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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공작산 (100대 명산제 79산)

 

 

 

 

 

'홍천의 산과 물은 맑고 기이하다.() 공작산은 현의 동쪽 25리에 있는데,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태를 봉안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골짜기가 깊고 기암절벽으로 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있는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공작산이라 한다.'(한국지명총람)

 

 

산 행 일 :  2014531 

산 행 지 :  공작산

    :  능선에 바람 조금 그리고 여름처럼 무더운날

    :  10.7km

소요시간 :  5시간 45   (집결지 도착 까지 소요 6시간 5)

    :  민수 산악회

         

시간

경유지

비 고

11:15

출발

 

11:41

이정표

공작산입구(문바위골) 1.5km 공작산 정상 1.68km

12:05

이정표(굴업리갈림길)

정상0.73km, 굴업리6.6km

12:33

공작산 정상

 

13:30

식사 후 출발

 

14:04

이정표(천지사 갈림길)

약수봉:4.04km,수타사6.34, 정상 0.68km

천지사(큰골)3.2km, 굴은저수지6.1km

14:31

이정표

약수봉3.16km, 수타사 5.46km, 정상1.56km

14:53

이정표

약수봉2.12km,수타사4.42km,정상2.6km

15:29

이정표(신봉리갈림길)

약수봉1.23km,수타사3.53km,정상 3.49km

신봉리(궝소)2.7km

16:12

약수봉(558.6km)

수타사2.8km, 궝소 1.5km

16:59

날머리

궝소1.3km, 약수봉2.21km, 수타사 200m

 

 

 

산에 들었으되 공작새 같다는 산의 모습은 가늠하지 못했다.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등로는 예상과는 다르게 암릉이 아니라 육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비로소 정상부에 다가가서야 암릉을 나타나면서 등로가 거칠고 비좁아 진다.

 

이렇게 뜨거운 날이었어 ?”

여름처럼 이글거리는 태양과 뜨거운 홍천의 하늘을 정상에 서서야 실감했다.

"야호!"를 외쳤지만 주변을 가로막는 수림으로 인해 정상에서 일대를 굽어보는 후련함과 탁트인 조망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만 먼산아래 흘러가는 산릉들을 보며 저기 어디쯤에 오대산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평소 땀이 별로 없는 내가 바람까지 제법 시원하게 불어 주었는데도 다른 산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그만큼 등로가 계속 오름길이었고 거북이가 온다기  얼린 대짜배기 맥주 한 통의 무게도 한몫했다.

어디 그것 뿐인가?

2.5인분 식사량에 비빔밥을 위한 다양한 식재료 , 2,과일한통 그리고 나의 기록용 DSLR 카메라 까지

무더위의 거친산행에 이러저러 욕심이 보태지면 즐산이 기쁨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정상에서 거북이와 사진을 찍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마눌이 도착했다.

제일 늦게 올라올 줄 알았더니 보미엄마와 준족 일행들을 모두 제치고 3번째로 올라왔다.

서당개 3년이면 이제 풍월을 읊는다고 100대명산 80산에 이제 기본 체력이 잡힌 모양이다.

 

정상부아래 그늘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모처럼 5명의 일행이 함께하는  즐거운 산상만찬

 땀은 좀 쏟았지만  흘린 땀만큼 시원한 맥주 맛과  호사스런 미각의 기쁨을 누렸다. 

이러니 내가 아무리 산에 간들 살이 빠질 턱이 있나?”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먹을 것이 많았긴 했지만 보미엄마와 후미팀이 생각보다 늦게 올라온데다가 그 때가 정상부에 사람이 많이

몰릴 때라 인증샷하는데 시간 소요가 많았다.

어쨌든 우리는 밥먹는시간 너무 오래 지체하지 말라는 민수산악대장의 충고를 개무시 한 채 세월아 네월아

먹을 것 다 먹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챙긴 후에 일행들이 모두 사라진 정상을 뒤로했던 것이다.

모르면 무식하다고 했던가?

