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호서대 교수로 금의환향(?)
허기사 이화여대 교수를 하다 미국으로 갔었으니 더 잘되어 온 것은 아니지만…
봉규와 황찬과 함께 천안에서 만나 수년간 밀린 대화를 나누었다.
웃긴 건 참치 횟집에서 둘이 만났는데
완죤 커뮤니 케이션 미스
나야 좀 늦게 합류해서 차려진 상을 받았으니 내막은 잘 모르겠고
참치회를 별로 잘 먹었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데 봉규가 계산을 하려다 보니 문제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착한 친구넘들 이구동성으로 보아 여종업원의 실수인 듯
음식먹구 오리발 내밀 넘들은 절대 아닌걸 내가 품질 보증한다.
얘긴즉 3일전에 왔다는 종업원의 안내로 분명 한 상에 8만원 짜리 참치를 시켰는데 나중에
1인당 8만원 내라는 거다.
사실 참치가 비싸기는 하지만 요즘은 무한리필 참치점처럼 저렴한 곳도 있는데 동네
횟집보다 먹은 것 없이 40만원 돈 내려면 속이 뒤집어지긴 하겠다.
서울 토박이 만큼 서울서 오래 산 봉규가 눈에 쌍심지를 키우는 걸 보면 대전촌놈이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도 어패가 있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넘들도 아니다.
시티뱅크 임원, 대학교수, 삼성부장 어디 내놔도 빠지는 스펙은 아니질 않는가?
결론은 의도적인 바가지는 아니고 신입 종업원의 미스가 확실하지만 논란은
불가피 했다.
하여간 우린 봉규만 남기고 먼저 나왔고 그 돈 다 냈는지 아님 깎아서 지불했는지
봉규가 해결했다.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옛날 얘기하다 11시를 넘긴 기차를 타고 돌아와 짧게 눈붙이고
떠나는 여행길이다.
이틀간 술을 만땅 마시고 마눌의 차를 타고 떠나는 불안정한 여행길….
(회사에 남겨 둔 나의 애마는 회수할 엄두도 못냈다.)
여행의 맛은 역시 새벽에 산다.
어둠이 내린 한적한 고속도로를 어디쯤에선가 맞은편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새벽을 만난다.
여행지에서 마중오는 새벽을 보면 반가움이 달려 나가고.
어느 지난날 그 새벽의 맑고 정갈한 기억들이 되살아 온다.
숱한 날 백두대간에서 만났던 새벽과 불은 태양의 축복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날의 기억들이 모여 새벽여행길의 집착을 만들고 그 배반하지 않는 시간들은 가는 길에
여행의 기쁨을 훨훨 날렸다.
여행길에서는 나이를 잊는다.
어느 길목부터 두껍게 쌓인 세월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점점 커가는 자유와 젊음을 만난다.
구태여 삶이 아쉬울 것도 한탄스러울 것도 없다.
그 여행길 위에서 물기 없는 지난 건조한 시간마저도 다시 촉촉해 진다.
여행길에서 잊혀진 기억들을 들쳐볼 수 있음은 흐믓한 기쁨이다.
난 여전히 젊은 날을 보내지 않았다.
백양사 매표소 앞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김치찌개를 먹을까 하다가 남들의 산채정식이 맛있어 보여 바꾸었다.
백양사 가는 길
단풍이 한창이다.
오래된 나무들은 계절의 흥에 겨워 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이른 아침에도 가을 물빛과 그 물에 비친 가을이 조화롭다.
사람들이 단풍 숲을 걸어 간다.
고요한 백암의 아침과 숲의 평화가 가슴을 채운다.
백양사는 처음이다.
늘 능선에서 내려다 보며 지나쳤던 절을 오늘은 가까이 바라보며 스쳐 지난다.
“부처님 내려가는 길에 인사 올리겠습니다.”
