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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둘레길 2 - 소원길(태배길)

 

 

서해바다가 말했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네

그 옛날 백두대간을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인자 발걸음이 많이도 느려졌군

세상의 바람이 세찼던 모양일세

통통하고, 탱탱하던 홍안이 이젠 쭈글쭈글 해지고 머리도 허옇게 세었네

그래도 자네들은 행복하이

떠나간 철새는 돌아올 생각이 없고

한 번 스쳐간 길손들은 해거름에도 다시 돌아 오지 않는데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늙어 가고

지나간 젊은 날의 사랑과, 꽃과 바람을 기억하고 있으니

추억의 바닷길을 다시 걸으며 웃을 수 있고 또한 함께 걸을 친구가 있으니

 

 

여기가 술을 사랑하고 달을 사랑하던 시선 이태백이 노닐던 바닷가여

 

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
침상 앞에서 달빛을 보니, 땅에 내린 서리인가
고개들어 달을 보다 고향생각에 고개 숙이네

 

 

마음이 바쁘지 않은가?

세월이 자꾸 많지 않은 시간을 귀뜸하니….

늘 돌아오라고 빈 가슴 한 켠에서 울던 고향은

이제 쓸쓸히 혼자 늙어가고 있다네.

어느 바람 찬 세상을 떠돌다가 그리 몰골이 상하고 여위었는가?

고향을 버리고 떠나서

그 많은 세월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젠 돌아오라

웃음 가득한 원래의 너의 모습으로

산을 사랑하고 , 바다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너그러운 너의 모습으로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고향으로

 

 

 

 

 

 

 

 

갑작스런 염천의 하늘에 또 갑작스럽게 비가 들이쳤다.

워낙 서슬푸른 기세로 들이대던 때이른 폭염에 혼비백산한터라

출정을 앞두고 내린다는 비가 오히려 반갑다

 

오늘 계탄거야 ….

출렁이는 바다를 옆에 두고도 뛰어들지도 못하고 오뉴월 땡빛에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헐떡거리며

해변을 배회해야 하는 모냥 빠지는 나들이 대신

약간 슬픈 낯빛을 한 바닷가를 우산들고 우아하게 걷는 게 보기도 놓고 걷기도 또한 좋지 않겠는가?

 

할래산이 아침으로 또 김밥을 준비했을 까봐

일어나자 마자 라면 하나에 계란 2개를 풀어 아침을 해결했다.

빽빽한 김밥은 점심에나 먹을 생각으로….

