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가는 길
풍요로운 가을 들판을 가로 질러 청량산 가는 길
온화한 가을 날에 갑자기 밀려든 한파는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여행길은 푸근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올여름 서슬 푸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가을 발길을 더디게 하여 차창밖에 밀리는 산릉은 아직 푸르다.
입석 앞 들머리
마눌과 함게 가는 100대 명산 주유 제 15번째
산 행 지 : 청량산
일 자 : 2007년 10월 20일 (토)
동 행 : 충일산님들
날 씨 :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춥고 바람이 많이 분다
(강원도에는 눈)
경유지별 시간
11:06 입석 앞 들머리
11:24 웅진전
11:28 풍혈대 갈림길
11:58 경일봉
자소봉 가는 길 식사 (약 20분)
13:00 자소봉
13:12 탁필봉
13:15 연적봉
13;23 지란봉
14:30 청량사
15:00 하산완료
15:40 베이스캠프
처음 와보는 청량산은 가을을 건너 뛰고 바로 겨울로 가기라도 하려는 듯
차가운 바람으로 아직 물들지 않는 잎새를 날리고 있다.
성급한 나뭇 잎들이 이제 막 가을색으로 옷을 갈아 입으며 서둘러 단풍놀이에 나선 사람들
을 맞을 준비를 하고 가을은 먼 봉우리에서 내려 오고 있다.
오늘은
누군가의 이야기로 오래 가슴에 두었던 산골 오지 봉화에 위치한 청량산에 오르는 날이다.
언젠가는 한번 가야지 하면서 선뜻 마음을 내어 주지 못하고
늘 설악산으로 발길을 돌리던 가을 이었다.
이젠 호흡이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구비치는 유장한 산등성이를 따라 지칠 줄 모르던 욕망을 거두고 고요한 숲길을 거닐며 지난 시간을 조용히 돌아
보고 싶은 계절이다.
그냥 바람처럼 허허롭게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싶은 가을이다.
대자연은 순환한다.
연초록 발아로 생명을 태동한 봄은 철쭉의 화사함으로 떠나 갔고
욕망의 불길에 휩싸여 늘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으로 갈망하던 여름도 지났다.
가을은 여름내 지고 온 탐욕과 분노를 내려 놓고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웅진전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나무는 새순을 티우고
새는 노래하고
꽃은 대자연의 진기를 화려한 색깔과 깊은 향기로 피워낸다.
산 위에서 솟아난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과 동떨어진 문명의 그늘에서
병약해진 사람들은 산 속에서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운 그곳에서
그냥 조용히 걸어 가는 것 만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의미와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들이 가슴으로 느껴지리라
사람의 인생이란 순환하는 대자연에 불어가는 한줄기 바람일 뿐
우린 고작 사계절을 보내고 나서 자연으로 다시 돌아 간다.
현생에 쌓은 선으로 내세의 행복의 탑을 쌓거나
현생의 악행으로 윤회의 업을 지거나
모든 건 사라지고 흘러가버린 이후의 일이다.
레테의 강을 건너면 모든 기억을 잊어야 한다.
행이던 업이던 이 지구별에 살았던 모든 기억을 잊어야 한다.
사계절이 지나면 우리 삶의 흔적은 빛 바랜 사진첩이나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인터넷의 한 공간에만 남이 있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한 번 뿐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 바람과 햇빛 그리고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 풍경들 앞에 서 있을 시간은 너무나 짧다.
푸르름 속으로 붉은 가을이 달려 가 듯
가을 산은 내 가슴 한 구석에 따뜻한 모닥불을 피우고 잿빛둥지에서 잃어버린 동심과 감상을 일깨워 준다.
자소봉 가는 길에
홀로 물든 단풍을 보았다.
먼 산 속에 먼저 들어 경개에 취하고 한잔의 술에 취하는 나를 닮았다.
인생길은 산길을 닮았다.
때론 한 없는 오르막으로 거칠고
가끔은 강가를 따라 녹양방초 우거진 아름다운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가시덤불을 만나기도 하고 한 없는 내리막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린 지나고 나서 그 길에 남아 있었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길이 먼 훗날 걸어 갈 길과 이어져 있고 벌써 오래 전에
그 길을 걷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늘 명산에 들면
그 기운을 느낀다.
