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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조계산 (100대 명산 제 45산)

 

 

 

송광사-연산봉-장군봉-선암사 : 절구경 까지 약 4시간 30분

 

 

 

 

가끔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일상과 길게 늘어 있는 인연으로부터의 일탈

 

 

자유로운 바람처럼 허허롭게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승주 선암사로 가는 길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은 벌써 6 8분을 가르키고 있고

길은 가랑비에 젖고 있습니다..

새벽 5 20분에 일어났는데….

 

새벽의 대진 고속도로는 칠흑의 어둠에 쌓여 호젓하고

이따금 질주하는 차량의  불 빛이 잠시 어둠을 스쳐갑니다.

창 틈으로 맡아보는 신선한 새벽공기와 극단의 자유는

혼자만의 여행 길의 설레임을 불러냅니다.

 

손에 잡히는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박인희의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끝이 없는 길”에서부터 제목을 잃어버린 서장적인 노래들 ….

오래된 노래지만 젊은 시절 혼자 여행 길에 즐겨 들었던 까맣게 잊었던 노래

아직 박인희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테이프가 아직 남아 있다니….

 

 

흘러간 노랫가락이 그 속에 배어 있는 추억들을 되새김질 합니다.

젊음은 그 소중한 특권을 깨닫기도 전에  내 곁을 너무 빨리 지나 갔고

세월은 벌써 이만치 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빨리 과거의 강으로 흘러드는지…

그리고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느끼고 감동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빨라지는 세월이 아쉽고 우리에게 주어진 휴일의 의미가

더욱 소중해 집니다.

 

 

동행

세상에서 제일 죽이 잘 맞는 자신만 데리고 배낭 가득 자유를 담아 떠나는 여행길

희뿌연한 안개 와 어둠의 베일을 들추고 능선의 실루엣  위로 살며시 다가온 새벽

  

가끔 차량의 불빛이 지나는 새벽의 고속 도로는 한적하고 조용합니다.

 

들개처럼 어둠이 내린 산하를 종횡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심산의 새벽은 지친 어둠의 끝자락에서 어김 없이 희망처럼 다가왔었습니다.

  첩첩의 산릉에 둘러쌓여 맞이하는 푸른 새벽의 신비로움은

정한수를 정수박이에 부어내는 신선함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코끝을 뚫어 주던 그 새벽의 숲 냄새가 다가옵니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깨끗한 휴게소 분위기가 허기를 동하게 합니다.

 

진주 못 미쳐 마산-순천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가끔 빗줄기는 여름철 폭우를 방불케하는 격렬함으로  차창을 거세게 때립니다.

 

승주 나들목을 지나 선암사로 가는 길

비는 이제 가랑비로 변했고 

9시가 넘어선 길에는 지나는 사람도 차량의 이동도 없어 한적하기

그지 없습니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시간은 9 40분을 가르키고 있으니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대전에서 3시간 걸린 셈입니다.

 

고승들의 부도 밭을 지나 선암사로 오릅니다.

선암사의 명물 승선교는 보수 공사가 한창입니다.

 

 

비 뿌리는 산

선암사 경내 둘러보기를 잠시보류하고 조계산을 오릅니다.

산허리에 피어나는 안개

그리고 인적이 없는 산길에 떠도는 경건함과 엄숙함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비에 촉촉히 젖고

빗물에 번쩍이는 오랜 수령의 수목등걸 사이로 군데군데 고로쇠를 채취하는

물통이 보입니다.

억새는 어느 바람결에 누운채 일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얼음이 녹은 계곡의 물은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아직 갈색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조계산 계곡

 

연산봉 가는 8부 능선 쯤에서  버들강아지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도해 어딘가에 다가올 봄을 생각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연산봉에서 비로소 사람을 만났으니 남도명산 조계산의 명성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오솔길은 너무 호젓하고 상쾌합니다.

세우가 날리는 조계산 아침

 

사람들은 비 내리는 산의 운치를 모르는 듯합니다.

우중산행에서 예기치 않은 절경을 만난 기억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연의 화폭에 시시각각 그려대는 운무의 변화무쌍한 조화를 바라보며

발아래 구름을 두르고 한폭의 동양화 속을 거니는 무릉도인이 되기도 하고..