근데 된장국을 준비해왔다는 거다.

~~~

여성동지들을 위해 트레킹을 마치고 해변에서 마실 우아한 포도주를 준비한다고 예고하드만

왜 뜨거운 아침국 준비는 예기도 안 했던 거야?

 

하여간 분위가는 시종 멜랑꼬리 했다.

흐린 하늘은 촉촉한 가랑비를 흩뿌리더니 아침을 먹기 위해 도착한 예산 휴게소에서는 부슬거리던

가랑비 빗발이 더 굵어 졌다.

 

그런 날에도 아랑곳 없이 우리는 휴게소 한 켠에 상을 이어 붙이고  서늘한 빗속에서 따끈한 국과

밥을 먹는다.

분위기 가라 앉은 비장한 아침 ..

우린 오늘 백두대간 출정하는 거여 ?”

다른 때 같으면 된장국 2그릇인데 오늘은 새벽참이 있었으니 아쉽지만 한 그릇만 먹자….

가랑비에 옷이며 머리며 조금씩 축축해져도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만난 산친구들과 더불어 메마른 가슴도 촉촉히 젖어 들고 있었으므로….

 

버스의 율동에 따라 비몽사몽을 흔들다가 지난번 뒤풀이가 있었던 소근진성해변에 도착하자 비는

어느덧 그치고 청명한 바람이 목을 휘감는 조용하고도 흐린 해변이 우릴 반긴다.

우산도 필요 없고 썬크림도 필요 없는 오늘

걷기엔 최고의 날이고 여기가 최적의 장소일거란 필이 팍팍 온다.

슬픈 바다에도 아랑곳 없이 우린 후련한 바다와 맑은 공기 만으로도 그저 즐거웠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때라고 출발하는 데 기분을 와이리 좋고 발걸음은 왜 이렇게

가벼운 거여?

 

분위기 뜨고 흥이 사는 날이다.

지난 달부터 이어지는 만선의 기쁨에 해변의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가세하니 백범회장의 입에서도

고시조의 현학이 쏟아져 나오고 서해의 작은 파도소리는 산우들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 그렇게

묻혀 갔다.

 

봄은 이미 떠나 버린 뒤여서 흐린 여름 해변은 조금은 칙칙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꽃이 피어나는 여름 해변을 걸어 본적이 있던가?

지난 번 길에는 해당화와 꽃양귀비가 고혹적인 웃음으로 손을 흔들더니 여름이 깊어가는 오늘은

피어나는 꽃들이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 조차 없다.

난 그 꽃들을 좋아하긴 해도 이름도 잘 모르지만 물은 물이고 꽃은 꽃이다.

보아서 즐겁고 날리는 향기도 좋고...

 

오늘은 소근진성에서 천리포 해수욕장 까지 14km에 이르는 서해안의 돌출된 반도의 해변길과

길을 걷 날이다.

소근진성 제방을 지나고 서둘산을 넘어 의항에 도착하는데 산길과 해안길을 따라 부지런히 걷고

중도에 점심까지 먹으며 한나절을 걷고 나서야 의항의 이정표를 발견하고 다시 거기가 의항이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다.

지도를 보지 못했다면 하루종일 가도 가도 의항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길을 잃었거나 아니면

무엇엔가 홀려  산길을 헤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빤히 보이는 논을 가로 지르면 한달음에 달려 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물길 따라 구비 구비 휘돌

가는 것이다...

바다도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지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내 발길이 머물지 못했던 아름다운

바닷길은  오감과 가슴을 활짝 열어 복잡한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

 

길은 금계국의 화사한 소근진성 제방을 따라 방근제를 지나 의항항으로 연결된다.

의항항에서 산너루 해변으로 나서면 가교로 연결된 둥근 조형의 바다쉼터가 눈에 들어오고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파도소리 들으며 맑은 물빛과 그림 같은 풍경 속을

걸어가니 발길이 자꾸 밀리지만 마음은 더 한가롭고 고요해 지더라.

송림이 울창한 해변가 한 켠에는 지리를 대여해주는 야영지가 있으니 소란하고 복잡한 넓은

해수욕장 보다 수심이 얕고 불빛이 고운 여기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딱 좋은 곳이다.

 

오늘 우리가 걷는 태안 해변길이 소원길 혹은 태배길이라 불리우는데 유조선 침몰로 인한 해안오염의

아픈 기억과 예전의 깨끗한 바다를 염원하는 온 국민의 절절한 소망이 뜨거운 열정과 땀으로 소용돌이

치던 길이다.

안태배 해안은 물빛은 너무 깨끗해서 마치 동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데 그 어디에도 아픈 과거의

흔적은 없다.

길은 테배 전망대로 이어져 비로서 맑게 개이는 하늘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막힘 없이 깨끗한 먼바다와

섬의 풍경을 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해안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구름포해수욕장 갈림길을 지나 의항 해변으로 내려섰다가

산길을 따라 수망산에 오르고 이후 일리포와 십리포 , 백리포 해수욕장을 거쳐 천리포 해수욕장에

도달한다.

태양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졌지만 숲속 그늘아래는 여전히 시원한 바람이 지나다녔고 때이른

해변은 한적했지만 그래도 규모가 크고 유명세를 타는 천리포 해수욕장에는 벌써 바다가 그리운

사람들이 삼삼오오 해변에 모여서 성급한 여름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길이었고 너무 짧아서 조금은 아쉬운 길이었다.

길 따라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한적하고 아담한 구름포 해수욕장이 인상적이어서 혼자 햇빛 속을

걸어 5-600미터 아래 있는 구름포 해변을 구경하고 되돌아 오기도 했지만 햇빛이 뜨거워 지면서

작은 해수욕장들은 하나하나 돌아보지 않고 너무 빨리 천리포에 도착하니 뒤늦은 미련이 스멀스멀

따라온다.

차가운 맥주 한잔으로 목의 갈증은 시원하게 씻겨 내려 갔지만 목에 걸린 아쉬움은 가시처럼 남아

있으니 내년에는 신두리 사구도 찬찬히 돌아 보고 이 맑은 바닷물에 노닐러 다시 합 번 와야 할 듯하다.

 

걷 기 일 : 2020614 ()

걷기코스 : 소근진성제방 만리저수지-의항2-산너루해변-안태배해변-구름포해수욕장-

의항해수욕장 일리포-심리포-백리포-천리포 해수욕장

거 리 : 13km

소요시간 : 4시간

: 귀연산군 26

: 가랑비 후 흐린 후 맑음 

 

 

 

 

 

 

동행사진첩 (청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