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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공룡능선의 가을













































































































어이 없이 흘러 보내는 2017년 가을이다.

문득 가슴 한구석 퀭한 바람이 인다.

난 잘 살고 있는 거야?

 

너무 오랫동안 산에서 멀어 있었다.

이 가을엔 주말에 왜 그리 바쁜 일들이 많은지 ?

번번히 출정을 포기하게 되어 산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큰 산의 기운을 받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갑자기 공룡능선의 가을이 보고 싶어 졌다.

나 없이 홀로 불타오르다 스러져 갈 처연한 가을이….

 

문제는 주말에 갈 수 없구, 산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거

소월마차에 신청을 넣었다.

한 자리 예약을 하고 나니 전국적인 비가 예보된 날이고 특히 강원도에 더 많이 내린단다.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마눌은 수 많은 좋은 날 놔두고 위험하게 왜 비가 온다는 날 걍 가냐구 난리다.

워쩌것어? 가을은 때 되면 도지는 지병인데 !.”

내 가슴이 이렇게 울고 있으니 난 떠나는 거고…”

나머지는 설악 산신령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좀 그렇긴 하지만 가끔 내리는 비는 좋은 점도 있다.

설악으로 떠나는 마차는 널널하고 한적한 설악은 오히려 낭만적일 것이다.

내가 본 가장 멋진 공룡의 모습은 몽환의 운무가 공룡의 잔등을 타고 신비롭게 흐르던 비그친 날의

풍경이었다..

.

버스 안에서

 

비가 온다는 평일 산행이라 사람들이 없으려니 했는데 민수산악회가 출정을 포기한 탓에 소월마차는

만선이다.

~~ 나만의 공룡이 아니었어. “

 

10 20

그 옛날처럼 타자 마자 잠이 쏟아졌다.

누군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도 난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산행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총무가 밥이며 떡을 나누어 주고 회비를 걷을 때 깨어났는데 내 옆자리를

채운 건 여자산님 이었다.

친구들과 3명이 함께 온 모양이다.

오늘은 여자와 동침하게 생겼네…”

 

산행대장은 등고선님이었다.

등고선님도 오늘 공룡을 탄다는 말이여? “

가히 70에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노익장이다.

난 더 두 말고 70세 까지만 큰 산을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코스는 4코스로 나뉘었다.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 찍고 공룡능선을 타는 A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 찍고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B

설악동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C

울산바위를 다녀오거나 설악산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D

 

회비 거출 까지 끝나자 버스 기사님은 차 내의 불을 모두 꺼 주었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산행이 수월해 지는 법이니…..

 

백두대간 무박 출정의 추억이 되살아 났다.

칠흑 같은 점액질의 밤을 헤집던 무수한 날들

불 꺼진 버스의 익숙한 흔들림이 최면을 걸기라도 하는 듯 나는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여행길의 든든한 동반자는 어떤 악조건 에서도 잠들 수 있는 내공과 불가사리 먹성

 

얼마나 잤을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고 산행대장의 마이크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깨어났다.

한계령이 얼마 남지 않았단다.

한계령 아래 휴게소에 차를 세웠는데 화장실이 모두 잠겨 있어서 차는 내쳐 한계령 휴게소로 올라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더 자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았을 텐데

 

드디어 한계령에 도착했다.

시계는 1 50분을 가르키고 있다.

세시간 가량의 시간이니 기사 아저씨가 무척 빨리 차를 몬 셈이다.

한계령은 어둠 속에 외로운 등불 하나 걸고 조용히 앉아 있다.

신기하게도 바람도 없고 비도 오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제법 훤한 하늘에 구름이 희끄무레한데 별이나 달은 보이지 않는다.

한계령에서 사람들은 그 동안 참았던 볼일을 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정차하는 동안 한계령에서 대청을 오르는 4~5명이 배낭을 메고 내렸다.

 

오색에서

차는 20여분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오색에 도착했다.

오색 등산로 입구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

새벽 2 15

비 맞을 각오를 하고 떠난 오늘 이렇게 날씨가 포근하고 상쾌하니 설악 신령님은 오늘 멋진 공룡을

열어주실 모양이다.

