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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펌)

검사와 교수

 

출처 : 2010년 5월 4일자 중앙일보 송호근 교수 컬럼

 

국가의 운명이 지도층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지도층의 기백이 장대하고 서릿발 같은 나라는 번성하고, 재물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나라는 추락한다. 유럽 전역을 장악했던 로마제국은 지배층이 사치와 방탕에 빠지자 이탈리아 반도로 쪼그라들었다. 아시아대륙을 종횡무진 달렸던 몽골제국, 중원을 호령했던 명(明) 모두 지도층의 정신적 무장해제가 패망 원인이었다. 현대라고 그 만고의 진리가 변하겠는가.

조선의 지도층은 사대부(士大夫)라 불렀다. 물러나면 사(士)요, 나아가면 대부(大夫)인 이 계층은 학문과 통치를 전업으로 하는 국가의 기둥이었다. 사(士)는 유교이념의 전제인 ‘수기(修己)’를, 대부(大夫)는 ‘치인(治人)’을 맡아 백성을 근본으로 받드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의 도덕정치를 발전시켰다. 왕과 친인척을 비롯한 이 지배층들이 혹여 정신을 놓을까 두려워 조선은 삼사(三司)를 두어 긴장을 조였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 그것이다. 이 삼사 관원들의 품계는 낮았지만 판서와 참판 등 당상관들도 이들의 탄핵에 걸리면 목이 날아갈까 벌벌 떨었다. 삼사는 청빈하고 올곧은 문관들의 활동무대였다.

삼사의 관직을 요즘 말로 하면 검사와 교수다. 조선시대로 치면, 검사는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을 풀어주며, 외람되고 거짓된 일을 금하는’ 정의의 집행인이며, 교수는 ‘천명과 천리를 탐구하고 명경(明經)과 제술(製述)을 드높이는’ 학자다. 돈 되는 일과는 거리가 먼데도 청빈한 인재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까닭은 정의와 진리를 좇는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검사들은 스폰서와 놀아났고, 교수는 논문을 부풀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MBC는 부산지검의 검사들을, KBS는 서울대 교수들을 집중 취재해 충격적인 이 사실을 전국에 알렸다. 비유하자면 사헌부 지평들이 썩고 부패해 스스로 탄핵 대상이 되었고, 홍문관 교리들은 제목만 바꾼 글을 여기저기 써먹거나 남의 글을 훔쳐 시정잡배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불문곡직하고 국민에게 면목없고 자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향응받는 검사’와 ‘복제하는 교수’가 끊이지 않는 나라엔 희망이 없을 터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는 까닭은 누가 궁색하게 항변했듯 조직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린 관행 때문일는지 모른다. 기관장 혹은 부서장은 부하들을 독려하고 사기를 높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술도 밥도 사지 않고 들들 볶아치는 상사를 누가 따르겠는가? 더군다나 위험천만한 흉악범과 폭력배를 대적할 때 필요한 거친 성정을 스스로 다스릴 폭탄주가 하루에도 몇 잔이나 필요하다면, 그 틈새를 비집고 마약처럼 다가오는 스폰서에게 손을 내밀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현감과 부사들이 지방 부민(富民)과 아전들에게 놀아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해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썼다.

지식으로 승부하는 교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자의 연구에 자신의 아이디어가 뒤섞여 있다면 소유권이 분명치 않고, 논문복제와 이중게재를 엄격히 금하지 않았던 풍토에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던 교수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표절은 예나 지금이나 내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필자가 언젠가 칼럼에서 인용까지 했던 정인지의 글 ‘바람소리, 학·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다 표기할 만하다’는 그 구절은 송(宋)대의 유학자 정초(鄭樵)의 표절이었다. 조선 최대의 시조로 여겼던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이현보가 지은 ‘어부가’의 모방인 것을 알고 필자는 최근 윤선도에 대한 존경심을 철회할까 고민 중이다.

면면히 흘러온 관행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말이 아니다. 원칙과 진리를 세우는 이 직업이 무너지면 지도층은 물론 사회 전체가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검사가 스폰서에게 건넨 은근한 회유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라는 말은 전율을 느끼게 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걸리지 않을 사람 누구?’라는 교수의 항변은 부끄럽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감찰기구를 항시적으로 가동하고, 교수윤리헌장을 도입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수기와 치인을 관할하고, 시대정신과 사회질서를 정련하는 이 직업에 맑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에는 예부터 그랬듯 엄격한 자기검열이 가장 효과적이다. 검사와 교수는 능히 자정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다. 질정하는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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