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대충 짐작이 갔다.
양표를 골려 주려고 장난으로 한 이야기가 그렇게 급속히 번졌을 줄이야…
진호 부부와는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 때는 참 친한 사이었는데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같은 대전에 있어도 자주 어울리지 못했다.
성격과 사고방식이 좀 다르고
으레 그러하듯이 관심 갖는 세계가 달라 서로 소원해졌다.
Out of sight , out of mind
자주 만나지 못하면 친구들은 늘 멀어진다.
가진 것 없는 우린 세월에 고뇌했고 그리고 난 오래 전부터 산에 미쳐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입장이 많이 바뀌었다.
사고 후 나는 산행 횟수와 거리를 급속히 줄여 나가야 했고 반대로 진호는 산행의 지평을 점점 넓혀 나갔다.
언젠가 산악회 회장을 맡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올해가 가기 전 마눌과 100대 명산 길을 몇 개는 더 돌아 보아야 하고 진호도 부부가 함께 산을 자주 간다고 한다.
잘되었다.
민주지산이면 오랜 친구와 잘 어울릴 것이다.
추위지는 날씨긴 하지만 자가운전하기에 대전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거친 능선에서 겨울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도 좋다.
출정을 많이 자제하고 나서 허리도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라 6시간 정도의 산행이 큰 부담일 것 같지는 않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출발하는 일요일 날 민지엄마는 감기가 깊게 들어 연신 기침을 했다.
친구 말로는 자기보다 산을 더 좋아하고 자주 간다고 했다.
물한계곡에 들자 계곡을 감도는 섬뜩한 냉기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민주지산의 겨울바람과 추위는 늘 기억의 한 켠에서 혹독한 모습이다.
능선에 올라서기 까지는 가파르고 재미없는 길이다.
토양은 돌이 많이 섞여 척박하고 사방은 막힌 계곡엔 눈길을 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계곡을 가득 채운 생명은 흔적 없이 얼어 붙어 있어 그 처연한 황량함 속에 작은 봄의 희망과 기다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의구심이 인다.
그래도 산이 거기 있어 늘 위안이 된다.
뿌리에 봄의 기쁨을 간직하고 동면하는 앙상한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작은 기쁨이 밀려온다.
오랫동안 내가 쌓아 왔던 추억과 문득 산길에서 만나곤 했던 좋은 느낌들이 고요하고 차분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세상의 답답함과 걱정들이 아주 작아지거나 때론 훌쩍 사라지면서 따뜻한 의미가 전해오는 자연속의 소요가 좋다.
오늘은 친구와 오랜 함께 나선 길이라 기쁨이 더 각별해 진다.
민지 엄마는 손이 무척 시려 했다.
몸을 움직이면 몸에서 나는 열이 손으로 전해져 손이 따뜻해 지는데 원래 손발이 차서 쉽게 따뜻해 지지 않는단다.
장갑을 바꾸어 주었는데도 손이 시려워 가는 길은 멈추고 앉아 손을 녹이곤 했다.
산 행 일 : 2008년 12월 14일
산 행 지 : 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동 행 : 친구 진호 부부와
날 씨 : 맑고 겁나게 춥다
소요시간 : 6시간
10:40 : 출발
10:45 : 민주지산, 삼도봉 갈림길
12:00 : 능선 이정표 <-황룡사 3.2km
12:10 : 민주지산 ->석기봉 2.9km
13:00 : 식사 후 출발 민주지산 2.9km
14:20 : 석기봉 <-민주지산 2.9km ->삼도봉 1.4km
15:05 : 삼도봉 <-석기봉 1.4km ->황룡사 4.4km
15:33: 심마골재 <-석기봉 2.3km, ->황룡사3.5km
16:08 : 하산완료
민주지산에 오르자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쪽은 첩첩의 산주름이 포개져 있고 기운찬 능선들은 더 멀리까지 유장하게 흘러간다.
계곡이 기온이 너무 차가와서 정상에는 바람이 많이 불 것으로 생각했는데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는 정상은 바람 없이 오히려 포근하다.
