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조선블로그 유재석의 천장ㅈ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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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美室)이라는 1400년 전 신라 여인이 브라운관을 휘어잡고 있다. MBC 사극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 등의 호연에 힘입어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한 심리학자가 ‘치밀형(型) 리더십’이라고 분석할 만큼, 신라 왕 3대(代)와 잇달아 관계를 가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 인물의 인상적인 카리스마에 시청자들은 푹 빠졌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미실’이란 인물은 누구인가?
수 많은 한국 성인들은 어린 시절 읽었던 어떤 역사책이나 위인전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미실의 이름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단 한 줄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학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1)에도 전혀 언급이 없다. 1989년 이전까지 ‘미실’이란 삼국시대 신라 여성의 이름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권력과 섹스의 여신(女神)
1989년 2월 16일, ‘화랑세기(花郞世紀)’라는 제목의 32쪽 한문 필사본이 부산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됐다. ‘화랑세기’라니? ‘화랑세기(花郞世記)’는 서기 7~8세기에 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이 썼다는 화랑들의 전기지만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던 책의 제목이다. 6년 뒤인 1995년에는 162쪽 분량의 또 다른 필사본이 발견됐다.
만약 이 책이 13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타난 진본이라면 고려시대 이전에 쓰여진 유일한 역사서이자 한국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책의 내용이었다. 근친혼, 동성애, 다부제(多夫制) 같은 고대사회의 충격적이고 자유분방한 풍속도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신라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인데, 책은 한술 더 떠서 근친혼을 ‘신국(神國)의 도(道)’라고 떠받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32명의 대표적인 화랑인 풍월주(風月主)의 전기인 이 책에서 정작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실질적인 주인공은 미실(美室)이었다. 책에 따르면 미실은 제2대 풍월주인 미진부와 법흥왕의 후궁 묘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미도(媚道·섹스 기법)와 가무를 전문적으로 교육 받았다. 필사본은 미실에 대해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했고 명랑했으며 아름다워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썼다.
필사본에서 그녀는 섹스와 권력의 화신(化身)인 것처럼 묘사됐다. 5대 풍월주 사다함과 정을 통하다가 6대 풍월주 세종과 결혼한 뒤 7대 풍월주 설화랑과도 사귄다. 진흥왕과 그의 아들인 동륜·금륜과 모두 관계했으며 왕 곁에서 직접 정사(政事)에 참여해 권력을 쥔다.
진흥왕이 죽자 진지왕(금륜)을 왕위에 올렸으며 그가 자신을 멀리하자 폐위에 가담한 뒤 진평왕(동륜의 아들)을 새로 왕위에 세운다. 13세의 새 왕을 ‘도(導)’하라는 태후의 명을 받고는 ‘왕의 양기(陽氣)가 통하게 하는 교육’에 나선다. 서기 606년(진평왕 28) 무렵에 58세로 죽었다고 돼 있으니 진평왕 즉위시에는 31세였던 셈이 된다.
◆“현대 여성과 꼭 닮았네요”
이처럼 당대의 수많은 실력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왕까지 갈아치우고 그 스스로 권력을 행사했던 여성 캐릭터가 우리 역사에 또 있었던가? 저서 ‘세상을 바꾼 여인들’의 한 장(章)에서 미실을 다룬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우리 역사에서 복수의 여성들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시킨 남성은 많아도 복수의 남성들에게 일부종사(一婦從事)를 시킨 여성은 미실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런 인물에 문화예술계가 커다란 관심을 쏟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02년에는 극작가 양정웅이 연출한 연극 ‘미실’이 나왔다. 미실이 일곱 명의 남자와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 연극은 세종과의 혼례, 사다함의 죽음, 출산 등 결혼·죽음·탄생을 한 장면에 포개 놓는 기법을 썼다.
‘미실’을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2005년에 출간된 작가 김별아의 장편소설 ‘미실’이었다. 당시 김별아는 “이번 소설은 성녀(聖女)와 창녀의 속성을 다 가진, 어머니이자 요녀이며 권력가로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실은 자기 본성에 충실했다는 의미에서 현실주의자였고 현대 여성과 닮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미실은 ‘선덕여왕’ 이전에 이미 TV 사극에서 등장했다. SBS ‘연개소문’(2006~7)에서는 중견 탤런트 서갑숙이 미실 역할을 맡았는데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미실이 죽는 것으로 나온 시점보다 7년 정도 뒤의 상황에 김유신의 연인인 천관녀의 후견인으로 나와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알고보니 상상 속 인물?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화랑세기’ 필사본이 학계에서 ‘진짜’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소장 고대사학자는 “그 ‘화랑세기’는 학계에선 이미 1990년대에 위서(僞書)인 것으로 결론지어진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발견 직후부터 필사자인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1889~1962)의 창작물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것이다. 박창화는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성 도서료의 사무촉탁이었다. 그렇다면 그 필사본은 일 왕실도서관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비장의 자료를 베낀 것일까, 아니면 박창화라는 천재적인 인물이 가공해 낸 소설일까? 역사학계의 의견은 후자에 기울어져 있다.
이기동 동국대 석좌교수는 “화랑 단체의 갈등과 통합 과정을 서술한 것은 근대인의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는 “고려시대의 ‘삼국유사’를 많이 참조한 후대의 위작”이라고 했다.
권덕영 부산외대 교수는 필사본에서만 보이는 240명의 인물 중 신라 금석문에서 독자적으로 확인되는 인물이 없고 필사본에서 신라 왕을 제(帝)나 대제(大帝)라 하고 대(大)씨와 찰(察)씨가 있었다고 서술했으나 이 역시 금석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창화가 원래 ‘도홍기’ ‘어을우동기’ 등 많은 음란소설의 작가였다는 점도 계속 지적됐는데, 2007년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정보실장은 박창화가 1930년에 쓴 45쪽의 소설책을 찾아냈다. 이 소설의 용어와 내용 중 많은 부분이 필사본 ‘화랑세기’와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필사본 역시 박창화의 역사소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이종욱 서강대 교수(현 서강대 총장)처럼 “후대의 유교적 윤리로써 신라사를 봐서는 안 된다”며 계속 ‘화랑세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대문의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정설(定說)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렇게 정교한 창작물을 만들어 낸 박창화는 정말 천재적인 인물”이라며 감탄하는 반면 ‘진짜’로 보는 학자들은 “박창화는 그렇게 신라사에 정통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흥미로운 현상도 일어났다.
임동석 건국대 중문과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역사학자들이 자기들끼리 설왕설래하고 있는 동안 ‘미실’은 실존인물도 가공인물도 아닌 ‘반투명인간’이 돼 버렸다”며 “드라마에는 나오지만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혼란스러움의 책임은 대중 앞에 설 자신감을 잃어버린 학계에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 드림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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