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가위에는 어떤 추억을 만들까?
민주지산을 계획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민주지산 부부동반 휴양림 회동을 하고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았던
그날부터 …
민주지산 해맞이는 한 번도 하지 못해서 이번 추석 전 날에 만나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추석 전날이 일요일이라 거북이는 동행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백대명산을 서너개 씩 해대는 거북이 녀석은 일요일 까지 산에 가면 하느님한테 경을 칠 것이다.
아들 녀석 마지막 훈련도 필요하고 모처럼 야반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
가족밴드에 공지해서 동행이 있으면 태현을 데리고 가고 없으면 혼자 가는 거다.
일주일 전에 올린 새벽 일출 가족산행 공지는 내내 침묵하다가 출정 이틀을 앞에 두고 이서방과 태형이가
전격 신청을 했다.
그래서 한가위 민주산객은 합이 4명
마눌의 마티즈를 유보하고 이서방의 차로 출발하기로 했다.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민주지산에 올라 해맞이를 하고 석기봉과 삼도봉을 휘돌아 물한계곡
으로 원점회귀 하는 거다.
새벽 1시에 태현이를 깨워 여장을 꾸리고 어머님 댁 주차장에서 이서방 부자와 합류했다.
물한계곡 가는 길
엷은 구름 때문인지 별빛은 희미하고 달빛은 창백하다.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며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을 거쳐 황간과 상촌리를 경유 물한계곡으로 간다.
오늘이 추석 전날인데 새벽 2시가 넘어선 경부 고속도로는 차적이 희미하다.
밤 12시가 넘어 서울을 출발하면 어쩌면 제시간에 부산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
그 옛날 밤10시가 넘어 강원도 휴가를 출발하던 것처럼…
가장 한 사람만 고생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차에서 잠을 자며 새벽닭이 울기 전에 푸른 바다를 보거나 고향
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새벽 3시 30분
토끼에게 한 귀퉁이를 갉아먹힌 노랗고 큰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아직 새벽이 잠자고 있는 야심한 시간에
우리는 산행들머리 물한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교교한 달빛에 가로등이 하릴없이 졸고 있는 주차장에는 한 대의 차도 없고 스산한 바람만 불어간다.
출발을 하기 전에 버너와 코펠을 내여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한다.
아뿔싸 !
라면을 차에 두고 왔다.
“아이고 안성탕면 다섯 개 “
어둠 속에 경황이 없어서 트렁크에 라면을 그냥 두고 내린 모양이다.
6시간 정도 산을 타려면 라면을 끓여 먹고 가야 하는데…..
그냥 강행할까 생각 했지만 아이들도 있어서 무리다.
준비한 간식은 막걸리와 닭 모래주머니 볶음, 포도,사과 ,빵 몇 개와 초코릿 몇 개
오는 길에 편의점을 본 기억이 있어서 다시 상촌면으로 되돌아 갔다.
마을은 온통 어둠과 정적에 쌓여 있는데 내일이 한가위라서 인지 방앗간은 불이 켜져 떡방아를 돌리고 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들어가서 도움을 청한다.
“새벽산을 오르려는데 배가 고파서 그러니 남는 라면이나 떡 있으면 좀 파세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 보는데 팔월 한가위 웬 미친놈들 다보겠네 하는 딱 그런
표정이다.
‘없어요“ 부연설명이고 나발이고 없이 괜히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어조다.
“혹시 라면 팔만한 슈퍼 같은 곳 없나요 ?” 하고 조심스레 다시 묻는데
이런 시골에 꼭두 새벽에 문을 여는 데가 어디 있고 문 두드리면 일어 나겠소?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서방이 말을 보탠다.
마른 체구에 불쌍한 표정까지 지어가면서….
“먹다 남은 밥이라도 있으시면 좀 얻을 수 없나요?”
역시나 다른 질문의 여지가 불편하다는 듯 물기없는 짧은 대답이 되돌아 온다. “ 없어요!”
상대하기 싫으니 그냥 나가달란 얘기.