산 행 일 :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산 행 지 : 백암산
산행코스 : 백양사 – 백학봉- 상왕봉 – 사자봉 – 백양사
소요시간 : 4시간 15분
동 행 : 마눌과 두리
날 씨 : 흐림 / 가끔 햇빛
경유지별 시간 : 08 : 15 연못가 주차장
08 : 29 천진암
08 : 30 백양사 옆 내장산 국립공원 안내도
09 : 00 약사암
09 : 07 동굴
09 : 25 조망절벽
09: 39 안부 절벽
09: 56 백학봉 앞 봉우리
10: 00 백학봉
10: 18 헬기장
10:30 노송
10:58 상왕봉
11:20 사자봉
12:45 백양사
백학봉 오르는 길
올려다 본 바위 암릉의 풍광들이 범상치 않다.
붉게 물든 단풍 위에 쏟아지는 태양 빛이 눈부시고 사당너머 은행나무는 현란한
노란 빛의 무성한 잎새를 작은 바람에도 쉽사리 털어낸다.
가끔 불어가는 거센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길
다시 가을이다.
몇 번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려도 가을을 대하는 느낌은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니
그래도 다행이다.
늘 바쁜 날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핑계로 잃어 버린 그 시간과 가을은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허무와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 석양 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던 낭만 …
그 잊지 못할 기대처럼 가을은 늘 그렇게 작은 가슴 떨림으로 다가왔다
나이듬과 가을이란 분리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을을 버리고 차마 늙어갈 수 있을까?.
내 마음에서 가을이 떠나는 날
그날 내 젊음도 떠나겠지
그 때쯤이면 빈 가슴으로 통곡할 안타까움 마저 이미 가을과 함께 떠났을 것이다.
백학봉 오르는 내내 원색의 단풍이 따라왔고 기쁨과 추억이 따라왔다.
백학봉 오르는 길 낙석지대에 빛나던 단풍처럼
가을과 인생도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약사암에서 내려다 본 내장산의 가을이 현란하다.
그 풍경을 내려다 보면서 심산 절경 속에 남겨진 산객의 기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난간 장독대에서 낙엽을 쓸어 내리는 스님의 모습이 산색과 어울려 마음에 고요하고 편안한 그림을 그린다.
어느 흐리고 바람 부는 가을 날의 은은한 한 폭 수채화
약사봉에서 길은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동굴의 부처님을 지나고 나서는 산길이 더 날카로워
진다.
거친 석산의 칼릉을 타고 오르는 길은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가 안개처럼 피어 난다.
황산을 닮은 풍경을 만났다.
그 천혜의 조망처 암릉난간에는 간간이 밖으로 드러나는 태양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진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다.
더러는 실제 풍경을 더 미화하는 사진발이 있기는 하지만 오감의 미세한 감각과 감정이 어우러지는 살아있는
풍경을 따라갈 수 있을까?
집착이다.
흐르는 단풍 따라 산 길을 돌아 내리는 시간도 바쁜데
그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보고 그 느낌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수고로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움키려 하는 욕심으로 절벽 위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김영갑씨가 돈 안 되는 제주 오름 사진만 평생 찍었듯이
사람 사는 건 다 제멋이다.
제 멋이 없으면 인생길이 팩팩하고 건조할 것이다.
유난히 단풍드는 활엽수가 많은 내장산처럼 온통 물드는 가을색으로 둘러 쌓인 백양사가 구중심처 마치
신선의 거처 같다.
백학봉에서는 길이 부드러워 진다.
낙엽이 쌓인 능선길이라 편안하다.
상왕봉 가는 길에 멋진 분재 같은 노송을 만났다.
그 아래로 가을이 물결쳐 가는데
호남정맥 길의 감회가 새로워 진다.
어디에나 추억이 남아 있어 산은 내게 마치 영사기처럼 지난날의 시간을
되돌려 준다.
그 시간들은 늘 아름답고 담묵의 수채화처럼 은은한 빛으로 채색된다.
긴 여정에서 읊었던 시조 한 수
산허리 끼고돌아 고갯길을 넘자오니
멀리두온 내님인저 이별이 애닯구려
가는길 고운잎새 바람길에 흩치오고
울음우는 두견조에 흐르는 수심이라
재넘어 초집찾아 발길을 재촉할 새
분홍 갑사댕기 님모습 웬 말인고
노을이 스러지고 어둠이 밀려오니
아득한 고향산천 멀기만 하더이다
세월이야 쉬지도 않으니 많이도 흘러왔다.
