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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낙동12구간 (통점재 ~ 고라산 ~ 침곡산 ~ 태고산 ~ 먹재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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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귀연 송년회를 했다.

벌써 한 해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1부 사회가 맡겨져서 패턴을 좀 바꾸었다.

좀더 감성적으로 산과 귀연 그리고 사람들을 부각 시키고자 했다.

딱딱한 행사에 좀더 변화와 포인트와 넣어 흥미와 관심을 끌고자 했던 시도는 그래도 신선한 반향과 주목을 받았다.

 

 청산님이 정성껏 준비한 영상자료는 다시 설레는 가슴으로 한 해를 돌아보게 했다.

그 곳에 내가 있었네…”

지난 시간의 추억이 들풀의 향기를 폴폴 날리면서 낙엽의 빛깔로 다가 왔다.

흔쾌한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아쉬운 여행길엔 내 사진이 빠져 있었다.

그래 언제 다시 가면 되지….

그런데 세월은 무지 빠르다.

세월이 빠른 것은 그렇다 치고 척박한 세월에

나의 가슴이 조금씩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은퇴 후 자신 있게 세상을 박차고 나가기 전에 나는 조금씩 메말라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세월따라 감동과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고 빛이 바랠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세월에 마음을 잃지 않는 거

 

이래 저래 술을 많이도 마셨다.

결국 분위기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모처럼 만난 산 친구들과의 허심탄회한 시간

그리고 마치 한 해를 모두 정리하고 보내는 하루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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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쩔어서 돌아왔다.

1 30분 쯤

그리고 난 무겁고 지끈거리는 머리로 5시 반에 로보트처럼 깨었고 불꺼진 거실에서

허망하고 무기력하게 널 부러져 있었다.

오늘은 더 자고 싶은데 잘 수 가 없다.

직원들과의 산행이 예정되어 있고 점심에 반주 한 잔 더 걸쳐야 한다. 

 

난 휴식이 필요하지만 누군가 나를 불러주는 이 있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아깝게 흘러 가는 소중한 나의 인생을 위하여….

어머님 집에서 2시간 자고 저녁 먹고 돌아왔다.

동생부부가 왔는데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넘 졸려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 잘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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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은 다시 씩씩해져서 돌아오라고 어둠 속에 기다리고 있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4시간 30분 잠을 자고 나서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새벽의 들창을 열었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

이 나이에 휴식 없이 이래도 되는 거야??”

가끔 그런 걱정이 든다.

그럼 한 편에서 소리치는 놈 또 하나  있다.

꼴값 떨고 있네

야 이눔아 너 장사 하루 이틀 혀?? ”

 

그래 내가 기대는 건 산이다.

가슴 까지 시원해지는 산바람이고

흙을 밟고 거친 길에서 살아나는 신바람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서 후회한 날 하룬들 있었나?

아무 일없이 떠나지 않아서 후회하지 않은 날 하루라도 있었나?

움추려 잿빛 둥지에 칩거하면 또 뭐하나?

짧은 우리 삶의 기쁨과 희망을 찾아 떠나야 한다.

어디라도 어디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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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 행 일 : 2010125(일요일)

2. 산 행 지 : 낙동정맥 제 12구간

3. 산행코스 : 통점재 ~ 고라산 ~ 침곡산 ~ 태고산 ~ 먹재 ~ 한티재

4. 산행거리 : 23.5km

5. 산행소요시간 : 8 시간 25

6. 날씨 :말고 쾌청함

 

 

7. 경유지별 소요 시간

대전출발

04:50

산행시작

08:08

고라산(733.9m)

09:05

가사령

09:33

헬기장(709.1)

11:02

사관령(788.2m)

10:34

배실재

12:34

중간점

12:49

침곡산(725.4m)

15:09

서당골재

14:52

태화산(678.8m)

15:30

먹재

16:21

한티재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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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우린 아무런 기대없이 보내는 허망한 하루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치유의 길을 가고 있는 거다.

나는 화기와 독기가 사라진 갈색의 산색 사이로 사색가 명상의 길을 걷고 있는 거다.

 

산의 마법을 느끼는 건 얼마 걷지 않아서이다..

산이 항상 내게 말했다.

흔들리지 마라

삶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같이 가벼워야 한다.

 

붉은 햇빛이 쏟아진다.

다시 산에 드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한다.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가는 길은 갈색 빛이다.

그 갈색 위에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산릉은 주홍빛으로 물든다.

