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7월호 발췌
막걸리 열풍, 막걸리 大戰 |
허시명│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막걸리 업체의 맹주인 장수막걸리, 막걸리의 변신을 주도해온 국순당, 포천막걸리를 포함한 중형 막걸리 제조장, 막걸리에 새로 뛰어든 소주회사. 여기에 유통에서 강세를 보이는 식음료회사들까지 합류하면서 막걸리 시장이 격전장으로 변모했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
2009년 말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국장은 국회에서 열린 ‘막걸리 세계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2012년에는 막걸리 시장이 1조원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좀 과장된 목표라고 여겼다. 막걸리의 세계화처럼 일종의 희망 사항이지 실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술 시장은 출고가 기준으로 8조6224억원 규모. 그중에서 맥주가 3조5680억원으로 42.7%, 희석식소주가 2조8803억원으로 33.4%를 차지했는데, 탁주인 막걸리는 고작 1471억원으로 1.7%에 불과했다. 막걸리 매출은 2005년 1330억원, 2007년 1427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엔 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 느닷없이 1조원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0년 여름의 현실은 다르다. 막걸리 시장의 팽창은 더욱 가속화해 올 연말까지 5000억원 달성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렇게 놀라운 신장세를 보인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 수요가 발생하고, 누가 생산량을 감당하는 것일까? 그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국순당의 발 빠른 변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막걸리는 한순간도 뉴스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다. 2009년 막걸리 바람의 진원지로 엔고 현상에 따른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 언론의 지속적인 취재 열기, 막걸리 품질 향상에 대한 소비자의 재인식, 등산 인구 증가, 건강에 좋은 웰빙주에 대한 관심 증대, 햅쌀 누보 막걸리 행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10년 막걸리 열풍의 동력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 동력의 한 축으로, 국순당이 2010년 1월부터 내보내기 시작한 최초의 막걸리 TV광고를 꼽을 수 있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인기를 얻은 탤런트 황정음을 앞세우고, 가수 윤종신에게 ‘막걸리나’ 노래를 의뢰해 만든 광고 방송을 통해서 상큼 발랄한 이미지, 고급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국순당이 요즘 막걸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생막걸리의 국내 유통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30일로 늘였고, 수출 생막걸리 유통 기간은 90일로 늘였으며 전국으로 냉장 유통망을 확대했다. 또한 단품종에 머물지 않고, 배용준을 이용한 일본수출용 고시레 막걸리, 최고가에 팔리는 탁주 이화주, 감초가 들어간 막걸리, 우리쌀 100%로 만든 우국생막걸리 등으로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국순당은 1996년부터 캔막걸리를 생산하고 2007년 10월 페트병 쌀막걸리를 출시했지만, 2009년 5월 이전까지는 막걸리 시장에 주력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5월 생막걸리를 처음 출시하면서 1년 만에 3000만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막걸리를 출시하기 전 3000원대에 머물던 국순당의 주가는 1년 사이 5배인 1만5000원대로 올라섰다. 국순당의 2007년 막걸리 매출은 5억원이었다. 2008년 86억원, 2009년 105억원으로 성장하더니, 2010년 1분기에만 매출 105억원을 기록했고, 연말까지 50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순당이 기록한 경이로운 매출 확대는 막걸리 열풍을 등에 업은 것이다. 물론 이 지표가 모든 양조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비를 쓰고, 생산 시설을 늘리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막걸리 업계 안팎에서는 국순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장수막걸리의 조용한 행보
서울탁주제조협회의 자회사인 서울장수주식회사 준공식이 2010년 5월26일에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 현지 공장에서 진천군 기관단체장과 지역 주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탁주는 10°C에서 10일가량 보관할 수 있는 장수생막걸리를 주력 상품으로 삼아 영등포, 구로, 강동, 서부(은평구), 도봉, 성동, 태릉 연합제조장 7곳이 사이좋게 수도권 시장을 균점해왔다. 그런데 막걸리 바람이 불면서 국순당이 공세적으로 나오고, 식품유통회사들이 지방 양조장 제품을 수도권에 유통시키면서 서울탁주는 방어적인 자세만을 취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연유로 서울탁주는 급기야 서울을 벗어나 진천에 새 양조장을 마련한 것이다. 장수막걸리 진천공장은 2만6769㎡의 대지에 연면적 1만4850㎡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1층에는 1일 10만ℓ가 넘는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 2층에는 연구실험실과 세미나실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국내산 쌀로 만든 유통기간 1년의 살균 막걸리 월매를 1ℓ와 750㎖ 페트병, 350㎖ 캔막걸리 세 종류로 출시(출고 가격 기준 1일 1억1000만원 정도)한다. 전국 시장 및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장수막걸리는 1978년 업계 최초로 말통에서 병으로 용기를 바꾸었고, 1992년 자동제국기를 사용하면서 쌀막걸리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병 입구에 탄산가스가 배출되는 홈을 만들었으며, 올리고당 10%를 넣어 맛이 부드럽고 탄산 기운이 오래가는 막걸리를 제조하면서 막걸리 시장을 선도해왔다. 장수막걸리의 시장점유율은 전국 막걸리 시장의 40% 정도인데, 서울 시장의 80%, 수도권 시장의 70%를 점유하면서 올린 성과다. 장수막걸리는 2008년 663억원 매출, 2009년에는 1135억원 매출을 올렸고, 2010년에는 1500억원의 매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상반기까지 막걸리 시장은 장수막걸리가 주도하는 판을 국순당이 추격하는 2파전 양상을 띠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 양강 구도에 회오리가 불어올 전망이다. 소주 회사의 막걸리 시장 진입은 진로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 국순당이 TV 광고를 하면서 막걸리 이미지 변신을 주도했다면, 진로는 일본에서 막걸리 TV 광고를 하면서 막걸리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진로는 제조 중심이 아니라 유통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고, 국내 시장이 아니라 일본 시장에 먼저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다. 막걸리업에 뛰어들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판단된다.
