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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남자둘의 여행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사창리 이기자 부대

 

지나간 내 인생의 어느 여울목

갑작스레 맞닥뜨린 삶의 유배와 그 고립된 시간 속에서 나의 젊음이 고뇌하던 곳

그곳에 남아 있을 젊은 날의 함성과

내가 흘린 땀냄새 그리고 지나간 시간의 아련한 추억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늘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뒷전에 밀린 세월이 벌써 햇수로 28년이다.

올해는 꼭 가야지 하면서 미리 엄하사와 약속을 해두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많은 관계와

바쁜 일정  속에서 우리가 한가로운 추억여행을 떠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8월의 첫 주말이 비어 엄하사에게 연락을하니 마침 친구도 시간이 된다하여  엉겹결에 오랜

숙원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직 남아 있을 그 곳은 내게 지나간 시간의 추억과 잊혀져간 의미를 다시 일깨어 줄 수 있을까?

 

사람의 뇌와 유전자에도 연어처럼 이미 향수와 회귀본능이 프로그램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은 그 힘겨웠던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절로 바꾸어 버렸고 우연한 기회에

만남을 이어가게 된 그 시절 전우들은 가슴에 묻었던 해묵은 기억을 꺼내들고 남자들의 영원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우리 인생의 짧은 3년 이지만 너무 많은 변화와 경험을 허락했던 시간이고 우리 정신세계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 시간이었기에 우리가 그 곳을 함께 돌아보는 것은 늘 마음 한 구석 밀린 숙제

처럼  남아 있었다.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로만 남아 있었던 그날이 오늘로 다가 온 것이다.

 

수원에서 엄하사와 만나 사창리로 떠나는 길은 휴가철이라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합류하기로 했던 오병장은 개인적인 일정이 맞지 않아 합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남자 둘이 과거를 회상하며 떠나는 진한 추억여행이 되었다..

 

 

광덕산 카라멜 고개

카라멜 고개를 넘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그 노래

카라멜 고개를 넘던 그 날 이기자 부대가 있었네

잊지 말고서 다시 뭉치자 아아아 이기자 친구들…”

우린 다섯명이 다시 뭉치고 두 명만 그 곳으로 가고 있다.

 

 

 

그날의 생각에 코끝이 찡해온다.

82년

우리를 태운 군용트럭은 누런 카라멜 같이 길고 먼지가 펄펄날리는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달려

부대에 우릴 내려 놓았다.

그날 연대 연병장에서 선착순 세 번 1등을 했는데 결국 달리기 잘 한다고 소총중대로 배치되었다.

주특기 100

소위 말하는 100원 짜리 보직

3년 내내 박박기고 걷고 달려야만 하는 고생길이 예약된 보직을 처음 부모형제와  떨어져서 내 인생의

첫 번 째 난관으로 마주하였다.

그날 중대 회식 중이었는데 겁 없이 배치된 난 온 부대원들이 막걸리 세례에 배불뚝이 가 되고 급기야

인사불성이되는 호된 신고식을 치뤄야 했다.

 

내가 이기자 부대 79연대 11중대에 배치 받고 매 주말이면 전역자가 줄을 이었다.

우린 길게 도열하여 악수를 하면서 그 노래를 불러 주었다.

전역이 몇 개월 남지 않은 고참병들은 내게 늘 하던 말도 기억이 난다.

도이병 너 군대생활 몇 년 남았어?”

30개월 남았습니다.”

야 임마 그날이 오냐? 나 같으면 자살하겠다

매일 나를 골리며 재미있어하고 사회 나가면 사창리 쪽을 보며 오줌도 안 눈다고 하던 그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적시며 떠났다.

복바치는 감격인지 슬픈 이별의 눈물인지 모르지만 울먹이면서 하늘이 노란 세월을 감당해야 할 신병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며 떠나갔다.

그 노래는 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매주 내게 저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 속에 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조금씩 강해졌고 떠나는 그들의

등을 다독거려 줄만큼 씩씩해 졌다.

하지만 내가 떠나는 날 그 노래는 내 뺨에도 눈물을 흐르게 했다..

엄하사는 전역하는 눈시울이 젖은 채 날 연대까지 배웅에 주었다.

 

간간히 민간인이 있었고 대부분 길 보수작업을 하던 군인들이 계곡에서 몸을 씻던 광덕산

계곡은 초특급 유원지가 되어 기억 속에 표구된 예전의 호젓함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엄청난 세월은 자연도 이렇게 바꾸어 버렸다.

 

고개를 내려서서 들어서는 사창리 입구 쪽은 개발이 진행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번화가는 좀더 붐비고 복잡하긴 하지만 예전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사창리에서 명월리 가던 길은 겨울에 허구헌 날 제설작업하던 길이다.

계곡물은 28년을 흘러 바다로 갔고 난 이제 초로에 들어 아쉽게 흘러가버린 세월과 그 물길을 바라본다.

 

 

명월리는 기억에 아직 선명했다.

명월리 표석을 대하고 엄하사와 사진을 찍으며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명월리는 그 때와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아침마다 웃통을 벗어 던진 채 구보로 달려 왔던 곳

행군의 먼 길을 돌아 솜쳐럼 지쳐 돌아올 때 휴식할 부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환영해 마지 않던 부대 마을

면회 온 부모님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 서글픈 이별 때문에 다시는 오시지 말라고 당부하며 보냈던 명월리

여전히 집 몇 채 안 되는 낡은 마을이 일깨우는 빛 바랜 추억과의 해후는 콧날이  시큰한 반가움과 가슴 찡한

감동을 몰고 왔다.

긴 세월에도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구나

 

우린 설레임 속에 젊은 날 우리의 발자국을 따라 시간을 거스르는 추억여행을 계속했다.

2799부대 표범중대 막사

우리가 훈련하던 각개전투장 , 사격장

실내고개

다목리 , 육단리,

내 가슴을 흔들었던 아름다운 단풍의 화악산과 촛대바위

그리고 오월에도 눈과 얼음이 남아 있던 화악터널 그리고 원시림에 뒤덮힌 계곡

 

그 추억들은 하나같이 희미하거나 선명한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우린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세월이 많이 변하게 한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린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추억들 위에 쌓인 먼지를 조금씩 털어 내면서 기쁘고

행복했다.

 

지난 시간은 늘 아름다운 법이다.

그 시간이 많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추억은 더 강하게 시간을 붙들고 세월은 아름다운 빛깔로

아쉬움과 그리움을 채색한다.

 

저물어 가는 화악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엄하사와 둘이 마주했다.

우린 한 잔의 술을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다시 군대로 돌아 간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허심탄회하게 지나온 세월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오랜 친구 이상이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의지하며 위로하며 보낸 우리 둘은 긴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나고 오늘 이렇게

함께 추억여행을 만들었다.

 

우린 얼마나 멋진 군대생활을 했는지

그 때 우리가 얼마나 싱싱하고 멋진 젊은이였는지

 

오늘은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늘 여행이 세상에 메말라 가는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었다.

무슨 운명이 우릴 다시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다시 내가 세월에 잃지 않아야 할 형제와 같은 친구였다.

 

우린 사창리 길거리 의자에 걸터앉아 다시 한 잔의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인생과세월에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의 멋진 추억여행과 앞으로 우리가 살아 갈 즐거운 인생에 대하여 그렇게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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