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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펌)

일만성철 옹의 주전골 포토 에세이

(2006. 7. 13/한계령-흘림골매표소-오색약수-하조대-남애/신도시산악회 따라

 

*. 설악산이 입산금지라는데
배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경비 아저씨의 신기한 눈초리가 내 뒤통수를 따라온다. 태풍 에위니아가 막 지나 가자마자 집중 폭우가 398m나 물을 붇듯이 쏟아져 내려 이재민이 생기고, 전철이 끊기는 둥 고양시가 야단법석인데 산에 가다니-. 설악산이 입산금지라며 만류하는 아내를 뿌리치고 말이다. 기상 예보에는 ‘비 오다가 오후에 갬’이었다.
그래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관광버스에 가득 태우고 설악을 향하는데 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 한계령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하여 못살겠네.” 노래하던 인제와 원통을 지나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이요, 외설악과 남설악의 분수령인 한계령(寒溪嶺, 1,004m)을 넘는다.
분수령(分水嶺)이란 비가 내리면 각각 반대쪽으로 흐르는 경계선이란 말이다. 옛날에는 이 고개를 ‘오색령(五色嶺)’이라 하던 것을 1971년 12월 양양과 인제를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생긴 후부터는 한계령은 외설악과 남설악의 분수령이 되었다.
고개를 넘자 강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이제 등산은 틀린 모양이니 동해 바다를 안주하여 술이나 탐하여 볼까. 그러기 전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일만 따라 전설이나 찾아가 보기로 하자.


*. 대승폭포에 얽힌 어머니의 사랑

설악산12선녀탕'을 가는 길은 백담사 가는 도중에 남교리를 들머리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옛날 어느 겨울에 장수대 장순이네 집에서 1박하고 대승폭포를 지나 대승령을 넘어 장장 7시간 30분을 걸어 남교리로 간 일이 있다. 그때 장순이가 나를 몹시 따르던데 벌서 누가 잡아먹었을 것 같다. 장순이는 여관집 암캐였다.
장수대는 1959년 옛 한계사가 있던 절터에 세운 6.25때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변에 있는 대승폭포, 옥녀탕, 가마탕, 한계고성, 하늘벽을 찾아드는 탐방갱의 휴식처가 되는 산장이 장수대다.
그 중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길이 88m의 폭포인데 대쪽 같이 곧게 흘러내리는 것이 자랑인 폭포로  그 이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 조실부모한 대승이라는 가난한 총각이 버섯을 따다 팔아서 연명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 폭포의 돌기둥에 동아줄을 매고 버섯을 따고 있는데 위에서 ‘대승아, 대승아! 부르는 어머니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는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상류에서 동아줄을 썰고 있었다. 그래서 이 폭포소리가 죽어서도 자식을 지켜준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 하여 후세 사람들이 대승폭포라 하였다.

*. 왜 ‘흘림골’이라 하였을까?
한계령에서 오색으로 내려오다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매표소가 흘림골 매표소요, 다음이 용소폭포매표소다. 혹시나 산행할 수 있을까 하는 미련으로 들려보았지만 그 답은 ‘X’로 입산금지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50만원이라니 이젠 등산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왜 흘림골이라 하였을까?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의 말 중에는 ‘비’(함경, 평북)나 ‘물’(강원), ‘술’(강원)을 ‘흘림’이라 한다. 이곳은 비와 물이 많은 곳이라서 ‘흘림골’인가 보다 하였더니 다음과 같이 흘림골을 풀이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능선과 맞닿아 있어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때문에 기후변화가 심하고 안개가 자주 끼어 흐린 날씨가 많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이곳을 ‘흐림골’ 또는 ‘흘림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심폭포(女深瀑布)가 보고 싶었는데
그림출처:불사초
  흘림골에서 제일 볼만한 곳이 매표소에서 0.9km(49분) 거리에 있는 여심폭포다. 20m의 작은 폭포지만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이다
-계집 ‘女’(여), 깊을 ‘深’(심), 여자의 깊은 곳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황홀하지 않은가. 그래서 일명 ‘여신폭포(女身瀑布)’라고도 한다. 관악산 옆산 삼성산에서 여근바위를 보고 감탄하였는데 그보다 민망할 정도로 더 사실적이라는 것이 여심폭포라는데. 이 폭포는 신혼부부들이 꼭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였다. 그 여심폭포에 흐르는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서다.


한계령을 넘기 전에 보고온 고명규씨의 男根(남근) 나무 조각이 우연한 일로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 여심폭포니 말이다.
거기서 머시기를 카메라에 담아온 것을 여기 몇 컷 소개한다. 사실 말이지 그 이야기는 우리들 유머의 시작이요 종착점이요, 재미 중에 재미가 아니던가. 娛樂(오락)의 ‘娛(오)’ 자가 즐거워 할 '娛'(오) 자요, 娛= ‘女’ + ‘吳’이니 여자하고  떠들썩하게(吳) 논다는 뜻이다.

