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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행

수통골

 

 

 

다시 새벽 앞에 홀로 섰다.

그 앞에서는 늘 진실해지고 겸허해진다.

많은 세월이 흐른 것처럼 아득하고 아련하다,

어머니가 떠나신지 8개월이고

내가 다치고 나서 4개월이 흘러 갔다.

 

내 인생에 커다란 사건들이었고 내 삶을 다시 돌아 보는 시간이었다.

내 삶의 패턴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나의 생각과 삶의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죽음은 끊임없이 조금씩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만 난 오히려 담담해진다.

새벽이 오고 또 날이  저문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지만

죽음의 가벼움을  알고 있으니 삶 또한 가벼워져야 할 뿐이다.

 

죽으면 길이 끊어진다.

누군가의 죽음은  인연의 구체적인 종말이고 나의 죽음은 우주의 붕괴와 몰락이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 더 슬퍼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죽기 전에  잘해야 한다.

우린 죽음의 목전에서  후회하지만 다 소용이 없다.

죽기 전에 잘 살아야 한다.

 

어느날은 비가 오고  거친 바람이 불고 어느 날은  부드러운 바람에  밝은 햇살이

드리운다.

삶의 강에는 그렇게  기쁨과 슬픔,  혼돈과 평화가 뒤엉켜 소용돌이 친다.

불현듯 다가오는 고통은 엄중하고 무겁지만 그 또한 삶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영고성쇠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피해갈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이자 숙명이다.

저항하고 괴로워할수록 배는 늙음이 주는 평화와 안식에서 멀어져  거친 격랑의 

바다로 향할 것이다. 

 

흘러간 과거는 기억이 희미한 몽롱한 꿈과 같다.

다행인 건 세월이 우리의 상처 위에 딱지를 앉히고 아픔의 모서리를 무디게 한다,

내가 누린 구체적인 삶의 기쁨들은 두루뭉실해지고 그 강렬한 원색의 빛깔은 추억의

창틀에서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조로 낡아 간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세상의 자극적인 소리에 솔깃해지고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데 그래도 새벽이 있어서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 여명의 빛으로 위안은  얻을 수 있으니 내겐 이 적막과 고요가 고마운 일이다.

 

지금은 게을러져서 아침 운동은 하지 않지만 훗날 대전으로 돌아가면 나는  내 삶에 

게을러 지지 않기 위해 다시 아침운동에 나설 것이다.

아침 운동이 지루하지 않고 그 시간이 감미롭다면

붉은 태양빛으로 각성하고 나와 반가운 인사를 나룬 수 있는 그런 시간이라면

자칫 늙음에 내어 주기 쉬운 삶의 충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6시간쯤 자고 일어나 그렇게 어두운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서

홀로 대면한  어둠이다.

내 삶의 방식을 다시 복원할 수 있다면 25년 나의 여행길은  벅찬 감동의 여정이 될

것이다.

 

오늘은 10시에 치과진료가 있어  수통골을 타기로 했다.

예전의 기량이면 도덕봉-금수산-빈계산 찍고 3시간 30분이면 하산할 수 있으니 6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도덕봉과 금수산만 돌고 내려가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수통골은 매일 하는 아침운동으로는 다소 거칠고 버거운 코스라 훗날  멀리 떠나지

못하는 날에 한 번씩 오를 만한 근교코스 중의 하나이다,

제법 뻐근한 운동이 가능한 다이나믹한 코스로 도덕봉 까지는 거칠게 치고 올라가지만

금수봉 가는 능선 위로 다시 올라서면 편안하고 부드러운 고원의 산책 길이 길게 이어

진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 바로 이 구간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고 그 길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색과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

 

 

후렛쉬도 모두 문막에 있는 터라 핸드폰 불을 켜고 오르는데  7부 능선 쯤에서 아랫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어둠의 휘장이 조금씩 벗겨 지기는 하지만  빛이 없이 거친 길을 오르기는 부담스러운 시간

인데 늑대처럼  어둠에 쌓인 산 길을 홀로  오르는 이가 있다.

 

동네 고수의 포스

일찍 오셨네요??”

내가 어둠의 한 켠에서 갑자기  말을 거니 화들짝 놀란 눈치다.

앗 나의 실수 ! ! 

나는 오르는 소리는 내지 않았고 불빛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느닺없이 튀어나오니  정말 놀랠 만도 하다.

머리가 허연 걸로 보면 내 나이 또래릴 법 한데 아마도 아침운동 중인 모양이다.

 

그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깨어나는 새벽을 음미하며 오르는데 조금식 동편 하늘에 붉은

여명이 뜨기 시작한다.

시내의 불빛이 내려다 보이는 도덕봉 전망대에서 마주하는 일출도 꽤 볼만 하겠다.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새벽풍광인데 내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 있는 강렬한 기억은  

어느날  갑작스런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의 풍경이다.

 

7시가 막 넘었지만 아직 해뜰 시간이 아니라 잠시 새벽풍광을 감상하고 내쳐 도덕봉에 올랐다.

아무도 없는 도덕봉~~

셀 수 없이 올랐던 봉우리지만  오늘은 더 적막하고  친구들과 히히덕 거리며 사진 찍던 표석은

오늘 따라 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아침해가 떠 오르는 중이다. 

 

아침 해는 도덕봉 능선을 내려가면서 만났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3시간 40분이나 걸렸다.

빈계산을 오르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오늘 제법 거친 길이어서인지 발이 많이 불편하다.

생각보다 큰 사고였고  회복에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

"
나무여 그들이 너를 잘라 버렸구나
너는 너무도 낯설고 기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수백번 겪은 고통끝에
남은건 고집뿐이로구나

나도 너와 같다 잘려나가고
고통 받은 삶을 떨치지 못하고
날마다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

내안에 있던 부드러움과 연약함은
세상에서 죽음으로 내돌리고 조롱당했다

그래도 나의 존재는 파괴되지 않아
나는 자족하고 화해했다

수천번도 더 잘린 나뭇가지에서
나는 끈질기게 새 잎을 내민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꿋꿋이 나는
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미친세상이다.

늙음이란 나무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아침 산행을 마치고 치과에 들렀다가 마눌한테 전화해서 같이 사우나에 갔다가

점심으로 복탕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통령 탄핵 결정된 날

정치인은 더 이상 국민을 선동하지 말고 국민은 이제 광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41214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