물과 납작하게 썬 무를 몇 조각 넣는다. 물이 팔팔 끓으면 남자 어른 손바닥만한 도다리 한 마리와 파, 마늘, 풋고추를 조금 넣는다. 극상에 오른 도다리 자체의 맛을 살릴 정도로만 간을 할 뿐이다. 도다리가 슬쩍 익을 즈음 쑥을 손으로 뚝뚝 뜯어서 넣고 숨이 죽으면 그릇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 ▲ 한산섬식당 도다리 뼈회
-
광어와 거의 똑같이 생긴 도다리는 남해안이 아니면 통 보기 힘든 생선이다. 양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영 서호시장 상인들은 “아직까지 통영에서 양식 도다리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통영도촌동수협공판장에 만난 한 거래인은 “도다리가 다 자라려면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도다리는 맛이 워낙 좋은 생선. 생선에 대해선 누구보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통영 사람들이 잡히는 족족 먼저 먹어 치운다.
이곳 주민들은 “(도다리 맛 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광어를 최고로 치더라”며 안타깝단 듯 말한다. 특히 봄 도다리를 최고로 친다. 지금 도다리는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이다. 운이 좋으면 배에 알이 가득 찬 암컷이 나오는 행운이 따르기도 한다. 물론 “알이 찬 도다리는 영양을 몽땅 알에 빼앗겨 버려 살이 푸석푸석, 맛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통영 토박이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도다리가 좋아도 쑥이 없으면 도다리쑥국은 미완성. 반드시 요즘 막 나오기 시작한 어린 쑥이 들어가야만 한다.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햇쑥은 여리지만 특유의 향기가 강렬하다 못해 코가 아릴 지경이다. 쑥은 보통 음력 정월 이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따뜻해 지난 1월 말부터 쑥이 나왔다. 그러나 도다리 살이 덜 올았었다. 쑥도 먹을 만하고, 도다리도 통통한 요즘부터 앞으로 한 달 가량이 ‘도다리쑥국’이 가장 맛있는 철. 이때가 지나면 쑥이 “뻐세서(억세서)” 맛이 떨어진다.
강렬한 쑥향이 먼저 코를 잡아채고 기름기 없이 맑고 담백한 국물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도다리 살은 눈처럼 뽀얗고 하얗다.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사라진다고 느껴질 만큼 생선 살이 연하면서도 기름이 올라 푸석하지 않다.▲ 도다리가 제철인 통영 서호시장 / 김성윤 기자
통영에서는 정량동 기업은행 뒤 ‘한산섬식당(055-642-8330)’이 도다리쑥국을 잘 끓이기로 소문 났다. 한 그릇 8000원. 생선회는 4만·5만·6만원짜리가 있다. 여러 생선회가 섞여 나오는데, 도다리회만 달라고 해도 된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도다리를 뼈째 자른 뼈회(세꼬시) 스타일로 주로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볼락젓’이 별미다. 무와 고춧가루를 더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가볍게 삭힌다. 시큼하면서 가벼운 감칠맛이 깍두기처럼 매콤달콤하게 익은 무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남자어른 손가락 길이의 볼락이 통째로 나오니 비위 약한 분이라면 굳이 권하지는 않겠다. 이외에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 앞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통영회식당(055-641-3500)’ ‘분소식당(055-644-0495)’도 도다리쑥국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통영 바로 옆 거제에서도 도다리쑥국을 즐겨 먹는다.
거제에서는 맹물 대신 쌀뜨물에 된장을 조금 풀어 맛을 내는 집이 많다. 하지만 역시 슴슴하게, 도다리와 쑥의 맛과 향을 살리는 정도로만 자제한다. ‘평화횟집(055-632-5124)’ ‘웅아횟집(055-632-7659)’ 등이 유명하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 8000원~1만원 받는다.
