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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덕룡 주작산 - 2004.03.28

 

 

 

 

 

병원으로 문병을 갑니다.
우리는 숱한 사람을 봅니다.
교통사고로 온 몸이 망가진 사람
하루종일 허공을 보면서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들 …
때로 참으로 아플 때가 있습니다.
모든 세상사의 관심과 흥미가 없어지고 오직 병의 회복만을 생각합니다.
우린 새삼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건강한 몸의 축복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마음이 많이 상하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심한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이 삶의 의미를 뿌리 채 흔듭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주는 평범한 행복을 알아 차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걱정과 고민이 있습니다.
걱정과 고민의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걱정과 고민을 극복하는 지혜도 받아들이는 가슴의 크기도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고민이 지난 다음 그것이 사치스러웠고 우스꽝스러웠음을 흔히 봅니다.

친구여
이 푸르러 가는 봄엔 산으로 가자
높아 있는 산에서 하늘을 보고
걱정일랑 소나무 가지에 잠시 걸어두게나
바람에 답답한 가슴은  훌훌 날려 버리고
빈 마음엔 봄을 가득 담아 오세나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건강과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인생은

축복이다.
세월이 만들어 가는 인생의 나이테를 지울 수 있는 건 교훈과 위안으로 가득찬

대자연 뿐이다

“봄”
태양빛은 부드럽고 바람은 감미롭다
내 심장의 박동은 뜨겁고 아직  근력은 짱짱하다.
내가 수도승인가?
이 유혹의 계절이면 더  심하게 도지는 역마살을 도심 한가운데서 어찌 주체할

수 있으랴?
하늘은 드맑고
어디든지 새처럼 떠돌 수 있는 자유가 준비되어 있다.
마누라는 막내와 진해 군항제에 가고
나는 어느 산기슭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그리움을 만나러 간다.

이 봄엔 모든 골치 아픈 일은 접어두자
이 눈부신 짧은 봄은 잠시 바람인 듯 우리 곁에 머물다
문득 되돌아 본 어느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가리라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어느날 “
2004
년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 곁에 서성이고
나는 남도의 들녘을 그윽한 눈으로 탐하며  조만간 달아나버릴 변덕스런 봄의 가슴을

헤적이고 있다.

화사한 봄 빛으로 물들어 가는 대지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밭고랑에 뒤집혀 있는 흙덩이들 사이로 돋아난 새싹들
먼저 푸르러 버린 연초록의 보리밭
목련은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껏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은 화려한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밀려 가는 차창 밖의 들판은 형형색색의 물감을 흩어 놓은 듯
남도엔 그렇게  봄의 축제가 한창이다.

 

우리의 인생 길처럼
거친 암봉과 가파른 절벽을 넘어 한 굽이 돌산을 지나자  봄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

가득한 부드러운 능선길이 나타난다..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지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동백은 바닷가에서 먼 능선 길 위에 홀로 붉은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를 야생화는 부드러운 봄의 색감을 시새우고 있다
흡사 갈색의 초원인 듯  완만한 능선을  따라 반짝이는 금빛 억새의 물결은 봄바람에

하늘 거린다.

길은 외줄기
남도로 삼백리를  흘러내리는 능선 길
그 길 위로
구름처럼 내가 흐른다.
봄은 저렇듯 푸른 서슬로 능선을 오르고 있건만 억새는 지난 가을의 추억에서 아직

깨어나려하지 않는다.

 

주작산 가는 길
사방을 둘러 보아도  경쾌한 아름다움이 바람결에 날리고.
나는 마치 유희에 탐닉하듯 가벼운 발길로 봄이 오는 가을 들판을 스쳐 지난다.
남도의 봄은 가르랑거리며 헛간에서 제 짝을 유혹하는 고양이의 교태를 닮았다

오늘 같은 날은 봄 소풍날이다
눈부신 태양아래 어기적 거리며  불어 가는 바람도 목에 걸고
허공에 흩어지는 나른한 봄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고
나른한 남도의 푸른 바다와 하늘도 욕심껏 가슴에 담아보자
살아 있는 풍광을 카메라의 잔상으로 남기려는 그 어리석은 시도일 망정
훗날 남도의 봄을 반추하는 추억의 편린으로 남지 않으리…

나를 기다리는 건  출발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빈 배
나무  그늘 아래 비스듬히 누어 있을 술통 뿐
한껏 게으름을 피운들 무슨 문제 있으랴?

 

한잔의 막걸리에는 남도의 인정이 머물고
싱그럽게 자란 보리 밭이랑과  푸른 마늘 잎 위에도 봄이 앉아 있다
처음으로 덕룡,주작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 오는 길
한여름처럼 뜨거웠던 봄날의 태양은 들판에 서서히 황혼을 드리우고
그렇게 오래도록 붉은 모습으로 산과 벌판을 따라 오던 태양은 마치 달인 듯 구름

위로 붉은 노을을 엷게 드리운 채 달리는 창에서 멀어져 갔다.
선잠을 오락가락하던 사이 영산포 쯤에서 어둠은 성큼 내려와 있었고 어둠이 내리

는 들판과 깨어나는 도시의 불 빛을 가로질러 버스는 그렇게 집으로 달렸다

 

 

2004 328  덕룡 주작 산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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