거세게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 속에서 오히려 가슴 후련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치 피학의 본능이 잠재되기라도 한 듯….

물론 고통스런 산행의 기억들도 많지만

지나고 나면 가장 오래 기억되는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산은 계절과  날씨를  넘어서 언제나 싫증날 수 없는 고혹의 자태로 거기 있습니다.

송광사는 다음달 마눌과  아이들과  함께할 남도 기행 코스로 남겨두고

연산봉에서 되돌아 장군봉으로 가는 길

세찬 바람이 안개를 거칠게 휘몰고 나뭇가지는 소리내어 웁니다.

군데군데 눈이 남아 있지만  바람결이 차갑지 않은 걸 보면 이젠 풀 죽은

동장군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각을 알리고 있습니다.

눈이 녹아  몹시 질척거리는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자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았던 산죽길이 산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웃음이 납니다.

이 잘 가꾸어진  나 혼자를 위한 정원이

 

돌무덤과  표석의 기치를 세우고 장군봉은  이젠 비가 멎은 흐린 하늘 아래 웅크리고

있습니다.

호위병이 없는 외로운 장군의 서글픔

엄숙한 모습이지만 위엄이 사라진 외로운 장군봉엔 인적도 ,풍광도, 바람도 없습니다.

자욱한 산 안개에 가리운 풍광을 아쉬워하며 다시 선암사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르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일사천리로 내려갑니다.

해빙기의 진흙 길

봄이 오는 대지를 스쳐 지난  바지 가랭이가 장난이 아닙니다.

 

선암사

도선국사가 창건한 이래

보물 400호 승선교외에 6점의 보물 그리고 지방문화재 12점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

경내에 들어서자

정갈한 고요함이 막아 섭니다

단아한 모습으로 제리에 자리잡은 건물과 수목들은 

조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안개 흐르는 산사

하지만 오늘은 경내만 구경할 생각입니다.

건물의 세부와 보물들 하나 하나는 훗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유명한 해우소 까지 ….

이젠 제법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경내를 오가고

가끔 스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려 배낭을 내려놓다가 

도저히 진흙 범벅으로 대웅전에 들어가기가 미안해

경내만 여기저기 돌아보고 산사의 추억 몇 점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넘어 섭니다.

계곡으로 조계산을 올라 능선을 따라 연산봉과 장군봉을 아우르고 하산하여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는데 5시간 정도가 걸린 셈입니다.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마무리 한 것처럼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대충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이젠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주암을 지나 옥과 나들목 까지…

화순온천 가는 길은 옥과나들목 우측으로 11km 정도 진행하다 우측 길로

개울을 따라 올라갑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방도

아직 봄을 알아 차리지 못한 갈색의 대지는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달리는 차창 밖으로 천천히 밀려 갑니다.

땀을 흘리고 잠시 경건한 산사의 바람에 숙연해진 채

비에 젖는 들녘의 풍광을  따뜻한 차 안에서 바라보는

이 한가로운 여유가 편안한 상념을 몰고 옵니다..

 

다시 일년 만에 친구들과의 해후입니다.

때론 변화하는 세상에 고뇌해야 하는 답답함과 힘겨움이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언제나 반갑고 활기찬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직 세상에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위안과 교훈으로 가득찬 대자연

내 가슴크기 만큼 더 행복할  가족들

사라지고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추억

아직 가지 않은 많은 나라의 

홀연히 떠나는 여행 길에서 문득 만날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

친구 그리고 한잔의 술

 

반가운 분위기 속에서

옛날 보다 더 좋아진 체력과  몸에 좋다는 염소 고기의 안주 발을 등에 걸고

지난 날의 추억을 진하게 태운 술잔은 하염없이 돌고

낯설은  이향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습니다...

 

 

7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친구들을 남기고  온천으로 갑니다...

지난밤에 마신 술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머리가 개운하고 몸이 가뿐한 편입니다..

하여간  어느 지역에서건 등반 후 시간만 허락되면 온천을 찾는

온천메니아인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인 셈입니다.

콘도 식당에서 된장 꽃게탕으로 아침을 마치고

오후까지 머무를 친구들에게  인사를 남긴 채

다시 아침 여행길에 오릅니다.

 

아침 8

비가 오는 호남고속도로 물보라를 날리며 질주합니다...

