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유엔에서 'P5'+일본 회의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대사. ⓒAFP
북한 핵 실험(이라고 추정되는) 사태에 대해 세계 각국은 한 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물론 속내야 이해 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위치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세계가 이렇게 똘똘 뭉친 걸 보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중국마저 “북한은 징벌적(punitive) 조치를 당해봐야 한다”며 유엔주재 자국 대사의 입을 빌어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뉴스위크는 미 고위 당국자가 “적어도 북한에 대해서는 마침내 하나의 전선이 형성된 셈”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다른 목소리를 낸 곳도 있습니다. ‘동정’부터 ‘박수’까지 반응도 다양합니다.

필리핀 정글에서 신입대원 모집을 위한 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택동주의 공산반군. ⓒReuters
가장 적극적으로 북 핵실험에 환호를 보낸 집단은 필리핀 공산당(CPP)였습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필리핀 공산당은 1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북 핵실험을 “국가 주권의 군사적인 주장이며, 스스로 강력한 방위능력을 키우는 것은 독립국가의 권리”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입니다. 또 “핵무기 개발로 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억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세계의 본질적 평화를 위한 노력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CPP는 30년 넘게 필리핀에서 모택동주의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란의 엘함 정부 대변인(왼쪽)과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AFP
그리고 또 다른 핵개발 의혹국 이란이 있습니다. 이란은 비난의 화살을 북한 대신 미국에 돌렸습니다. 이란 정부 대변인 골람 호세인 엘함은 10일 “이란은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 개발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을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북 핵 실험의) 근본 원인은 미국 위정자들의 정책과 태도,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영라디오도 북한 핵 실험을 “미국의 위협과 모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란 신문들도 북한에 동정적이었습니다. 이란 신문 ‘레살라트’는 사설에서 “미국이 팽창주의 정책으로 세계를 위험하게 만드는 동안 다른 나라들이 전쟁억지 수단으로 핵과 같은 무기를 개발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습니다. 중도신문 ‘에테마드 에 멜리’는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핵 프로그램을 이유로 오랫동안 이란에 제재를 가해 온 미국에게 좋은 교훈이 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번째는 한국의 일부 단체들입니다. “기왕에 있는 핵무기, 핵실험을 발표한 것이라면 이참에 미제의 숨통을 끊어 놔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미제로부터 구하는 길”(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www.onecorea.org)이라거나 “미국의 위협에 대한 북한의 응당한 자위력 강화”(한총련 hcy.jinbo.net) 등의 반응입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네요.

푸틴과 후진타오. ⓒAFP
사실 이런 동정, 환호, 박수는 별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다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요. 오히려 무서운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장기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의 핵 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일 것입니다. 아직은 '위험한 상상'입니다만.
먼저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으로까지 불린다는 조총련계 재일교포 김명철 박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홍콩경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북의 행보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 자신이 핵전쟁도 두려워 않는 영웅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며, '협상 카드가 아니라 주권(혹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핵을 보유하려 한다는 것' 등이 김 박사가 밝힌 북한의 논리의 일단입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주장은 ‘북은 핵 보유가 결국 중국과 러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김 위원장의
세번째 의도다. 중국과 러시아는 언젠가 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점
을 알고 있고, 이 경우 핵무장한 북한은 이들의 동맹국으로 미국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이 겉으로는 핵실험을 비난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양안문제로 인한 미국의 군사적 압력과 충돌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속내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연합뉴스, <김정일의 핵계산법> 발췌

부시 미 대통령과 싱 인도 총리. 무슨 얘길 그렇게 다정하게? ⓒAP
미국은 지난해 7월 인도와 전면적인 핵기술 협력을 약속하며 사실상 인도의 핵 보유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결정은 자국 내에서조차 “핵 비확산 원칙을 어겼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에너지 문제 등 여러가지가 원인으로 꼽힐 수 있겠으나, 가장 유력한 분석은 “미국이 인도를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핵을 사실상 용인하며 중동국가들을 견제하는 것과 일견 유사한 메카니즘입니다.
일본은 북 핵 실험 뒤 요즘 말로 아주 '필' 받았습니다. 납치문제로 재미를 봤던 아베 총리에겐 정치적 호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0일 저녁에도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 규탄을 결의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별도로 북한 국적자는 모조리 일본 입국을 불허하는 단독 제재방안도 고려중이랍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 ⓒReuters
그리고 11일 새벽, 러시아에서 우려스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핵 장치(device·폭탄이나 무기를 완곡하게 표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에 대한 시험이 이뤄졌으며 북한이 사실상(de facto) 9번째 핵보유국이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먼 훗날에라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에 대해 “북한은 파키스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던 미국 반응(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바노프 장관은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북한이 사실상 핵클럽에 가입했다는 점을 부인하려 한다”며 “핵폭발의 강도와 성격에 대해 각국 평가가 다른 데는 정치적·기술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미국이 유럽 지역에서 폴란드에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 그루지야의 NATO가입을 배후조종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잔뜩 골이 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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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파라마운트영화사
물론 이바노프 장관의 언급은 북한의 실험 규모가 적게는 2kt(킬로톤)에 불과하다는 다른 나라들의 견해에 대해 5~15kt에 달한다는 러시아의 계산을 옹호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성격이 강합니다.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핵 실험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제재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협력하고 있다는 것도 현재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파워게임에는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런 교훈을 배우고 또 배워왔습니다. 항상적인 핵의 위협 앞에 목숨을 내어 놓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있어선 안됩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침해할 수 없는 원칙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강대국의 파워게임 한 가운데 놓인 작은 나라에게, 주어진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강대국의 얼굴 뒤 어딘가에서, 서로 다른 셈을 하며 박수를 치거나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사꾼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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