 

근데 대청을 향하는 오색의 철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입산통제시간 !

산행 가능시간은 새벽 3시부터다,

으례껏 그러하긴 하지만 요즘 같이 불량체력으로 공룡을 타려면 최대한 빨리 대청봉 찍고 공룡주유의

교두보인 희운각으로 내려서야 한다.

마음이 급해져서 몇몇 일행들을 부추겼다.

철문을 넘어 가자고….

내가 먼저 넘고 요령을 알려주어 여자 두 명이 넘고 뒤이어 남자 두 명이 넘었는데 그 때 안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철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안에서 자던 지킴이 아자씨가 깬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나와서 철문을 따면서 나오라고 소리친다.

나는 빨리 도망가자고 그들을 재촉하면서 먼저 냅다 산행로 어둠 속으로 숨어 들었다.

 

돌아오라는 소리가 계속 나더니 한참 후 소리가 잠잠해졌다.

한 명도 못 나온 건가?”

나는 혼비백산 몇 백 미터를 진행하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아까 어느 산님이 한 말이 자꾸 걸린다.

오색 등산로는 가파르고 계곡이 음기가 많아 사고가 잦다고

몇 년 전에도 사람이 한 명 죽었다고 했다.

오색의 등산로야 해마다 허구헌 날 올라서 익숙하기도 하고 워낙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일도 없지만 그래도 웬지 혼자 가기가 망설여 진다.

잠시 올라 온 길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불빛이 하나 올라 온다

한 명이 탈출한 모양이다. 생각하고 그 쪽으로 불빛을 보내며 올라 오기를 기다렸다.

아뿔사! 근데 이게 웬일이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일행 중 한 명이 아니라 오색 지킴이 젊은이였다.

돌아오라고 했으면 오셔야지 알만하신 분이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난 말문이 막혀서 천진난만하게  날 잡으러 이 멀리까지 쫓아 오신 겁니까?” 물었고 그는 볼멘

목소리로 그럼 제가 여기까지 뭐 하러 왔겠습니까?”. 대답 한다.

~ 정말 대단한 젊은이다.

아까 한계령에서는 등산로가 있어서 모두 그리로 올라 갔는데….

난 미안한 마음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고 사실 체력이 딸려서 공룡을 타기가 쉽지 않은데 올해는

공룡의 불타는 가을 단풍을 꼭 보고 싶어서 무리를 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 놓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아 되돌아 가려 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

 

어둠 속을 되돌아 가면서 젊은 지킴이는 자신의 고충을 한참 이야기 하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거고 자기가 쪽 잠을 자면서 그 곳을 지키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혹시 벌금 이야기라도 나오면 낭패다 싶어 나는 한껏 낮은 자세로 공손하게 사과했고 다행이 그는

내게 벌금을 운운하지 않았다.

 

그는 정확히 정해진 새벽 세시에 철문을 열어 주었다.

보통은 10여분 일찍 열어 주는데 나 때문인지 몇몇 일행들이 빨리 열어달라고 투덜거리는 통에

극도로 짜증이 나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환갑이 다 되어가는데 나도 이젠 조신해져야 한다고 반성해본다.

 

대청봉 가는 길

작년 가을에도 한계령에서 대청봉에 올라 공룡을 탔지만 오색은 3년 만인가?

10월의 설악 계곡이 이렇게 포근한 건 또 처음이다.

헤드랜턴이 고장 나서 손전등을 가져오다 보니 2끼 식사와 간식을 짊어진 배낭의 무게와 스틱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했다.

그런 대로 페이스를 유지했고 선두그룹에서 오르다가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해서 자켓을 벗는

동안 몇 명이 추월해 갔다.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설악 신령님은 내가 산에 들기를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오색을 오르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 뿐이었지만 그 수도 그리 많지 않으니 결국 덩그러니 어둠

속에 혼자 남겨 졌다.

이런 저런 생각과 상념들이 어둠 속을 스쳐 갔다.

언제까지 갈 수 없는 나라의 꿈만 꾸고 있을까?