아직 넘어야 할 고개는 많이 남았어도 내가 걸어 온 길도 아득하다.
무수한 산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돌아 다녔어도 난 언제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었고 가지 못한 산과 아직 돌아보지 못한 세상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많구나
세월은 바삐 가는데 언제 마음은 바빠지지 않을까?
아가씨 둘이 정답게 길을 가고
총각 둘이 정답게 길을 가는데
작업 따위는 걸지 않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갈 길을 간다.
함께 여행길에 어울리기에는 날씨가 조금 흐려 분위기가 조금 쓸쓸하긴 하다.
노송아래서 흘러가는 계곡의 가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모두들 분주하다.
상왕봉
멋진 풍경의 기억이 남아 있던 지친 저물 녘의 아련한 수심이 드리웠던 상왕봉을 안개에
쌓여 있다.
상왕봉에서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의 호젓함은 사라지고 흥청이는 인파와 마주했다..
거센 바람에 안개가 춤을 추고 갑작스런 싸늘한 한기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못한 채 사진을 찍고는 서둘러 길을 떠난다.
우리도 서둘러 하산 길을 잡았다.
호남정맥 길에서 만났던 상왕봉의 감회는 이랬었다.
태양이 고개를 숙이는 상왕봉에 섰다.
유장하게 흐르는 능선을 굽어 본다.
황금 빛으로 부드럽게 구비 치는 능선은 화려한 단풍에서 멀어 있어도 소박한 갈색의
가을 빛으로 조용히 가슴을 흔든다.
멀리 백양사가 보이고 가야 할 아득한 능선을 따라가는 내 눈은 감상굴재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주 그리운산님과 함께 태극의 기를 받아서인지 저무는 날에도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들 힘겨워 하는데 내 컨디션은 최상인 셈이다.
사자봉
백양사 내려가는 길 안부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자봉으로 오른다.
축축히 젖은 능선은 가을색과 안개에 쌓여 가을산의 우수를 머금고
마음이 바쁜 산객들은 서둘러 하산의 길을 잡는다.
구태여 그 봉에 오른 건 혹시 돌아보지 못해 아쉬워질 풍경에 대한 미련이다.
내림 길 계곡의 단풍은 한창이다..
파스텔톤의 단풍과
열정의 붉의 단풍나무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의 잎새와 단풍을 함께 걸고 있는 나무
백양사에서 특징적으로 서식하는 비자나무 숲의 푸르름과 조화된 계곡의 가을색은
마음마저 붉은 가을로 물들여 간다.
그 아름다운 가을 길을 여유롭게 걸어 내렸다.
풍경에 취하고
가끔은 마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가을이 가져오는 명상과 사색에 골몰하기도 하면서...
우린 길이 좋아지고 넓어진 곳에서 앞으로 걷다 뒤로 걷다 하면서 아이들처럼 즐겁게
계곡 길을 따라 백양사로 내려섰다.
짧고 비교적 수월했던 백양사 여행길은 강렬한 단풍의 추억을 남긴 채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주면 단풍은 멀리 두륜산쯤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양사는 처음 둘러본다.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에서 음악회를 하는 걸 본적 있어도 분재 전시회를 하는 건 처음 본다.
이색적인 분재가 많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큰 감이 하나 달린 감나무
초본류로 알고 있는 국화가 흡사 나무처럼 분재가 되고
노송은 작은 분 위에서 멋드러지게 뒤틀린다.
별로 아름답지는 않았다.
사람의 손이 닿아 완벽하게 다듬어진 그 모습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낸다.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 강요에 의해 뒤틀린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운명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의 교만과 논리에 함몰되어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슬픈 운명을 닮았다.
자연 속에서 당당하나 위엄과 기품을 간직한 멋드러진 노송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숱한 산길에서 자유롭게 자라나 강렬한 개성으로 뭍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수 많은 나무들의
건강한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다.
잿빛 도시에서 욕심과 집착의 바벨탑을 쌓을 때보다 대자연 속에서 새처럼 자유로운 그 모습이
더 아름답다.
세월도 거부한 채 세상을 거침없이 떠도는 무릉객이면 보기 좋지 않을까?
단지 나만의 기쁨이고 아전인수격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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