산객들은 예상외의 날씨와 청명한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고요하고 웅장한 산세상에 탄성을 올리고 있다.
나는 자주 이 정상에 섰었고 마눌은 두 번째 친구부부는 처음이니 나보다는 그들의 눈에 비친 삼도의 산 세상은 더 감동적일 것이었다.
각호산에서 융기한 능선을 민주지산으로 부드럽게 굽이치고 다시 기운차게 석기봉을 지나 삼도봉으로 줄달음 친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조망에 취하다 보니 허기가 동해 온다.
봉우리 아래 남쪽사면 풀밭에 앉으니 햇빛이 따사롭기 그지 없다.
오랜 친구와 함께하는 1200고지 고원의 멋진 만찬이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갑자기 우스운 일로 친구와 만나고
추운 날 부부가 함께 산을 오르고
싸늘한 계곡을 따라 태양 가까이 올라간 덕에 겨울에 따뜻한 봄을 느끼며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란 이름의 훈훈함을 만났다.…
1년에 한번 얼굴을 잠깐 보긴 했지만 오랜 공백에도 긴 세월을 함께한 것처럼 나이 듦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의 얼굴이 마른 고추처럼 조금 시들어 간 것 말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느낌과 마음은 그 때
와 변함이 없다..
능선은 부드러운 듯 흘러가다 석기봉에서 암릉을 강하게 솟아 올렸다.
햇빛이 잘 비치는 능선길이라 눈은 다 녹아서 길은 그다지 미끄럽지 않은데 석기봉 바위지대를 오르는 길은 응달이라 미끄럽고 험해서 마물이 좀 힘들어 했다.
감기와 가파른 경사 그리고 추위에 힘들어 하던 민지엄마는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진호와 함께 빠른 속도로 움직여 간다.
둘 다 상당한 내공의 산행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데 마음먹고 내달리면 우리부부와는 거의 상대가 되지 않을 수준이다.
석기봉을 다른 쪽에서 편하게 오르는 길이 있을까 해서 우측 길로 길을 잡았다가 우회하는 길이어서 다시 돌아 오다 보니 사람이 밀려 석기봉 오름이 좀 늦어졌다.
덕분에 앞서가던 친구부부는 이제 제법 바람이 부는 석기봉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함께 석기봉에서 푯말을 들고 우리는 이 해가 가기 전에 함께 왔음을 증거로 남겼다.
석기봉에서 삼도봉은 가깝게 바라다 보인다.
기념사진을 찍고 바위지대를 내려서자 지나온 민주지산 2.9km 뒤에 있고 삼도봉 까지 1.4km
남았다고 알려주는 커다란 이정표가 서 있다.
삼도봉 가는 능선 길에서 바람이 날을 세우더니 삼도봉에 오르자 나주 거칠어 진다.
2004년도 귀연에서 시산제를 지낼 때 갑자기 민주지산 꼭대기에서 일던 강한 바람과 삼도봉에서 눈을 못 뜨게 하며 날려버릴 기세로 불어가던 바람 생각이 났다.
늘 감회가 새로운 곳이다.
백두대간을 마무리 한 것이 2003년이니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5년동안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백두대간이 중반을 지나가던 때쯤
화주봉을 거쳐 삼도봉에 오르던 날의 기록이 남아 있다.
2003년 4월 14일이다.
햇빛이 쏟아지는 능선을 지나 봉우리를 간직한 가득한 철쭉의 숲을 걸어 만난 화주봉 !
깊어 가는 눈부신 봄 속에서 마주하는 고산준령은 시원한 봄바람아래 갈색으로 침묵하고 있다.
마치 다시 만난 설악의 웅혼함처럼 거기 버티고 있던 화주봉
그 웅장하고도 부드러운 능선의 연결
일망무제 시야 속에 발아래 웅크린 깊고도 대담한 산 주름들은 흡사 가을산행 인 듯
봄의 색감은 찾을 길 없고 온천지가 거대한 갈색의 능선을 따라 하나로 만나고 있다.
저 멀리 황악산과 가성산, 눌의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과 삼도봉, 대덕산,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백두대간의 기골이 장대하다.
