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09년 5월 5일
날 씨 : 좀 무덥고 맑고 바람 좋다.
동 행 : 나홀로
산 행 지 : 계룡산
산행코스 : 남매탑 (식당가 옆) – 삼불봉-관음봉-황적봉- 자연수련원
경유지별 시간
07:24 : 출발
08:45 : 삼불봉 아래 안부
08:50 : 삼불봉
09:52 : 관음봉
10:25 : 쌀개봉
12:38 : 황적봉
13:15 : 하산
어제 술을 제법 마신 상태로 아마도 오늘 집에 머무르면 뉴캐슬 병에 걸린 닭처럼 될 것이다.
의미 없이 나의 소중한 봄날 하루는 지나갈 게다.
마눌에게 오늘은 장인어른과 저녁 식사나 하자고 하고 혼자 계룡산으로 떠났다.
예전 같으면 새벽 같이 가서 장군봉 일출을 보고 7시간 종주코스를 섭렵하고 내려와
점심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사우나 까지 마쳐야 뻐근한 하루에 대한 기분 좋은 느낌이 살아 나는데 허리를 다친 후로는 2년 넘도록 그 거친 비단길은 페쇄되었다.
갈려면 가긴 하겠지
하지만 또 몇 일을 허리 때문에 고생할 게다.
사실 내 생애에 가장 치명적인 사고를 계룡산에서 당하고 난 후론 의식적으로 계룡산을 기피해왔다.
가장 신령스런 산에 속해서 에로부터 도사나 수도자들이 많이 은거했던 그 산에서 내 삶의 패턴을 바꾸게 만들 정도의 큰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아마 계룡산에 오른 횟수로도 상당하겠지만 100회 이상 등정횟수에다가 10년 이상 꿋꿋하게 계룡산에서 새해 일출을 지킨 사람 그리고 일년에 10번 이상 장군봉-삼불봉-관음봉-쌀개봉-황적봉을 연결하는 능선종주를 하는 3가지 조건으로 검색하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가 될게다.
계룡 신령님께 삐쳐서 사고 후에는 2년 동안 고작 6번 쯤 갔을 것이다.
허기사 사고 1년 동안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개다가 종주는 엄두도 못 내고 가장 긴 길은 장군봉에서 신원사 까지였다.
5월 1일 마눌과 함께한 팔공산 여행길은 너무 기분이 좋았던 여행길이었고
엊그제 갈기산의 신록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중요한 건 그 좋은 느낌이 지속적인 상승압력을 받는다는 것이고 상당한 산행거리에도 생각보다 허리상태가 괜찮다는 거다.
게다가 어제 술로 인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모처럼 몸에 실린 역동적인 봄의 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난 구태여 다시 배낭을 둘러매야 했다.
유성에서 24시간 하는 복집에 들어갔다.
복 해장국 시켜 먹었는데 일만 팔천원
고급 복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돈 값에 비해 맛이 너무 떨어진다.
어쨌든 해장을 한 셈이니 기분 좋게 계룡산에 올랐다.
사실 오늘 마음은 산신령님께 땡깡한 번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갓바위님과 팔공산신령님께도 빌어서 등이 많이 좋아 졌는데 계룡 산신령님께서도 무릉객
불쌍이 여겨 예전허리 돌려 달라고….
불현듯 오늘 계룡의 기를 받고 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초에는 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 관음봉- 동학사 구간을 타고 내리려 했다.
7시 24분에 주차장 음식점 옆 남매탑 등산로로 올랐다.
날씨는 너무 화창했고 바람은 좋았다.
큰배재에서 좀 오름 길에 있는 안부에서 금지구역으로 길을 잡았다.
삼불봉아래 안부로 연결되는 그 길에는 멋진 쉼터와 노송들이 있다.
산안개가 흐르는 가운데 눈부신 초록의 세상을 열고 있는 계룡은 변함없는 그 모습이었다.
