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2년 1월 22일 (일)
산 행 지 : 덕유산
산행코스 : 삼공리- 향적봉-동엽령-안성
동 행 : 나홀로
소요시간 : 7시간 30분
눈을 감아도 나타나는 풍경이 있는가?
겨울이면 당신 가슴 속에서 외치는 무슨 소리 있는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
그리고 날 오라 부르는 덕유의 메아리는
귀향하는 명절 첫날의 빗 속으로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비가 추실거리는 토요일엔 떠날 수 없었다.
작년부터 설날의 자유는 사라져 버렸다.
차례를 위해 집안을 청소하고 위해 장을 보고…
결혼한 4형제들의 풍부한 인력으로 명절이면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리기가 되던
나의 신세(?)는 하루아침에 제주로 신분상승이 되면서 새해 벽두를 장식하던
낭만적인 자유는 책임과 의무의 족쇄를 찬 채 메마른 도시에 드러 누웠다.
포터를 자처하며 열심히 제수음식을 준비하는 비 오는 토요일
향적봉의 가득한 눈 밭과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는 흰 눈발이 종일
눈에 어른거렸다.
그게 환영일까? 동화일까?
도심 가득 내리는 비가 덕유나라에서는 펄펄 흰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건….
마당쇠처럼 열심히 하루를 일한 대가로 일요일 하루의 휴가를 명 받았다.
가슴에 울리는 소리로 행선지는 이미 정해졌고
갈등은 딱 하나였다.
어둠의 계곡을 올라 해돋이를 볼 것인가 ?
겨울 계곡의 황홀한 고독 속을 거닐 것인가?
요즘와서 정확도가 꽤 높아진 기상청 슈퍼 컴퓨터는 내일 흐려서 해를
보지 못한단다.
그래서 난 향적봉의 해돋이를 포기하고 시간을 조금 늦추어 새벽 4시 30분
목을 휘감는 차가운 공기를 목도리처럼 걸치고 어둠의 휘장을 걷으며
덕유세상으로 떠났다.
아버님 할아버님, 할머님 혼자 떠나는 길을 굽어 살피소서
삼공리에서도 아직 어둠은 깨어 나지 않았다.
내가 걷는 건지
어둠 속의 흰 길 위로 유령처럼 미끄러 가는 건지…
속세와 이속이 무의미하고
어둠과 밝음이 무의미하고
거리와 시간이 무의미하다..
동행이 없어 외롭지도 않고
고요가 마음을 어지럽히지도 않았다.
무수한 것들이 말을 걸어 왔다.
새벽
산
바람
눈 덮힌 나무
그리고 오랫동안 홀대했던 나…
새벽이 내 눈을 뜨게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 같은 풍경을 만났다.
계곡의 표지판은 결빙된 눈보라에 덮힌 채 말이 없고
눈과 얼음 아래 간간히 속을 드러내는 계곡은 맑고 투명하다.
새도 잠든 계곡에서 깨어 있는 것은 물소리와 나밖에 없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수 가 누에 들어 온다.
산을 보며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날 지켜 주십시오”
아니 때로는 텅 비운 채
순백의 고요함으로 오늘처럼 저만을 기다려 주소서…
ㅋㅋ 덕유 신령님 방가 방가..
백련사 일주문은 흰 눈을 이고 있다.
인적 없는 산사의 고요와 평화가 가슴에 스며든다.
“나는 아직 깨어 있구나 ! “
8시 30분쯤 되었을까?
흐린 구름 사이로 아직 잠이 덜 깬 듯 부시시한 빛의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눈 꽃 흐드러진 아름다운 산 길을 따라
생각보다 훨씬 낭만적인 눈 세상에 맑은 날씨까지….
오늘 내가 만난 날도 덕유나라를 주유하기에 가장 좋은 날 중의 하루로 기억 될 것 같다.
다시 대하는 눈부신 풍경들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황홀한 눈꽃과 푸른 하늘
가지의 눈과 빙결된 눈 조각을 축복처럼 날려주던 세찬 덕유의 바람
덕유산에서 어제 비는 하루종일 눈이되어 내린 모양이다.
인간이 덧칠을 하기 전의 순백의 세상에 자연이 남긴 조화롭고 경이로운 작품을
감상하며 난 홀로 탄성을 올리며 그 길을 걸었다.
세상에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건 그리움과 감동이었다.
가슴 한 구석 그리움을 빼고 나면 우린 훌쩍 늙어 버리지 않을까?
가슴에 고이는 감동의 샘물은 바닥의 그리움만 남기고 자꾸 퍼 내야 한다.
감동의 샘물은 그래야 다시 고인다.
건조한 세상에 허기지고 메마르다 보면 어느새 감동의 샘은 낙엽처럼 말라버리고
빈 가슴엔 퀭한 바람구멍이 난다.
설산의 고독과 가슴을 흔드는 아름다운 풍경이 빈 가슴에 감동의 샘물을 솟게 한다
아직 늙지 않았다.
홀로 떠남이 이렇게 숨쉬듯 자연스러운 걸 보면…
산과 세상을 향한 나의 사랑과
자연과 아름다운 것을 향한 식지 않는 호기심이 나를 더욱 젊어지게 한다.
나의 자산은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한 권의 지도
내 젊은 날 추억으로 새겨 놓은 아름다운 세상의 가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내 머릿속의 지도
점점 강렬해지는 태양 빛에 눈꽃이 녹아버릴까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덕유의 눈 밭에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거친 바람이 등을 마구 떠밀고 가득한
눈보라를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산오름이 아니었다.
덕유로 홀로 떠나는 겨울여행은 순례이고 명상이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었다..
설산의 설교와 교훈은 늘 내 가슴을 흔들었다.
시린 손발과 숨쉬기 어려운 능선의 바람에도 덕유의 눈세상은 아이의 잊었던 순수와
동심을 일깨워 주었다.
난 덕유의 감동으로 홀로나는 한 마리 즐거운 종달새가 되어 산릉이 구비치는 멀리
까지 즐거운 눈 밭을 힘든지 모르고 날아갔다.
덕유 신령님의 인상적인 환영인사였고 2012년에 내가 누릴 황홀한 여행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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