앞선 1175M 봉우리로 가는 길
고원을 스쳐 지나는 바람을 따라 가는 길.
혹시 힘이 든다 해도 그 멋진 풍광에 힘들어 할 겨를이 없을 듯 싶다.
암릉지대를 지나는데 절벽의 경사도 심하고 밧줄도 매달려 있다.
어렵사리 도착한 1175봉은 흡사 전망대인 듯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광대무변의 거칠 것 없는 산하
사월의 눈부신 태양이 저렇게 바람에 춤추는 듯 한데
고산 준령에는 아직 봄이 오르지 못하였구나…
화주봉과 1175봉에서 호쾌한 대간을 카메라의 기억에 담는다.
이젠 완만한 능선 길이다.
능선은 김천시 부항면을 아치형으로 돌면서 삼도봉을 향한다.
갑자기 잘 정돈된 헬기장과 널따란 안부전체가 억새밭을 이룬 평지에 도착한다.
일단의 무리들이 휴식하고 있는 이곳은 밀목재다.
심마골재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아래 물한계곡 3.5KM 지점에 황룡사가 위치하고
삼도봉 까지는 0.9KM 석기봉은 2.3KM 남아 있다.
재작년 우성메아리를 인솔했을 때 모두들 민주지산에서 하산했는데 3명만이 민주지산을 거
쳐 석기봉 ,삼도봉을 연결해서 물한계곡으로 흘러 내린 적이 있다.
민주지산은 충청,경상,전라 3도 방어권은 물론 풍습과 음식 및 문화의 경계가 되기도 하는
데 신라와 백제가 격돌하면서 힘겨루기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1천미터급 고봉에서 흘러드는 계류가 음주암골,쪽새골,무지막골,각호골을 통해 합수되
는 물한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울창한 원시림과 수려한 계곡의 풍광을 유지하고 있는 얼
마 남아 있지 않은 청정 지역이다..
그 옛날 대야산의 수려한 계곡에 감탄해 마지 않았는데 대전에서 가까운 물한계곡이 간직하
고 있던 청정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경북, 충북, 전북의 경계인 삼도봉에 도착했다.
삼도 화합의 상징인 사자상은 눈부신 태양 빛 아래 외로운 고봉을 지키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목에 감기는데
왼쪽으로 석기봉(1200m), 민주지산(1242m),각호산(1176m)으로 흘러가는 능선의 흐름이 늠름
하고 사방천지 거칠 것 없이 굽어보는 전망이 환상적이다.
푸른 하늘엔 뭉게구름이 흐르고 수 많은 산과 능선으로 에워 쌓인 삼도봉은 백두대간 제15경
에 속한다..
오늘에사 삼도봉만이 백두대간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민주지산은 당연히 대간상에 있는 줄 알았는데 3개의 도를 아우르는 삼도봉만이 홀로 대간
을 지키고 있다.
농협 우지점장께서 동동주를 가져왔다.
동동주 큰 병에다 한 통 가득한 두부 그리고 볶은 김치까지…
50의 노구에 팀을 위해 바리바리 지고 1000고지를 올라온 정성이 대단하다.]
고원에서 한잔하는 동동주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남은 장도에 다리가 풀린다고 모두 자제하는 분위기인데 그 부드러운 맛 때문에 3잔을 거푸
들이키고 말았다.
어제 반 병의 소주와 3시간 30분 산행에도 아직까지 컨디션은 최상이다.
밀목재 계단을 올라 오는데 다소 힘들기는 했어도 발걸음은 다른 때보다도 훨씬 가볍다.
시원한 봄바람과 멋진 풍광의 조화 때문 이었으리라….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따라 삼도의 능선을 걸었던 이듬해 귀연팀들과 도마령을 거쳐 각호산에 발도장을 찍고 유장한 산굽이을 따라 눈꽃의 화원을 걸었다.
그날 민주지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새해의 무탈한 산행을 빌었었다.
그리고 눈발이 흩날리는 능선을 바람처럼 스쳐 지났고 석기봉을 넘어 칼바람 날리는 삼도봉에서 사방의 산신들에게 엎드려 존재의 평안을 소원했다.