대전을 기점으로 반원으로 한바퀴 돌아 버리는데  한나절 이면  충분한

손 바닥 만한 우리의 국토가 서글프지만

훌쩍 떠나면 만날 수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과 추억으로 가득한 우리의 산하들

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지나면  봄을 맞이하러 가는 발걸음이 더 바빠질 것입니다.

 

 

 

 

 

 

 

 

 

 

 

 

 

 

마눌 컨디션이 좋지 않다.

고속도로를 오르기도 전에 속이 안 좋아 멀미를 한다.

느긋하게 즐기려던 남도 여행길의 불안한 출발이다.

 

2003년 혼자 여행길에 선암사를 다녀오고

그 해 4월에 가족들과 만난 송광사의 풍경은 이랬었다.

 

송광사

3대 사찰에 대한 너무 큰 기대가 오히려 실망스러움으로 다가왔다.

호객하는 식당들

무수한 차량의 행렬

먼지가 풀풀 나는 길 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인 경내

동화사나 금산사의 웅장한 규모의 절을 상상했던 탓에 긴 숲 길 끝에 나타난 송광사는

그저 평범한 모습의 절에 지나지 않았다

선암사와 같은 산사의 고즈녘함과 고요함은 여지 없이 깨어지고  속세의 번잡함이 너무 깊숙히 들어와

앉아 있다.

3대 사찰의 명성은 규모의 명성은 아니었다.

우리가 항상 대하듯 전통과 역사는 항상 장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남겨지는 것은 아니다.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삼보(삼보)는 부처님() , 가르침() , 승려 () 이다.

불교인의 신앙은 바로 이 세가지 보배를 값지고 귀한 것으로 알고 그에 귀의하여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 삼보사찰(삼보사찰)이 바로 양산의  통도사 , 합천 해인사 , 순천 송광사이다.

통도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불보사찰) ,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전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범보사찰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 이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

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 시켰던  근본도량이 바로 이 송광사가 아닌가?

한국 불교 전통의 산실이고 전통을 잊는 중요한 사찰을 의미를 새기며 경내를 돌아보고 아이들과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오늘의 송광사는 오히려 고즈녘하다.

토요일인데도 인적은 없고 경내는 조용했다.

그날의 분주한 분위기로 참으로 큰 절이란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절의 규모는 그다지 큰 절에 속하진

않는다.

2시 까지 내려와야 순천만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연산봉과 장군봉을 아우르려면 송광사에서 지체해서는 안될

터라 마눌을 채근하는데 마눌은 조용한 절의 분위기에 빠져서 늑장을 부린다.

마음이 급하니 주마간산이다.

 

 

 

 

 

 

 

 

장군봉 가는 길

임도를 따라 굴목재를 거쳐 선암사 까지 가서는 명찰순례길이지 조계산 산행길이라 할 수 없다.

조계산의 능성이를 타려 임도 같은 산길을 따라가다 산 길로 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임도 길을 따라  보리밥집에 갔다가 굴목재에서 장군봉을 오른다고 했다.

 

계곡은 눈이 없는 스산한 겨울 모습이다.

지난주에 백암산 절정의 단풍을 보았는데 한 주를 지난 조계산 계곡엔 단풍은 고사하고 낙엽이라도 가지에

걸고 있는 나무들이 거의 없다.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조계산 계곡

거친 돌길과 일찍 떠나는 가을로 사람들은 조계산에 발길을 끊은 모양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눌의 발길이 밀린다.

아직 뒤에 몇 명 산님들을 두고 오르는 길인데 준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능선에 올라 치자 먼저 간 일행들이 휴식하고 있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길은 편해졌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 곳인지 나목들은 삭풍에 알몸을 드러낸 채 낙엽은 길 위에 두텁게

쌓여 바람에 날린다.


 

 

 

 

 

 

 

 

                                    

                                    장박골 삼거리를 지나 산죽 길을 통과하니 멋진 조망이 살고 바람의 기세가 한 풀 누그러 진다.

                                     마른풀 위에 태양의 따스함이 머물러 그 곳에서 식사를 했다.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편안한 능선 길이라 별다른 무리는 없는데 장군봉  가까이 가자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 친다.

호남정맥 길은 아쉽게도 이 장군봉에서 끊어졌다.

