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내게 다가왔다.
슬프고 아픈 표정으로…
그래 잘 왔어 ! 나의 외로운 고통이여..
내 곁에서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 질 때 까지 편히 편히 쉬어 가게나.
백두대간에서 두 번이나 도를 닦았으니 이제 난 도인이 되었을까?
설마 4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은 아니것제?
빰빠라빰 ~~~~
야호! 드디어 백두대간 졸업이다.
근데 뭐지? 이 허한 느낌은?
차가운 맥주 한 잔 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이 갈증은?
아직 배울 것이 너무 많이 남았고 절절한 감동은 내 가슴을 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한 번에 평균 10시간도 채 안 걸었는데 겨우 46번에 벌써 그 길이 끝나버리다니….
애고 빈약하고 안스러운 내 국토의 등줄기여!
내 생애 두 번 째 백두대간이 끝이 났다.
내가 만든 또 하나 내 생애 즐거움이자 멋진 걸작이….
대단하다. 무릉객!
잘했어 내 아들…
도와주신 많은 분 들께 감사한다.
그 길을 허락하신 팔도 산신령님
2년 내내 뜨거운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고 출정과 귀가의 발이되어 준 마눌
함께 먼 길을 걸었던 산 친구들…
그리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들과 친구들 까지…
백두대간에서 두 해를 보냈다.
14년전 까지 합하면 내 생애 4년 가까이 백두대간이 내 삶의 학교이고 놀이터였다.
사실 백두대간 종주란 너무 쉬운 일이다.
일단 시작이 가장 중요하고 그냥 학교 수업처럼 빠지지 않으면 된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냥 걸으면서 계절 따라 바뀌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그 길을 걷는 것 만으로 가슴에서 무언가 비워지고 채워진다.
계절의 화폭에는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흔드는 세상의 아름다운 그림과 한편의 시가 걸리고.
무수한 나무와 꽃들이 말을 걸어 온다.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오래 듣다 보면 살아감이 좀더 가벼워질 것이다.
지나 온 길을 바라보면 아득하지만 이제 삶과 인생에 대해 좀 알듯한데 내려와야 하는 너무
짧은 백두대간 대학이 아쉬울 뿐이다.
거긴 도시에서 쫓겨간 그리움과 추억이 산다.
황홀한 고독이 있고 기쁨과 등을 맞댄 진정한 고통의 의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곳에 서면 세상에서 왜곡된 가치와 편견이 바로 잡히고 어느 날 우리가 창문너머 던져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
난 다시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내 가슴을 흔드는 무수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5월 고원의 꽃밭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드넓은 초원에 쏟아지는 아침햇살과 불타는 단풍의 장관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무도 없는 눈 덮힌 고산설릉과 그곳을 불어가는 칼바람도 아름다웠다.
한 말의 땀과 통행세로 내야 다다를 수 있는 하늘 더 가까운 거친 바위봉 들도 아름답고 해빙기
눈밭에서 수줍게 손을 흔들던 한떨기 야생화도 아름다웠다.
인내와 고통의 순간들 끝에서 만난 것들이기에 그 풍경들은 더 각별하고 가슴 시린 아름다움이었다.
그 비장한 아름다움을 견디고 누릴 수 있었던 나와 내 아들과 내친구들도 모두 아름다웠다
백두대간을 걸었다는 건
세상의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이고 누구보다 자신과 인생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슴엔 열정과 사랑이 가득하고 고독과 고통마저 즐길 수 있는 삶의 내공이 쌓였다는 것이다.
우린 어릴 때 알던 걸 자꾸 까먹는다.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라 놀이터란 걸…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 가슴에서 동심과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적어도 내겐 삶을 견디고 세상에서 쌓인 한과 아픔을 쏟아내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거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고 감상하며 아직 내 가슴속에 가득한 열정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더 멀리 걸을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높이 오를수록 삶이 가벼워 졌다.
오랜 세월 산의 언저리는 맴돌며 난 어쩌면 바위와 산을 닮아가는 지도 모른다.
난 아들과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그 힘들고 아름다운 시간은 지나갔지만 우리가 보았던 아름다운 세상의 잔상은 가슴에 남아 있고
우리가 함께 불렀던 구성진 삶의 노래의 여운은 아직도 귓전을 맴돌고 있다.
산과 바람이 내 대신 가르쳐준 삶의 의미와 교훈은 아들의 가슴에 남아 거친 세상의 지도와 나침
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벌써 지나간 순간들이 너무 그립다.
우리의 거친 숨소리와 진한 땀방울들.
친구들과 허구한날 허공으로 날려버린 즐거운 웃음소리
초록이 번져가는 능선
폭염의 긴 산행을 마치고 뛰어 들었던 얼음장 같이 차가운 계곡수와 목젖을 꿀럭이며 단숨에 들이
키던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었던 한잔의 맥주.
백두대간에서 말없이 불타는 단풍
그리고 우리가 장쾌한 설릉에서 맞은 후련한 바람과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던 하얀 눈들
젊은 날 추억을 떠올리며 아들과 함께 그 길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순간 난 여전히 행복하다.
나의 작은 별에 다다른 오늘에도 내 허벅지와 두 다리는 탱탱하다.
가슴에는 너무 많은 추억이 있고 세상에는 내 다리와 내 마음 하나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
너무 많다.
또 떠나야 할 너무 많은 이유가 있다.
나는 늙지 않았고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산과 별 그리고 바람이 전하는 말을 아직 채 다 듣지 못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에도 무수한 세잎클로버가 피어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네잎클로버를 입에 문 나의 파랑새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둠은 미지의 세상을 꿈꾸기 좋고 새벽은 기꺼이 배낭을 둘러메고 새로운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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