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싹을 틔우다=한국 정부가 IBM 1401이라는 전자계산기를 도입함에 따라 1967년 4월 25일 옛 반도호텔에 IBM코리아가 설립됐다. 외국계 컴퓨터 업체의 첫 진출이었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지금의 재정경제부)은 천공카드시스템(PCS) 대신 진공관 컴퓨터 ‘IBM 1401’로 인구통계 조사에 나섰다. 그 후 한국IBM은 국내 전산 관련 최초 타이틀을 잇따라 만들어 나갔다.
69년 LG그룹이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의 단행한 전산화 프로젝트, 74년 연합철강의 국내 최초 생산관리 온라인화 프로젝트에도 IBM의 컴퓨터가 공급됐다.
대한항공이 온라인 국제 항공예약시스템 구축으로 민항기 전성시대를 예약할 때, 국민은행이 최초 예금 온라인 시스템을 가동할 때에도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IBM 컴퓨터 ‘시스템 370’이 활용됐다.
당시를 회고하는 IT인들은 이 때문에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IT역사를 한국IBM의 40년사와 함께 조명해보는 것은 흥미롭다”고 말한다.
◇코리아 수출 신화를 함께 쓰다=8·90년대 한국IBM은 매출 고속성장을 이루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수출 신화에도 기여했다.
81년 영업부 산하 한글개발부를 설치해 한글화 제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토착 기업화하는 한편, 82년 한국IBM에는 수출전담부서인 국제 구매사무소가 국내 최초로 설립돼 국제화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십수년 이상 한국IBM은 매년 수출 실적을 경신했다. 지금은 IBM의 글로벌 소싱 전략으로 한국IBM 내 전담부서는 없어졌다.
83년 1000만달러, 84년 2000만달러, 87년 5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해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회사로 탈바꿈한다.
수출액은 93년까지 계속 증가해 5억 수출탑도 수상했다. 이즈음 ‘삼성전자, IBM 모니터 수출 100만 돌파’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국내 IT산업이 본격적인 중흥기로 돌입했음을 한국IBM 수출 기록으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IBM의 토착화와 국제화의 결정판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린 88년 서울올림픽이다. 한국IBM은 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을 후원해 성공적인 대회 진행을 도왔다.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는 LA올림픽 전산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국내의 ‘두뇌’들이 모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이 자체 개발을 고집했다. 결국 KAIST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경기장 정보처리 시스템을 개발해냈고 국내 정보화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IBM 광고 문구는 그래서 더욱 시사적이다. “올림픽 입장식에서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선수단은 컴퓨터와 전산인입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굳게 뭉쳐 경기운영시스템, 대회 관리 및 지원 시스템 설치, 운영을 위해 7년동안 땀흘려 일해 왔습니다.”
이후 91년 9대 사장으로 오창규 사장의 취임 이후 한국인 사장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IBM은 토착 기업의 면모를 완성하게 됐다.
98년 한국IBM은 인터넷 세상을 예견한 ‘e비즈니스’라는 유명한 마케팅 캠페인을 실시했다. 90년대 초 위기의 IBM을 회생시킨 주역으로 유명한 주인공인 루 거스너 회장도 98년 방한해 대한항공, 동국제강의 IT아웃소싱 계약 체결을 이끌어냄으로써 국내 IT서비스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렸다.
◇정보기술 파트너에서 혁신 파트너로=2004년 한국IBM은 ‘IBM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소(UCL)’을 개소했다. 정보통신부와 협력 관계로 탄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크다. 한국의 우수한 IT기술을 통해 IBM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첫 시도이기 때문이다. IBM UCL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핵심 분야인 텔레매틱스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술을 집중 연구·개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소 개소는 한국IBM 스스로 정보기술 파트너에서 기업 혁신 파트너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겠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IBM은 지난 12일에도 국내 기업들이 IBM의 최신 기술과 솔루션을 활용해 혁신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한국소프트웨어솔루션센터’를 설립했다. 현대사회에서 비즈니스는 물론 정부 및 생활 기능까지 IT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한 한국IBM은 “이제 IBM은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 해법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 역량으로 삼는다”고 공표했다.
물론 40년사에 뼈아픈 악재도 있었다. 이른바 ‘IBM 사태’로 불리는 납품 비리 사건이 불거진 것. 2004년 일시적으로 경영 실적이 악화되기도 했지만, 지금 한국IBM은 대대적인 비즈니스 관행 개선으로 가장 청렴한 다국적 기업으로 거듭났고 매출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혁신의 파트너로 새롭게 비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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