낭패감에 망설이는 우리가 안되어 보였는지 주인아저씨가 방안에서 비닐에 쌓인 두손가락 크기의 딱딱한
떡덩이 3개를 가지고 나와서 우리에게 건네주려는데…..
손자를 보고 남았을 주인 할머니 눈을 부라리며 남편한테 소리소리 지른다.
“그거 내일 손님이 찾으러 오기로 했는데 그걸 마음대로 주면 어떻혀 !”
“딱딱하게 이렇게 굳은 떡을 손님이 가지러 온다고?
아이구야 시골 인심 참 험악허네 …
남편도 좀 황당해하면서 손님이 가져갈게 아니라 변명하는데 할머니는 계속해서 언성을 높여 볼멘 퉁을
퍼부어 댄다. .”
어이 상실! 그리고 모처럼 새벽산행에 한껏 고무된 기분은 비분강개 수준까지 고꾸라졌다.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
세상에 거지한테도 그리 박절하지 않겠다.
남편을 몰아붙이는 그 아주머니 얼굴이 완전 마귀할멈 같았다.
“불쌍한 아자씨 ! “
난 한번 기분상하면 됐지만 아자씨는 평생 어떻게 살까 ?.
“상촌 떡 방앗간 “
정내미가 뚝 떨어졌다.
물 맑은 물한계곡 마을 상촌리 인심은 도시보다 더 사납다.
물은 좋으나 인심이 아주 상한 마을 상촌.
내 앞으로 상촌을 거쳐가도 쉬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편의점을 본 것 같아 네이버에서 황간 편의점을 검색하니 한 곳이 나타난다.
거기로 전화를 하니 젊은 청년이 전화를 받는데 24시간 편의점이 맞단다.
야호!
오메 황간은 대도시여…!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데 우리는 라면 5개 때문에 기꺼이 어둠이 깔린 시골길 50km를 왕복 했다.
주차장 등나무 아래서 달빛에 기어코 라면을 끓여서 어렵게 속을 풀고 우린 어둠 속으로 출발했다.
산 행 지 : 물한게곡-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
날 씨 : 밤에는 춥고 낮에는 무덥다 (낮온도 30도 이상)
거 리 : 약 13 km(원점회귀)
소요시간 : 7시간 (등산: 5시간 17분 /휴식 및 식사 5시간 17분)
동 행 : 도태현,이서방,이태형
등로갈림길 - 민주지산 : 2.8km (1시간 37분 소요)
민주지산 - 석기봉 : 2.9km (1시간 20분 소요)
석기봉 - 삼도봉 : 1.4km (36분 소요)
삼도봉 - 황룡사 : 4.4km (1시간 34분)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5:20 |
들머리 표석 출발 |
|
06:53 |
능선 이정표 |
민주지산 0.12km,석기봉 2.53km |
06:57 |
민주지산(1241m) |
약 20분 소요 |
07:17 |
민주지산 출발 |
|
08:37 |
석기봉(1,200m) |
약 32분 휴식 및 소요 |
09:09 |
출발 |
|
09:14 |
정자 |
비박지 |
09:45 |
삼도봉(1,178m) |
석기봉 1.4km, 민주지산 4.3km, 향로봉 4.4 km (약 11분 소요) |
09:56 |
삼도봉 출발 |
|
10:35 |
고목 쉼터 |
약 11분 휴식 |
11:12 |
이정표 |
삼도봉 3.0km, 물한계곡 2.3km |
11:15 |
알탕소 |
약 30분 휴식 |
11:45 |
알탕소 출발 |
|
11:55 |
잣나무골이정표 |
삼도봉 3.55km |
12;10 |
황룡사 |
|
12:20 |
물한계곡 주차장 |
산행완료 |
민주지산 가는 길
헤드랜턴과 렌턴을 가지고 어둠 속을 오른다.
5시 20분
우린 대전에서 두시에 달려가고 동쪽 바다를 건너온 새벽은 어두운 밤길을 달려와 우리는 민주지산 등산로
중턱에서 만났다.
숲 사이로 여명이 조금 씩 비집고 들어 오는가 싶더니 하늘이 빈 곳에서 한꺼번에 새벽이 뛰어 들었다.
