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감사가 그랬다.
나의 삶이 너무 산에 치우쳐 있다고….
아닌데…
요즘은 생각지도 않게 바빠서 그렇지만 나름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도
자주 마시는데....
게다가 그런대로 책도 꽤 읽고 영화도 자주 보았는데…
허기사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백두대간을 두 번 이나 했으니 남들에겐 산에 빠진 사람으로 보일 텐가?
거기다 끝난 지 또 얼마나 된다고 배낭을 둘러메고 대동금남정맥 시동을 걸어 다시 금.호남 길을 빠대기 시작했으니…
그래도 예전엔 일주일에 산을 두 번 간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달랑 한 번이다.
김영갑은 제주도 중산간 풍광에 홀려 평생 제주도 사진만 찍다 제주도 귀신이 되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내가 빠대고
다닌 산 세상은 얼마나 광활한가?
귀연에서 1대간 9정맥을 주유하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한 술 더 떠서 기맥과 지맥을 다 아우르고 4400개 산을 대충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건 둘째치고 계절과 날씨의 변수가 작용하여 완죤히 분위기가 달라지는 한국 명산들만 두루 섭렵하더라도
새삼 인생이 짧아도 너무 짧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명산의 사계를 다 돌기도 전에 세월은 두루마리 화장지 풀리듯 덜덜 거리며 점점 빨라 질 것이다.
우리 옆 동네 중국은 또 어떻고?
내가 거기 5섯개의 산에 올랐지만 거긴 상상을 초월하는 비경의 산들이 부지기 수다.
그 너머 윗동네는?
우리나라가 완두콩만하다면 지구는 농구공 만할 것이다.
물건너 멀리 안나푸르나도 멋지다하고 알프스도 그렇고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까지…
산에 치우친다는 내가 대한민국 산 언저리도 제대로 빠대지 못했는데 벌써 날이 저물고 있다.
세상의 유명한 산을 난 언제 다 돌아 보나?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나의 길과 도는 어디에 닿아 있는가 ?
산 행 일 : 2016년 10월 9일(일요일)
산 행 지 : 금호남정맥 2구간
산행코스 : 수분령-뜬봉샘-팔공산-데미샘-와룡자연휴양림
날 씨 : 맑고 시원한 바람
동 행 : 귀연 15명
너무 기분좋게 나들이 가듯 홀가분하게 나선 길인데 웬걸 이 길이 백두대간 보다 더 빡세었다.
신무산과 팔공산 오르는 길이나 대미샘 왕복 비탈구간의 낙차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 뒤엎어 버렸다.
다른 산님의 블로그에서 9시간 30분 소요되었다는 글을 읽고도 거리상 8시간 30분이면 충분한 널널
산행이라 생각했다.
이미 중간에 탈출을 염두에 둔 산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유유자적했기에 어쩌면
저무는 능선의 중도탈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난 정말 금.호남을 정말 뜨문뜨문 안 채로 산행가이드를 자처한 격이었다.
우린 완전 날라리 산꾼들이었다.
따다 남은 밤들을 주워서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뜬봉샘을 거쳐 신무산에 올랐다.
팔공산에서는 너무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미각의 즐거움을 탐했고 인근 봉우리에서는 둘러싼 장수벌을
둘러싼 산군과 그 너머 파도치는 능선의 조망에 넋을 잃었다.
어디 그것 뿐인가?
팔공산을 넘고 서구이재를 지나 삿갓봉 가는 길이 만장 같은 데도 가파른 산비탈을 700여 미터 내려가
데미샘에서 세월아 네월아 여유를 부리며 물 맛 까지 음미하고 다시 올라왔다.
계산상 목적지는 훤한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없었다.
급기야 천상데미 정자에서 서산으로 기우는 햇빛이 벌써 황금색이라 우린 오계치에서 와룡자연휴양림으로
아쉽게도(?) 중도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사실 아쉬워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세상에 이게 뭔일이래…?
따져보니 오늘 구간 길어도 너무 길어유
아이고 청산님 금호남과 대동 금남정맥은 제발 짧게 짧게 끊읍시데이…
우리고장 대동 금남 길은 백두대간이 아니지라 !
이제 전쟁은 그만허고 금호남 길 일랑 산보가 듯 놀멍쉬멍 여유로운 유람길이 되게 만들자고요,,,”,
회군 연락을 받지 못한 사계절님만 물불을 안가리고 진군한 끝에 귀연 대표로 전구간을 완주했고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A팀은 정확한 계산에 근거하여 우리가 도착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여
물처럼 남아도는 시간 내내 배낭 바라바리 밤과 도토리를 채웠다.
B팀의 회군 사실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래서 이번 산행은 B팀이 A팀을 오래도록 기다리는 어이없는 산행이 되어 버렸다.
사게절님을 꽤 기다리긴 했지만 덕분에 널널산행이 되었다.
예상대로 진행하지 못했지만 바람결이 차갑고 시원해서 너무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게다가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장수벌과 주변 산군의 조망은 너무 맑고 뚜렷해서 멀리 지리산 주능선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설악과 지리의 가을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맑은 날 장수 산군의 농익어 가는 가을 풍광도 일품이었다.
특히 팔공산과 헬기장에서 맞은 시원한 바람과 조망은 너무 후련했다
짧은 산행이었어도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 뜬봉샘과 데미샘 까지 돌아 보고 휴양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까지
한 후에 장계까지 가서 장수 특산 막창 왕순대 까지 맛나게 먹었으니 속이 아주 꽉찬 알찬 여행이었다.
데미샘의 풍부한 수량과 주변의 싱그러운 숲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을 찌릿하게 하던 차갑고 시원한 데미샘의 물맛의 여운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섬진강 발원수를 마셨으니 청량하고 아름다운 산수의 기운이 내게 좋은 일만 가득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단비표 부침개, 청계님 장수 왕순대와 청산님 아이스크림 까지...
결과적으로는 눈과 입이 다 즐거웠던 아주 호사스런 널널 산행이었다..
청계님 장수 왕순대 정말 맛있었어유. 정말 맛있게 잘 먹었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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