그 때 기록도 남아 있다.
민주지산에는 오히려 바람이 없이 평온하다.
허공에 뜬 구름처럼 드넓은 설릉의 흐름을 굽어보며 침묵하는 고원
햇빛 마저 가끔 구름 밖으로 나와 고독한 설산에 평화와 안식의 빛을 드리운다
큰 산의 위용과 거침 없는 풍광에 경건함이 인다.
30분쯤 기다려 후미와 합류하고 제단을 차린다.
모임을 이끄는 몇몇 분이 알아서 제물을 준비한 모양인데 그들의 노력에 항상 무임편승
하는 나로서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침에 차 대장이 모든 산에는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계시고 산을 오르는 우리는 언제나
항상 경건함과 무한한 경외의 마음으로 산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산은 언제나 우리의 사고와 관념을 넘어선 신의 영역을 간직하고 있고 우린 심산의 작은
자락을 기웃거린 추억만으로도 인생의 의미와 심오한 깊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모두 배불리 먹고 산신제를 올리는데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그 평온한 날씨가 제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데 거칠게 표변한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젯상을 엎어버리기라도 할 듯 바람의 기세가 등등하다
산신령의 진노가 들리는 듯하다.
“ 고이헌 놈들 내가 진즉 네 놈들을 알아봤다.
네 놈들이 꼴이 보기 싫어 1년이 넘도록 그토록 심한 비와 눈을 뿌려 댔건만 끝끝내 고집
을 부려 내 잔등을 타고 넘더니만 정초부터 인사를 차린다는 놈들 하는 짓거리가 눈뜨고 못
봐 주겠다.
먹을 것 다 먹고 세월아 내월아 올라와서 돗자리 뒤집어 깔아놓고 건들거리는 불한당 같은
놈들아 ! ”
민주지산 신령님의 노여움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아까 송형이 민주지산 꼭대기에서 오줌을 싼 게 결정적으로 신령님의 부아를 돋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신령님 노여움을 푸소서
당신의 권능과 세상을 주관하는 섭리에 경배하나이다
언제나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산을 사랑하며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영토에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고 산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단단한 체력과 건강
을 주소서
모두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주는 산의 넉넉함을 배우게 하시고
언제나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게 하소서
당신의 기와 세상을 주관하는 지혜를 주소서 “
“귀연’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귀한 인연”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의미라 아니할 수 없다.
곽선배님의 탁월한 작명처럼
우리는 모두 오래도록 산을 사랑하며 함께 늙어 가리라
큰 바위 얼굴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또 다시 마지 못해 우리를 받아들여 주실 신령님을 믿으며 우리는 그렇게 서슬 푸른 신령님
의 진노를 뒤로했다.
바람은 불세출의 조각가 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눈의 깊이와 높이가 다르고 그 다듬어 내린 듯한 정교한 곡선미는 산릉
을 따라 조화롭게 이어진다.
석기봉 가는 길엔 온통 눈 천지에 칼바위 능선에는 칼 바람이 난무한다.
어디에서 이 시린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랴 ?
석기봉 인근에는 넘어오는 사람이 많아 정체가 심하다.
역시 이 장쾌한 설국을 욕심 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세차게 불어보는 바람을 맞으며 석기봉은 축제처럼 들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삼도봉이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이 흰 눈의 선으로 능선을 따라 선명하게 삼도봉으로 연결된다.
삼도의 기맥을 일으켜 백두대간 위로 힘차게 솟구친 삼도봉은 멀리서 대간을 종횡하던 우리
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동물들은 흔적 없이 자연에 동화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에 흔적과 상처를 남긴다.
흰 눈으로 뒤덮어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길을 보며 산신령님은 얼마나 또 심사가 뒤틀리실
까?
그 중에서도 백두대간 하는 놈들이 제일 못마땅 하실 게다.
“ 하지만 신령님 누구보다도 우리는 산과 자연을 사랑합니다.
우린 가급적이면 이렇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들을 따라 가고 산을 더럽히지도 않습니
다.”
삼도봉 바람은 거칠게 표효하고 있다.
