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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부여기행 - 능산리고분 - 궁남지 - 구드래 조각공원 - 낙화암

 

부여기행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백제의 향기가 묻어나는 부여는 7월에 가야 한다.

거기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궁남지가 있다.

눈부신 태양아래 순수함과  깨끗함으로 활짝 피어나는 연꽃의 정원을 거닐며 역사

속에 사라져간 제국의  숨결을 느껴보라

가는 길 능산리 고분에 들러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 볼 일이다.

절대 권위와 위엄 그리고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제왕들

결국 한줌의 먼지로 사라지는 무상한 인생에 관해 바람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구드래 조각공원에 둘러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조각공원 아래  구드래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 고란사와 낙화암 들러보라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들에 관한 명징함이 가슴으로 젖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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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가본지가 언제인가?

15년 전 봄

그 기억을 더듬으며 부여로 간다.

마눌과 함께 가는 여행길

무더운 날씨지만 냉방이 잘 되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파란하늘의 흰 뭉게구름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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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 고분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도 되기 전 어릴 적

서우 모임에서 능산리 고분에 들른 적이 있다.

그 때 잘 다듬어진 고분아래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한참 뛰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입장권을 받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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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날인데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고

푸른 하늘과 잘 가꾸어진 초록의 들판이 싱그럽다.

염천의 솔 숲에는 쏴아 바람이 불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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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 본 고분은 엄청 크다.

사비시대 역대 왕들이었을 걸로 추정되는데 부장품은 도굴로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옷칠과 금박(金箔)으로 장식된 관(棺)의 파편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계곡에서 백제의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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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에서 좌측으로 가면 의자왕과 그의 맏아들 백제융의 묘가 있다.

묘비에는 의자왕의 생야가 약술되어 있다.

해동증자로 칭송이 자자하였고 용감하고 담대하여 결단력이 있었다

과단성이 있고 생각이 깊어서 그 명성이 홀로 우뚝했다는 명의 기록을 인용했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외교적 역량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덕정치를 베풀었단다.

하지만 백제의 패망과 함께 아들 백제융과 당으로 압송되어 당나라에서 병사했다고

전하고 있다.

의자왕

삼천궁녀의 주색에 둘러 쌓여 방탕함을 일삼다가 나라를 망하게 한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우리가 배웠었던 그 왕

승리자의 역사를 위해 폄하된 비운의 제왕인 셈이다..

이곳의 묘는 중국 하남성 낙양시에서 의자왕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2000년

의자왕의 영토(靈土)를 가져다가 후세인들 위령하여 조성한 무덤이다.

고란사에 봉인했다가 9월에 이곳에 단(檀)을 마련하고 영토를 안치했다고 쓰여 있다.

 

다시 이곳에 오는 날은 또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일 게다 .

제왕이든 노예든 모두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가고 수 많은 사람들의 추억마저 사라지고

난 후에도 누군가 다가와서 바람이 전하는 그 역사의 향기를 맞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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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7월엔 연꽃이 피고 진다.

수만평의 연못에 핀 화려한 연꽃을 보았나?

 

연꽃은 1/3쯤 피었다.

일부러 7월 20일부터 시작되는 축제의 혼잡함을 피해 갔는데

생각보다 궁남지는 훨씬 넓어서 웬만한 인파에도 그렇게 답답할 것 같지는 않다.

 

궁남지는 서동(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 백제무왕 35년(643)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리고 못 가운데 중국 전설속의 방장선산을 모방하여 샘을 만들었단다.

훗날 궁남지는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고 통일신라도 이 궁남지를 본떠서 안압지를

완성햇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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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의 전설을 아는가?

궁궐 남쪽에 사는 한 여인이 어스름한 달밤 잠을 못 이루고 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때 갑자기 못에서 물결이 일더니 용이 나타나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 후 태기를 느낀 여인은 열 달 뒤 한 아이를 낳았다. 과부의 몸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마를 캐어 팔아 집안 생계를 도왔기에 서동(薯童), 곧 맛동이라 불렀다.