젊은 시절 툭하면 훌훌 털고 떠났던 설악에 들기 조차 이리 어려운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고 했던가?

무수한 내 발자국이 남아 있는 이 길 위에서도 언젠가 나의 흔적이 사라 지려니….

체력보다도 열정이 먼저 식어버리면 난 이제 설악의 가을 추억 만으로 살아야 한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돌 계단 길에서 자주 다리 쉼을 하다 보니 불빛 2개가 따라 붙었다.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들이다.

불빛을 뒤에 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앞서서 움직이다가 가파른 계단 길을 차고 올라 휴식을

하며 비로소 두 명의 일행과 조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 사람은 여자들이었고 그 중 한 명은 내 옆자리의 여인 이었다.

어둠 속 불빛으로는 그들의 나이가 잘 가늠되지는 않았다.

한 참을 쉬다 보니 여자 1명이 뒤 따라 올라왔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오늘 공룡을 탈거냐고 물으니 아직 체력이 어떨지 모르지만 9시전에 희운각

 도착한다면 타고 싶다고 했다.

 

하여간 대단한 여자들이다.

13시간을 족히 걸어야 하는 거친 산행 길에 기꺼이 도전하는 잠 없고 겁 없는 여자들….

외관상으로는 내가 그들을 리딩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나는 토끼몰이를 당하는 격이었다.

무거운 배낭에는 큰 카메라까지 들어 있는데다 요즘 몸 관리가 부실해서 직벽처럼 일어나 앉아

있는 후반부 돌계단 오름 길에서 체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눈에 뛰게 발걸음은 느려졌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과 거친 호흡을 은페하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을 위장해서 휴식 했고

갑자기 밀려드는 허기 때문에 순전히 배를 채우기 위해 또 한 번의 휴식을 외쳤다.

거친 산 길에서 배가 고프면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법이다.

아무리 포근하다 해도 여긴 겨울을 목전에 둔 11월의 설악산 이다.

고도가 오를수록 움직임이 정지되면 찬 공기 때문에 으실으실 추워 졌다.

결국 한 여자는 중도에 지쳤는지 어둠 속에 뒤쳐진 채 동행을 포기 했고 두 명의 여자는 충실히

나의 일정에 합류했다.

 

오름 길 고비를 넘기면서 길은 다소 편해지고 정상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날이 밝아 왔다.

그래도 동행이 있어 게으름을 피우지 못했던 탓에 우리는 꽤 빠른 시간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가는

대청봉 능선을 목전에 둘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또 웬일이래?

찬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또 심한 허기가 밀려 왔다.

분위기 파악 안 하는 참으로 성가신 위장의 보이 코트

바로 코앞이 대청봉이지만 찬 바람이 불어 가는 대청봉에서 식사를 하기란 불가능 한 일이라 염치불구

하고 바위 아래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 김밥과 김치를 내어 놓고 식사를 했다.

 

여자들이 비축 에너지가 더 많은 건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거친 산행 중에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난 출발 전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던 떡 덩이를 하나를 먹고 중간에 빵 두 개와 미숫가루를 먹고도

또 허기가 져서 추운 고원 망루 아래에서 서거픈 새참을 먹어야 하는데….

중간에 빵 반 개를 먹었던 한 여자는 내가 함께 먹자고 했던 김밥도 사양했고 조금 후에 도착한 내

옆자리 여자는 중간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 왔는데 차가운 내 김밥 2개를 먹고는 물

이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들은 내 식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차가운 고원에서 기다려 주었고 내 식사가 끝나자 앞서 대청봉

으로 올랐다.

 

대청봉

야호! 드디어 대청봉이다.

손이 시리긴 하지만 생각보다 날씨는 포근하고 비가 온다던 설악산 대청봉은 발아래 온통 흰 구름을

깔아 놓고 있다.

이렇게 바람이 불지 않은 대청봉은 처음이다.

작년 백두대간 길에 만났던 대청봉은 비와 싸락눈을 번갈아 뿌리며 거센 바람의 소리로 표효하고

있었는데….

오색 들머리를 떠난 지 3시간 10분 만이었다.

