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윤동주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詩人 尹東柱之墓
무덤 속에서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덤 속에서도 바라보고 싶은 별들이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잠이 들고 바다는 조용히 땅에 눕는다
그 얼마나 어둠이 깊어갔기에 아침도 없이 또 밤은 오는가
무덤 속에서도 열어보고 싶은 창문이 있다 무덤 속에서도 불러보고 싶은 노래가 있다
정 호 승
윤동주 무덤 앞에서
이제는 조국이 울어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이제는 한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마른 잎새들이 울어야 할 때다
이제는 조국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목숨을 버렸으므로 이제는 한 젊은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죽어서 사는 길을 홀로 걸어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던 사나이 무덤조차 한 점 부끄럼 없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나이
오늘도 북간도 찬 바람곁에 서걱이다가 잠시 마른 풀잎으로 누웠다 일어나느니 저 푸른 겨울하늘 아래 한 송이 무덤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을 위하여 한 줄기 해란강은 말없이 흐른다
정 호 승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나는 왜 아침 출근길에 구두에 질펀하게 오줌을 싸놓은 강아지도 한마리 용서하지 못하는가 윤동주 시집이 든 가방을 들고 구두를 신는 순간 새로 갈아 신은 양말에 축축하게 강아지의 오줌이 스며들 때 나는 왜 강아지를 향해 이 개새끼라고 소리치치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개나 사람이나 풀 잎이나 생명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산에 개를 데려왔다고 시비를 거는 사내와 멱살잡이까지 했던 내가 왜 강아지를 향해 구두를 내던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데 나는 한마리 강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윤동주 시인은 늘 내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밥만 많이 먹고 강아지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인생의 순례자가 될 수 있을까 강아지는 이미 의자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강아지가 먼저 나를 용서할까봐 두려워라
정 호 승

윤동주의 서시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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