고봉에 올라
장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가을이 물들어 가는 산릉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 풍경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내 가슴의 파동으로 느끼고 그 명산의 기운으로 다시 삶의
열정과 기운을 받아 낼 수 있음은 경이로운 일이다.
의상봉(장안봉)은 다녀오지 못했다.
지란봉과 선학봉 사이에 구름다리를 놓는단다.
자연과 자연사이로 난 길이 있는데
욕심 많은 군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절경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가는 산속이 벌집 쑤셔 놓은 듯
속세를 떠나 산중에 들어 앉은 포크레인이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의상봉 까지 다녀오고 싶은데
등산로 통제라 우리 산님들 내려 갔고
청량사도 보구 싶구....
그래서 지란봉 까지 갔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청량사
산길을 내려서는데
큰 나무가 서고
시야가 훵하니 트이는 넓은 마당이 눈에 들어 온다
돌부처님이 마당 앞에 앉아 계시고
그 뒤에는 탑이 서 있다.
저 만치 앞산은 붉은 빛을 물들어 간다.
내려서서 뒤쪽을 돌아본다.
마치 초겨울 바람처럼 예린 바람에
풍경소리 요란하다.
아 이런 곳에 절이 있다.
산 속 마당은 황토 빛깔로 거칠지 않고
산사는 뒷산 봉우리와 푸른 하늘에 조화롭다.
6개의 봉우리는 병풍처럼 절을 둘러 싸고
나른한 햇살은 돌담에 앉아 졸고 있다.
산속에 들어 앉은 절에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
세상의 많은 절을 돌아 다니면서
부석사에서 느꼈던 평안함과 고요함이 발끝에서 올라 온다.
이런 곳이 명당이구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내려 가는 길
발보다 마음이 먼저 둥둥 떠간다.
인생의 가을 길에 서면
내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더 소중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 쯤에야 비로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조금쯤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청량사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가 나그네의 눈길을 잡는다.
그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 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께서
입산수도 한곳이라 의상봉이라 불리며, 이곳을 비롯해 보살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 때인가
소실 등으로 인하여 거의 없어지고 현재 신라시대 대찰의 모습은
없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고,문수보살, 지장보살,
16나한등이 봉안되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청량사 홈페이지)
둥글게 산릉을 돌아 내리며 물들어 가는 계절을 바라보고
청량사에 켜켜이 쌓인 세월과 그 세월만큼 더 커져 왔을 불심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숙연해진다.
블국의 평화와 자비는 도처에 휘날리고 있다.
안심정 햇빛드는 창밖에 걸터 앉았다.
마눌이 차 한잔 마시고 가자는데…
우리 산님들 장안봉 못 가고 돌아 내렸으니 일찍 출발할지 몰라서
그냥 내려왔다.
고즈녘한 산사의 가을과
찻집에 떨어지는 부드러운 태양 빛
입구에서 입 벌리고 웃고 있는 청지기까지 모두 남겨둔 채….
하산지점에는 이동 베이스 캠프는 없고
중간에 대형 버스 주차장에도 없고
버스는 멀리 매표소를 지나 다리건너 강변에 서 있단다.
우리를 태워 갈 마차는 저 아래서 기다리고 있으니
청량산 물길 따라 천천히 흘러 가는 길도 좋다.
가을에 만난 싸늘한 바람 맛도 좋고
조금씩 가을 빛에 물들어 가는 계곡에도 청량사의 그윽함이 묻어난다.
그래 다시 청량산에 들려면 한 오년 쯤 세월이 흐른 뒤일 게다.
세월은 바삐 흐르고 돌아볼 세상의 아름다움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초겨울 같은 초가을 날
청량사를 불어 가던 칼칼한 바람으로 먼저 가을을 느끼고
뜨거운 오뎅국물이 좋았던 청량산 여행길 이었다.
안동호 옆 평화로운 마을을 지나며
귀향하는 길에 어둠이 내리고
오래전 부터 날 짝사랑하던 달이 오늘도 하염 없이 따라 온다
집으로 가는 길 - 청량산 찍고 둔산을 지나는 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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