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몰운대
아쉽지만 더 갈 데가 없습니다.
1년 4개월
420km의 긴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환호작약할 것 같았던 완주의 기쁨은
차가운 비가 내리는 항구도시에서
조용하지만 뜨거운 감동으로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여름,가을,겨울,봄,그리고 다시 여름,가을
그 길을 걸으며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인생길을 닮은 그 길을 걸어가면서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배낭 가득 실어 내었습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기꺼이 새벽의 문을 열고 미지의 세상을 향해 떠나던 가슴 벅찬 여행길
숲에서 아침을 맞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낭만적인 그 여정
비와 안개가 대자연의 화폭에 그렸던 멋진 그림들
다시 그리워 질 겁니다.
소박하고 정겨웠던 우리의 산하를 거닐며
우리가 허공에 뿌렸던 웃음들…
우리가 누렸던 자유와 평화
그리고 승냥이처럼 울어대던 차가운 바람 까지
그 시간의 고통과 힘겨움은 맑게 정제되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아름다운 낙동 길이었습니다..
잃어 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고
내 영혼을 노래하고 춤추게 한 한편의 아름다운 시였습니다.
정맥길 내내 죽이 잘 맞던 동행에게
비로소 아끼던 말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무릉객 잘했어”
꽤 괜찮은 넘입니다.
힘들어도 웃을 줄 알고
인고의 뒤에 따라오는 기쁨과 행복의 의미를 알며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을 즐길 줄도 압니다.
떠날 수 없는 뼈아픈 상실을 경험했기에 평범한 날의 빛나는 기쁨과
축복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축히 비에 젖은 산 길을 걸을 수 있는 것 만으로
그 말을 백 번도 더 되풀이 할 수 있는데
그 긴 낙동 정맥 길을 아무런 고통 없이 걸었습니다.
노래는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춤은 출 수 있을 때 추어야 한다는 말이
너무 통절해서 힘겨운 고통마저도 아까운 삶의 한 편린처럼 그렇게
소중했습니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곳에서 잠시 배낭을 내렸습니다.
다시 넘어야 할 큰 산이 바라보이는 비 그친 작은 언덕에서
돌아 온 길을 바라봅니다.
내가 걸어가며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가 고통과 아픔에 힘겹게 넘었던 수많은 산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웠습니다.
난 드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이었습니다.
북망산천을 휘돌아 가는 그 날 까지
더 가벼워지기를 꿈꾸며 조용히 아름다운 세상으로 불어 갈
흥겨운 신바람 입니다.
아직 걸어야 할 산길이 많이 남아 있고 아직 찾아야 할 꿈과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삶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길 입니다.
흐르는 세월 때문에
발 길보다 마음이 더 바빠지지만
튼튼한 두 다리와
뜨거운 젊은이의 열정
가슴 가득한 아이의 동심과 호기심을 잃지 않고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나 이기를 다시 염원해 봅니다.
낙동 길의 땅 끝 몰운대에 서서……
2011년 10월 22일 토 무릉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