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에 갔습니다.
10월 27일의 계룡산
1월 7일 날 계룡산 계곡에서 허물어 내린 후 정확히 9개월 20일 만에 처음 가는 길 입니다.
좋은 친구들과의 11월 나들이를 계룡산으로 잡았습니다.
오후 모임이니 시간상 가까운 거리의 산이 그다지 많지 않지 않았고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로수로 계룡에
깊어갈 가을을 미루어 짐작했습니다..
한 달이면 한 두 번을 갔을 계룡산엔 올해는 9개월이나 가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후 계룡산신령님에 대한 서운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 떠나기 힘든 날이면 장군봉으로 올라 삼불봉과 관음봉 능선을 거쳐 황적능선의 거친 길을 돌아 내렸습니다.
장군봉에서 눈부신 해돋이를 마주하고 7시간 30분의 긴 여정을 보내고도 중천의 태양과 오후의 빈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길
멀리 떠나지 않고도 달뜨는 역마살을 잠재우고 야성의 본능을 해갈할 수 있는 나의 실크 로드였습니다.
쉽게 떠날 수 있고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계룡산을 생각하면 늘 운명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 숱한 날 세상의 많은 산을 다녔어도 두 번씩이나 탈진한 곳은 계룡산이었습니다.
돌아내리는 시간을 줄여보자는 젊은 날의 객기로 물 한병 달랑 들고 떠났던 무모함 때문이었지요
장군봉 능선에서는 각기 다른 사고로 팔과 허리를 다쳤습니다.
지금도 너무도 크게 다쳤던 그 어이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그 길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당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아직 온전치는 않지만 회복기를 거치고 있으니
신령님의 보살핌이었겠지요
변화란 산행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것과 길동무를 하나 만든 것입니다.
오랜 인생의 동반자와 이제 먼 산길을 함께 열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내 인생과 대자연을 향한 큰 사랑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음이지요.
고통의 시간에도 희망의 빛은 있었고 오히려 당연시했던 일상과 건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시간 이었습니다.
출근할 직장이 있고
돌아 올 따뜻한 가정이 있고 세상의 어느 산이던 오를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습니다.
고원의 수림을 걸어가며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길섶의 꽃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고 내 영혼을 대면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열정과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마눌과 추는 춤 – 계룡산 (100대 명산 제 16산)
산행지 – 계룡산
일 자 – 2007년 10월 27일
코 스 _ 남매탑-삼불봉-관음봉 – 동학사
동 행 – 좋은 친구들 (성박사,김이사,임부장)
날 씨 – 맑음
시 간 - 3시간 30분
남매탑가는 길
친구들이 늦어서 남매탑을 향한 우회 등산로를 출발할 때는 3시가 넘었습니다.
숱한 가을 날을 계룡에서 있었지만 가장 아름다운 가을날 입니다.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은 소슬합니다.
아랫 쪽 길보다 계곡의 윗쪽이 아직 여름의 푸르름을 놓지 않고 있더니 사람 많은 남매탑에는 가을이 농익어 갑니다.
남매탑에서 4시 30분이 넘었습니다.
친구들은 하산길에 따라 붙을 어둠이 걱정되어 삼불봉에서 하산한다 합니다.
저는 마눌과 자연성릉을 돌아 보고 관음봉으로 내려서기로 했습니다.
삼불봉
삼불봉에 올랐습니다.
물들어 가는 가을능선을 따라 가슴이 후련하게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갑니다.
눈 감고도 찾아 가는 계룡의 모습이란 사시사철의 영상이 모두 다 기억에 녹화되어 있습니다.
삼불봉은 칼바람과 설화가 압권 입니다.
한 사람의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던 삼불봉에 오른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춤추며 흘러가는 가을을 보았습니다.
자연성릉
게룡산에서 가장 아름 다운 길.
철제 난간이 설치 되지 않았던 그 옛날에는 더 스릴 있고 아름다운 벼랑 길이었습니다.
비장미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성릉 길에는 마눌과 나 뿐 입니다.
능선은 마지막 연정을 불태우며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 합니다.
