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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펌)

김기덕 스타일

 

출처 : 한국경제신문 9월 10일자

 

제작비 1억5000만원…세계 3대 영화제 첫 작품상

집 가난해 최종학력 중졸…15세부터 청계천 공장 생활
엽기적 폭력·性 묘사로 충무로서 이단아 취급
국내보다 해외서 더 유명…영화제 참석한 스타배우들, 호텔방에 먼저 '러브콜 메모'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52)은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말했다. 지독한 가난과 부친의 학대로 점철된 유년기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고 제대 후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을 그리며 새 삶을 모색한 끝에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났다. 미술과 영화를 독학으로 깨우친 그는 잡초처럼 살아온 삶을 극단적인 양상으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폭력적인 부친으로부터 극심한 매를 맞고 컸다. 가죽 허리띠로 등짝을 맞는 게 다반사였다. 가정 형편도 어려워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라 공식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은 농업학교에 갔다. 최종 학력은 중졸이 됐다.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공장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웠다. 구로공단과 청계천은 김 감독의 어두웠던 젊은 시절이 녹아 있는 곳이다. ‘피에타’의 무대가 된 청계천에서 15세 때부터 공장 생활을 했다. 이후 구로공단에서도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2001년 개관한 멀티플렉스체인 CGV구로에서 ‘나쁜 남자’로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감독 데뷔 전 노동자로 일했던 구로공단이 있던 자리에 생긴 극장에서 내 영화를 상영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대학로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기도 한 그는 프랑스 남부의 한 해변에서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꾸리며 그림에 몰두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32세의 나이에 처음 본 영화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한국에 돌아와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에 당선된다. 이듬해 첫 영화 ‘악어’를 연출, 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를 처음 본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 밑바닥의 음울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극단적인 폭력과 성폭행, 엽기적인 행각, 변태적인 심리 등을 담은 그의 영화들은 여성단체의 반발을 불러왔다. 심지어 한 여성평론가는 “있으나마나 한 감독”이란 극언도 했다. 독학으로 익힌 작법은 충무로에서는 이단아로 취급당했다.

하지만 기존 영화들과 다른 그의 작법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1998년 세 번째 작품 ‘파란 대문’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2000년 ‘섬’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상을 받았다. 같은 해 대학로에서 불과 세 시간 만에 찍었다는 ‘실제상황’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받으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2001년 ‘나쁜 남자’는 국내에서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미국에서 상영된 한국 독립영화 중 최대 흥행을 기록했다.

해외에서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톱스타들의 구애도 이어졌다. ‘해안선’에는 장동건이, ‘비몽’에는 이나영이 출연했다.

김 감독은 “장동건, 이나영, 장첸, 오다기리 조 등 함께한 거의 대부분의 배우들이 먼저 같이하자고 제의를 한 것”이라며 “최근에는 미국 배우 윌렘 데포도 연락이 왔는데 아직 맞는 캐릭터를 못 찾아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영화제에서는 배우들이 호텔방에 메시지를 놓고 간다”며 “나중에 잊지 않고 캐스팅 단계에서 떠올린다”고 공개했다.

김기덕은 순제작비 1억5000만원을 투입한 18번째 작품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20년이 채 안되는 영화 인생의 정점에 섰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피에타’는 나에게 새로운 출발이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피에타' 김기덕의 야성이 정제돼 더 큰 호응"
"종교·구원의 메시지, 단순하고 강렬한 화법에 매료"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로 8일(현지시간)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어 세계적인 인기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김 감독은 특히 영화제가 열린 이탈리아에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섬'으로 200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한 뒤 이듬해 '수취인불명'으로 다시 초청됐고 2004년에는 '빈집'으로 감독상을

받았으며 이번에 네 번째로 경쟁 부문에 진출해 마침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피에타'는 또 이번에 이탈리아 18-19세 관객들이 주는 '젊은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영화제 기간 가는 곳마다 현지 팬들에 둘러싸여 사인 요청에 화답해야 했다.

국내 영화인들은 "해외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 감독으로는 김기덕, 한국 영화로는 '올드 보이'(박찬욱 감독)를 꼽는다"고 말하며 김 감독의 명성을 전한다.

김기덕 감독이 이렇게 유럽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평론가들은 김 감독 영화 특유의 야성적인 매력과 종교적인 메시지,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꼽는다.