날씨가 좀 흐린 것 같기도 했는데 경사가 조금 씩 급해지는 산 허리를 오를 때 쯤 형체가 보이지 않는 태양은
나뭇가지에 붉은 비단과 금실을 걸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태양의 붉은 빛이 숲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자 진한 아쉬움이 인다.
오늘 민주지산 정상에서 꼭 만나고 싶은 풍경이었는데……
출발시간에서부터 모든 게 치밀하게 준비되었는데 사소한 실수로 우린 민주지산 정상에서 마주해야 할 붉은
한가위 태양을 산비탈에서 만나고 있다.
모든 타이밍을 다 맞추고 나서 그 놈의 라면 다섯 개 때문에….
“세상일 이란 게 가끔 예상치 않게 꼬이기도 하는 것 아이가?”
목표는 조정되고 계획과 시간표는 수정되는 거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와 부주의가 세상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기도 한다.
시행착오와 실패로부터 성공의 실마리와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시간과 열정의 낭비일 뿐이다.
일출 한 시간 후의 풍경은 변화무상한 또 다른 얼굴로 우릴 마중할 것이다.
거기에도 내 마음을 흔드는 한 폭의 그림과 한 수의 시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머지 않아 다시 산에 오르면 오늘 유보한 새날의 감동을 다시 만나겠지만 두 부자가 이렇게 멋진 날씨에 장엄
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민주지산 일출은 다 마치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한번 더 오라시는 산신령님의 전갈은 새해 1월 1일에 소명할 것이다.
민주지산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몰아치고 연무에 쌓인 채 흘러가는 산릉은 유장하다.
익숙한 고원 산릉이 방사선으로 파노라마 치는 곳
멀리 각호산에서 내달려온 능선은 민주지산에서 담대히 솟구치고 꿈틀거리며 석기봉으로 굽이친다.
흰 구름을 두른 석기봉은 일대에 우뚝하다
아직 녹지 않은 막걸리를 부어 올리며 민주지산 신령님께 아들과의 백두대간 종주를 고하고 무사히 종주를
마무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산세상에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무사종주 기원 삼배를 올리며 한참을 법썩을 떨고 나서야
비로소 민주지산 아래서 비박을 한 산님이 있음을 알았다.
그야 말로 진정 풍류를 즐기는 심산의 진객이다.
혼자 산에 올라 삶의 황홀한 고독을 노래하며 오롯이 낙조와 일출의 장관 속에서 고요한 기쁨의 세상을 누린다.
세상을 관조하는 그의 여유와 낭만이 부러워 졌다. .
그는 민주지산의 새벽을 가족과 함께한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우린 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석기봉 가는 길
눈부신 햇빛이 숲 사이로 들아 치고 시원한 바람이 산길에 오락가락한다.
우리 말고 길을 나선 이 아무도 없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직 꽃 잎을 떨구지 않았다.
민달팽이는 느린 걸음조차 옮기지 않고 이슬 머금은 바위에 붙어 있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심산의 기운을 느끼며 능선을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멀리서 아득하던 석기봉이
오래지 않아 눈앞에 다가온다.
석기봉을 지척에 두고 등로는 가파르게 오름 길을 이어가다가 로프가 달린 절벽지대에 다다른다.
석기봉
이름에도 풍경에도 태고의 아득함이 느껴진다.
석기봉은 가파르게 솟구친 능선 위에서 구석기 시대의 타제석기처럼 세월에 마모되지 않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고 바람 길에 침묵하고 있다.
구름에 쌓인 먼 능선들과 삼도봉에서 유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장관이다.
푸른 빛 맑은 하늘을 이고 선 태고의 풍경들은 오랜 세월에도 원시와 야성을 잃지 않았다.
햇빛이 조금씩 강렬해지고 바람은 여전히 시원한 고산 영봉에서 잠시 휴식하며 어머님이 준비해주신 닭떵집
안주로 술 한 잔 친다.