 

 

몇 발자국을 걷지 않아 자켓을 벗어 던졌다.

몸이 골아 있긴 하다.

웬만한 길에서 땀을 흘리지 않는 내가 벌써 등과 뒷머리에 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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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의 무본

스승을 따라 백두대간을 마무리하고 낙동정맥 길을 걷고 있다.

의욕에 넘치던 스승은 A팀으로 빠져 완주의 부담에서 벗어 났는데 그는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다.

그의 젊은 가슴은 산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45세에 백두대간을 마무리 한 내가 10년만 더 일찍 백두대간을 종주 했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더 넓은 가슴과 인생을 관조하는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아쉬움 아니었을까?

인상 좋고 과묵한 그가 듬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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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분 후 오름 길을 잠시 마감하고 바람 길에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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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길

잎이 진 나무 사이로 건너편 분지가 내려다 보인다.

그래서 눈이 없는 겨울 산은 황량한 모습이지만 오히려 후련하고

대지를 덮은 조용한 휴식의 빛깔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속살이 훤히 보이는 산릉은 더 정겹고 푸근하다.

황량함과 쓸쓸함이 주는 역설적인 충만함

다 벗어버린 대지 앞에서 난 오히려 홀가분 해진다.

그래 모두 벗어버리고 다 내려 놓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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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아직 푸르름이 잡힌다.

휴식과 평화를 거부하며 삶의 짐을 내려 놓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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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지맥 분기점에 왔다.

이곳 고라산(古羅山 744.6m)에서 분기한 산줄기는 석심산(石心山 450.6m)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보현기맥과 팔공기맥을 분기한다. 박성태의 '신산경표'에는 가사령~석심산~북쪽 산줄기를 보현지맥(普賢枝脈)으로, 석심산에서 달의령(일명 다리방재)~면봉산~방가산~화산을지나 약 65km거리인 대구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적고있다.

 

바람이 더 거세졌다.

잠시 발 길을 망설이게 하는 곳이다.

길이 오름길을 포기하고 산허리로 돌아간다.

원래 산허리로 돌아가는 것인지 정맥길 마루금이 그렇게 연결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영락없는 알바 덫.

마루금이란 으례껏 높은 곳으로 오르는데

더 많은 리본이 좌측으로 급하게 하강한다.

 

어찌보면 표지판에 살짝들린 가사령의 화살표도 윗쪽 길을 가르키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거기에도 무수한 표지기가 달려 있으니 야간산행이면 십중팔구  여지없이 윗쪽으로 쳐올려 길을 잡을 수 밖에 없겠다.

지도를 보니 휘어지는 산 길이 선명하다.

역사적인 곳에서 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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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넓은 분지에서 흘러가는 산릉을 바라보다 임도를 만나고 다시 오래지 않아 가사령에 떨어졌다.

1시간 30분 만이다.

가사령(佳士嶺)은 포항시 죽장면의 가사리와 상옥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가사리는 가시내 솟, 특히 젊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솟의 명산지였다고 한다.

 

지난 번에 여기서 끊었으면 오늘 제대로 널널산행 하는 건데 아쉽기도 하지만 기력이 다한 산행 막바지에 산간 도로에 내려서서 다시 산 길을 치고 올라 1시간 30분 더 가기란 결코 만만하진 않은 일이다.

 

이 곳  경북 포항시 죽장면의 가사령(해발 500m)과 기북면 성법령(해발 709m)에서 금호 강이  발원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낙동강 지류 가운데 두 번 째로 큰  2053.3, 유역면적과 유로는 연장 117.5㎞에 이른다. 금호강은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고현천과 신령천을 합쳐진 뒤, 경산을 지나 대구 동촌 부근에서 문암천과 합류하고, 다시 신천과 합한 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에서 낙동강 본류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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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한 파도 소리

낙엽의 파도

낙엽은 해변의 물살처럼 낙엽은 넘실거린다

밀려드는 파도를 밟으며 해변을 걷는다.

낙엽의 파도는 무릎 위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만추의 서정

시간은 낙엽은 마르게 했고 세월은 내 마음 속에서 문학과 낭만을 가져가지 못해 안달했다.

마치 시간에 영혼을 빼앗긴 듯 한 낙엽은 힘없이 바람결에 휩쓸려 쓸쓸히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지만 늘 마지막 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소중한 감동의 불씨를 지켜주었다.

내 마음에 세상이 침범할 수 없는 한 뼘의 성역이 있다면 그 성문을 굳게 지키는 군사중에는 낙엽이 있을 터이다.