붉은 단풍의 능선으로 떨어지는 석양의 빛은 숙연했고 부드러웠습니다.
바삐 가는 길이었지만 아마 사는 곳 가까이서 맞는 여유로운 일몰이기에 마음이 홀가분 했습니다.
모든 게 변함이 없습니다.
능선을 불어 가는 바람도
바위 위에서 묵상하는 청솔도
쌀개봉에서 기운차게 내려와 강인한 골격을 드러내며 흘러가는 능선도…
떠나고자 염원하던 그 무수한 길을 가로 막았던 철계단 마저도 그대로 입니다.
아하 ! 달라진 풍경이 있습니다.
한라산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푸른 하늘에서 다시 계룡입적을 축하하는 군무를 추었고 능선의
곳곳에 나무계단이 놓이며 등산로가 정비되었습니다.
관음봉
관음봉에서 아직 남아 있던 몇 명의 산객을 만났습니다.
황금 빛 황혼이 머리 위로 떨어 집니다.
게룡산에서는 늘 동터오는 신 새벽의 태양과 마주 했는데 오늘은 관음봉에서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보았습니다.
새월은 저 태양처럼 바쁘게 흘러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눌과 함께한 지 벌써 20년 입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마음은 늘 그대로 임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넘어 가는 달력으로
혹은 변하는 세상으로
때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우리가 만드는 착각일 뿐입니다.
모든 게 달라졌듯이 자신의 마음도 달라졌다고 믿는 거지요…
젊으나 늙으나 마음은 매 한가지 인데 애써 믿으며 자꾸 나이를 따라 가려 합니다.
그 믿음에 동화되면 마음도 결국 빨리 늙어 가겠지요..
외연 때문에 본성을 버리는 격입니다.
하지만 나이와 함께 가는 길에도 늘 푸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늘 하는 말
“인생은 가벼운 수필 같아야 합니다.”
계절이 지나 듯,
황혼이 지 듯
인생도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여행길 입니다.
그저 마음이 울리는 대로 살고 본대로 느낀 대로 써가는 글 같아야 합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겠지요
이 별을 떠나고 나면 어딘가에서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겠지요….
우리가 좋아하는 말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기억을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할 뿐입니다.
세상의 최고선이란 자신의 행복과 기쁨입니다.
늘 해왔던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산행을 오래도록 계속할 생각입니다.
마눌과 함께 하는 길에는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때로는 세월에 순응하는 저 나무처럼 여름내내 지고 왔던 푸른 잎들을 훌훌 내리고
이제 빈 마음으로 남아야겠습니다.
하산길
내려 가는 길이 금새 어두워 집니다.
조용히 다가오는 어둠은 모처럼 흘러 내리는 은선폭포의 흰 물줄기를 어슴프레하게 하고 단풍의 고은 빛깔 위로
무채색의 명암을 끌어다 놓습니다.
기다릴 친구들 때문에 바삐 서두르며 먼저 내려간 몇몇을 지나고 나자 조금씩 어둠이 다가 섭니다.
그 늦는 시간에도 혼자 올라 오는 아가씨가 있어 저무는 날을 걱정했더니 조금 더 올라 갔다가 내려 간다 합니다.
계곡 물 위로 계단이 생겨서 가는 길이 편해졌습니다.
가는 길에 마눌에게 등을 걸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전주식당에서 막걸리 한잔 치고 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어둠 속에 묻힌 가을이 아까웠지만
붉게 타는 단풍과 서산의 노을이 아름다웠던 계룡산행이었습니다.
9개월의 공백을 깨고 두려움 반 설레임반으로 다시 찾았던 계룡산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았고 나 역시 세월과
사고에도 변함 없이 세상의 아름다움들을 찾아 가는 여행길이 숙명처럼 계속 되리란 걸 알았습니다.
편안하고 푸근한 가을 산책 길이었습니다.
그냥 계룡이 가까이 있고
오라고 손짓하는 계절의 흥이 있어 다녀 온 길이었습니다.
다시 그런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멀리 가기 힘들 때 훌쩍 떠나서 다녀오고 엉덩이가 실룩거리면 다시 그 거친 길로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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