볼과 귓볼이 얼얼하고 서 있으면 내가 바람에 떠밀린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삼배를 올렸다.
배낭과 장갑 모자를 모두 벗어버리고 침묵하는 큰 산에 큰 절을 올린다.
언제나 자연을 향한 열정과 의욕을 잃지 않게 하소서”
“슬픔과 걱정을 거두어 가시고 하루하루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 눈부신 사월의 태양 아래서 우회장님이 힘겹게 지고 올라온 동동주를 세 잔이나 마시고
8월 염천에 흐르던 땀을 고원의 바람에 날려버린 곳도 삼도봉 이었다.
오늘 삼도봉 산신령님도 이만저만 화가 난 게 아닌 모양이다.
황룡사 가는 길을 따라 심마골재로 내려서는 길은 폭풍의 설원이다.
눈보라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인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
럼 비장한 모습으로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묵묵히 걷는다.
매서운 바람은 가지의 눈을 남김 없이 털어내고 바닥의 적설마저 솟구쳐 올려 흰 눈보라를
산능성이 아래로 마구 뿌려 댄다.
지난 겨울에 백두대간에서 만났던 가슴까지 후련하던 그 바람 맛이다.
심마골재를 따라 계곡으로 접어들자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지만 계곡의 싸늘한 기운이 온 몸
을 차갑게 감싸 안는다.
눈이 흩날리는 계곡을 따라 은자처럼 조용히 흘러 내리는 길엔 겨울 낭만이 눈처럼 날리고
긴 사색은 마치 작은 깨달음이라도 이끌어 낸 듯 우리의 얼굴을 경건하게 만든다.
우리가 걸었던 수 많은 시간들처럼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이동 베이스캠프
로 데려다 주었다.
많은 적설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을 뿐…..
눈에 물릴 만큼 온종일 눈길을 걸으며 겨울다운 칼바람과 함께했던 멋진 산행길 이었다.
백두대간을 통해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인생의 소중함은 결과 보다는 그걸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목적지에 안달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는다.
멋진 풍광에 넋을 놓고 가끔은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의 깊은 대화
나 사색에 잠기다 보면 가장 편안한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고 우리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우리에게 언제나 가슴 가득한 충만함으로 다가온다.
질통에 가득 담긴 김치 찌개를 보며 백두대간을 넘나들던 시절의 뒤풀이를 생각해본다.
그 즐거웠던 시간대의 추억
그 진솔한 웃음과 언어는 아직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김치찌개는 그때의 맛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슨 문제가
있으랴?
고단했지만 감동적인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함께 다시 모였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너무
도 즐겁고 술의 순배는 잘도 돌아간다..
백두대간을 할 때나 할 때나 지금이나 항상 모임을 무리 없이 끌어주시는 많은 분 들께 감
사 드린다.
귀한 인연으로 만나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다시 모였으니 이 모임이 우리 삶의 작은
기쁨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 인생 길에서 만났던 모든 분들의 건승과 행운을 빈다.
산신령들은 나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호남길을 따라 남하하던 내 발길을 잡지 않았으면 봉규처럼 1대간 9정맥 서리서리에 내 추억을 많이 남겨 놓았을 것이다.
삼도봉에서는 추억에 잠길 겨를이 없다.
예전처럼 칼바람이 난무하는 봉우리 정상에는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우리는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심마골재를 거쳐 황룡사가 있는 물한리로 길을 잡았다.
내려가는 길에서는 공력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마눌은 발길이 밀리고 진호부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큰 산의 세 봉우리나 아우르는 거칠고 긴 여정이라 마눌의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것이다.
마눌과 속도를 맞추며 천천히 내려가는 길이라 발걸음이 늦어지는데 친구가 이따끔 뒤돌아 보고 발길을 멈추어 잠시 기다려 주지 않으면 우린 상당히 뒤떨어졌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한 산행은 6시간 만에 끝이 났다.
우리는 차가운 계곡을 올라 따듯한 능선을 걸었고 삼도봉에서 아직 노기가 가라않지 않은 산신령님을 다시 만나고 나서 긴 계곡을 따라 출발지로 되돌아 왔다.