한참 전성기 때에는 2시간 40분 만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때와는 여러 가지 여건이 현저하게 다른

오늘도 꽤 빨리 오른 셈이다.

 

한계령 팀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도착햇다.

구름의 터진 틈 사이로 햇살이 새어 나와 일찍 도착한 사람들도 혹여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차가운 정상을 떠나지 않았다.

구름 위의 산책

우린 황홀한 대 자연의 향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대청봉의 이곳 저곳 뷰포인트를 오 가면서

기웃거리며 대자연의 장관과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 일이 모두 새옹지마라 했던가?

오늘 이 멋진 대청봉의 풍경은 오색 지킴이 덕분이었다.

그가 우리 서두르던 발길을 막지 않았다면 우린 추위와 기다림 때문에 어둠 속에 대청봉 표석을

홀로 남겨둔 채 공룡을 향한 발길을 재촉 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우린 잠깐의 시간을 참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기회와 기쁨을 허공 속으로

남겨버렸던가?

매사 조급하게 서두를 일 없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 길을 걸어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자세일 것이다.

일단 떠나기만 하면 내게 맞추어 놀라운 시간과 기회가 나를 기다린다.

우리는 오늘 대청 일출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리고서야 대청봉을 떠났다.

 

 

희운각 가는 길

여자들이 중청에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나도 계란 하나와 빵을 더 먹고 미수 가루를 마셨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이어지는 길 위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발 아래 운해가 가득하고 몽환의 운무가 이리저리 흘러가는 가운데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은

한숨과 탄성이 절로 나게 만들었다.

이래서 설악이지 !”

우리는 넋을 잃은 채 대자연의 화폭에 설악이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며 신선의 나라를

떠돌았다..

내 생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으랴?

담대하고 신비롭고 때론 힘에 넘치고 변화무쌍한 그런 그림을….

오늘 대청봉과 이 능선의 풍경을 본 것 만으로 가을 병은 모두 치유되었고 설악의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조용히 사그러 들었다.

조금은 성가시다.

가을의 낭만과 사색에 푹 빠져 있는 내게 들뜬 여인네들이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소리….

 

희운각에서

물을 2통 샀다.

고봉의 능선에서 희운각으로 내리는 계곡 길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길의 풍경은 간단 명료 했다.

여기저기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들

그리고 안개 속에서 수채화처럼 번지며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담채색 단풍들의 파노라마

안개로 시야가 좁아지고 길 위로 터져 나오던 감탄사들이 잦아드니 내려가는 발길은 자연히 빨라 졌다.

도착한 희운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더 깊고 자욱한 안개가 흘러 다녔다.

 

어제 비가 뿌리긴 했지만 한 통은 예비로 계곡물을 담았다.

혹시 거친 공룡에서 물이 딸리면 계곡물이라도 마셔야지….

군 훈련 때는 개구리가 뛰어 다니는 논두렁 물도 마셨는데…..

 

먼저 간 일행들도 이 곳에서 식사하고 있다.

아침 9시가 채 되지 않았으니 공룡을 탈 시간은 충분한 셈이다.

오색 오름 길이 힘들긴 했지만 설악이 내어준 멋진 풍경으로 원기회복을 하고 또 희운각 내림길에서

호흡조절을 했으니 힘에 좀 부치긴 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안개 때문에 공룡능선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공룡을 예정한 여인들도 순간에 흔들렸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공룡능선을 탈거냐고 ?

당근이지요 !

이런 날은 오히려 공룡능선 길을 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안개와 운무는 계곡으로 흐르는 법이고 해발이 높은 능선에서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기도 하지요

아까 우리가 보았던 소청 능선 길의 풍경처럼 구름이 발 아래 놓이고 바람이 운무를 걷어 준다면 더

없이 멋진 공룡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해박한 것처럼 보이는 나의 썰에 압도된 그녀들!

그녀들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못 먹어도 고! “ 를 외쳤다.

큰소리 뻥뻥 쳤지만 산신령님 점빵문 닫아 거시면 스타일 완젼 구기는 거다.

풍경도 없이 힘만 들면 완죤 개고생 이겠지만 무수한 나의 설악주유 역사에 그런 날은 한 번도 없었다. …..