파죽지세로 줄달음치던 호남정맥 종주길은  12구간 돗재 노인봉-개기재 에서 날개가 꺾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

6개월여의 투병의 우여곡절 끝에  18구간에서 다시 합류했다가 제 19구간의 주릿재 -장군봉-접치를  마지막으로

통한의 분루를 삼키며 다시 날개를 접어여 했다.

심해지는 허리통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곳이 호남정맥의 그 아쉬운 마지막 길이었다.

언젠가 다시 가야 할 호남길이지만 두 번 올랐던 조계산 장군봉의 감회가 새로워 진다.

 

  

 

 

 

 

 

 

 

장군봉 코 앞에서 조망처가 선다.

조계산 세상은 벌써 겨울 빛이다.

막아선 것들이 아무 것도 없는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눈을 뜰 수가 없다.

  

 

 

 

 

 

 

장군봉에서 운집해 있는 사람들 틈에서 기념촬영에 성공했다.

세번 째 찾은 장군봉이었다.

 

 

 

 

 

 

 

 

 

 

 

 

 

 

 

하산길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이긴 해도 그다지 험한 길은 아닌데 오늘 컨디션 탓이지 마눌의 발길은 많이 밀린다.

중턱을 내려서자 산색이 울긋불긋하다.

1시간쯤 걸려 선암사 위 암자에 다달았다.

그냥 갈까 하다가 경내를 한 번 둘러 보는데 종루나 건축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경건히 여미었을 암자엔 스님 한 분이 마당을 쓸고 한가로운 개가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암사

선암사 가는 길에 뒤로 걸었다.

낙엽이 쌓인 길을

이제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으로 마눌의 발걸음도 가벼워 졌다.

그 날 혼자 떠나는 여행길 아침에 만났던 고요하고 단아했던 선암사의 기억을 떠올리며

설레임으로 경내에 들었다.

 

우짜 이런 일이

오래 간직했던 고요한 산사의 평화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경내는 축제처럼 술렁이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처럼 잔뜩 내걸린 연등

작업을 하는 크레인들

붐비는 인파

이건 그 선암사가 아니야…”

6년쯤 흘렀는데 세상은 뒤집어졌다.

내 기억 속에 소박하고 정갈했던 작은 절은 경내가 오히려 송광사보다 더 넓고 사람도

훨씬 많았다.

그 봄 곳곳에 공사의 잔해가 널리고 인파에 몸살을 앓던 송광사의 아침이 오히려 그 옛날

선암사를 더 닮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변치 않고 그대로 인 것이 무에 있으랴 ?

내 마음조차 무시로 바뀌는 걸….

 

곳곳에는 늦가을 산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데

가슴에 남긴 추억하나 가을 바람에 날리어 갔다.

또 무언가 사라지고 변해가는 아쉬운 가을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항변할 수 없는 체념으로 가을은 조금씩 쓸쓸한 표정이다.

옛 추억 여행보다는 남겨진 곳으로 가는 여행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선암사에서 주차장 가는 길은 20분은 족히 걸린다.

선암사 경내를 돌아 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늘 욕심이 사람을 분주하게 만든다.

우린 예정보다 30분 즘 늦었고 더 늦은 부부가 있어서 순천만은 막걸리를 한잔 먹고 세시가

넘어서 순천만으로 출발했다.

 

 

 

 

 

 

 

 

 

 

 

 

 

 

 

 

 

 

 

 

 

 

 

 

 

 

 

 

 

 

 

 

 

 

 

 

 

 

 

 

 

 

순천만

 

 

 

 

 

삶은 여행길이다.

시간여행

우린 길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목표를 정하긴 하지만

우린 의외의 길을 걷기도 하고 색다른 풍경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행길이 그렇듯이

지나온 시간과 길에는 일말의 후회가 있지만

미지의 여행길이란 원래 신나고 멋진 것이다.

마음에서 열정과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설레임과 기대 속에 늘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만난다.

 

 

 

 

 

 

 

 

 

 

 

 

 

 

 

 

 

맑아진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듯 하더니

날이 조용히 저물어 간다.

바람이 조금 더 스산해지고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새어 나온다.

새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쓸쓸함도 아름답다 .

너무 남용되는 아름답다는 말

사람에도 , 풍경에도, …..