성 안에 남아 있는 순수와 감동

문학과 낭만

젊음과 열정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미지의 세상을 향한 가득한 호기심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한 장의 낙엽이고 한 줄이 바람이고 꽃이고 구름이다.

산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마르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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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곰

안 보이는가 싶더니 오늘은 먼저 치고 나가 낙엽 길에 앉아 사과를 깎아댄다.

아까운 속살까지 두껍게 베어내는 투박함이지만 그 정이 따뜻하다.

뒤에서 따라가던 우리가 먹은 건 한 조각의 사과가 아니군

산 친구의 우정과 낙동길의 푸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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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1

 

제법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산봉우리에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있는 709.1봉 헬기장(비학지맥, 내연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포항시 북구 기북면 뒷산인 비학산을 거쳐 포항시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비학지맥과 성법령을 거쳐 보경사 뒷산인 내연산으로 이어져서 영덕 오십천으로 떨어지는 내연지맥이 갈라지는 곳이다.

우측에 있다는 성법(省法)령은 조선시대까지 부곡(部曲)이 있었던 지역으로 신라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전국 각지의 산골짜기에 산재해 있던 천민 거주 부락 가운데 하나였다.  주로  노예, 반역민 등의 천민을 격리 수용하여  무기, 농기구, 유기, 자기, 토기 등을 생활물자를 조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 생산기지였다.

성법리는 옛날 역모 죄로 몰려 천민으로 격하된 사람들을 수용하여 법을 반성케 하는데란  뜻에서 성법이라 하였다고 포항지명 유래집에 전한다.

성법령으로 92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성법령을 지나 괘괘령에 연결된 산줄기는 869봉을 지나 삿갓봉, 전령산, 향로봉, 내연산으로 이어져서  동쪽으로 보경사 12폭포 계곡을 빚어낸다.

통점재, 가사령, 성법령, 사관령, 배실재는 영덕에서 포항으로 가는 산줄기를 넘나드는 주민들의 중요한 길목으로 죽장면과 기북면 그리고 신광면을 넘나드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산품을 거래하기 위하여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단한 삶의 고갯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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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해진다.

미친넘들 이렇게 산하의 콧구멍을 막아놓고 있다니….”

나의 산하는 이렇게 질식해 가고 있다.

미안하구나 709

난 사랑과 푸념과 분노만으로 나의 여자를 지키려는 한심하고 무능한 사람이네 그랴

언제고 바라보고 비분강개만 하다가 슬며시 떠나 버리지

그래 무릉객은 무능객이기도 한겨

 

사관령 가는 길 796봉 능선에서 오른쪽 죽장면 가사리의 방면으로 후련한 조망이 서고 능선사이  69번 지방도로가 뚜렷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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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령

사관령은 이름으로 보아 고개인 줄 알았는데 하나의 봉우리였다.

사관령이 나름 타당성이 있는 이유는 실제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788.2봉은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거다.

사관령(士官嶺)은 임진왜란 전후에 가사리에서 무기를 제조 하였는데, 벼슬아치(사관) 외에는 통행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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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령에서 잠시 휴식하다 시간도 되고 배도 고파진 터라 내친 김에 점심식사를 했다.

양반곰이 나무에 긁혀서 얼굴에 피흘리면서 나타났다.

피가 뺨을 타고 흘러 내린 걸 보구 상처가 무지 큰 줄 알았다.

덩치는 남산만한 게 호들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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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잔가지 사이로 아래 분지와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능선 끝에는 표지기가 나부끼고 있다.

배실재다.

배실재는 산 아래 왼쪽에 위치한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마을에 철()이 많이 나와 무기를 만드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벼슬아치가 아니면 이 고개를 지날 수 없도록 하였다 하여 벼슬재(官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사투리와 함께 고개이름이 변한 것이라 한다.

 배실재에서 침곡산에 오르려면 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 한 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뒤 따라 온 무본에게 카메라 한 컷 부탁했다.

언제부턴가 길과 산의 매혹에 빠져 세월에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과 나에 대한 기록에는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훗날 그 길을 걸으며 변해가는 나의 모습도 좋은 추억이 아닐까 싶다.

무대의 커튼이 내려지기 까지 주인공은 여전히 나이니까

항상 우주의 중심에는 내가 있고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내일 바라 볼 오늘의 내가 가장 젊은 모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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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군산 1대간 9정맥팀이 낙동정맥 중간 지점이라는 안내 플랜카드를 걸어놓았다. 실제로는 침곡산을 지나 약 700m 떨어진 곳이 낙동정맥 중간지점 이란다.