◇삶에서 우러나온 야성이 영화 속에 그대로 = 김 감독의 영화에는 사회 주변부 인물, 뭔가 많이 결핍된 아웃사이더들이 많이 등장한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불편한 삶의 모습을 들춰내 관객으로 하여금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데뷔작 '악어'(1996)에서부터 그런 성향은 뚜렷이 드러난다.

'악어'라 불리는 주인공은 한강 다리 밑에서 노숙하며 강물에 투신자살한 사람들의 몸을 뒤져 돈이나 금붙이 등을 빼앗아 살아간다.

영화는 한강 다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잡한 일들을 주인공이 누군가를 때리고 성폭행하거나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폭행당하는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작품 '피에타' 역시 채무자들을 상대로 돈을 받아내는 일로 먹고사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인간의 목숨이 돈 300만 원으로 치환되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현실을 드러낸다.

돈을 못 갚은 사람의 신체 일부를 못쓰게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은 실제 존재할 법하지만 누구나 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감독은 이런 현실을 끔찍하고 잔혹한 장면으로 묘사한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김기덕 감독은 노동자 출신이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 오가는 물리적 폭력이나 극단적인 정서를 잘 알고 있고 이를 영화에 직접적으로 잘 끌어들여 하드코어하게 표현한다"고 분석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인 전찬일 평론가도 "'피에타'는 김기덕 영화의 대표적인 코드인 야성이 잘 드러난 영화이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야성을 잘 정제해 표현한 영화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또 김 감독이 세계 영화 역사상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고유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김영진 교수는 "영화제에서 통용되는 예술영화의 패러다임이나 서양영화의 전통을 벗어나 영화 역사의 어느 감독과도 유사성이 없는 단순한 화법이 유럽에서 특히 주목받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야성이 종교를 만나 '구원'으로 승화 = 김 감독이 영화에 야성만을 드러냈다면 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쥐지는 못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자기 삶의 큰 관심사였던 종교적인 질문을 영화에 녹이기 시작한다.

특히 2003년 만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종교와 철학의 묵상과도 같은 느낌을 진하게 담은 영화다.

외딴곳 저수지 한가운데의 작은 암자를 배경으로 한국의 사계절 변화와 함께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간결하게 보여주며 종교적인 구원과 자비의 가능성을 물었다.

폭력 수위가 낮았고 누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사계절의 영상을 담은 이 영화는 불교의 동양적인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유럽과 북미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전찬일 평론가는 "어느 시점까지 보면 김 감독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지 않았고 세상을 향한 원망 내지는 분노를 토로하듯 뱉어냈는데 점차 종교적으로 승화된 것이 '봄 여름…'과 이번 '피에타' 같은 작품이다.

자기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정제되고 세련되게 변화했는데 이런 부분을 특히 서구인들이 좋아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피에타'는 이런 김기덕 영화의 야성적인 부분과 정제된 부분이 마치 정(正)-반(反)-합(合)의 구조로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피에타'는 특히 종교적인 구원을 전면에 드러내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모자(母子) 조각상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이 영화는 잔혹하고 파괴적인 장면으로 시작해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상상을 뛰어넘는 복수와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처절하게 아름다운 장면으로 질문한다.

이탈리아의 일간지인 '라 리푸블리카(La Repubblica)'는 '피에타'가 영화제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화(the shock film)"라며 "복수와 연민 사이에서 갈라진 인물들의 극단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을 정복해 엄청난 박수갈채를 얻어냈다"고 평했다.

미국의 영화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관객들은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들에서 눈을 감고 싶겠지만 결국에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라며 "인상 깊은 결말은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상을 건넬 때 기억할 만한 장면일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황금사자상으로 세계적인 스타 발돋움 = 김 감독은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작품으로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이름을 알려왔지만, 이번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됐다.

'피에타'는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열리고 있는 제3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세계 거장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부문에 초청된 상태다.

토론토영화제는 칸·베니스·베를린에 이어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히는 북미 최대의 영화 축제다.

특히 영화제 기간에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에타'는 북미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피에타'는 또 세계 최대의 판타스틱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 '뉴 비전스'에도 초청됐고 이밖에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초청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인도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회고전도 열릴 예정이다.

아울러 '피에타'는 이번 베니스영화제 기간에 러시아, 노르웨이, 터키, 홍콩, 그리스 등 20여 개국에 판매돼 세계의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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