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내 인생의 한 모퉁이가 이렇게 아프게 허물어 가는데
난 왜 그 많은 술을 마셔야 하는지….
내가 늘여 놓은 인연이 이렇게 많았는지….
이 때면 내가 일년 동안 마신 술을 세워 놓고 싶어 집니다.
빈 병에 목메어 우는 공허한 언어들과 버려진 시간들
그리고 내 길에 놓였던 비탄과 슬픔을 모아 제물로 올리고
제단아래 꿇어 앉아 나의 나태와 불경과 오만을 장사 지내고 싶어집니다.
얼마나 소중하고 아까운 나의 시간을 흘러 보냈는지요?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는데
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어지러운 눈을 들어 세상 한가운데서 비틀 거립니다.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해의 시간이 술의 강을 따라 날카로운 협곡을 지나 어둠의 계곡으로
토악질 하는 소리와 한 해가 허물어 지는 소리로 도심은 소란해졌습니다.
치악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잠시 도심의 소란한 망년을 벗어나 잠시 고요함 속에 남겨지고 싶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임진년의 새 날을 맞아야 하는데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아서 …
내년에도 세상의 중심에 서서 신명 나는 한바탕 춤판을 벌여야 하는데 하는 짓이 늘
궁상이라서…
쇳소리나는 능선의 칼바람 소리를 듣고 흰 갈기를 휘날리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장쾌한 능선을 바라보면 무거운 머리와 답답한 가슴이 맑아질 것 같았습니다.
버스가 알바를 하는 통에 1시간쯤 늦게 황골에 들었지만 얼어붙은 황골과 계곡을
가득메운 냉기로 입석사 까지는 멋진 초겨울의 설국과 고산설릉의 칼바람의 기대가
살아 있었습니다.
입석사 오르는 길은 초행 길 입니다.
오늘의 산행대장이 가보지도 않은 길의 안내를 자청했지만 국립공원 산 길의 가이드야
인터넷 5분만 검색하면 누구나 가능하고 도착지와 하산시간만 알려주면 초짜 산꾼도
쉽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입석사 오르는 길에 또 공연히 비분강개 합니다.
“ 이 땡초들은 돈이면 다야 ?
도대체 언 놈 허락으로 산을 이렇게 훼손할 수 있는 거야?
돈 있다고 산길을 아스팔트로 쳐발라 이리 숨막히게 해도 되는 거여?”
아무런 힘도 없이 맥없이 분노만 하는 무기력한 자연주의자
난 아직 멀었습니다.
매 주 산에 댕긴다고 껍적거려도 산의 넉넉함을 닮아가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도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세상의 화와 독이 빠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입석사는 돈 많은 절인 줄 알았는데 빈티가 줄줄 흐릅니다.
등로 한 켠 불안한 비탈에 외로이 서서 황량한 황골의 바람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신라 원효대사님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지만 뚜렷한 연혁도 없고 다만 뒷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고려 초기의 부조 작품임에 그 연원을 어렴풋이 유추하는 정도 입니다.
골바람이 휘몰아치고 해가 들기 어려운 냉골에 외로운 절
보여지는 절의 모습은 고찰의 풍모와 위엄과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느닺없이 귀가 심히 간지러웠을 스님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옛사진)
명당은 따로 있었습니다.
입석대 한 켠에는 누군가 허물어진 기단 위에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이 조용히 앉아 있고
눈부신 겨울 햇살을 머금은 노송이 멀리 원주벌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입석사 보다는 입석대가 더 좋은 자리 같습니다.
반가운 햇살을 받으며 사진을 찍고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입석대에서 30미터쯤 가면 강원도 유형문화재 117호 마애불좌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예전사진과 비교하니 세월의 풍우에 늙어가는 얼굴은 사람의 얼굴만이
아닌 듯 마애불상의 부처님도 많이 늙었습니다.
세상 이치가 이리 간단합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달도 차면 기울어 집니다.
마애불이 세월의 풍상에도 기품과 당당함을 잃지 않듯이 꼭 새것이고 젊은 것 만이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보톡스를 맞지 않고도
화려한 장신구의 빛에 기대지 않아도
흐르는 세월을 연륜과 즐거움으로 받아내며 편안히 늙어가는 사람의 모습도 젊은이 못지 않게
보기 좋습니다.