 

어쨌든 벌써 낙동정맥의 중간지점이다.

벌써 중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지만 걸어보니 그 길이 비단길이었다.

우리 산하를 길게 내달리고 있는 그 산 길을 걸어가는 의미와 뿌듯함을 어디에 견줄 수 있으랴

뜨거운 여름이 낭만적인 가을 빛으로 바뀌고 계절은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며 조용히 사색과 우수에 잠겨 있다.

6개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된비알을 올라치며 뜨거운 땀을 흘리기도 했고 어느 고봉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후련한 영혼의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달리는 무게차에서  차가운 비를 맞으며 이빨을 부다닥 거리는 여름날의 추위에 파안대소를 하고 나서 엊그제 붉은 잎새가 채색한 가을날의 캔버스에서 혼미한 채 길을 잃은 건 가을이 남긴  향기와 잃어버린 시를 다시 찾았기 때문이었다.

어제 바람이 부친 한 장의 낙엽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 길을 걷는다.

스산한 바람과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늘 가슴은 뜨거웠다.

그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늘 동심과 열정을 잃지 않게 했다..

 

 

세월이 그리 빠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

그 새로운 시작은 또 하나의 삶의 의미와 완성을 향해 다가간다.

세상에는 몇몇 부류의 사람이 있다.

늘 새로 시작하기만 하는 사람

새로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는 사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란 일단 시작만 하면 이미 80%는 진척된 거다.

일이 진행되어 가면서 점점 성취감과 재미가 쌓인다.

뛰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있듯이 일단 그 일을 즐기기 시작하면 그건 일이 아니라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 된다.

산은 이미 내 삶의 일부였고 야심한 밤의 고된 출정과 거친 능선은 나의 행복을 불러내는 주술 이었다.

 

내가 낙동정맥에서 다시 느낀 감동이 얼마인가?

세상에서 쌓인 피로로 나른하고 허약해진 채 떠나서 얼마나 밝고 원기왕성 해져서 돌아 왔었나?

어쨌든 나는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 있었고 중간에 포기할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오늘 엉겹결에 벌써 반고개를 넘어 가고 있다

시간이 반이고 다시 반을 지났으니 이제 1/4 남았나?

그 시작점의 차이가 낙동길  완주자와 비완주자를 가르고 자신과 시간을 통제하는 자와 통제 당하는 자의 엄청난 차이를 가르게 된다.

  

 

 

 


 

 

 

 

중간 길의 감회

 

세월에 길을 물어 천의봉에 올랐다.

하늘이 푸른 태백의 망루에 서서

동해용왕에 절하고 태백 신령께 고했다.

세상 여행을 다시 시작하렵니다.

다시 내 마음의 노랫소리를 들으렵니다.

지켜주시고 살펴주소서…”

태양은 뜨거웠고

우린 그렇게 목적지가 가늠되지 않은 먼 길을 떠났다.

그 길 위에서 만난 것은 땀으로 얼룩진 시간과 거친 호흡이었지만

그것은 내재된 갈망과 내 삶의 열정을 다시 불러 내었다.

길 가의 소박한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고

바람소리와 물소리는 감미로운 음악 이었다.

안개와 비는 지나간 추억을 몰고 왔고.

바람에 날린 낙엽은 메마른 마음의 창에 한 줄 시를 적었다.

잠시 바람 길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바람에 날려가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사라져 가는 아쉬운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묵묵히 흘러가는 나의 인생에 대하여,,,,

 

길 위에서

아무데나 뒹굴어 다니는 기쁨과 행복을 보았다

세상의 욕심과 번뇌를 내리고 오늘 새처럼 자유로워진 내가

바람이고 구름이었다.

산이었다. 내가 신선 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가을에서 다시 겨울로  

계절의 길목을 따라  어디론가 연결된 그 길의 주제는 나와 사랑이었다.

세상의 중심을 걸어가는 나

그리고 세상을 향하는 나의 따뜻한 사랑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벌써 중간에 다가 섰다지만

오래도록 그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몰운대를 넘어 낙동 길이 더 길게 이어지면 좋겠다.

 

어쩌면 몰운대에서 몰래 울지도 모르겠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에서 무언가 솟구치던 천왕봉의 그 날처럼

 

축하한다 친구들

멋지다 무릉객

우린 이 호젓한 길을 더 걸을 수 있으니 너무 좋다.