그렇게 여유를 부린 것은 오늘 날씨를 과소평가한 것이고 공작산이 처음이라 그 등로에 대한 사전정보와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고 거친 정상을 찍었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마음이 해이해졌다는 것이다.

 

이후에 능선을 따라 수리봉과 약수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암릉이 많았고 기복과 낙차가 점점 심해졌다.

군데군데 로프구간이 나타나고 거칠게 내려 앉았다가 다시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젠 짙푸른 청록으로 넘실거리는 굴참나무 숲은 뜨거운 햇빛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일대에 걸출한 산릉은

울창한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수시로 끌어 들였다.

 

철쭉이 피는 오월과 단풍 드는 가을이 좋다더니 내가 보기엔 공작산은 겨울이 으뜸일 듯 싶다.

여름엔 울창한 수림과 거친 능선에서 땀 한번 쭉 빼고 맑고 깊다는 계곡에 풍덩 빠져서 알탕하는 재미도 좋겠

지만 온 천지사방에 흰 눈이 가득한 날에  헐벗은 나목들 사이로 황량한 산세상과 장쾌한 능선을 바라보면서

쓸쓸히 그 길을 걷는 것이 더 낭만적일 것 같다.

 

훗날 겨울에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산이다.

한 장의 나뭇잎도 남아 있지 않는 가지 위에 흰 눈이 수북히 쌓인 어느 겨울날 승냥이 울음을 내는 칼바람

소리를 듣고 싶다.

내 늙어가는 황혼 길에 볼이 터져 나가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내 영혼의 깊은 울음과 황홀한 고독을 마주

하고 싶다.

 

거북이도 먼저 가고 보미엄마와 일행들도 사라졌다.

오름길에 발군의 역량을 보이던 마눌이 내림 길에서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진다.

오름길 보다 내림길 속도가 더 떨어지는 마눌인데 날이 무덥고 등로의 기복이 심해서 속도가 더 느려진

탓이다.

갈수록 생각보다 거칠고 낙차가 큰 구간이 많아서 전체적인 속도 예측이 쉽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보니 예정된 시간에 하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럴 때는 뒤에 남은  일행이  없다는 사실이 꽤 부담스러워 진다.

오름길은 먼저 올라 와서  일행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고  함께  식사하느라 시간지체가 많았는데

내림길에 모두 훨훨 날아가 버리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간 가다가 함께 온 민수 산악회 일행 두명을 따라 잡긴 했는데 마눌의 속도가 느려져서  그 꼬리도 놓쳐

버렸다.

 

수리봉에서 다시 거칠게 떨어지는 능선이 산허리를 휘돌아 올라가는가 싶더니 마치 내림 길처럼 바닥으로

내려 앉아 개울을 끼고 있는 임도를 만난다.

그곳에서  보미엄마와  거북이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진행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다. 

 

약수봉은 정상까지  900미터 남았다는 이름표를 걸고 벽처럼 앞을 가로 막는다.

무더운 여름날에 체력소모가 많이 마눌이 가파른 그 길을 오르려면 힘이 많이 들 것 같아 걱정스러웠는데 그

임도가 수타사로 연결된단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려온 다른 산악회 산행대장이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이 더 멀기는 해도 훨씬

수월하다고 해서 마눌과 보미 엄마를 그 길로 내려 보냈다.

 

약수봉 등로는 쏟아질 듯 가파르게 일어나 앉았다.

오르면서 그 길로 잘 내려 보냈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함께 온 우리 산악회 산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래

이정표에 임도따라 수타사 까지 6km라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약수봉을 넘어 수타사까지는 2.7km

그늘 없는 임도 길을 따라 6km를 걸어 내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실제 6km는 아니라함)

게다가 예정된 시간은 이제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시방타임 4!

 속보를 유지해야 530분에 도착할 텐데 이거 잘 못 보낸 거 아녀?

게다가 민수대장은 임도에 대한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너나 잘하세요!”

벌떡 일어나 앉아 있는 0.9 km 약수봉 오름길은  오늘 산행로의 하이라이트였다.