공룡탐험 일행은 4명으로 확정되었다.

고요한”, “관조라는 닉네임의 두 여인과 트래블이란 젊은 친구 그리고 나

 

공룡능선

지난 여름 난 산우들과 함께 계획했던 공룡주유는 하지 못했다.

나는 꼭 일년 만에 가을 공룡으로 다시 돌아 왔고 공룡능선은 절정기의 단풍을 시새우고 있다.

안개 속에서도 선혈이 낭자한 붉은 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우린 무채색 안개와, 가까이 다가가면 그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고운 단풍 외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친 능선을 고군분투하며 차고 올랐다.

 

가장 멋진 조망처 신선봉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가긴 했는데 자욱한 안개는 계곡 아래서부터

건너편 능선 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야속한 안개

점점 깊어지는 운무에 시름도 깊어지고 신명도 달아 난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조금씩 실망으로 바뀌었고 우린 안개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다.

당최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아무 생각 없이 신선대 가는 길에 절벽 난간 사이로 갑자기 동해 쪽 멋진 풍광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동해에서 동서풍이 불어 오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마음이 급해져서 사진을 한 컷 담고 가파른 절벽으로 연결된 비등 봉우리에 올랐다.

! 

순식간에 운무가 들이치고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그 곳에는 상상치 못한 아름다운 대자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서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의 풍경

신비롭고 웅장한 공룡의 위용이 거기 있었다.

나 혼자만을 위한 장엄한 대자연의 퍼포먼스 였고 설악 신령님의 멋진 환영 세레모니 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변화무쌍한 풍경은 메말라 가던 가슴에 전율처럼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왔다.

그래 이런 게 공룡의 진면목이지

신비의 안개를 허리와 잔등에 걸고 낭자한 붉은 피를 흩뿌리며 날카로운 울음으로 울부짖는 공룡의

모습

그 쩌렁쩌렁한 표효

난 그 광포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신음 외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무아지경의 돌부처였고 설악의 신선 이었다.

 

바위에 걸터 앉아 넋을 잃고 대 자연의 공연을 을 감상하고 그 때였다.

위험한 절벽 길을 따라 아줌마들이 오고 있지 않은가?

아늬 일헐수가?”

세상에 바위 타는 법을 배우지 않은 한 세상에 그런 길을 따라 올 여자는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겁도 없이 절벽 난간을 진군해 왔다.

그들의 무분별한 난입으로 대자연의 흥분과 감동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 붙고 말았다..

내 옆자리 여인은 발디딜 틈도 별로 없는 아득한 절벽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는 건너 편에 배낭을 두고 건너 왔는데 배낭조차 벗지 않고 심지어 한 손에 스틱 까지 든 채 ….

정말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소리쳐서 겨우 스틱을 놓고 건너오는데 그 불안한 자세와 불안정한 몸놀림은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순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몇 년 전 남녀가 둘이 주 등산로에서 벗어나 여자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바람에 쌩 난리가 났었

는데....

정말 큰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등산로를 벗어난 곳인데 나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

하지만 고요한은 씩씩하게 내가 있는 봉우리까지 건너 왔다.

또 한 여인 관조는 스틱을 들고 한 손으로 건너 오다가 내게 호통을 먹고 또 본인도 겁이나서 절벽

난간을 부여잡은 채 더 이상 진행을 망설이고 있었다..

도대체가 내가 왜 이 여자들 때문에 간이 벌렁벌렁 해야 하나?

그 와중에도 그 절벽난간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그녀 !

사진을 한 장 찍어주고 수차 돌아갈 것을 채근하고 나서야 나서야 그녀는 겨우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정말 간 큰 여자들….

젊은 청년 트래블은 절벽의 위세에 기가 눌려 멀리서 손을 들어 올리고 건너오지 못했다..

어쨌든 공룡 아니면 볼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이었고 이래저래 가슴이 마구 뛰고 흔들리던 멋진 공룡의

추억이었다.