사랑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찾아야 할  아름다움이 아직 많이 남아서 좋다.

내 영혼이 추는 흥겹고 신명나는 춤사위 한바탕이 기대되는 이제 반밖에 남지 않은 낙동 길 그 행복한 여행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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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자의 정" 

 고맙소 이다 하지만 그리 힘들지 않소이다.

얼마나 좋소 이 시원한 바람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멋진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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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팀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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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봉에서 바라본 침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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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산비탈을 따라 정겹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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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곡산인 줄 알고 올라 보니 바위만 덩그러한 무명봉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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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곡산에 오르는 길이 가파라진다.

드디어 무명봉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낙타 등을 닮은 침곡산이 우뚝하다.

 

침곡산을 가까이 둔 능선에서 시계가 터지고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바로 봉우리 코 아래 묘지가 있다.

 

침곡산에 오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 곳에서는 오늘의 노정이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봉우리는 넉넉한 잔디밭이고

한 켠에는 대리석 비석이 따스한 햇살 아래 졸고 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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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곡산

침곡산?

괜한 이름이겠나?

침처럼 솟았으니 곡소리 나는 산이로구나

침곡산(針谷山 725.4m)은 대동여지도에는 사감산(士甘山)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서쪽 포항시 죽장면 입암에서 이 산을 향해 이어지는 좁고 긴 바늘 같은 골짜기 일대를 침곡리(針谷里)라 부르는데(침곡, 내침곡) 여기서 연유하여 붙여진 산 이름이라 한다

 

스틱을 놓고나니

그 유용성과 가치를 알겠다.

그렇게 낙차가 크지 않는 길이었는데 비탈 길의 낙엽이 길을 미끄럽게 하여 가는 길을 힘들게 한다. 장단지가 뻐근하다 못해 아파온다.

표지기는 의기양양하게 가지를 휘감고 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오늘 고생은 이제 끝이야

우린 개선장군처럼 마지막 과일과 물을 나누고 달콤한 휴식의 나른함 속에 빠져들었다.

마치 목적지에 다다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해이해져서 전의는 급속히 상실되고 전투력은 약화되었다.

오늘 정말 제대로 피곤한 날 낙동 산신령님의 배려와 보살핌 덕분에 마치 순조로운 마무리가 예정된 것처럼 마음을 풀어놓고 잔디 봉우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안한 대화에 동참한다. 

연평도가 어떻고 FTA가 어떻고

 

오늘은 모두 용서한다.

세상의 복잡하고 답답한 것들을 다시 산상으로 끌어 들이는 그 어리석음조차

고원에 드리운 평화와 너그러움이 너무 커서

멋진 푸른 하늘과 만추의 서정으로  어떤 실망스러움과 허망함도 단 한점의 희망에 선뜻 자리를 내 줄 수 밖에 없는 빛나는 오늘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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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객  넘 좋아하지 마라  여기가 끝이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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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거리라면 6km 정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무리 할 널널한 12구간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늘 생각처럼 쉽게 풀리기만 하던가?

인생의 어느 여울목에서나 늘 고만고만한 고민이 따라 붙는다.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길이나 어디 마지막에 용 한번 쓰지 않고 끝나는 법이 어디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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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아래를 지나 서당골재로 내려선다.

서당골재는 포항팔도 산악회의 이정표가 없다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특징 없이 밋밋하다.

예전에 마을어귀나 고갯마루에 원뿔모양의 돌무더기나 신성시하던 나무인 서낭당(성황당)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인 모양이다. 안내판에는 한티재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40분이라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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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곡산은 다시 원,,쓰리 봉우리를 낙동 길에 도열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침곡산에서 이미 오늘 노정은 마무리라는 생각이 너무 깊어져서 웬지 마음끈이 느슨해 졌다.

해이해진 마음은 전의를 상실케 했고 다시 두 개의 봉우리를 치고 오르고 나서 세 번째 봉우리를 앞에 대하자 가슴이 답답해 졌다.

“A팀에서 포항을 댕겨왔으면 잘 마른 신선한 과메기와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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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늘상 겪던 일이다.

느긋해지던 마음은 다시 사태의 추이를 파악하고 나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어떤 일이 원하던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너무 단조롭고 무미 건조한 거 아닌가?

산수 아름다운 건 호수도 있고 폭포도 있고 벼랑도 있어서 그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감동을 몰고 오기 때문 아닌가?