무더운 날씨와 거친 산행 후 막바지에서 다시 알프스처럼 솟구치는 약수봉 !

초심자들은 심리적으로 먼저 압도될 그 인고의 길에서 우리는 발길이 밀리는 먼저간 일행들과 보미엄마 친구를

추월하고 가파른 정상에 발도장을 찍었다.

 

정상에는 표석과 지도와 이정표가 서 있고 지친 산객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린 인증샷을 마치고 여세를 몰아 다시 길을 잡았다.

지도도 찬찬히 보지 않은 채 이정표가 가르키는 수타사 방향 (올라오는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측길) 이정표만

보고 출발했다.

등로는  다시 오름 길을 유지하는데 우린 별다른 생각 없이 한 굽이 오를 길을 올라 한참을 내려 가다가 거북이가

이상하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야 지도를 보면서 불현듯 민수대장 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가지 말고 좌측 계곡으로 내려 오란 그 말

당근 알탕은 필수옵션인데 왜 거기까지 가서야 그 말이 생각난다냐?

그리고 이정표 잘해두던 민수 선두대장은 정작 그 곳에서는 왜  표지기를 놓지 않았냐는 말이다.

 

허기사 정상에서 계곡길이야 능선 길이냐는 각자의 취향에 따른 것 일터 원하는 코스를 따르면 그뿐이지만

정작 예정 시간이 늦어진 지금은 당근 빠른 길로 내려가야하고 몸을 씻을 수 있는 계곡길이 정석 아닌가?

하여간 능선길은 1km쯤 더 길고 계곡 물도 없다.

하산 시간이 이미 늦었는데 빠른 길을 두고 등로를 돌아가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계곡 좋은 공작산에 와서 알탕도 못하는 이런 코메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역쉬 머리나쁘고 집중력이 좋지 않으면 몸이 고생하는 거다.

어쨌든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왔기에 우린 가던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고 악조건에서도 알탕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나는 파다닥 거리며 먼저 능선을 치고 내려갔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마눌과 보미엄마를 임도로 먼저 보냈다는 것이다.

 

능선에서 가파르게 떨어진 등로 날머리 근처에 수타사가 200미터 이정표가 나타나고 얼마가지 않아 홀연히

계곡이 나타났다.

아랫 쪽에 다리가 보이는 걸 보니 다리를 지나면 바로 수타사인 모양이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좌측으로 내려오면 만날 수 있었던 계곡길 약 1.2km 위에 궝소가 있다.

 

다행이 용소는우리가 내려온 지점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날이 가물어서 인지 물도 수량도 적고

미지근 했다.

생각 같아서는 훌렁 벗고 들어 가고 싶은데 바로 옆 바위 그늘 아래 한 젊은 여자가 누워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알탕을 못하면 옷 입은 채 메기탕이라도 할까 했는데 이동 베이스 캠프까지 거리가 너무 짧아 옷이 마를시간이

없을 같아서 염치 불구하고 윗통을 벗어 젖혔다.

미안허유!”

젊은 여자가 적잖게 당황스러웠겠지만 꿩처럼 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면 되는 거지

내가 꿩이여 !  그려 여기서 을마 안되는 곳에 꿩이 목욕한다는 궝소가 있질 않은가!”

 

옷을 물에 적셔 상체의 땀을 닦아내고  웃옷만 짜서 다시 입었다.

수냉식으로 몸을 식히고 나서 다시 불어 오는 바람이 젖은 옷을 냉장처리 해주니 여전히뜨거운 염천하에서도

몸의 열기가 가라앉고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해졌다.

 

보미엄마 친구 두사람중 동생은 자취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 연식이 오래되어 힘들다는 언니가 수타사 입구에

앉아 있다.

거북이는 수타사에 들렀다고 한다.

시간이 늦어 수타사에 들러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지도 못하고 물 한모금 마시고 경내를 한번 휘둘러 보았다.

동행을 위해 쫄쫄거리며 나오는 약한 물을 물통에 받고 있는 거북이를 만났다.