*. 오색약수터 전설

한계령 동남쪽 5km 지점에 있는 오색약수는 대청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4시간 코스의 최단거리에 있는 설악 등반의 주요 기점이다. 약수, 온천, 아름다운 계곡 같은 관광의 3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는 남설악의 명소다. 특히 온천은 해발 800m 높이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 오색 약수터는 상가를 지나 주전교(鑄錢橋)를 건너 아치형 교각이 아름다운 약수교(藥水橋) 아래에 너럭바위에 3군데가 있는데, 오늘은 장마에 물이 불어 둘은 물 속에 잠기었고 그 중 하나가 우리의 목을 축이게 한다. 멋진 거북이 모양은 루사태풍에 이어 매미태풍에 부셔져서 흉하게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이 오색약수는 수량과 수온이 항상 일정한 산성과 탄산수로 철분이 특히 많아서 위장병, 빈혈증, 신경통, 신경쇠약, 기생충 구제에 특효가 있다 한다.
옛날에는 이곳은 양양부의 역(驛)이 있던 곳이다. 역(驛)이란 옛날에 공무로 다니는 벼슬아치의 인마(人馬)나 마차가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의 역할을 하던 곳이요,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이 고장을 오색리라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조선 중기인 1,500년경에 성국사(城國寺)의 한 승려가 반석에서 용출하는 천맥을 발견하였는데 이 물이 약수라는 것이 판명되자 오색약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색이라 이름 한 것은 당시 성국사 뒤뜰에 다섯가지 색의 꽃이 피는 특이한 나무가 있어 성국사(城國寺)를 오색석사(五色石寺)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을 따서 오색약수(五色藥水)라고 한 것이다.
-계곡에 넓은 바위의 두 구멍에서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가 용출되고 있는데 그 물맛이 다섯 가지라 하여 오색약수라고 칭한다는 전설도 있다.

현장에 있는 오색약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출처:불사초
-오색약수의 하루 용출량은 1,500리터 정도 되며 조선왕조 중엽인 1,500년 무렵에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절인 오색석사의 스님이 발견했다고 한다. 이 물은 철분이 많아서 위장병, 신경쇠약, 신경통,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 하며, 가재나 지렁이를 담그면 곧 죽어 버릴만큼 살충력이 강하여 뱃속에 기생충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지에 영어로 번역까지 하면서 소개하여 놓은 글 중에 부실한 부분이 있다. ‘흔적조차 없어진 절’ 이라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성국사에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오색석사3층석탑(보물 제497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 용이 못된 이무기
용소폭포매표소에서 10분정도 오르면 용소폭포(龍沼瀑布)가 있다.
- 옛날 옛적 이 못에서 살면서 1,000년을 기다리며 등천하기를 기다려 온 이무기 한 쌍이 있었다. 막 하늘에 오르려 하는데 암놈 이무기는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그만 하늘에 오를 시기를 놓치고 폭포 옆의 바위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곳에는 폭포가 있고 그 아래 담이나 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의례 등천을 꿈꾸는 이무기가 있다는데 이무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열대지방에 사는 몸이 아주 큰 구렁이로 한자어로 교리(蛟螭), 대망(大蟒), 염사(蚦蛇)라고도 하는 물속에 산다는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를 말한다. 용이 되려다 어떤 저주에 의해 승천을 못하고 물 속에 산다는 전설적인 큰 구렁이다. 민간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년을 기다려야 용이 될 기회를 얻는다는 용과 구렁이의 중간적 존재이다. 천년이란 시간은 여의주를 완성하는 시간이란다.
-여의주(如意珠)란 용의 턱 아래 있다는 영묘한 구술로서 사람이 이것을 얻으면 변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구술이다.

같을 '如'(여), 뜻 '意'(의), 구술 '珠'(주)란 글자 뜻 그대로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성취시켜 주는 주옥이다. 인간이 원하는 보물이나 의복, 음식 등을 가져다 주며 병고 등을 없애 주며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에는 공덕이 있다는 보물이다.
그 이무기가 꿈꾸며 등천 하고 싶어 하는 세계는 옥황상제가 계신 하늘나라요, 그곳은 생로병사가 없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세계요, 서양인이 말하는 유토피아(Utopia)의 세계이리라.

*. 위폐범 도둑의 은신처 주전골
출처:불사초
  주전(鑄錢)골은 외설악의 천불동계곡, 내설악의 백담사계곡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관광의 코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외지고 골이 깊어 인적이 드믄 이곳에 조선시대 스님을 가장한 도적들이 바위동굴에서 숨어 살면서 놋그릇을 녹여서 위조 주전(鑄錢)을 만들다가 관가에 적발된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주전골이라고 하였다.
-용소폭포 입구에 시루떡 바위가 있어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 같이 보여서 사람들이 주전골이라고 불렀다.







*. 꿩 대신 닭이라



  비는 그치고 청명한 하늘이 시작되었지만 설악산 전체가 일주일 내내 입산금지란다.

빗속을 뚫고 산을 갈 수는 있지만, 먼 산에 단체로 와서 입산금지령이 내린 매표소를 무시하고 등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우리들은 오색분소 앞 의자에서 점심을 하고 발길을 바다로 돌려야 하는 관광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만년에 함께 노닐었다는 하조대(河趙帶)의 정자와 무인등대를 거쳐 남애항(南涯港) 어시장에 둘러 회거리를 장만하였다. 물론 회원들의 주머니를 털어 약간의 회비를 갹출하여 방파제에서다.
오늘의 '꿩'은 주전골이어야 하는데 대신에 '닭'은 '회'가 되고 말았다. 이 얼마나 황공한 호강이냐? 이럴 때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재산을 가진 것과 같지 않은가.
시인 예츠도 말하지 않았던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