포룡이라는 이름은 용과 정을 통했다는 기이한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이 전설을 하나의 은유로 보고 있다. 용은 곧

임금이고 서동은 임금과 미천한 신분의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서자라는 주장이다.

성년이 된 서동은 왕의 밀명을 받고 서라벌 정탐을 위해 신라에 잠입했다가 미모의

선화공주에게  반한다.

서동이 적국의 공주를 손에 넣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던 노래가 바로 향가

서동요다.

서동을 밤마다 안고 잔다는 노래 때문에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서동과 함께 백제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백제의 왕(제 30대 武王)이 되었다.

 

올 여름엔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따라  가득한 연꽃의 화원을 거닐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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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에서는 연밥을 사먹지 않는게 좋을 듯 싶다.

지역 특산의 미각을 느껴보고자 기대를 가지고 슈퍼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잘하는 곳을 물어 근처의 식당을 찾았는데 실망스러웠다.

연 잎에 쌓여 나온 밥은 너무 향이 짙고 연근을 가지고 만든 8가지 반찬을

빼면 10,000원 짜리 연밥정식은 정말로 먹을게 없었다.

별 맛없는 부침개 , 김치 그리고 허멀건 돼지불고기 몇 점

아마도 그 슈퍼할아버지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니었는지

ㅇㅇ목장 이란 식당엔 가시지 말기를…..

 

나중에 알아보니 구드래 조각공원 근처에 좋은 음식점들이 많이 생겼다.

오전에 궁남지 돌아보고 식사는 구드래 조각공원 근처에서 하는게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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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래 조각공원

여긴 한가로운 휴식이 머무는 곳이다.

조각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모두 그늘아래 돗자리 깔고 누어 무더운

날의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풀어 놓으면 걱정 없을 넓은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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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래라는 지명의 어원은 '구들애' 즉, '구들이 있는 동네'라는 의미로

백마강 근처를 구드래라 부르는데 이곳은 찬란했던 백제시대의 문화를

왜나라에 전파한 곳으로서 부여에서 청양방면으로 통하는 나루터가 있어

옛 부터 인맥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1985년도에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된 구드래에는 옛 백제인의 조각 기술을

이어받은 지역 출신 유명 조각가 작품 30점과 1999년도 국제현대조각

심포지엄에 참가한 국내 외 유명 조각가의 작품 29점 등 총 59점의 조각

작품으로 옛 정취와 함께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공원을 조성하여

관광객에게 상시 개방,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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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래선착장

15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배를 타고 백마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물길은 먼 바다 어디쯤에 흘러가 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백마강 물빛은 황토 빛이다.

15년 세월이 흘렀고 은비는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

뜨거운 몽산포 해변에서 신나는 디스코를 쳐대던 젊은 청춘들은 이제 흰머리

희끗히끗 초로기로 가는데

마눌과 함께 고란사에 올라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를 두 바가지 마시고 6년이

더 젊어져서 낙화암 백화정에 올랐다.

시원한 강바람이 정자를 불어 내린다.

코 끝에는 백제의 향기가 묻어오고 꽃처럼 백마강 위로 흩날려간 슬픈 역사의

파노라마가  눈에 어른거린다.

 

사자루에는 아무도 없다.

뜨거운 날씨를 의식할 수 없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는 정자 한 귀퉁이에

마눌과 조용히 앉아 백제의 바람과 시대의 향기에 취했다.

한 떼의 아이들이 올라오지 않았으면 오래도록 더 정자를 떠나지 않았을 게다.

 

무더운 여름날의 부여기행은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과 잊혀진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해발 500m 문화 유적지는 나이든 훗날을 위해 남겨 놓는다고 하구서 허리가 아픈 날

역마살을 잠재우기 위해 마늘과 함께 한 여행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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