삼불봉에서는 광고회사에서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참 지켜보다 다시 삼불봉을 내려 관음봉으로 가는 능선길을 따라가는데 멋진 풍경과 소나무가 있는 능선등로에는 또 벌금 50만원이란 프랭카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마치 이 풍경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무릉객이 누군가?
그가 옛 친구 소나무와 멋진 쉼터가 있는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깜깜한 새벽에 빈 물통 하나 들고 구태여 입산금지인 설악동을 혼자 올라 공룡의 잔등을 타고 내린 그가 아닌가?
아무도 없는 공룡능선에서 멋진 설악세상의 풍경을 혼자 바라보며 가슴 부풀었던 사람.
소나무아래서 참외 하나 깎아먹고 옛 친구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다시 자연성릉을 따라 관음봉으로 간다.
산색도 좋고
바람도 좋고
기분도 좋다.
자연성릉을 걸어 가면서 더 욕심이 났다.
아마 그 푸른 하늘과 능선의 바람 그 멋진 신록 때문일 게다.
쌀개봉을 거쳐 황적능선까지 여행길을 연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눌 차를 가져왔고 오후에는 함께 회출해야 하니 연장신고는 해야 했다.
관음봉에서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Lg 핸드폰 정말 형편없어…
마눌에게 좀 늦겠다고 전화하고 쌀개능선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쌀개봉 쪽 절벽을 오르면서 허리가 신호를 보낸다.
맥이 쑥 빠졌다.
이것이 내 임계점이구나
아무도 없는 길을 가면서 소리쳤다.
“계룡 신령님 진짜 너무 하시네요”
오기로 되돌아 가지 않기로 했다.
갓바위님도
팔공산신령님도
계룡산신령님도 들은 체도 안 하시지만
황적능선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황적능선은 다치고 처음이다.
2년 5개월 만에 찾는 길이다.
통증은 심해지지는 않고 그만 그만한 편이다.
황적능선은 바위산이라 나무가 별로 없어 뜨거운 태양에 완전 노출된다.
잠시 타고 내려 갈려고 썬탠로션을 준비하지 못했다.
정말 제대로된 쉼터들이 있다.
그 옛날 어린 태현이녀석 데리고 다니면서 아빠 죽으면 화장해서 뿌려라 한 곳
바라보는 신록이 싱그러우니 마음도 온통 푸르다.
동학사가 계곡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다리쉼을 하고
계곡으로 내려섰다 다시 오르는 곳에 있는 기마바위에도 걸터앉아 보았다.
거대한 암벽에는 그 옛날 굵은 동아줄은 사라지고 빈약한 노끈 하나 달려 있다.
내가 최고의 쉼터라고 하는 바위 난간 평반에는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요동치고 있다.
마치 요즘 세상처럼 변화 무쌍한 곳이다.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누운 건 그 바람을 느끼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 보기 위해서였다.
산과 바람과 태양은 변치 않았다.
변한 건 나의 허리와 마음 뿐이구나
황적봉 가는 능선 길에 울창한 수림에 부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눈부신 초록이 햇볕과 바람에 너울을 만드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인적없는 바람 길에 거꾸로 누웠다.
난 아무것도 기다리는 것이 없다.
여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 천천히 가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바람이 이끌고 발길이 가는 대로 그저 산과 자연에 모든걸 떠맡기고 나서 편안해진 마음이다.
갑자기 길에 누워서 나무가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졌다.
나무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오면 온몸으로 기쁨에 겨워 수다스럽게 이야기 한다.
“멍청한 녀석이 하나 누워있어”
“거꾸로”
“아주 바보 같은 녀석이야 ! 마치 자기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처럼 길가에 누었어”
싱그러운 봄과 바람을 만난 나무의 수다가 별처럼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또 잠시 졸았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고 지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나른하고 기분 좋은 봄이다.
아픈허리보다 더 강렬한 유혹
황적봉에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쏟아진다.
쉬지 않고 지나쳤다.
마치 아무일 없는 그 옛날처럼 난 다시 도로에 내려섰다.
봄빛에 좀 그을린 얼굴과 뻐근한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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