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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가리기와 한국의 미래

 앞날을 알고자 하는 욕망만큼 강하고 질긴 것은 없다. 인류가 유사 이래 축적해 온 지식도 따지고 보면 미래 예측에 대한 욕구에 기인한다. 종교든,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예외가 아니다. 진전도 많았다. 하루나 이틀 후의 기상을 제법 정확히 예보하기도 하고 경기가 살아날 것인지 침체될 것인지도 예측한다. 위험관리·지식관리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선택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고 얼마나 정확한지 확률일 뿐이다. 애석하게도 인류가 지난 수천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것은 지식의 정도에 따라 미래 예측의 정확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류가 지식을 많이 축적할수록 변화도 빨라지고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질수록 이를 알고자 하는 욕구는 덩달아 높아진다.

어찌 보면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은 달빛이 만든 자신의 그림자를 앞서려고 열심히 달리는 순진한 아이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앞날을 가장 희망적으로 그린 것은 이어령님의 ‘디지로그’가 아닌가 싶다. 이어령님은 0과 1이라는 건조한 숫자에 불과한 디지털에 오색찬란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비빔밥과 같은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입힌다면 세계 최고의 디지로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류가 아시아를 강타하고 김치와 온라인게임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을 봐도 상당히 타당한 분석이자 예측이다. 그렇다고 희망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출판된 ‘부의 미래’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주역이 중국과 인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반도는 다시 한번 아시아의 주변국으로 전락할 처지다.

토플러의 예측 방법론은 다소 심정적이고 주관적인 이어령님보다 좀더 과학적이다. 시간과 공간, 지식이라는 3대 펀더멘털이 미래를 예측하는 잣대다. 이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라는 양적인 관점을 ‘진실 가리기’라는 질적인 측면으로 전환한 것이다. 진실 가리기의 우열은 그 사회의 진실 여과장치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는 ‘진실 가리기’에서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삭막한 디지털 세계를 풍부하고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어느 민족이나 국가보다 빼어나게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진실 가리기에서는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토플러가 제시한 6가지 진실 여과장치-합의·일관성·권위·계시·내구성·과학-를 뜯어보면 더욱 그렇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태만 보더라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우리는 권위도, 합의도, 일관성과 내구성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공계는 물론이고 인문계도 위기를 맞고 있어 과학마저 총체적인 난국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과학적 지성보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뛰어난 우리 민족의 특성이 지닌 내재적 요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계시라는 항목인데 이는 우리의 신명과 무척이나 어울려 보인다.

2002년 전 세계를 감동시킨 붉은악마가 그래서 더욱 그립고 부활이 기다려진다. 월드컵 기간 내내 3000만을 하나로 합치시키고 일관되게 질서정연함을 이끌었던 권위, 과학을 동원한 탄탄한 응원, 인터넷을 활용한 자발적인 참여와 지식축적 등등은 숨어 있던 우리의 진실 가리기 능력을 보여준 계시가 아닐까 싶다.

  유성호 논설위원 shyu@etnews.co.kr전자신문

○ 신문게재일자 : 200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