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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2005년 지리산 종주 -2005.05.29

 

 

 

 

 

 

산에서는 한 껏 자신을 낮추어도 좋았다.

아니 작아진 채로 그 길을 걸어 가면서 만날 수 있는 기쁨들 그리고 멀리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그 뻐근한 휴식과 새롭게 채워지는 영혼의 느낌이 좋았다.

온갖 욕심과 집착의 굴레를 벗고 편안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

보통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그 산의 유혹을 떨칠 수 없어 나는 오늘도 심산

 구름처럼 떠돈다.

 

식사를 마치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오면 산장에서는 날건달이 된다.

해가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인다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게 다가 왔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

이제 큰 산마루에 등을 기대어 잠들면 심산의 정기는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상의 시름과미망을

거두어 내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정제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의욕과 기쁨이 충만한 채 산을 내려가게 될 것이다.

 

자리를 배정 받고 마루 침상에 앉아 졸다가 모포를 지급받자 마자 누워 잠들었는데 누군가 깨운다 

저 코를 너무 심하게 고시는 통에 잠을 못 자겠는데…. ”

9시쯤 넘었으니 1시간이 좀 넘게 잔 셈인데 

하지만 난들 어떡하우

황당한 일이라  좀 기다렸다 그 아저씨 코고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잠들었다.

 

 

Zzzzzzzzzzzzzzz-Zzzzzzzzzzz

너무도 주위가 소란스러워 잠이 깼다.

3시가 좀 넘었는데  천왕봉 해돋이 보러 가는지 대부분 일어나서 벌떼 같이 웅성거린다.

해 뜨는 시간이 5 20분 쯤이라 4 30분에 가면 충분 할 텐데…..

 

아뿔사”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니 4 50분이다.

산에서 7시간도 넘게 잔 셈이다.

모포를 개고 옷을 후다닥 입은 다음 장터목 길을 내니 희미하게 새벽이 달려오고 있다.

 

5 20

천왕봉에 다다를 때 쯤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내려온다.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구름이 많아 해가 뜨지 않는단다.

 

5 30 분쯤 세찬 바람이 불려가는 천왕봉 표석 앞에 섰다.

새벽 일찍 와서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30분 까지 기다려 해가 여전히 구름 속에서 나오지

못하자 무리지어 아쉬운 마음으로 하산했고 천왕봉에는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너무 바삐 올라 오느라 턱에 찬 숨을 몰아 쉬면서 그 시원한 천왕봉 바람으로 달아오른

온몸의  열기를 식혔던 것이다.

 

천왕봉 태양은 사람들이 죄 내려간 다음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보였다가 구름위로 유유히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5 5 29  5 50분 현재

나는 올해도 어김 없이 남단의 고봉에 서서 떠 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니체가 그랬나?

폭풍을 이르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언어이다.”

비둘기처럼 고요한 사상이 우리의 세계를 뒤흔든다.”

 

바람결이 시린 천왕봉에서 깨어나는 고원의 아침과 붉은 태양이 고요함 속에서 세차게 나를

흔들고  있다.

나는 대자연의 축복을 온 몸에 받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지리산 순례의 장정을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내 마음의 성지 , 그리고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목이멘 그리움

 

삶이란 조용히 스쳐 지나는 바람 같아야 한다

수 많은 세상의 번뇌에 흔들리지 않기를 ….

언제나 아름다운 대자연 한 가운데 넋 놓고 그 감동에 목놓아 울 수 있기를 ….

 

조용히 나 혼자만의 의식으로 2005년 지리산 순례의 길을 그렇게 마무리 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대지를 스쳐가는 풍경들을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여행길에서

돌아왔다.

지리산 순례는 내 마음에서 곧 잊혀져 갈지 모르지만 그 따뜻한 기운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함께 있으면 그 향기가 짙어 오고 멀리 있으면 그리움이 향기에 배어 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람으로  늙어 갈 수 있다면 .....

내 삶을 사랑하고 항상 산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오는 여행길에서 생각해  본다.

 

 

2005 529  지리산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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