추운 날씨에도 곳감과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는 물한계곡 아래로….
원래 내 차를 가져가기로 했었다가 작년에 퇴직하셨다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최부장님 빈소에 다녀오느라 새벽 두 시가 넘어서 돌아오는 통에 친구가 운전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산행이었는데 오랜만에 친구와 한 약속이라 깨뜨릴 수 없었다.
건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세상 살다 가기가 그렇게 쉽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살아가면서 따라붙는 고뇌와 화를 삭히고 마음을 잘 다스려 추호의 흔들림이 없기가 어디 쉬우랴?
하지만 자신의 그늘에서 휴식과 행복을 찾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이세상에 온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다면 마음의 상처로 병들지 말아야 하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한다.
삶의 고뇌에 함몰되지 않고 척박함 속에서라도 어둠 속에서 한 가닥 빛을 찾아내 듯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동운이는 퇴직 후 삶의 끈을 놓았다.
상심한 고부장은 다스리지 못한 스트레스로 병마를 키웠고 최부장은 많은 돈을 벌어 놓고 아이들도 다 출가시켜 아무 걱정 없게 만들어 놓고도 뒤늦게 알아차린 암을 극복하지 못했다.
세상일이란 뜬 구름 같이 허망하다.
다 무슨 소용 있으랴 ?
스스로가 떠난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고
존재의 소멸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되는 줄도 모르고 자신만의 가슴 깨는 고통에 그렇게 쉽게
희망을 내어주는 어리석은 생각의 근원은 또 어디인가?
“개똥 밭 아래 굴러도 이승이 낫다.”
그 곳이 언제가 가야할 곳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늦게 가야하고
어짜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짜피 넘어야 할 산들과 바라보아야 할 아름다움들은 또 어떤가?
바랑하나 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무릉도원을 넘나드는데 가는 발길을 잡는 자 그 누구인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인생 다 부질 없다.
세월에 맡겨두고 부르던 노래나 마저 불러야지
예전보다 목소리가 더 작으면 어떠랴?
아직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목이 다 쉬진 않았으니….
세월이 우렁찬 목청을 거둬 가는데 한탄하고 괴로워 하고 있을 수만 있을까?
노래 부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음이 안 맞으면 또 어떤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인데…
해를 떨어뜨리고 돌아 오는 길에 친구가 별미 음식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운전도 혼자 다하고 저번에도 친구가 한턱을 내서 이번에는 내가 맛있는 것 사주려 했더니 이 번에도 극구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우릴 데리고 간 곳은 전에 동생들과 자주 갔던 문창동 칼국수 집이었다.
거기 팥 칼국수가 맛있다고 해서 감자전과 함께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솔직히 별루였다.
팥죽 같은 것을 안 좋아하다 보니 차라리 얼큰한 칼국수가 더 나을 듯 싶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친구는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배가 나오고 살이 찔까 봐 고구마 두 개와 야채만 먹는다고 했다.
78킬로를 넘나드는 거구의 식신도 침묵하고 있는데 살이라고는 붙어 있는 데가 별루 눈에 뛰지 않는 비쩍마른 친구가 그렇게 까지 한다니 웃음이 났다..
내가 알기로 친구의 입맛은 좀 까다롭고 식성은 그다지 왕성하지 않은 걸루 기억하는데….
본인이 그러니 가족들도 고기종류를 먹을 기회가 별루 없다고 했다.
원칙이 분명하고 한번의 흐뜨림 없이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는 세월이 흐름에도 유연해지지 않고스스로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제 친호한테 한턱 쏘려면 최고의 요리는 버섯 전골이나 복지리 정도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보인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정작 식생활을 개선해서 뱃살과 체중을 줄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아닌가? 허리의 부담을 줄이려면 뱃살과 체중관리는 필수적인데…
모처럼 함께하는 즐거움 속에서 자연에 소요하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명멸하는 하상도로의 빛을 따라 집으로 돌아 왔다.
민주지산을 마눌과 친구와 함께 갈 수 있었으니 즐겁고 의미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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