 

그 후로도 설악 신령님은 바람을 불러 능선 중간중간에서 멋진 비경을 열어 주셨고 우리가 떠나면

다시 구름을 불러 빗장을 걸어 잠그기를 반복했다.

젊은 날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았던 공룡이라 난 자욱한 운무 아래서도 감추어진 바위들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었다.

난 수 많은 말을 걸어오는 공룡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며 그 길을 걸었고 여전히 힘이 넘치는 강인한

공룡과 세월 속에서 조금씩 약해져 가는 나를 돌아 보았다.

춤추고 노래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청계님이 그랬던 것처럼

공룡을 스쳐간 무수한 산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내가 꼴찌로 밀리기는 했지만 되살아 나는 아름다운 지난 상념들과 현란한 공룡의 단풍의

위로로 여정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일행들은 풍경 사진을 찍어나 걸려오는 전화 탓에 발길이 많이 밀려도 바람 부는 산길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고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시간을 기꺼이 카메라에 표구해 주었다.

 

마등령에서

마등령에서 식사를 했다.

트레블이 누나가 손수 만들어 주었다는 김치와 반찬을 많이 싸왔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 우린 시

장한 차에 산상고원에서 생각지도 않은 성찬의 기쁨을 누렸다.

우린 공룡에서 죽이 척척 맞았다.

트레블은 버너를 가지고 있었고 고요한은 커피가 있었고 나는 희운각 계곡에서 떠왔던 물이 한

있었다.

 

안개와 바람이 흐르는 마등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도심의 까페에서 먹는 커피가 4500원인데  차가운 날 몽환적인 풍경을 앞에 두고 마시는 이 뜨거운

커피의 값은 얼마일까?

자연은 남김없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다

거기에 영감과 감동 까지 얹어서 ….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다 공짜다.

그리고 멋진 동행을 만나면 전망 좋은 1000고지 고원 까페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커피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

마등령 하산 길

낙차가 커지는 길

다리가 시원찮은 사람들은 이 길에서 뻑 가는 법이다.

마등령 하산 길의 단풍은 절정이었다.

색색의 단풍 사이로 흐르는 안개가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한층 더 띠워주고 풍경은 점입가경이었다.

우린 종달새처럼 즐거워져서 힘든 줄도 모르고 그 길을 걸어 내렸다.

중간에 비가 몇 방울 떨어졌는데 모두들 배낭을 싸 메고 우비를 걸치고 난리법썩을 떨었지만 난

배낭에 방수포만 씌우고 걸었다.

설악의 표정을 보면 모르는가?

장난기가 발동한 산신령님이 잠시 간 보시는 거…..

조금 내리던 비는 하산 길 조망 바위에 오를 때쯤 그쳤고 우린 마지막 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몰아

치는 비경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둘러 보면서 천천히 하산 했다.

 

비선대를 지나 설악동 가는 길에 우린 불어난 계곡으로 내려 가서 땀에 찌든 몸을 씻어 내고 옷을

갈아 입었다.

생각 같아서는 차가운 물에 풍덩 뛰어들어 알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여자 산님들이

있어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혼자 바위 뒤로 돌아가서 웃통만 벗고 수건에 물을 묻혀 땀을 닦아내고 다리만 씻었다.

사실 산 길에서 동행이란 큰 의미가 없다.

나와 가장 죽이 잘 맞는 사람은 산과 나 스스로 밖에 없으니…..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었지만 또한 함께라서 외롭지 않은 즐거운 여정이었다.

우린 하산 예정 시간 10분 전에 무사히 D주차장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오색 들머리를 출발한지 12시간 50분 만이었다.

갈증 탓에 준비된 막걸리 몇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도 소월 산행대장이 한 턱 쏘는 바람에 배가

빵실 해질 때까지 거나하게 마셨다.

공룡에 가을에 취하고 한 잔 술에 취하고….

처음 만나는 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양미리 오징어 포 안주와 어우러

입에 착착 감겼다.

눈도,귀도,입도 즐거웠던 산행이었고 오래 기억에 남을 행복한 추억 이었다...

늘 내게 영감과 기쁨을 전해주던 설악 공룡의 멋진 선물 이었다.


10월 12일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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