-
▲ 제철 맞은 도다리 넘치는 통영 서호시장과 공판장 / 김성윤 기자
도다리와 광어의 구분
- 도다리는 가자미목 가자미과, 광어는 가자미목 넙치과로 친척 뻘이다. 눈이 쏠린 방향만 다르다. 도다리와 광어를 구분하려면 그래서 눈을 봐야 한다. 앞에서 봤을 때 눈이 왼쪽에 모였으면 광어, 오른쪽이면 도다리다. 그래서 ‘좌광 우도’(좌측눈 광어, 우측눈 도다리)라고 한다. 도다리도 광어도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지는 않다. 처음엔 남들처럼 양 옆에 하나씩 있던 눈이, 부화하고 2주~1개월 정도 지나면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 몸길이가 2㎝쯤 클 무렵이면 완전히 쏠려버린다. 몸도 눈이 한쪽으로 쏠리는 시기에 납작해진다. 도다리·광어의 쏠린 눈과 납작한 몸통은 바다 밑바닥 생활에 적응하려는 처절한 몸짓의 증거인 셈이다.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 통영은 옛날부터 멸치로 유명했다. 봄에 산란하려고 통영 가까운 바다로 들어오는 멸치를 잡았다. 이 멸치가 ‘봄멸’이다. 크기가 남자어른 손가락 정도. 요즘은 배와 장비가 좋아져 1년 내내 먼 바다에 나가 멸치를 잡아들이지만, 여전히 통영사람들은 ‘봄멸’을 최고로 꼽는다.
‘봄멸’은 주로 회로 먹는다. 머리를 떼내고 뼈와 내장을 발라낸 다음 초고추장과 참기름, 참깨, 고추, 상추, 당근, 미나리, 배 등을 넣고 버무려 멸치회를 만든다. 멸치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기름진 감칠맛이 진하다. 매콤새콤달콤하다. 살짝 씹기만 해도 뭉그러질만큼 살이 부드럽다.
‘봄멸’로 만드는 멸치쌈도 별미다. ‘봄멸’을 깨끗하게 다듬어 냄비에 깔고 물과 고춧가루 진간장, 다진 마늘 조금을 넣고 졸여서 상추에 쌈 싸 먹는다. 멸치가 쉬 부서지니 졸이는 과정에서 젓가락으로 뒤적이면 안 된다.
통영에서는 봄이면 웬만한 식당에서 ‘봄멸’을 버무린 멸치회를 내놓는다. 워낙 흔하게 먹는 멸치여서인지 멸치만을 따로 내는 식당이 통영에 딱 하나 있다. 식당 이름이 ‘멸치마을(055-645-6729)’이다. 주인 박성식(56)씨는 어려서부터 멸치가 그렇게 좋았단다. “말리기 위해 삶아서 널어놓은 멸치를 앉은 자리에 한 채발씩 먹었어요. 1㎏어치는 족히 될걸요? 일반 사람은 비려서 그리 못 먹습니다.”
사랑하는 멸치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2005년 통영 정량동에 식당을 냈다. 봄멸은 아니지만, 멸치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이 나온다. ‘멸치회(2만원)’는 기본. 멸치튀김, 멸치전, 멸치젓갈, 멸치조림, 멸치쌈, 멸치시락국(시래기국의 사투리), 멸치젓을 넣어 담근 김치…. 상이 온통 멸치로 만든 요리이고 밑반찬이다. 멸치전은 파전과 비슷한데 잔 멸치가 군데군데 들었다. 멸치튀김은 튀김 옷을 입혀 미리 튀겨둔 멸치를 생선구이용 오븐에 한 번 더 구워낸다. “멸치에 워낙 기름이 많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느끼합니다.”
다양한 멸치요리 중에서 가장 특이한 건 ‘멸치밥(7000원·사진)’이다. 작은 뚝배기에 멸치육수를 붓고 불린 쌀을 더해 밥을 짓다가 실 멸치를 더해 뜸 들인다. 밥을 퍼서 대접에 담고 달걀노른자와 김 가루를 뿌려 손님에게 낸다. 멸치액젓과 간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으로 비벼서 먹는다. 의외로 비린내 없이 구수하다. 일본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박성식씨가 나름대로 연구하고 개량해 한국사람 입맛에 맞춰 개발했다.
통영 유일의 멸치요리전문점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아직 미적지근하다. 식당이 한산한 편이다. 멸치가 너무 흔한 통영이라 그런 모양이다.
-
▲ 멸치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 - 통영 멸치마을 / 김성윤 기자
- ▲ 도다리쑥국. 도다리와 어린 숙이 만난 국그릇 속에서 봄이 피어오른다.
-
새 봄을 맛 보고 싶어 남해안으로 달린다. 경부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리니 통영이다. 4시간 내려왔을 뿐인데, 느닷없이 되돌아온 추위로 콜록거리는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확실한 봄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바다 위로 살랑거리고, 섬들은 여린 연두빛으로 촉촉하게 반짝거린다.