입석사을 지나며 가파라지고 미끄러지는 비탈길에서 아이젠을 착용 했습니다.
부쩍 가까워진 겨울과의 거리가 실감이 났습니다.
입석사에서 600미터 정도되는 너덜지대가 나타납니다.
등에 땀이 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칼바람 한 찰 맞아 정신 바짝차리려고 왔다가 외투도 벗어 던지고
공연히 가슴만 더 뜨거워 졌습니다..
능선에는 제법 눈이 많았지만 다져져 있었고 바람도 그다지 세차지 않았습니다.
마치 동장군이 기세를 누그러 뜨리는 2월말의 겨울산처럼 설산에서 오히려 봄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눈부신 눈밭
그리고 멋진 조망
겨울의 초입에서 오랜만에 대하는 낭만적인 설경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비로봉이 바라보이는 능선 눈밭에서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걸어 올랐습니다.
야호 ! 벌써 정상 입니다.
세상의 중심을 옮기는데 세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세상에 나의 영토를 넓히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우린 너무
그렇게 떠나기를 힘들어 합니다.
떠나면 낡고 답답한 것들을 홀가분하게 떠내 보내고 무언가 새롭고 밝은 것으로
가슴을 채울 수 있는데 우린 익숙한 세상과 유리되는 것을 귀찮아 하고 두려워 합니다.
사바세상을 어리석음과 신에 대한 불경함을 사하고자 누군가 오랜 세월 묵묵한 산처럼
세월의 풍상을 견뎌내며 쌓았을 돌탑 위로 푸른 하늘이 10월처럼 드맑은 비로봉에서
세상의 진폐와 욕심 그리고 2011년의 아쉬움을 모두 바람에 날려 보냈습니다.
“악”소리 나는 산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너무 순조롭게 열린 비로봉의 하늘 길
멋진 얼룩 능선과 광활한 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두 팔을 높이 들었습니다.
“一切唯心造”
굳이 고승대덕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살아가다 보면 기쁨과 행복은 언제나 내 작은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불영사 천축선원 일운스님이 말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언제인 줄 아느냐?”
“오늘 바로 이순간”
숱한 날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큰 눈과 칼바람의 서슬이 머무르지 않는 심산의 아쉬움을
일 깨우지만 눈부신 태양아래 큰 산 위에서 흘러가는 흰 구름을 만난 오늘도 멋진
날입니다.
작은 기쁨과 슬픔들이 모인 날들이 한 해를 만들고 그 한해는 이리도 쉽게 흘러 갑니다.
흘러가는 시간들은 우리의 삶이 어때야 함을 명징하게 일깨워 줍니다.
깨달음의 길은 멀어 한 해가 지날 적 참선하는 도인들은 두 다리를 뻗고 울었다는데….
깨달음의 먼 길을 피해가며 속세의 즐거움을 탐하고 가끔 그래도 이렇게 큰 산에 서서
작은 깨우침을 받고 있으니 난 출가한 스님보다도 속세의 凡人 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찌 도인이 따로 있겠습니까?
설산의 칼 바람 속에서 후련함을 만나고 얼어 붙은 동토 아래서 새봄을 준비하는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쉽게 세상의 중심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날의 즐거움을 불러낼 줄
알면 그게 도인이 아닌지요?
구룡사 쪽 하산길은 더 많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습니다.
눈이 다져져서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 가면서 때론 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면서
허허롭게 흘러 내리다 보니 그렇게 먼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위 계곡을 좌우로 굽이치며 흘러가다가 갑자기 얼어버린 세렴 폭포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얼어 붙은 용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치악 산신령님께 소원을 비는 것인지 아님 승천한 용에게 비는 것인지 네 사람은 푸른 물이
보이지 않는 하얀 못에서 물처럼 얼어 붙은 채 서 있었습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과 묵묵한 세월이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 줄 것입니다.
허리가 나은 후 치악산은 두 번 째 입니다.
대둔산에서 한 해의 무탈함을 팔도 산신령들께 빌고 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수 많은
산 길을 돌아 다녔어도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보냈습니다.
용소를 지나며 치악 산신령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구룡사에 들러 한 해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지켜주신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면서 가슴 따뜻했던 치악 여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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