마눌과 보미엄마가 걱정되어 부랴부랴 먼저 수타사를 나가서 주차장을 향해 움직이는데 기다리다 지친 이동

베이스 캠프가 수타사 입구 가까이 까지 올라왔다.

 

우린 예정보다 1시간이나 더 걸렸다

뒤풀이도 벌써 끝났단다.

내 뒤에 10명이나 있었는데  B 코스를 탄 한 아줌마가 이렇게 늦게 내려오시면 어쩌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허걱 난 전력질주 한건데글구 우리 뒤에는 아즉 10명이나 남았다는데ㅠㅠ.””

 

마눌이 도착하지 않아 가슴이 철렁했다.

한 시간이 늦어졌다고 난리들을 피우는데 혹시나 길을 잃던지 길이 멀어서 제일 늦게 도착한다면 이거 큰

낭패가 아닌가?

마눌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아 보미엄마 친구한테 보미엄마한테 연락을 취해보라 했는데 다행이 마눌과 보미

엄마는 얼마 되지 않아 씩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짱이여!”

더운 날씨에 체력소모가 많았고 내림길에서 유독 속도가 더 늘어지는 마눌이 우리와 동행을 했다면 우린 지금

보다 40분 이상은 더 늦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계곡길이 아니라 능선 길을 돌아 내렸어도 이 길을 다섯 시간 반 만에 내려오란 것은  너무 시간을

촉박하게 준 것이다.

산행이 전투도 아니고….

대부분 산악회가 그렇지만 민수는 더 유별나다.

오죽했으면 그 옛날 비 오는 덕항산 등산을 마무리하고 산악회 까페에서   민수대장하고  댓글로 설전을 벌였을까?

약수봉을 넘는 등로라면 6시간 30분을 부여함이 적절하다

 

어쨌든 민수산악회 대단하다.

내가 함게 할 때 마다 적적한 산행시간을 부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다수가 예상보다 1시간 씩 늦어지는 것은 다반사 인데 굳이 그렇게 시간을 촉박하게 설정해서 심적 부담을 준다.

물론 2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적전이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마냥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늦게 내려오는 걸 막기 위한 고육지책 이겠다.

하지만 잘못된 시간 계획으로 후반부에 무리하게  오버페이스 하면 즐기기 위한 산행이 해내기 위한 극기 훈련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래서 귀연이 좋다.

정확하게 시간을 예상하고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무릉객같은 사람이 더 유능한

산행대장이다. ㅋㅋ

.

공작산은 꽁지를 펼친 공작의 날개를 타고 내리는 능선 길이 더 거칠고 낙차가 크다.

어쨌든 우린 별로 알려지지 않은 홍천의 100대 명산 공작산을 타고 넘었다.

한마리 공작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게 그 산을 넘지는 못했지만 때이른 서슬 푸른 무더위가 기세등등하고 녹음이

더욱 짙어가는 울창한 숲길을 즐겁게 걸었다.

79번째 여행길을 빛내준 보미엄마와 일행들 그리고 거북이에게 고맙다는 말 전한다.

내가 지고 간 얼린 맥주 정상주 그리고 함께한 산상만찬 짱 이었다.

 

공작산은 마치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공작포란형(孔雀抱卵形)이라고 한다. 그 명당에 수타사가 자리 잡고

있다.

수타사는 서기 708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으나, 원효는 686년 입적했으므로 사실과 맞지 않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절이 자장·의상·원효 등이 창건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절의 격()을 높이기 위한 한 방편

이지 않나 싶다. 명당이라 그런지 로또 407억원에 당첨된 사람과 2·3등에 당첨된 사람이 인근 두촌면에 살고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월간산)

 

수타사에는 보물 제 745호 월인석보가 있고 왕비의 태가 보관되어 있다.

월인석보는 오대산 월정사로 등창 치료차 길을 나선 세조가 먼저입적한 정희왕후를 생각하며 남기고 간 것으로

추측한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한글 창제 직후인 1459(세조 5) 간행된 부처의 일대기를 기술한 불교서적이다.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으로, 조선 초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