그래서 늘 사는게 바쁜 우린

아름다움에 자꾸 무감각 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빠진 갈대 숲의 빈 배

순천만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조금 외로움을 느꼈다.

가을 때문이었다.

가을은 삶의 호수에 던지는 작은 돌이다.

가슴 속에서 파문의 동심원이 점점 더 커지고

그 아름다움은 우수를 더욱 깊게 해 주었다.

 

처음의 잔잔한 흔들림이 격랑을 몰고 온다.

수면아래 가라 앉아 있던 것들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움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

 

 

 

 

 

 

아주 오랜 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갈대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황량한 계절을 슬퍼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갈기가 바람에 날리어 가고

그 위에 흰 눈이 쌓이고

모든 것이 다 세월 속에 잠들어가고 나서

겨울을 지낸 한 뿌리가 다시 새움을 티우고

푸른 삶을 노래할 때

비로소 순환하는 세월의 이치를 깨우쳤을 것이다.

 

채움은 곧 비워져야 할 운명이고

비움은 다시 채워져야 할 희망과 기쁨임을

갈대는 바람에 쉬어버린 목청으로 노래한다.


 

 

 

 

 

순천만 에서

갈대의 슬픈 노래를 들었다.

바카스 신의 무녀들이

역설적인 외로움을 견디려

계절의 수심을 불러내는 슬픈 노래

 

갈대의 노래는 가슴에 빈 바람구멍을 내지만

세월에 돌아 누운 감상이  

늘 허기진 삶에 치친 휴식을 몰고 와  

슬픈 노래도 아프지 않았다.

순천만에서는

가쁜 노래나 슬픈 노래나 모두 아름다울 수 있었다.… 

 

 

 

 

 

 

환락과 유희 , 그리고 방탕한 쾌락의 사간은 지나갔다.

삶이 더 건조하고 메마르기 전에

가을속으로 다시 떠나야한다.

잠들어야 하는 계절이 오기 전에

쓸쓸함과 황량함으로 더욱   빛나는 고독 속에서  

전원 교향곡의 낮은 음률을 다시듣고 싶다.

낭만과 사유의 길을 걸어 현자의 미소를 만나고 싶다

 

 

 

 

 

비릿한 바닷바람에 날려 가는  

갈대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냥 어둠 속에 잠들지 말아요.

떠나요 멀리

미지의 어떤 곳

이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야 할 때예요

마음에서 세월을 모두 털어 내세요

마음에서 슬픔을 모두 털어 내세요

채우지 않아도 좋아요 

다시 돌아 올 봄날을 위해 텅 빈 채로 남겨 두세요

 

선택하지 못한 다른 삶을 아까워 말아요

어떤 삶에도 기쁨과 슬픔은 등을 맞대고

어떤 삶도 생각만큼 길지 않아요  

 

 

 

 

 

넓은 갈대 숲을 걸어간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죽음이 휴식을 주기 위해 친구처럼 찾아 온다고

어느 갈대의 주검 위에서 또 다른 갈대가 노래하듯

다른 누군가의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간도 저물어 간다.

 

무슨 소리 들린다.

조용하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거야

운명의 신이 눈에 뛰지 않게 얌전히….”

태고적 신의 경외처럼

영원한 별들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 빈 우주를 향해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것은 어떤 원초적인 시대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고요와 평화

어디론가 더 멀고 넓은 곳으로 이어져 있을 미지의 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혼돈의 우주가 질서를 찾아 안정을 찾아가는 태초의 모습처럼

갈대 밭 위로 드리우는 어둠에 안도와 조용한 휴식이 내려 앉는다.

영혼의 길 같았다.

더 늦지 않게 진리와 자유를 찾아

자신를 찾아 고독한 모색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기우는 태양의 빛은 신의 계시를 암시라도 하 듯

물 길 위에 붉은 표식을 남긴다.

바람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바람과 갈대의 외로움만 있는 곳에 떠도는

황홀한 고독을 본다.

그 고독은 낙조와 함께 절정에 이르고

어둠과 함께 고요히 사그러 진다.

 

여기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귀향의 시간에 우린 되돌아 가을 풍경 속을 거닐고자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온다.

고독을 견디던 갈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로 외로움을 털어 낸다.

나는 어둠과 별들 사이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