진로와 롯데의 聲東擊西
소주 업체 진로가 막걸리에 관심을 둔 것은 일본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주목해서다. 2008년 일본에서 한국 막걸리 브랜드 조사를 했는데, 그때 진로가 이동막걸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는 진로가 막걸리를 유통시키지 않았을 때다. 일본인들이 한국 술의 대표 상표로 진로를, 한국의 술로 막걸리를 떠올리면서 진로막걸리라는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뒤 진로는 본격적으로 막걸리 상품 개발팀을 구성해 2009년 12월부터 진로 막걸리를 일본에서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이때 진로가 택한 것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다. 2009년 경남 진해시의 일송주조와 거래를 시작했고, 2010년 2월에는 경기 포천시의 상신주가와 손을 잡았다. 유통 물량이 늘어난 2010년 5월에는 전주시의 전주주조와도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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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늘 지방 소주 회사로부터 시작됐다. 예컨대 소주 업계의 변신 코드 중 하나인 저도주화는 1995년 경남 무학과 부산 대선주조가 시작했고, 프리미엄 소주 시장은 1997년 보해 김삿갓이 열었다. 소주 회사들의 복분자주 시장 진출은 2004년 보해양조가 효시다. 복분자주는 이제 진로가 복분자주동의보감, 롯데가 복분자주구십구를 출시하면서 소주 회사의 주력 상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무학과 보해의 막걸리 생산은 진로와 롯데의 막걸리 제조 전주곡이라고 하겠다.
식음료 업체들의 진격
막걸리 회사들의 생산 설비 확대, 약주 회사들의 막걸리 생산 라인 확보, 소주 회사들의 막걸리 유통과 생산 참여에 이어 식음료 회사들도 막걸리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식음료 회사들은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이라는 안정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어 짧은 기간 막걸리 판매량을 늘릴 능력을 갖고 있다. 막걸리 제조와 유통에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식음료 회사는 CJ제일제당이다. 2010년 3월 CJ제일제당 김진수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막걸리 균주에 대한 기초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제조 공장은 짓지 않는다”며 “해외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제조사들의 해외 수출을 대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6월 용두산조은술, 우포, 은자골막걸리, 전주주조 등과 판매 대행 계약을 체결해 국내 유통에도 뛰어들었다. 농심의 막걸리 시장 진출도 초읽기다. 농심은 3월1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특정주류도매업을 신규 사업 목록에 추가했다. 농심은 중형 규모의 막걸리 업체 인수를 추진하면서 자사 제품인 제주 삼다수를 기반으로도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농심의 제주 삼다수 막걸리 프로젝트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삼다수 마을 막걸리를 만들어보겠다며 농심에 유통과 판매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농심의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제주 삼다수라는 차별화한 물과 제주 삼다수 유통망을 가진 농심의 합작이 돌풍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코파이로 중국 러시아 동남아 시장을 호령하는 오리온도 막걸리 업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관계사이면서 영화 투자 및 배급 업체인 미디어플렉스가 2010년 5월 참살이탁주의 지분 60%를 5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룹의 의향인지, 미디어플렉스의 사업 다각화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발표 이후 상장사인 미디어플렉스의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치더니 7000원대에서 단숨에 1만1000원대에 진입했고, 6월 현재 1만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참살이탁주는 2009년 5억원의 매출을 올린 작은 술도가지만, 유기농쌀로 막걸리를 빚어왔고, 전국대회에서 우수 막걸리로 선정된 적도 있다. 문근영 서우 천정명 주연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배경이 되면서 주가를 더 높였다. 경기 광주시 생산 공장에서 월 20만ℓ를 생산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올해 목표였는데, 상반기 중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양조장 규모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막걸리 대전의 최후 승자는?
막걸리 업계의 맹주인 장수막걸리, 막걸리의 변신을 주도해온 국순당, 포천막걸리를 포함한 중형 막걸리 제조장, 막걸리업에 새로 뛰어든 소주 회사. 여기에 유통에서 강세를 보이는 식음료 회사들까지 합류하면서 막걸리 시장은 격전장으로 변모했다. 그렇다면 이 대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자본력과 유통망에서 앞서는 소주 회사와 식품 회사가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중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정부는 막걸리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막걸리 전용 잔 16개를 개발하고,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 16강 막걸리를 선발했으며, 막걸리 영문 애칭으로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를 홍보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전이 있던 날 서울시와 함께 서울 무교동에서 ‘G20 정상회의 성공 기원 2010 막걸리 한식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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