침곡 이후의 침곡 1,2,3가 인생을 묘미를 깨닫게 한다.

그 길을 지나고 나니 침곡 1,2,3가 있어서 침곡산이 더 빛나고 낙동 12구간이 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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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오르막을 따라 우측으로 훤하게 트이는 먼산하의 풍경을 감상하며 침곡 쓰리에 올랐다.

그 곳 나무등걸에는 고정된 태화산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그 앞으로 산불 감시초소가 선다.

산불 감시인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 선하게 생긴 감시인은 초소 위에서 하나 하나 풍경을 짚어가며 포항을 둘러 싼 산들의 이름과 마을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멀리 산 넘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물들이 포항 용흥동 우방 아파트이고 한티재 내려가는  쪽으로 우뚝한 산들이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과 기상대가 있는 면봉산 이란다.

산릉사이 넓은 분지 사이로 보이는 마을들은 기북면과 기계면이고  그리고 포항 쪽 가까이 안강면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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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면 내려간다는 말에 이젠 정말 다 왔구나 했는데 그게 또 무슨 착오가 있었다.

스틱도 없으니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도 못해 뛰다시피 한참을 가파르게 내려 꽂고 나서 희미한 재가 막아서는가 싶더니 길은 다시 봉우리로 솟구친다.

이게 아니잖아.”

분명히 포장 길 한티재가 막 나타나야 되는데 해발이 제로 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길은 다시 솟구치고 있다.

뭐가 잘못 된 것 같아 지도를 꺼내 보았다.

아뿔사 이게 먹재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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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재

가슴이 먹먹해지는 고개

먹구름이 몰려 드는 재

당연히 끝날 곳이라 믿었던 터라 두 번째로 잠시 마음이 허물어 졌다.

그래 정말로 산행 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힘들고 ….

이젠 고생 끝이라고 안도한 곳에서 새로운 난관이 봉우리 뒤의 더 높은 봉우리처럼 다시 솟아 오른다.

그래!

어짜피 넘어야 할 산 길이고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기쁘게 넘고 즐겁게 살아 가야쥐

마지막 까지 매복한 복병을 만나고 마음과 발길이 무거웠지만 낙동 산신령님으 익살에 웃음이 났다.

그 재미로 사시지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골려주는 재미

그게 다 보약이다.

계룡 산신령님 한테 두 대 크게 얻어터지고 나서도 이리 산을 잘 타고 있다.

세월의 멍은 시간과 자연이 알아서 치유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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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소~~~산친구

나른한 휴식과 한잔의 막걸리가 얼마 남지 않았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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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재에서 내려서는 마을이 먹골(벚골)인데 한티재를 오르는 국도변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다.

뒷산에 절이 있을 때 벚나무가 많아 먹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먹골 마을과 죽장면(竹長面) 정자리(亭子里)를 잇는 한티터널은 1992 7 31일에 준공되었다

죽장면과 경계를 이루는 한티재(大峴) 아래 골짜기와 광대산(廣大山) 동쪽, 북쪽 기슭에 자리 한 마을이 있는데 가안리이다. 먹골, 한티, 안심(安心), 가천(駕川)과 같은 자연부락들을 1914년 통폐합하여 가안(駕安)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티재(大峴)를 넘는 옛 길이 이 마을을 지났으며, 재아래 마을이라 하여 불린 지명이며, 마을 어귀엔 고인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티재(大峴)라는 이름 참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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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베이스 캠프가 보이더니

먼저 기다리던 동료들이 반색을 해주고 한잔의 막걸리 향기가 뜬다.

막판에 다시 한 번 오름 길에 용을 쓴 덕분에  한티재에서 먹은 과메기는 입에 쩍쩍 달라 붙었고 목젖을 꿀럭이며 넘어가는 막걸리는 가슴까지 후련하게 해 주었다.

이 맛이다.

세상 살아가는 멋과 맛이란….

산이 몸에 쌓인 독을 풀어주고 좋은 공기가 모공과 혈을 열리게 하여 운기를 조식하니 무거웠던 몸이 다시 가벼워 진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낙동 길을 걸으면서 나는 거짓말처럼 평상시 컨디션을 회복했다.

거짓말 같은 산의 마술 이었다.

 

뿌듯한 나른함 속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충만한 행복감 

그래서 오늘 세상에 지고 가는 등짐이  좀더 가벼워 진 듯한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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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Waves -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