그윽한 술 맛은 풍경과 빚어내고 도도한 취흥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바람이 깨운다.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예서 신선과 술 한잔 치고 가리”
삼도봉 가는 길
석기봉에서 삼도봉 까지는 1.4 km 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편해진 능선 길에서 수줍게 손을 흔드는 야생화들과 눈인사를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원한 1000
고지 능선 길을 걷는다.
완만한 내림길을 가다가 정자를 만나고 다시 조금 능선 마루금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홀연히 헬기장이 나타
나고 삼도봉이 선다.
삼도봉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부지런히 석기봉을 향해가는 산객 1명을 만났다.
우리처럼 새벽에 움직인 사람이다.
삼도봉
삼도의 경계가 지나는 곳
빗물은 지척에서 소속이 갈린다.
아랫마을에서 올라 온 청년들이 세 명이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남은 막걸리 잔을 올려 백두대간 삼도봉을 주관하시는 산신령님께 삼배를 올리고 백두대간을 무사히 종주를
기원했다..
백두대간은 꿈틀거리며 남으로 흘러 간다.
아들에게 우리가 천왕봉에서 저능선을 따라 올라와 이 삼도봉을 지나갈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황룡사 하산 길
삼도봉에서 심마골재 까지는 900m , 심마골재에서 황룡사 까지는 3,5km 이다.
울창한 숲과 완만한 내림 길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천천히 물길 따라 흘러 내렸다.
고목이 바위를 끌어 안고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하고 내려가는 길
중간 지점을 지나고부터는 계곡 성수세례 적지 물색을 위해 혼자 먼저 내달았다.
게곡 여기저기를 살피며 내려 가다가 물길이 방향을 바꾸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길을 지나자 등로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 폭포가 큰 소리를 내고 제법 큰 소가 형성된 곳을 발견했다..
길을 지나는 산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천혜의 알탕소 였다.
수림이 울창하다 보니 한낮의 햇빛조차 간밤에 떨어진 기온을 채 올리지 못해서 계곡의공기는 서늘하고 계곡
물은 소스라치게 차가웠다.
여름의 별미 싱그러운 알탕의 계절이 지나간다.
대한 민국의 멋진 계곡과 알탕이 있어서 올여름도 너무 즐거웠다.
멋진 심산계곡의 내 전용탕들…
오월의 황정탕을 시작으로 공작탕,내연탕,화악탕,백운탕,가리탕,덕유안성탕,용추탕,뱀사탕,갈기탕,물한탕 까지
그다지 땀을 흘리지 않아서 서늘한 계곡에 앉으니 금새 몸에 한기가 스민다.
민주지산 계곡에는 벌써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이 서성인다.
얼음물이었지만 성스런 의식을 내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9월 까지는 알탕의 계절이야 !”
내가 제일 먼저 물속에 뛰어들고 이서방이 뒤따라 들어 왔는데 아이들은 계곡물의 차가움에 기가 질려 세수
하고 발만 씻었다.
황룡사에 내려오자 태양의 열기는 피크를 치닫고 온도는 30도를 넘어섰다.
계곡물에 짜서 입은 팬티와 옷은 거짓말처럼 말라 버렸다.
가족과 함께 새벽을 열었던 민주지산 한가위 산행은 멋진 추억을 남긴 채 아무런 불상사없이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우린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새벽산의 여운을 간직한 채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서방이나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달빛에 끓이던 라면과 달과 별을 보며 걷던 기억들
그리고 맑게 깨어나던 민주지산의 아침풍경은 그 옛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산이 그린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함께 부른 멋드러진 노래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번 산행을 통해 산이 주는 위안과 교훈이 그들의 가슴을 흔들어 스스로 건강하고 흔쾌한 기쁨을 늘 가까이
하면서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의 거제도 둘째날 (노자산-가라산 종주) (0) | 2015.03.23 |
---|---|
민주지산 (0) | 2014.12.29 |
백두대간 출정 사전 미팅 및 화합산행 (0) | 2014.09.01 |
친구들과 갈기산 (0) | 2014.09.01 |
뱀사골 트레킹 (0) | 2014.08.13 |