통영은 지금 도시 전체가 ‘도다리쑥국’의 철이 돌아왔다고 들뜬 분위기다. 제철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도다리가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향긋한 어린 쑥과 만나 완성되는 도다리쑥국은 봄 그 자체이다.
통영처럼 남해를 낀 동네에서 봄은 도다리쑥국과 함께 온다. 통영 음식점마다 어김없이 한쪽 문에는 ‘立春大吉(입춘대길)’, 그 옆에는 ‘도다리쑥국’이라고 붙여 놓았다. 도다리쑥국은 봄 한 철, 그 중에서도 한 달 남짓한 초봄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 통영 봄 풍광 / 김성윤 기자
자연산 멍게를 맛보려면 여름까지는 기다려야겠지만, 한려수도 양식장에서는 통통한 멍게를 막 따내기 시작했다. 싱싱한 멍게회를 먹는 순간, 입 안에 바다가 출렁인다. 거제에서는 그냥 먹기도 황송한 멍게로 젓갈을 담가 밥에 쓱쓱 비벼먹는다. 별미 중 별미, ‘멍게젓비빔밥’이다.
통영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봄멸’. 통영 사람들의 멸치 사랑은 각별하다. 특히 봄에 나는 멸치를 봄멸이라 부르며 진미로 친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아직은 봄멸을 보기는 어렵다. 가끔씩,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다. 하지만 식당마다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친 멸치회를 낸다. 음식을 입맛이 확 살아난다. 멸치에 ‘미쳐’ 주인이 직접 개발한 멸치요리까지 내놓는 멸치전문식당도 있다.
‘봄 맛 삼총사’, 도다리쑥국과 멍게젓비빔밥, 봄멸을 맛보러 통영과 거제에 다녀왔다. 14번 국도를 따라 꼬불꼬불 펼쳐지는 다도해 풍광은 ‘벅찬 보너스’.
꿈길 드라이브’ 14번 국도
- 금강산도 식후경. 도다리쑥국과 멍게젓비빔밥, ‘봄멸’로 입이 만족했다면 이제 눈이 포식할 차례다. 우선 통영과 거제를 이어주는 14번 국도를 따라가는 드라이브.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지나 거제로 들어가는 구간은 섬의 북쪽과 서쪽 해안을 따라가는데, 양식장만 많고 볼거리는 덜하다.
14번 국도를 따라가는 해안 드라이브의 즐거움은 거제 장승포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승포를 지나 남쪽으로, 지세포를 지나 와현, 구조라에 접어들 무렵이면 다도해 절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와현 바다는 동그랗게 땅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다. 와현 바로 다음에 있는 구조라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로 뒤덮여 사시사철 푸른 윤돌도가 떠 있다. 물이 빠지면 거제도와 연결된다.
통영에서는 미륵도 산양일주도로가 드라이브가 짜릿하다. 통영은 본래 충무라 불리던 육지와 두 개 다리로 연결된 미륵도, 그리고 150여개 섬으로 이뤄졌다.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22㎞ 일주도로를 통영사람들은 ‘꿈길 드라이브 60리’라 부른다. 미륵도의 관능적인 ‘S’라인을 감아도는 드라이브 코스다. 충무마리나콘도를 빠져나와 왼쪽으로 꺽어진다.
달아공원 부근 5㎞ 구간이 백미.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왜 다도해(多島海)라 불리는 지 알 만하다. ‘달아’ (達牙)는 이곳 생김이 상아(象牙)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다.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관해정(觀海亭)이 관람 포인트.
미륵산 정상에는 다음날 새벽 해 뜨는 모습을 보러 올라간다. 잠이 모자라다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발 461m. 통영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섬과 섬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풍광에 숨이 막힌다. 미륵산 중턱 용화사까지 차가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1시간30분쯤 걸어 올라가면 정상이다.
● 통영·거제 가는 길: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를 거치면 통영과 거제의 관문 충무IC까지 단번에 이어진다. 교통체증이 없는 평일 기준으로 4시간쯤 걸린다.
'추천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암사 (0) | 2007.03.21 |
---|---|
양.곰창이 뜨는 이유 ? (0) | 2007.03.21 |
바닷가 옆 기찻길 따라 걷다 보면 (0) | 2007.03.08 |
초록 빛 왈츠 남도의 봄 (0) | 2007.03.03 |
온실 식물원에서 미리 만나는 봄 (0) | 2007.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